오월의 잔인했던 제주도 낚시 2일 차. 오전 차귀도 지실이에서 돌돔 찌낚시를 시도했다 쉴 새 없이 불어닥치는 바람에 카메라까지 망가지자 급 의욕 상실. 남은 미끼가 아까워서 싸들고 구엄 포구 방파제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오후 낚시를 했는데 시간은 이미 피팅타임과는 거리가 먼 한낮인데다 물때도 완전히 날물로 돌아서면서 대상어 포획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저도 피곤했지만, 아내도 쉬고 싶어하니 철수를 일찌감치 서둘렀습니다. 그리고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자환이아빠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돌돔회 드셔야죠"
"잡았어요?"
"한 마리"
"씨알은?"
"47cm 정도 됩니다."


결국, 한 마리 낚는 데 성공한 자환이아빠님, 배경은 게스트하우스 공동 주방

제가 알기로 그날 지실이에 돌돔 원투꾼만 여덟 분 가량 들어간 걸로 아는데.

"오늘 거기서 몇 마리 나왔어요?"
"다 꽝 쳤어요. 저 혼자 한 마리."
"와우. 미끼는 참갯지렁이(혼무시)에서 나왔어요? 소라미끼에서 나왔어요?"
"혼무시 물고 올라왔어요. 전방에 아무리 해도 입질이 없어서 한 70m 날렸더니 거기서 물더라고요."
"나온 시각은요?"
"대략 3시 반 정도"

고기 나오면 저는 이것저것 물어보는 편입니다. 나중에 데이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돌돔을 걸면 밀당 없이 강제로 띄우는데 랜딩하는 순간 고기가 뒤쪽으로 넘어가 땅바닥에서 철푸덕 했답니다. 마침 그곳에서 단잠을 주무시고 계신 산소맨님. 갑자기 하늘에서 날라온 돌돔 한 마리에 영문도 모른 채 깜짝 놀라 일어나셨다는 후문. ^^ 


어쨌든 한 마리라도 대상어를 봤으니 불행 중 다행이고요. 이제부터 칼질은 저의 몫입니다. 돌돔팀 숙소(게스트하우스)와 우리 부부 숙소는 다른데 같은 제주시에 붙어 있어 15분이면 오갈 수 있습니다. 저는 게스트하우스를 둘러보며(게스트하우스는 처음 구경하네요.) 공동 주방시설을 이용해 돌돔을 회 뜨기로 합니다.


우선 아가미와 내장을 빼냅니다. 돌돔 내장은 버릴 게 없는데 애와 장, 그리고 수컷의 정소는 데쳐서 먹을 겁니다. 사람들은 정소를 '곤이'라고 부르지만, 잘못된 용어라는 것 예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었지요? 이리가 맞는 표현법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게 안 보이네요? 한참을 뒤적거렸지만, 쓸개가 안 보입니다. 쓸개 안 터트리려고 조심히 배를 땄는데, 설사 터졌다 해도 쓸개주머니는 있어야 할 텐데 어디에도 보이질 않습니다. 마치 귀신에 홀린듯 한 기분. 나중에 운전해야 하므로 쓸개주 먹을 일은 없지만, 그래도 돌돔 쓸개를 잃어버리니 아쉽네요.

"이런 쓸개 빠진 녀석 같으니"


돌돔 위장에서 나온 것들

돌돔 위장엔 이런 껍데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바위에 붙은 따개비 같은 조개류를 우악스럽게 부숴 먹은 것입니다. 오월의 제주도는 돌돔이 성게나 기타 딱딱한 먹잇감을 부숴 먹을 만큼 활성도가 좋은 계절은 아닌데요. 그래서 비교적 부드러운 참갯지렁이나 소라를 쓰기도 하는데 이 녀석의 식사 내역을 보니 생각보다는 활발하구나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포를 뜹니다. 살 색깔을 보니 피를 잘 빼서 오셨네요. 시가로 치면 40만 원에 육박하는 녀석이라 조심조심 뜨고 있습니다. 주방에 큰 도마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싱크대에서 하는데요. 공동 취사구역이다 보니 시설물을 이용하는 투숙객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시간은 저녁이 지나서 한산하니 다행이었습니다. 이곳은 서양인과 중국인 손님도 있었는데요. 중국인은 그렇다 쳐도 서양인들이 이 모습을 보고 행여나 충격을 받는다면 저로서는 정말.


흥미진진할 것 같군요. (한 점 드셔 보실라우? ㅎㅎ) 갈비도 조심조심 발라냅니다. 이 작업을 잘못하면 맛있는 뱃살이 홀라당 날아가지요. ㅠㅠ



돌돔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껍질데침(유비끼). 끓는 물에 잠시 데친 후 얼음물에 몇 번 흔들어 주면 정말 꼬들꼬들한 식감의 껍질 데침이 완성됩니다.


이제 거의 다 돼갑니다. 그 사이 돌돔팀은 낚시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마쳤습니다. 이 와중에 아내는 몇 분 만에 회를 뜨는지 초시계를 재고 앉았고. (이런 고기는 빨리 뜬다고 좋은 게 결코 아니거든?) 그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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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cm급 자연산 돌돔회

공동 취사 구역에서 글로벌한 투숙객들의 눈칫밥을 먹으면서 완성한 돌돔회! 중국인들이야 지상에서 책상 빼고 다 먹는 민족이니 이런 것쯤은 약과지만, 아까 백인들은 어디갔을까? 반응 좀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안 보입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큰 접시가 없어 할 수 없이 쟁반(부산말로 오봉 ㅋ)위에 데코레이션을 해야 했습니다. 다 먹고 나면 깨끗이 씻어서 제자리에 ^^


자연산 돌돔의 고운 때깔 하며


간, 이리, 껍질까지 어느 것 하나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내장 울렁증이 있어 조금만 냄새나도 꺼리는 편인데요. 유일하게 먹는 쥐치 생간에 이어 돌돔 간도 별미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쥐치 생간을 더 좋아하지만, 돌돔의 익힌 간도 몇 점 먹을 만합니다. 돌돔이 40cm까지 자라려면 생후 5년은 걸리는데 그 이후로는 성장 속도가 매우 느려져서 6년생이 된다고 한들 50cm가 되기 어려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녀석은 47cm니깐 6년생은 되었으리라 짐작하는데요. 6년 동안 먹어치운 먹잇감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 게 바로 간 때문이었습니다. 소라, 전복, 오분자기, 그 외 여러 패류들을 부숴 먹으면서 그 영양분을 고스란히 받아 낸 것이 저 간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먹으니 간이 상당히 맛있네요.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곤이라 부르는 '이리'는 별맛은 안 났지만 담백했습니다. 가장 맘에 들었던 건 역시 껍질. 차 운전만 아니었음 소주랑 먹고 싶었는데 지금은 아쉽게도 맥주 한 병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생와사비가 아니지만, 지금은 형편상 생와사비라 써진 튜브형 고추냉이를 얹어서 회 맛을 음미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집 냉동실에서 자는 생고추냉이가 그립네요. 생선회의 격이 높으면 높아질수록 부수적인 소스들도 높아져야 하는 법인데 낚시꾼이 그런 것까지 챙겨가며 먹기엔 환경상 어려우니까요.

그나저나 이번에 잡힌 돌돔은 아직 제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배지근한 맛은 덜하지만, 쫄깃한 맛은 여타 어종 중 가히 최곱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차진 자연산 돌돔회. 비록 제 손에 잡힌 녀석은 아니지만, 생선회 맛은 낚시바리로 잡힌 것을 최고로 친다는 것, 아시는 분들은 알고 계실 겁니다.

사실 이 정도 크기의 돌돔이라면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수산시장에서도 구입해서 드실 수 있습니다. 가격은 그날마다 시세가 정해져 있지만, 솔직히 부르는 게 값으로 보통 40~50만 원, 더 큰 건 그 이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크기가 크다고 해서 자연산이라고 믿으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일본에서 들여놓는 양식 돌돔도 40cm급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외형상 양식과 자연산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매일같이 양식과 자연산 돌돔을 취급하는 업자들, 그리고 돌돔 전문 낚시꾼이 아니고선 어렵습니다. 일반인들은 그저 크기만 가지고 양식이다, 자연산이다 라고 추측만 할 뿐입니다. 당일 낚시로 잡은 자연산 돌돔을 맛본다는 것은 꾼들에게만 가능할 것입니다.


잡힌 지 얼마 안돼서 피를 뽑은 후, 가져오는데 한 시간밖에 안 걸렸으므로 고기의 스트레스가 적고 신선도가 살아있습니다. 수산시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대형급 자연산 돌돔은 그물에 잡힌 것들이 많습니다. 일단 물고기가 그물에 갇히면 빠져나오려고 갖은 힘을 씁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며 상처도 생기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횟감은 낚시로 잡은 걸 최고로 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연산 돌돔 옆에서 젓가락질을 기다리고 있는 파닭. 돌돔이 크긴 하지만, 성인 네 명이 돌돔회만으로 저녁 끼니를 때우기엔 뭔가 부족한 듯싶어 치킨을 배달시켰습니다. 원래는 족발이나 보쌈을 시키려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무라 아쉬운 대로 파닭을 시켰는데요. 정말이지 아무리 봐도 자연산 돌돔회와 파닭은..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었습니다. ㅎㅎ 하지만 지금 이 시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낚시하느라 허기진 우리에게는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식량(?) 이었습니다. 암튼 산소맨님과 자환이아빠님 덕분에 자연산 돌돔가 파닭까지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4~5월은 시기적으로 수온이 매우 불안정한 계절. 이때가 오면 겨우내 낚시를 못했던 꾼들이 슬금슬금 나와 따듯한 봄 햇살에 낚시의 기대감이 한껏 커지곤 하지만, 수온은 여전히 차서 생각처럼 고기가 낚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봄 바다의 특징으로 대류현상이란 게 있습니다. 밤새 조용했다가도 새벽녘 해가 수평선 위로 얼굴을 내밀면 그때부터 예보에 없던 바람이 불어닥쳐 꾼들을 고생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봄 바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으로 '해무'가 있습니다. 해무란 바다에 피는 안개인데요. 윗 공기는 따듯하지만, 바다 수온은 낮아서 이 둘의 충돌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해무가 생기면 수온이 차다는 증거로 낚시가 잘 안 됩니다. 저는 올해 오월, 낚시가 너무 하고 싶어서 빈작을 각오하더라도 여기저기 다녔습니다만, 이럴 땐 좀 움츠리면서 비용을 세이브 해두는 것이 현명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들어 제주도 낚시에 대해 많은 문의가 들어오고 있는데요. 오월은 좀 참아주시는 게 어떨는지요. ^^; 본격적인 벵에돔 시즌은 6월부터입니다. 그때부턴 수온도 안정기에 접어들어 벵에돔도 곧잘 피어오르니깐요. 저처럼 돈은 돈대로 쓰고, 삽질은 삽질대로 하기보단 아껴두셨다 6~12월에 마음껏 낚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산 돌돔회를 먹고 피로회복을 한 우리 부부는 제주도 낚시 마지막 날을 앞두고 있습니다. 3일 차 낚시 계획은 아직 가보지 못했던 서귀포 범섬에서 벵에돔 낚시를 할 계획이었는데요. 이날도 결국 실시간 연안정보에서 제공하는 잘못된 데이터를 믿고 범섬으로 향하다가 핸들을 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바뀐 행선지에서 저의 수제자 어복부인이 감히 저에게 도전장을 걸어오십니다.
벵에돔으로 내기하잡니다. 그 이야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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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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