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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
이 말이 불쾌하다는 생선이 있습니다. 바로 못난이 물고기들이 주인공 되시겠습니다.
일단 생김새부터 비호감인 데다 잡히면 점액질을 내 미끌미끌, 살은 흐물흐물해 과거에는 어부들이 버리는 물고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요. 세월이 흘러 이들 물고기 맛이 입소문으로 번지면서 이제는 '없어서 못 먹는 물고기'가 돼 버렸습니다.
또한, 운송 기술의 발달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도 접할 수 있게 되었고요. 물론, 보다 쉽게 접하려면 그래도 산지를 가야 할 것입니다.
모름지기 제철 식재료의 싱싱함은 운송 거리와 비례하여 감소하는 것이니까요. 어느 고장을 방문했을 때 이들 못난이 물고기들을 기억했다가
한 번쯤 챙겨 드신다면, 좋은 먹거리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면서 못난이 물고기의 이유 있는 항변, 한 편 소개해 보겠습니다.
■ 뚝지(쏨뱅이목 도치과)
<사진 1> 도치, 심퉁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뚝지
<사진 2> 부풀어 오른 모습이 재밌는 도치
최근 매스컴을 통해 많이 알려졌지만, 도심지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어종입니다.
표준명은 '뚝지'지만, 뚝지라 불리는 일은 많지 않고 대부분 도치, 심퉁이로 불리고 있습니다. 심퉁이는 심술 맞고 퉁명스럽게 생겼다고 해서 붙은 별명.
<사진 1> 가운데의 한 녀석을 보면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선뜻 이해하시리라 봅니다. 이 녀석의 신체 부위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흰 빨판입니다.
도치는 아래턱과 배 사이에 커다란 흡착판을 갖고 있어 수중의 암반에 붙어 살기 좋은 구조를 가졌습니다.
주요 서식지는 동해와 남해인데 특히, 동해의 북부(강원도) 지역에서 많이 잡힙니다. 겨울과 이른 봄에 강원도 고성, 거진항, 묵호항의 횟집 수조를 살피면
<사진 2>같이 동그랗게 부푼 도치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도치는 횟감으로도 사용하지만, 알탕 재료로 더 많이 사용하는 까닭에 알을 가득 밸 시기인 1~2월을 제철로 꼽습니다.
이 시기에 도치는 산란이 임박해 알을 채우는데 그 양이 전체 수율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많습니다.
도치 알은 신김치, 무와 함께 푹 끓여낸 도치 알탕이 현지인, 외지인 할 것 없이 인기가 있고 남은 살점은 껍데기에 붙은 채로 데쳐 낸 숙회가 일품으로
꼽힙니다. 도치의 껍질과 살은 일반 생선과는 확연히 다른 구조와 식감이 있어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데요.
껍질과 살 사이에는 묵처럼 말캉한 콜라겐 덩어리가 있어 피부 미용에 좋은 생선으로 알려졌습니다.
■ 꼼치와 미거지(쏨뱅이목 꼼치과)
꼼치와 무척 닮은 미거지
자세히 보면 못생겼다기 보다 순하고 아둔하게 생겼다.
물고기 분류를 보면 생김새와 명칭이 안 어울리는 게 많습니다. 흔히 '물메기'라 불리는 꼼치와 미거지가 그런데요.
놀랍게도 쏨뱅이목에 속한 물고기입니다. 쏨뱅이목 물고기는 낚시꾼들에게 아주 익숙한 생선이죠. 대표적으로 쏨뱅이, 볼락, 조피볼락(우럭)이 있습니다.
꼼치와 미거지는 겨울철 '곰치국'재료로 많이 사용됩니다. 토막 낸 꼼치에 무와 파, 마늘 등을 넣어 끓이면 시원한 곰치치국이 완성되죠.
지역에 따라 김칫국물을 넣어 끊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음식 이름도 지역마다 부르는 게 제각각입니다.
"곰치국, 물메기탕, 물곰탕"
이때 곰치국과 물메기탕의 주재료가 되는 게 꼼치입니다. 어부와 상인들은 이를 '물메기'나 '곰치'등으로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명칭 중복이지요.
왜냐하면, 물메기와 곰치는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물메기는 다 커도 35cm까지밖에 자라지 않는 소형 어종이라 이것을 탕에 사용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곰치란 어종은 기다란 뱀장어과 물고기로 굴속에 숨어 살다가 지나가는 물고기를 사냥하는 포악한 생선입니다.
그래서 서해와 남해(거제도)에서 곰치국 혹은 물메기탕을 판다면 대부분 '꼼치'를 넣는다고 보면 됩니다.
그만큼 꼼치와 곰치는 차이가 많은 어종이지만, 구별 없이 불리고 칼럼에도 사용돼서 확실한 구분이 필요해 보입니다.
꼼치가 서해와 남해를 중심으로 어획되는 물고기라면, 미거지의 본고장은 단연 동해가 중심이 됩니다.
언뜻 보면 꼼치와 미거지가 서로 닮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구분이 쉽지 않아요.
동해에서도 미거지를 '물메기'라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토막 내 끓인 탕을 '물곰탕'이라고 합니다. 이쯤 되니 명칭이 많이 헷갈리죠. ^^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름이야 어찌 됐든 이들 물고기를 넣어 끊인 탕은 시원하고 숙취 해소에 좋아 예로부터 뱃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방송을 통해 많이 알려져 특별히 이 음식을 맛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반면, 저처럼 입에 안 맞아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한 사람도 있습니다. ^^;
꼼치나 미거지 살은 흐물흐물할 뿐만 아니라 콧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콜라겐 덩어리가 있어 아무리 미용에 좋다 하더라도 식감이 비호감이다 보니
입맛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그 지역에서 물곰탕을 잘하기로 소문난 곳임에도 불구하고 국물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흙내' 때문에 썩 즐기기 어려운
음식이 되었지요. 곰치국 종류는 젊은이들보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 입맛에 더 잘 맞는 음식 같습니다. 참고로 이들 어종의 제철은 겨울입니다.
■ 삼세기(쏨뱅이목 삼세기과)
삼식이로 많이 알려진 삼세기
서해와 남해의 해안가 수산시장과 횟집을 돌다 보면 아주 요상하게 생긴 녀석이 있습니다.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어디 하나 얌전한 구석이 없는데요.
교련 무늬에 험상궂게 생긴 인상하며 행여나 잘못 건드렸다가는 독침으로 혼쭐낼 것처럼 생겼지만, 실은 독이 없는 온순한 어종입니다.
상인은 이를 '삼식이' 혹은 '삼순이'라 부르는데요. 못생기고 바보 같다는 의미에서 붙여졌기 때문에 물고기 입장에서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겁니다.
삼세기는 쏨뱅이과를 대표하는 어종 중 하나입니다. 쏨뱅이목 생선의 특징은 '살이 단단하고', '뼈에서 단 육수가 우러나오는' 특징이 있어 탕거리에
알맞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소개한 못난이 물고기는 모두 '쏨뱅이목'으로 탕거리에 강점을 가지고 있군요.
그래서 이들 생선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쏨뱅이도 사촌지간이라 할 수 있는 삼세기도 매운탕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삼세기는 살이 단단해 횟감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산란은 겨울에 하므로 제철은 가을부터 늦가을까지가 되겠습니다.
삼세기와 비슷한 어종으로 '쑤기미(제주방언 솔치)'가 있습니다.
외형상 흉악하게 생긴 만큼 등가시에는 강한 독침이 있어 여기에 찔리면 피가 몰리고 퉁퉁 부어 응급조치를 해야 합니다.
맛과 용도는 삼세기와 비슷하게 취급되고 있습니다.
■ 베도라치(농어목 장갱이과)
베도라치
식용 가치는 크지 않지만, 여러 마리를 모아다가 탕을 끓이고 일부 낚시꾼들은 회를 떠서 먹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오줌싸게 아이에게 베도라치 달인 국물을 먹이면 좋아진다.'라 하였고 '정력이 달린 남성이 이것을 먹으면 밤새 한다(?)'는 소문에 정력에
좋은 물고기로 알려졌지만, 개인적으로 근거가 약한 낭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도에는 베도라치만 집중적으로 노리는 생활 낚시꾼이 더러 있습니다만, 저처럼 감성돔 같은 고급 어종을 노리는 낚시꾼들에게는 뜻하지 않게 걸려든
베도라치가 얄밉기만 한데요. 걸핏하면 바늘을 삼키고 올라와 낚싯줄을 엉키게 하고 또 특유의 점액질을 분비해 뒤처리를 곤란하게 만드는 등.
지금의 베도라치는 낚시꾼들에게 환호받지 못하는 잡어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러한 무시에도 베도라치가 '맛이 좋은 못난이 못난이 물고기'로 뽑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식탁에 종종 오르내리는 '뱅어포' 때문입니다.
실치(왼쪽), 뱅어(오른쪽)
우리가 평소에 먹는 뱅어포 조림은 종이같이 납작하게 말린 '뱅어'가 주재료였지만, 요새는 아주 귀해져 '실치'로 말립니다.
뱅어가 귀한 틈을 타 실치가 뱅어포 행세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실치가 크면 베도라치가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다시 말해 실치는 베도라치의 치어였던 것입니다. 베도라치는 못생겼고 점액질도 많이 내는 비호감 물고기지만, 실은 어렸을 때부터 우리에게 좋은
밑반찬을 제공해 준 고마운 생선이었습니다.
다 큰 베도라치의 경우 낮에는 바위틈이나 암반에 서식하다가도 밤이 되면 표층까지 떠올라 유유히 유영생활을 즐깁니다.
정확히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거제도 해상 펜션에서 밤낚시를 하던 중 수면에서 어슬렁거리는 베도라치를 몇 마리 건져 올린 기억이 있습니다.
베도라치의 산란기는 9~10월이므로 살에 지방이 껴 회 맛이 좋아지는 시기는 여름이 되겠습니다.
■ 괴도라치(농어목 장갱이과)
좀 전에 설명한 '베도라치'와 지금 설명할 '괴도라치'는 이름에서 한 끗 차이를 보이는 만큼 가까운 사촌지간입니다.
그나저나 얼굴이 참 못생겼죠? ^^ 가만 보면 웃긴 구석도 있습니다. 특히, 저 두꺼운 입술을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는데요.
덩치보다 입술 두껍기에는 문치가자미와 이 녀석이 탑클래스를 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
외모는 재밌기도 하고 못생겼기도 하지만, 잡어회만큼은 이 녀석을 따라올 자가 없을 만큼 귀물입니다.
크기가 작으므로 특별히 회를 떠다 숙성해 먹지는 않지만, 동해와 남해 수산시장 좌판에는 이런 괴도라치를 여럿 넣은 대야를 볼 수 있습니다.
상인들은 이를 '전복치' 혹은 '미역치'라 부르는데 미역치는 따로 있으므로 중복 명칭입니다.
이 녀석 별명이 전복치가 된 이유는 전복을 먹고 살아서 혹은 전복이 깔린 곳에 서식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정확한 생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전복을 깨 먹고 산다면 이 녀석의 살점과 간에는 자연산 전복의 영양분이 고스란히 들어 있겠죠.
하지만 괴도라치가 주로 먹는 먹잇감은 갑각류, 말미잘, 해삼, 연체동물 등입니다.
양식하지 않고 전량 자연산이므로 자연산 잡어회에 섞여 팔거나 탕감으로 사용합니다.
저는 속초에서 회를 접했는데요. 그리 인상 깊은 맛은 아니었지만, 살은 씹으면 단맛이 났고 식감도 상당히 쫄깃해(활어니까) 인상 깊었던 회였습니다.
겨울에 산란하므로 제철은 여름에서 가을까지가 됩니다
■ 아귀(아귀목 아귀과)
'물텀벙이'라고도 불리는 아귀
못난이 물고기 이야기를 하는데 '아귀'를 빼놓을 수는 없겠죠. ^^
아귀도 과거에는 '재수 없게 생긴 물고기'라 하여 어부들이 잡은 즉시 버렸다고 합니다. 아귀 위장을 까보면 간혹 '돔' 같은 고급 어종이 미처 소화되지
못한 채로 발견되기도 하는데 중국에서는 이를 햇볕에 말려 가루를 낸 뒤 복용하면 위염과 위산과다에 치료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귀의 시세를 결정하는 건 큼지막한 역시 '간'. 그래서 어물전에 널린 아귀는 대부분 간이 밖으로 보이게 해둡니다.
아귀 간은 쥐치 간과 함께 '생(生)'으로 먹는 진미 중 하나로 서양권(유럽)에서는 아귀를 일찌감치 귀족 생선으로 취급하였습니다.
아귀 간은 바다의 푸아그라라 하여 품위 있는 요리 식재료로 주목받았고 일본의 '안키모'는 싱싱한 아귀 간을 쪄서 유자 폰즈와 곁들여 먹습니다.
- 필자가 만든 아귀수육과 아귀탕
- 필자가 만든 아귀간 요리
아귀는 바닥층에 서식하므로 주로 저인망 그물(안강망)에서 어획되며 지금은 운송 기술이 좋아 얼리지 않은 생물을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택배로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싱싱할 때 제맛을 내는 아귀 수육과 안키모 요리를 가정에서도 할 수 있게 되었죠.
안키모는 강남 등지의 이자까야 선술집에서도 쉬이 접할 수 있는 대중 요리가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여수에서는 '아구탕'이, 마산에서는 '아구찜'이 유명한데 특별히 산지가 아니어도 맛보기 쉬운 재료가 되었습니다.
여수 아구탕은 진작에 촬영했지만, 아직 소개를 못 올렸는데요. 조만간 기회 되는 대로 소개하겠습니다.
#. 못난이 물고기 이야기를 마치며
과거에는 못생겨서 버리고, 맛없을 거 같아 천대받던 생선들. 이제는 몸값이 비싸져 없어서 못 먹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생선이라는 게 그런 거 같아요. 흔할 때는 무시당하다 귀해지면서 맛이 재평가되기도 하고 새로운 요리 법이 개발되면서 주목받습니다.
그러다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 너도나도 그것을 찾게 되고요. 미식가, 칼럼니스트들은 그 지방에 가면 꼭 먹어 봐야 할 제철 음식이라며 소개를
올립니다. 그러다 보면 수요가 증가하게 되고 나중에는 그 수요에 공급이 못 따라가다가 급기야 개체수 감소로 '몸값은 뛰고'.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 보면 연도별 어획량 추이가 서서히 하강 곡선을 그리면서 그 종착점에 이르러 '초고급어' 내지는 '값비싼 희귀종'으로 취급
되면서 개체수 관리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인류가 생선을 잡아먹어 온 세월이 수만 년에 이르지만, 어군탐지기와 어구의 발달로 대량 어획한 최근
몇십 년이 해양 생태계에서는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봅니다. 그러니 앞으로의 30~50년이 더 걱정돼요.
우리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는 일부 어종(참다랑어나 밍크고래 등)이 멸종되고 아귀나 꼼치 같은 생선이 값비싼 어종이 되어 경매가를 경신
했다느니 하는 기사가 나돌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민의 소득 증대도 좋지만, 이제는 미래의 불상사를 막기 위해 노르웨이나 캐나다 같은 선진 조업국의
엄격한 기준에 맞춰 어종별 생산량에 합리적인 제한을 걸어 두는 게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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