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어느 초밥집에서 팁을 줄 수 없었던 이유


한국과 미국의 외식 문화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서로 다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팁문화에 익숙한 북미권 사람들은 음식값에 10~20%를 더하는 게 익숙하지만, 한국인 여행자에게는 여전히 낯설 수밖에 없지요.
일반적으로 팁을 낼 때는 음식값의 15%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만약, 서비스가 후했다면 그보다 좀 더 낼 수도 있겠고요. 
반대로 음식과 서비스가 형편없었다면, 안 낼 수도 있습니다. 팁은 어디까지나 손님의 심리적인 기분을 반영하며 정해진 가격이 없습니다. 

보통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에 서면 음식값 + GST(연방세)를 합쳐 계산하게 됩니다. 
캐나다 여행을 몇 번 해보다 보니 팁을 테이블에 놓고 가기보다는 카드기에 직접 입력해서 팁을 더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지급 방식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으며 가까운 미국과도 미묘하게 다르지만, 공통점이라 한다면 만족스러운 식사와 서비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팁은 이렇습니다.

"팁은 감사의 표현이지 의무가 돼서는 안 된다."

그런데 어떤 곳은 음식 질과 서비스 관계없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손님이 팁으로 에티켓을 표현할 때 식당 점원은 이를 무시하기도 하지요. 
점원의 무례는 단순히 교육의 부재일 수도 있지만, 이를 관리해야 할 업소 사장의 서비스 마인드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5박 7일 동안 캐나다 알버타를 여행하면서 총 12군데의 음식점을 돌았습니다. 
그중 이번에 들린 초밥집에서 저는 노팁으로 계산하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캐나다 알버타의 어느 초밥집




일주일 가까이 여행하면서 현지 음식에 조금 지쳤던 터라 이번에는 고민 끝에 초밥집을 찾았습니다.
사실 알버타의 한적한 마을에서 초밥집을 선택한 것은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알버타는 바다가 없으니 싱싱한 해산물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도 주된 이유겠지만, 대도시가 아닌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소도시의 초밥집이라는 점에서
초밥 질이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때는 오후 9시. 다소 늦은 시간이라 파장 분위기라면 도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영업 중이라고 해서 자리를 안내받았지요. 
주변을 둘러보니 대여섯 명가량 되는 한 팀이 원형 테이블에서 식사 중이었습니다. 
그 외 손님이 없는 것을 보아 장사가 어지간히 안되는 모양입니다. 조금 늦은 시각이긴 했지만, 근처 식당의 풍경과는 분명 대조적이었죠.
저는 초밥 쥐는 모습을 보기 위해 다찌에 앉았습니다.


숙성고에는 문어, 초새우, 연어 등의 생선이 있습니다.


마실 거리는 맥주.


장국이 나왔는데 그간 캐나다 현지 음식에 살짝 지친 터라 이렇게 미역을 푼 장국이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맛을 보자 저와 일행이 동시에 눈을 찡그립니다. 간이 센 정도가 아니라 소태네요. 이러한 장국의 간은 기본 중의 기본일 텐데.
웬만큼 짜다면 참고 먹었겠지만, 너무 짜서 그 이상 입을 대기에는 부담스러웠습니다.


테이블 세팅은 정갈하였습니다. 가끔 손으로 초밥을 먹는 사람(저 같은)을 배려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손도 닦을 수 있는 수건을 내준 건 좋습니다.
참고로 초밥은 손으로 먹는 게 흉이 아니랍니다. 제가 요즘 집필 중인 저서에도 '초밥 먹는 방법'을 상세히 적었지만 손으로 먹는 것도 초밥을 먹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모둠 튀김 $19

안주로 주문한 튀김입니다. 
새우가 4마리. 그 외에는 피망, 양파, 심지어 고추도 있는데요. 튀길만한 재료가 마땅히 없었나 봅니다.



모둠 초밥 $26

캐나다에서 처음 마주한 초밥 한 접시. 가격대 성능비와 비주얼은 보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다를 테니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구성은 이러하였습니다. 맨 위가 참치 아보카도 롤이고 가운데는 왼쪽부터 연어알, 스컬프, 오징어, 레드스네퍼, 다랑어, 연어.
그리고 앞에는 장어와 초새우가 놓여 있습니다. 


네타를 아치형으로 잘 감싸야 하는 기본적인 초밥 쥐기는 좋았습니다. 그 외에는 겨우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선도였습니다.
일부 초밥은 비린내도 나 신선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예상했던 초밥의 질보다 훨씬 안 좋았지만, 뭐 이런 점은 충분히 각오했으니까요.
알버타의 작은 소도시에서 초밥 질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욕심이죠.

밥(샤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초밥에 적합한 쌀 품종은 찰기가 적고 탄성은 좋아야 합니다.
찰기가 많지 않아야 밥이 고슬고슬하게 지어지며 탄성은 좋아야 초를 쳤을 때 밥알이 쉬이 허물어지지 않으며 입안에서 잘 풀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집 초밥은 그냥 '떡밥'이었습니다. 위 사진의 새우 초밥을 자세히 보면 떡밥이란 게 눈으로 확인될 정도예요.

초밥에서 밥이란 네타와 조화를 이루면서 적당한 산미를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곳에서 그런 걸 기대한다는 건 무리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초밥에 적합한 쌀 품종을 찾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부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식재료 개선에 의지가 없는 이유는 지역적 특색도 한몫하였습니다.

이곳 재스퍼(Jasper)는 관광 도시입니다. 성수기는 넓게 잡아 6~9월 사이이며 그 외에는 비수기에 접어들지요.
그러니 이 지역의 자영업자는 한철 장사로 일 년을 먹고삽니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과 맞물리다 보면 식재료와 서비스 개선에 대한 동기 부여가 
아무래도 적을 수밖에요. 그렇다고 재스퍼의 모든 음식점이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앞서 포스팅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카시오스'와 '곰 발바닥 빵집'은 훌륭한 퀄리티를 유지하는 업소였습니다. 

어쨌든 재료의 한계를 보이는 업소에서 음식 질을 기대한다는 것은 드넓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만큼 허망한 일일는지도 모릅니다.
어쩔 수 없는 식재료 부분은 그렇다 하더라도 손님을 대하는 기본적인 마인드만큼은 식당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이 아닌가 싶은데요.
영업이 된다면서 손님을 다찌에 앉혀놨으면 손님이 식사하는 동안만큼은 최소한 한숨을 푹푹 쉬는 모습은 안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혹시 언짢은 일이 있었거나 혹은 문 닫을 시간에 손님이 들어와 울며 겨자 먹기로 초밥을 쥐어야 할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손님을 일단 앉혀놓았으면 어찌 됐든 다찌에서의 셰프는 초밥 집의 얼굴이자 간판입니다. 
웃지는 못해도 대놓고 한숨 쉬면 먹는 이들이 맥빠지기 마련이니까요.
음식 맛의 8할을 재료가 차지한다면 나머지 2할은 정성과 만든 이의 기분일 것입니다. 
 
한번은 초밥에 사용한 참치(다랑어) 종류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런데 종류를 모른다고 하네요.
초밥 셰프가 자신이 사용하는 식재료가 뭔지 모른다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잠시 후 종류는 몰라도 크기는 안다고 하네요.
손으로 50cm가량 벌리며 아주 작은 참치라는 것은 기억한답니다. 참치는 클수록 값이 비싸고 맛도 좋다는 건 초밥 마니아들은 다 아는 사실일 겁니다.

이런 집이야 초밥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고 볼 수는 없을 테니 작은 참치의 사용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종류를 까먹었다고 하자 제가 하나씩 읊어봤습니다. 블루핀튜나(참다랑어)? 빅아이(눈다랑어)? 옐로핀튜나(황다랑어)? 모두 아니라고 하네요.
혹시 가쯔오(가다랑어)? 라고 하자 그것도 아니랍니다. 초밥에 사용하는 다랑어 종류는 대부분 읊었으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혼까스(점다랑어)와 흑새치, 청새치, 돛새치가 정도인데요. 이쯤에서 저는 참지 족보 따지는 걸 그만두었습니다.
알아도 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스시집에서 다찌는 이런 이야기를 하라고 만들어 놓은 점도 있습니다.
셰프와 손님의 교감에는 세상 사는 이야기, 초밥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사용하는 식재료 이야기가 포함됩니다.
하지만 식재료를 모르면 그러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렵겠지요.
참고로 묻는 말에 웃으며 답변해 주는 그에게서 불친절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한숨만 푹푹 내쉬는 것 외에는요. 어떤 연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음식을 먹고도 100불에 가까운 가격이 나왔다는데 다시한번 놀랐다.

제가 이곳을 다녀왔다고 하자 재스퍼에서 묵었던 숙소(곰의 소굴) 주인장이 '안타깝다. 미리 알았더라면 언질을 줬을 텐데. 그곳은 테러블 수준이다.'
라고 말했던 게 실감 났습니다. 그런데 더 큰 실망은 계산대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쯤 되면 팁을 주고 싶은 마음이 거의 사라졌을 때입니다. 계산대에 서자 카드를 받은 여직원이 팁을 계산하라며 카드기를 내밀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뒤돌아서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제 얼굴을 빤히 쳐다 보네요.

일반적으로 손님이 팁을 누를 때는 고개를 돌리는 게 에티켓인데요. 이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건 처음 겪어봅니다.
순간 식사하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가 스처 지나갑니다. 재료 질은 물론 맛도 형편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팁을 주는 것은 식사와 서비스에 만족했다는
성의 표시로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단호히 '노팁'이라 하였습니다. 이 집에 들릴 다른 손님을 생각해서라도 말이지요. 
이런 업소는 재스퍼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시정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레스토랑 기행을 통해 작은 컴플레인이라도 좋으니 알려달라는 관광청의
요청에 저는 이 내용을 토대로 시정할 것을 전달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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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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