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메기와 초고추장으로 맛을 평정한 충무로 영덕회식당



 

예전에 소개한 몇몇 횟집이 '회 맛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오늘 소개할 곳은 정반대입니다.
근방의 노동자를 위한 횟집이다 보니 서민스러운 분위기와 저렴한 가격으로 여럿이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는 친근한 곳이죠.
새콤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 정서에 잘 부합하는 곳으로써 이 집이 자랑하는 메뉴는 <막회>와 <과메기>입니다. 
특히, 과메기는 서울, 경기 지역을 통틀어 가히 최고라 불릴 만큼 뛰어난 질을 자랑한다던데요. 사실 그 뒤에는 이 집 명물인 <초고추장>이 
지원사격해 주고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막회와 과메기, 그리고 초고추장 맛으로 먹는 새콤달콤한 생선회는 비록 섬세하면서 근원적인 
생선회 맛을 느끼기에 무리가 있지만, 맛이란 건 <추억>과 <정서>를 함께 마시면서 자라온 산물이라고 보았을 때 서민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보이고요. 서울 한복판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동해의 싱싱한 맛. 그것을 꽤 토속적으로 전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충무로 인쇄소 골목

충무로에 맛있는 횟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간 곳은 인쇄소 골목. 오래되고 나지막한 건물이 빼곡히 늘어선 이 거리는 각종 인쇄, 출력과 관련된 자재들을
생산하는 곳으로 상당히 예스러운 풍경입니다. 저녁이 되어도 지게차들이 바삐 움직이는 활력있는 골목.
그 좁다란 골목을 찾아 들어가자 간판에 불도 안 들어오는 옛날식당 하나가 덩그라니 있습니다.


충무로 영덕회식당

"누추한 간판, 허름한 인상"

초고추장 하나로 서울, 경기 지역을 평정해 버렸다는 집치고는 상당히 예스럽죠. 오래되 보이기도 하고요.
소문을 듣자하니 예약은 일절 안 받고 미리 와서 줄 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여 저 역시 헐레벌떡 뛰어 왔건만. 이것도 늦어요. 늦어. 
천막을 젖히고 들어서자 바글바글, 시끌벅적. 자리가 없으니 밖에서 기다리랍니다. 이때가 저녁 6시 30분. 
근방의 직장인들이 칼퇴근하고 여기로 뛰어온다 해도 몇 자리는 남아 있을 듯하여 온 시간인데 우리 말고 한두 팀이 접수 도장을 먼저 찍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이곳에서 접수 도장이란 딱히 있는 건 아니고 아주머니와 눈 한 번 마주친 다음 입구에서 발 몇 번 동동 굴리면 되는 일.
술집이니 테이블 회전율은 떨어질 테고 앞으로 두세 팀이 일어나야 들어갈 자리가 나오는데 시간이 시간인지라 대부분 손님은 이제 막 스타트를
끊었을 것 같습니다.


충무로 영덕회식당 내부

약 30분가량 기다렸을까요? 자리가 나서 겨우 앉았는데 보다시피 테이블이 몇 자리 안 됩니다.
식당 내부는 꽤 오래된 듯, 허름했지만, 기본적인 청결도는 잘 지키고 있는 듯 보입니다.


차림표

이날은 블로그 독자님 몇 분을 모시고 비공개 술자리를 하였는데요.
지난번 모임에 참석하신 분들을 위주로 문자를 드렸고 그 중 응답해 오신 분들과 함께하였습니다.
주문한 음식은 막회(대)와 과메기.


주문하자마자 간단히 밑반찬이 깔립니다. 뭔지 아시는 분?
다들 이것이 뭔지 선뜻 알아차리지 못해 약간의 공방이 펼쳐집니다.
멸치, 실치, 뱅어 등등 오답만 나오는 상황에서 정답을 말하는 순간, 뜻밖이라는 반응.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생선이었던 거죠.



"붕장어 새끼"

예전에 포장마차 횟감으로 '아나고'가 유명했었는데 그것의 치어 건어물을 볶은 것.


콩나물 국

막회(大) 25,000원

막회가 나왔습니다. 쑥갓이 곁들어져 나왔고요. 오랜만에 무채와 함께 먹는 생선회가 나와 반가웠는데요. 
무는 매운 기를 완전히 빼서 낸 걸로 보이는데 이것이 회와 함께 먹었을 때 오는 효능은 제법 많습니다.
첫째로 수분의 이탈을 막아 회의 온도를 유지해 줍니다. 둘째는 산화를 방지해 줍니다만, 그것은 회를 오래 뒀을 때일 뿐, 이처럼 즉석에서 먹는
회라면 산화할 시간은 허용되지 않으므로 그냥 같이 먹었을 때 소화를 돕고 속을 편이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생선회라면 무를 장식이나 디스플레이용으로만 쓰이고 무엇보다도 '재활용의 염려'가 있어 사람들이 무를 잘 안 먹게 되었죠.
그러니 이곳은 무와 함께 회를 섭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들어간 어종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가자미인데 정확히 어떤 가자미인지는 이렇게 껍질을 벗겨놓았기 때문에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막회용으로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물가자미일 가능성이 가장 높고요. 단가로 보아도 물가자미가 가장 유력시됩니다.


다른 하나는 청어입니다.
가자미와 청어. 흰살생선회와 붉은살생선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막회는 땅에 나는 여러 채소와 함께 하나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 맛을 하나로 묶어줄 촉매제가 필요할 텐데요. 이 촉매제의 맛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 집을 찾곤 합니다.


영덕회식당의 시그니처는 막회도 과메기도 아닌 초고추장에 있었다.

그 촉매제는 다름 아닌 초고추장입니다.
이곳을 드나드는 단골손님은 바로 초고추장 맛 때문에 이 집을 찾는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상당히 되직한 느낌의 초고추장은 외관부터 독특해 보인다.

맛을 보면서 들어간 재료를 재빨리 읽어봅니다.

"고추장, 식초, 설탕, 깨소금, 잔파, 마늘'

제가 맛을 보고 헤아릴 수 있었던 건 여기까지입니다. 물론, 미원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아마 들어갔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되직한 질감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답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이 집의 초고추장 맛은 한 마디로 표현해서 "강렬하다." 였습니다. 맛이 강직해요. 신맛도 강하고 맵기도 보통 이상입니다.
농도 진한 초고추장 맛을 보는 듯한데 부담스럽지 않은 맛의 균형감이 잡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맛의 강도였습니다. 산미가 일반 초고추장보다 강함에도 불구하고 식초로 인해 묽지 않습니다.
저도 초고추장을 제조해 봐서 아는데요. 식초를 넣으면 농도가 묽어지고, 식초를 덜 넣으면 빡빡하긴 하나 산미가 덜합니다.
이쯤에서 드는 한 가지 의문. "빙초산?"

저는 산미를 살리면서 농도가 되지는 비결이 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답을 알았습니다만, 아주머니는 하나는 알려주고 하나는 말을 아끼시는 듯합니다.
그 표정에는 "그걸 전부 알려주면 우린 뭐 먹고 살아"라고 쓰여 있는 듯하여 묻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 맛을 내기 위해 미원으로 실험할지도 모릅니다. ^^;
왜냐하면, 시고 달고 매운 맛을 균형 있게 잡아주는 것이 미원, 다시 말해 글루탐산나트륨 밖에는 없으니까요.


하여간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먹는 방법이 중요하였습니다.
일단은 초고추장을 막회 위에 얹기로 하였습니다. 따로 먹는 것도 좋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는 법.
아주머니는 먹는 방법을 알려주셨고 우리는 가차 없이 쏟아 부었습니다.


혹시 몰라 초고추장을 약간 남겼습니다. 그리고 비볐습니다.


맛을 보니 뭔가 2% 부족합니다. 혹시나 싶어 좀 전에 남겨 둔 초고추장을 마저 붓고 다시 비볐습니다.
그랬더니 간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네요. 저 공깃밥에 든 초고추장 양은 막회에 꼭 맞게끔 계산된 양이었습니다.
이제부터 먹는 방법은 각자 프리 스타일입니다. 그냥 먹어도 되고요.


이렇게 마른 김에 싸 먹어도 됩니다. 초고추장 맛이 우직하고 맵고 시고 강렬하지만, 실제로는 조화롭다고 느낄 것 같습니다.
먹는 도중에 콩나물국 한 수저를 후르릅 마시면 입안이 정리되며 다음 한 입을 재촉합니다.


과메기 25,000원

포항 구룡포에서 공수한다는 과메기

과메기 퀄리티가 속된 말로 '쩐다'는 제보를 듣고 시켰습니다. 서울에서는 이만한 과메기 맛보기도 어렵다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썰어낸 모양도 일반적인 과메기와 다르죠? 그 흔한 마름모꼴이 아닌 포를 찢듯 길쭉하게 썰어낸 게 특징입니다.
일단 겉으로 풍기는 모습으로는 공장의 온풍기 과메기는 아닌 듯 보입니다. 살 색이 까맣지 않고 갈색을 띠는 것은 해풍에 건조했다는 방증.
색깔이 검지 않고 불그스름한 빛깔을 띠면 덕장에 말린 것이고, 색의 밝고 어둡기는 말린 기간을 의미한다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미루어 판단해 보면, 이 집 과메기는 밝은 갈색이니 덕장에서 해풍에 말린 과메기임은 맞으나 일주일 이상 말린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씹었을 때 식감으로도 알 수 있는데요. 예상대로 반건조 과메기의 느낌이 충만하였습니다.
씹으면 저항감 없이 찢기면서 부드럽게 넘어가는데 살점 하나마다 꽁치의 구수함이 흥건히 배였습니다.
이를 충분히 씹고 목구멍으로 넘기자 살짝 비릿한 여운이 감돌았고 시고 달짝한 초고추장 맛은 아직 혀에 붙어서 다음 조각을 재촉하네요.

과메기 초보들은 조금 딱딱하고 쫄깃한 것을 선호하지만, 이렇게 덜 말린 과메기는 마니아들이 선호합니다.
과메기는 지난번에 칼럼을 썼으니 관심 있는 분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길 바랍니다. (관련글 :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구룡포 과메기)


물미역과 다시마

정말 싱싱하였습니다. 수분기, 향, 식감 모두 100점에 가까운 선도를 가졌는데 거의 산지에 준하는 싱싱함이네요.


과메기 한 상 차림

과메기는 껍질을 벗기고 난 자국(살짝 푸른 기가 도는 은빛 막)이 저렇게 번들거리고 빛이 나야 상품(上品)입니다.
속살도 기름 발라놓듯 번지르르해야 지방의 고소한 맛이 들었다는 증거.
씹었을 때 약간의 비릿함은 그 어떤 과메기에도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여운은 빨리 가셔야 합니다.
계속 입 안에 남아 비릿함이 맴돌거나 혹은 기름 쩐내가 난다면 공장에서 온풍기를 돌려서 강제로 말린 하품(下品)을 의심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대게 속살이 검고 말라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메기를 먹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초고추장에 직접 찍어 먹어도 좋고요.


가장 좋은 건 주어진 재료를 십분 활용하여 싸 먹는 것입니다.
특히 미역, 다시마, 곰피, 쪽파, 마늘 등과 함께 먹으면 보약 한 첩 달여 먹은 효과와 비슷할 것입니다.
이런 안주에 소주는 술이 아닌 술맛이 조금 나는 생수일 뿐. 지나친 음주는 과메기를 부를 뿐입니다. 
이 좋은 안주와 옳은 효소 작용에 취할 여지가 별로 없을 듯하네요. ^^

중간에 물미역, 다시마를 아주머니가 리필 해주셨는데요. 주방에서 가져오더니 우리 앞에서 미역 하나를 입에 넣고 돌아섭니다. 
미역을 입에 문 아주머니의 표정은 천진난만해 보였습니다. 그 모습에 피식하고 웃음이 납니다.
손님상에 낼 음식을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다는 것. 그만큼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
횟집은 칼질 실력도 중요하지만, 믿음직스러운 재료를 취급할 때 진정한 신뢰를 얻는다는 것! 저의 지론입니다.


이렇게 갖은 재료를 올리고 옆 사람 소주잔 채워준 다음 다 같이 쨘!
소주 한잔을 입안에다 가득 털고 곧바로 위 사진의 과메기를 대충 젓가락으로 집어서 넣고 씹으면 세상 근심 달아나는 맛.
그렇게 먹다보면 처음 시켰던 막회가 푸대접받는 시점이 옵니다.


그럴 때 밥 한 그릇을 시키면 참기름과 상추 조각 뿌린 밥이 나오는데요. 여기기에다 남은 막회를 얹고



쓱쓱 비벼 먹으면 향긋한 참기름향이 코로 들어오면서 그 맛이 기가막힙니다.
이날 참석한 독자 한 분은 초딩 입맛을 가졌다 하였는데 다른 건 모르겠고 이거 하나만큼은 잊혀지 않았다는 후문이. ^^

#. 초고추장 하나로 맛을 평정한 횟집
사실 막회에 들어가는 재료는 고급 횟감이 아닙니다. 물가자미나 청어로 단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저렴합니다.
이것을 동해에서 싱싱하게 공수해 오는 것은 이 집의 노하우라 보이지만, 적은 단가로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건 역시 초고추장 맛 때문.
과메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존하는 과메기 중 <최고>의 과메기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서울에서 맛볼 수 있는 <최상>의 과메기는 됩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도 이 집 초고추장입니다. 초고추장 하나 잘 개발해 놓으면 이렇게 장사하기가 편리합니다.
다른 횟집처럼 수조 설치 및 유지비가 드는 것도 아니고 산 생선을 직접 잡아다 손질할 필요도 없습니다. 
시장에서는 물회나 막회용으로 미리 손질해 놓은 횟감이 업소용으로 유통되고 있으며 그날그날 팔 물량만 확보해 손님상에 내면 그만이니 많은 비용이
절감됩니다. 비용이 절감되면 손님도 이득 봅니다. 결국,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초고추장 맛을 빌려 저렴한 횟감을 맛있게 포장하니 이보다 영리한 전법이 또 있을까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이 집은 상당히 영특한 구석이 있습니다.
회에 품격이 있거나 특별한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초고추장 맛 하나로 평정해 버린 이 집의 개성만큼은 다른 데서 맛보기 어려운 상징이 되었습니다.
과메기는 이제 끝물이지만, 문어 숙회도 인기가 있으니 초고추장 맛을 좋아하는 취향이라면,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으로 보입니다.

상호 : 영덕회식당
영업 시간 : 정오~오후 10시 (휴무는 일요일)
네비 주소 : 서울 중구 충무로 4가 56-3 (충무로역 8번 출구에서 10분 거리)
주차 시설 : 없음
찾아오는 길 : 아래 지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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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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