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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 하나로 하루 한 시간만 장사하고 문 닫는 집"
어지간한 배짱이 아니면 장사할 수 없는.
그것은 자기 음식에 긍지와 자부심이 있고 한 시간 안에 준비한 음식을 모두 팔아 충분한 이익을 거둘 수 있기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 집이 내걸고 있는 메뉴는 단 하나.
"해장국"
그런데 일반 해장국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특미 해장국'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 집이 배짱을 부리는 건 하루 한 시간 영업뿐만이 아닙니다. 해장국 가격에서 기절초풍할 만한 배짱이 보이니 그 가격이 무려.
"17,000원"
해장국 한 그릇에 17,000원을 받는 것도 모자라 이걸로 하루 한 시간을 장사하고 문을 닫아 버린다니 이를 처음 접한 외지인들은 기가 막힐 노릇.
도대체 17,000원짜리 해장국은 어떻길래? 하는 의문이 저절로 들 법도 합니다.
일단 좋습니다. 17,000원짜리 해장국을 한 시간 만에 팔아치우고 문 닫겠다면, 과연 몇 그릇이나 팔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1분에 한 그릇씩 팔면 60그릇이지만, 이 집은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전부 들어와 앉으면 열 자리 되려나?
해장국이다 보니 테이블 회전율은 그런대로 나오는데 열 자리로 한 시간 동안 팔아봐야 얼마나 팔리겠습니까?
그런데 직접 물어보니 50그릇 정도 팔린답니다. 그게 가능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 중간에 적도록 하고요.
우선은 하루 한 시간만 팔고 문 닫아버리는 배짱 가득한 이 집의 특미 해장국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서울의 모 해장국집, 아주머니가 막 삶아서 건져 낸 양지를 썰고 있다.
이 집의 배짱은 하루 한 시간 영업에 17,000원짜리 해장국을 파는 것 외에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영업시간이 수시로 바뀐다는 것. 그야말로 자기 내키는 대로 장사하기로 악명(?)이 높다는데.
그래서 '오늘은 언제 영업하느냐?'고 미리 묻고 가야 헛걸음을 치지 않습니다. 영업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은데 대략적인 시간은 있다네요.
"오후 4~5시, 혹은 5~6시"
저녁시간도 아니고, 점심 시간도 아닌 애매한 시간에 장사하고 문 닫는 집은 처음 봅니다.
아마도 그것은 좁은 공간에 손님이 몰릴 것을 염려한 것일 수도 있는데요.
어쨌든 이 집은 영업시간에 잘 맞춰 방문해야 해장국을 맛보고 나갈 수 있으니 참으로 시크하죠?
물론, 예약은 일절 안 받습니다. 예약받을 만한 자리도 없고요.
이날 저는 아내와 함께 찾았습니다. 몇십 년이 된 건지도 모를 허름한 식당 문에다 노크하자 "열려있어요."라고 대답하는 아주머니.
내부에 들어서자 단골손님으로 보이는 몇몇 분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대충 빈자리를 골라 앉습니다.
뭔가 일반 식당과는 다른 기운이 흐르네요. 테이블과 주방의 경계가 없는 뻥 뚫긴 구조. 바로 앞에서 해장국을 만들어 내는 장면을 지켜보는
손님들. 그런 손님들과 아주머니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눕니다.
"그래서 그 손님은 답십리에서 왔대예?"
"뭐 그런가벼~ 어제 청량리에서도 서너 분 왔는데 문 닫혔다고 승질내데"
(문이 열리고 젊은 커플 입장)
"어서오슈~ 어 그런데 올만이네?"
"네. 한 석달만이죠?"
"요즘 워쩐다고 얼굴 보기가 힘들어?"
뭔지. 이 분위기는?
옆 아저씨께 물었습니다. 이 집 몇 년이나 됐어요?
"가만있자. 그때 내가 열 네살이었으니께... 한 40년 됐나? 아지메"
"40년인지 50년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네"
"그런데 처음 온 손님 같으시네. 여기 10년 단골은 명함도 못 내밀어요. 나는 한 30년 됐고."
메뉴는 단 하나 17,000원짜리 해장국이다.
이쯤에서 메뉴판을 둘러 는데 순간 제 눈을 의심하였습니다. 해장국이라 써 붙여진 옆에는 최근 가격을 한 차례 올린 티가 나는 17,000원.
그 위에는 국내산 한우 거세라고 쓰여 있네요. 그럼 한우를 넣은 해장국인가? 슬슬 음식이 머릿속에 그려질 듯 말 듯한데 이 단서만으로는
여전히 음식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원산지 표기판
모든 식재료는 국내산. 한우 거세에 고춧가루, 쌀, 우거지 모두 국내산.
음. 그렇군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술 가져오는 분께는 해장국을 팔지 않겠다는 문구가 상당히 단호하게 들립니다.
아무래도 이 집 주인장이 취객에 몇 번 데어보신 듯. 참. 여기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두 분입니다.
최근 국밥집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토렴'을 하길래 몇 장 찍으려고 하자 '사진은 안 돼'하며 손사래를 치십니다.
자초지종을 묻자 인터넷에 알려지는 게 정말 싫다고 하시네요.
옆에 손님도 한마디 거듭니다. 이 집이 인터넷에 알려져서 우리 같은 단골손님이 먹을 기회가 자꾸 줄어든다고.
대충 분위기를 보니 그럴 만해 보였습니다. 그런 아주머니와 단골손님의 의중을 받들어 저 역시 이 집의 상호와 위치를 공개 안 하기로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집, 이런 음식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으니 포스팅은 하지만, 이 집이 어딘지는 비밀로 함을 양해해 주세요.
그러나 이 와중에 혹시라도 알고 계시는 분이 더러 있을 줄 압니다. 그래도 댓글 창에 쓰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리며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곳이다 보니 어차피 폭풍 검색하면 나올만한 집이지만. ^^
테이블 기본 세팅
굉장히 오래돼 보이는 수저와 후추통이 예스럽습니다.
보리차
보리차는 셀프로 갖다 먹는데 다른 식당에서 내는 '보리물'이 아닌 끓인 차로 집에서 먹는 맛이 납니다.
파절임
이 집 파절임이 맛있다던데요. 산미가 적당해 산뜻하였습니다.
잘 익은 깍두기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특미 해장국, 1인 17,000원
이것이 단골손님들이 아낌없이 지불해 가며 먹던 특미 해장국입니다.
비싼 가격답게, 한우 거세우의 양지머리가 가득 들었고 그 아래는 푹 삶아진 우거지가 들었습니다.
혹자는 그럽니다. 과연 이 한 그릇에 17,000원을 주고 먹을 가치가 있느냐고.
그러나 직접 한 그릇을 비우기 전까지는 이 음식의 진면목을 모를 겁니다. 어쩌면, 한 그릇을 다 비워도 모를 것 같습니다.
한 그릇에 들어간 시간과 정성이 단지 몇 장의 사진으로 판단하게 한 것은 블로그라는 매체가 가지는 한계인 듯합니다.
보는 이들에게 섣부른 판단을 가져오진 않을까 싶어 부연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 집의 영업시간은 한 시간 남짓합니다. 한 시간 동안 팔리는 그릇은 약 40~50개.
몇 테이블 되지 않는 공간에서 40~50개를 팔 수 있었던 이유는 '포장' 손님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시간을 장사해도 남는 장사가 됩니다.
그런데 한 시간 치 분량의 해장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열두 시간의 공을 들인다고 합니다.
우거지를 일일이 다듬어 삶아야 하고요. 한우 거세우의 양지머리를 솥에다 푹 삶는데 이게 같은 부위더라도 삶는 온도가 조금만 틀어지면 고기 질이
뻑뻑하거나 질겨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수시로 체크해야 하겠고. 또 은근한 불에 오랫동안 삶아야 하므로 가스 불로는 가스비가 감당 안 될 겁니다.
그래서 이 집은 연탄불을 사용합니다. 우거지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요. 겨울 우거지는 굉장히 억셉니다.
이를 부드러운 목 넘김이 되게 삶으려면 손으로 일일이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그 작업이 만만치 않다고 해요.
저야 우거지 껍질을 까본 적이 없지만, 이 작업을 해보신 주부나 할머니들은 고개를 끄떡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과 맛은 차이가 있지만, 실제로 이 음식을 준비하면서 들인 정성에 비해 겉으로는 들어 나는 모습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손님 처지에서는 단순히 뚝배기에 우거지 넣고 양지머리 썰어 올린 다음 국물을 부으면 끝나는 음식인 줄 압니다.
그러나 초지일관한 음식 맛을 유지하기 위해 연탄불을 지피고 솥뚜껑을 데우고 육수를 끓이고 고깃덩어리를 고우는 기나긴 작업이 겨우 한 시간을
팔기 위해서 준비한 거라니 가정에서도 이런 정성으로 끓이기 어려울 것 같아요.
서울 곰탕의 명가 '하동관'을 단골로 다니는 분들은 이 정도 국밥이 가지는 가치를 조금 헤아려 주리라 봅니다.
하동관 메뉴판을 보면 기본 곰탕에 '열 다섯공'이니 '스무공'이니 하는 옵션이 있는데, 고기를 푸짐히 넣는 것으로 가격은 18,000~20,000원가량 합니다.
그것과 이 집 쇠고기 해장국을 비교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육수의 간은 집간장으로 냈는데 먹다보니 좀 간간한 편입니다.
개인적으로 뽀얗고 맑은 육수를 좋아하고, 간장보다는 질 좋은 소금으로 낸 국물을 선호해 이 부부은 취향 상 맞지 않았습니다.
아마 짜다고 느끼는 분들이 꽤 될 줄 알아요. 이것이 이 집의 흠이라면 흠입니다.
함께 제공되는 파절임은 고기와 함께 먹을 때 빛을 발합니다. 찰떡궁합이란 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은데.
먹다 보니 제가 해장국을 먹으러 온 건지, 쇠고기 수육을 먹으러 온 건지 잠시 헷갈리기도 합니다.
요즘 기력이 쇠한 아내는 평소 먹지도 않는 갈비탕을 노래 불렀지만, 아시다시피 먹을 만한 갈비탕집이 주변에 많지 않습니다.
어설피 미국산 팩으로 만든 갈비탕을 먹이기보다는 이런 음식이 보양이 되지 않을까 하여 갔는데 결과적으로 만족하였습니다.
이 집이 내 건 특미 해장국은 명칭 상 잘 안 와 닿는데요. '한우탕', 혹은 '한우 해장국'으로 하면 더 잘 와 닿을 듯합니다.
말은 해장국이지만, 양지머리 수육이 가득 든 곰탕 정도로 정리해 두죠.
고기를 꽤 먹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자 수저로 들어 보았습니다.
여전히 실한 양지머리가 남아 있고요. 그 아래는 우거지가 있는데 이게 참 푸근합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우거지 잘못 쓰면 굉장히 뻣뻣한데요.
부들부들한 질감의 우거지는 실로 오래간만에 먹어봅니다. 갓난아기에게 이유식으로 먹여도 될 만큼의 부드러움을 가진 우거지가 인상적인데
그 우거지에서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의 손길이 느껴져 각별하였습니다.
부들부들한 우거지, 일일이 손으로 까서 맛이 살아 있다.
기장밥
밥은 기장밥을 내어오는군요.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입니다.
한 숟가락 드는데 풉하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쌀이 말입니다. 우리 집에서 먹는 쌀보다 질이 좋은 것 같아요.
어떤 쌀을 사용하는지 물어볼 것을 먹는 데 정신 팔려 까먹고 말았습니다. 식당 쌀이 가정집 쌀보다 좋아도 되나요? ^^
밥은 반 공기만 퍼주고 "더 먹고 싶으면 말씀하세요"라고 하네요. 밥맛이 좋아 저는 두 공기 비웠습니다.
밥은 말아 먹어도 되지만, 저처럼 따로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밥을 한 수저 가득 푼 다음 잘 익은 깍두기를 한 점 올려 먹는데 밥에서 단맛이 났습니다. 깍두기의 자연스러운 단맛도 좋고요.
그 다음 고기 한 점을 파절임과 함께 입에 넣고선 국물 한 수저를 후르릅 하면 괜한 미소가 지어지네요.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또 생각나려 합니다.
외관은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듯한 허름한 국밥집 느낌이다.
※ 상호와 위치를 알릴 수 없음에 죄송합니다.
주인아주머니는 자기 가게가 인터넷에 노출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해요. (그런데 검색해보면 이미 많이 노출되어 있음 ^^)
30년 지기 단골손님도 원치 않는다 합니다. 물론, 정보란 공유돼야 하지만, 테이블도 몇 개 없어 합석하며 먹는 이 비좁은 식당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면, 골치 아픈 건 주인과 단골손님일 겁니다. 제 생각은 이 집이 '착한 식당'에 선정되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 집은 착한
식당 선정에 관심이 없을 것이며, 선정된다하더라도 거부할 것 같은 예감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단골만으로 충분히 돌아가는 음식점이므로 구태여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꼭 가보고 싶다면, 제 페이스북 페친에 한하여 개인 쪽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 서울에서 '토렴'을 하는 몇 안 되는 국밥집
토렴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70년대만 하더라도 국밥집에 토렴은 기본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가스 불에다 뚝배기를 올려 직화(直火)해서 끓여낸 게 아닌 커다란 솥에다 장시간 국물을 내고 고기를 삶았는데요.
토렴이란 찬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그릇과 함께 데펴주고 다시 솥에 붓는 작업을 반복해 그릇과 밥을 따듯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뜨거운 국물로 그릇 온도를 높이다 보면 찬밥은 급격한 온도 차로 밥알이 깨지는데요. 이때 쌀에 든 전분 성분이 국물에 녹아들어 다시 솥으로
들어가기를 온종일 반복하게 됩니다. 밥알은 깨지고 쌀의 영양분은 국물 속에 녹아들면서 소화 촉진을 돕는 포슬포슬한 국밥이었던 거죠.
인위적인 불로 가열하지 않고 국물 온도를 빌려 그릇을 예열하고 먹는 내내 국밥 온도를 유지하는 우리 조상의 지혜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고물가에 비싼 임대료로 식당을 유지해야 하기에 한 평수 이상 차지하는 큰 솥을 주방에 두기가 심히 부담스럽습니다.
그냥 가스 불에다 뚝배기 올려 뚝딱 끓여내면 얼마나 편리하겠습니까? 그러한 이유로 지금은 전통 방식의 국밥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집은 세월이 흘러도 토렴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미처 담지 못했지만 토렴하는 과정이 꽤 흥미로웠는데요.
이 과정은 사진으로 담을 게 아니라 동영상으로 담아야 알 수 있을 정도로 빠른 동작의 연속이었습니다.
빠른 동작으로 빈 뚝배기에 국물 담고 다시 솥에다 붓기를 수 회 반복하면서 뚝배기 온도를 높입니다. 거기에 푹 삶은 우거지를 올리고
수육을 썰어 수북이 올린 다음, 수 시간 이상 끓인 육수를 부어 손님 상에 냅니다.
그 덕에 해장국을 먹는 동안 쉬이 식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이렇듯 토렴은 먹는 사람까지 배려해주는 '옳은' 조리 방법이었습니다.
정성으로 만든 한우 해장국. 가격은 상당히 셌지만, 다 비우고 나오니 몸보신 한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요즘 같이 인스턴트 음식에 적응한 이들에게 이 음식이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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