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가 주는 맛, 포항의 다양한 학꽁치 요리들(죽도시장, 학꽁치회, 학꽁치 구이, 학꽁치 초밥)


 

 

겨울비가 내리던 지난 달. 저는 학꽁치 낚시를 마치고 다음 날, 포항 죽도시장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여전히 활기가 넘치는군요.

과메기 축제는 끝났지만, 그래도 시즌의 중심에 놓여 있다 보니 주변에 보이는 거라곤 온통 과메기.

덕장에서 꾸덕히 말린 과메기는 찬바람이 불어줘야 그 맛도 한층 성숙하는데요. 올해는 지난 12월보다 따듯한 날이 많으니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현장에 도착하자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땅바닥은 겨울비로 촉촉이 젖었습니다. 이럴 때 젖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비 냄새가 왜 그리 좋은지.

 

 

 

포항 죽도시장

 

학꽁치 맛을 찾아 포항 죽도시장의 어느 횟집에 들렀다.

 

이날 아침에 입하된 물 좋은 학꽁치

 

 

#. 학꽁치를 바라보는 한일 양국의 다른 인식

이날은 학꽁치 요리를 취급한다는 횟집에서 방송 녹화가 있었습니다.

사실 학꽁치는 포항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생선이지만, 학꽁치만 전문으로 하는 횟집은 보기 드뭅니다.

싱싱한 학꽁치는 주로 회로 썰거나 튀김으로 내지만, 이것도 단품으로 파는 경우보다는 대부분 부요리(스끼다시)에 포함되는 정도이죠.

학꽁치 물회도 따로 붙여놓고 팔진 않지만, 그날 들어오는 싱싱한 잡어(청어, 밀치, 가자미 등) 속에 학꽁치가 있으면 함께 마는 정도.

다시 말해, 이곳 사람들에게 학꽁치는 유명한 생선이면서도 단품으로 즐길 정도의 재료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곳 포항은 학꽁치 말고도 일 년 열두 달 좋은 생선이 넘쳐나기 때문이겠지요. 

 

반면에 일본에서 학꽁치는 단품 요리로 즐길 만큼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고급어종으로서의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 횟감인 참치와 방어에 견줄 만큼은 아니지만, 모름지기 가장 인기 있는 흰살 생선를 꼽으라면 학꽁치가 빠지지 않을 정도이지요.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요리는 초밥이며, 그 외에도 맑은탕, 조림, 소금구이, 튀김 등 다양하게 이용됩니다.

이렇듯 일본은 기본적으로 학꽁치 수요가 많은 나라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조업된 학꽁치도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합니다.

지금이야 국내의 학꽁치 소비량이 과거에 비해 올라갔기에 수출량은 약간 준 상태지만요. 여전히 상태 좋은 학꽁치는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학꽁치

 

좌판을 살피니 물회와 무침용으로 다양한 횟감이 손질되고 있었습니다.

 

 

청어

 

밀치(표준명 가숭어)

 

밀치는 겨울철 대표적인 횟감으로 유명하지요. 이를 상인들은 참숭어라고 부르지만, 실제 표준명은 '가숭어'로 따로 있습니다.

이 철(겨울)에 나는 밀치는 대부분 양식임에도 지방이 올라 제법 맛있습니다.

 

 

주방 한쪽에서는 학꽁치 손질이 한창입니다.

 

 

반대편에서는 학꽁치 소금구이가 익어가는데 그 냄새가 예술입니다.

 

 

학꽁치 하면 초밥이 빠질 수 없죠. ^^

 

 

마지막으로 바짝 말린 학꽁치를 가져오더니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만들겠답니다.

잘 보면 이 중에서도 학꽁치가 아닌 것이 있습니다. 보이시나요?

 

 

바로 이 녀석입니다. 보통 '양미리'라고 부르죠. 언뜻 보면 학꽁치와 닮았지만, 분류학상으로는 다른 생선입니다. 

이 양미리도 겨울이 제철로 지금은 재래시장 어디를 가더라도 새끼줄로 엮은 양미리를 쉬이 볼 수 있습니다.

양미리는 소금구이를 으뜸으로 치지만, 기호에 따라 조려 먹어도 일품입니다. 제 추억의 음식 중 하나 ^^

어쨌든 빠짝 말린 학꽁치로 어떤 음식을 만들까 싶었는데 제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나왔습니다.

 

 

말린 학꽁치 튀김

 

어찌 보면 강정과 비슷하죠. 학꽁치 강정이라 하여도 손색없을 것 같습니다.

옆에서 조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말린 학꽁치를 두툼하게 잘라다 그냥 기름에 튀기더군요. 그 장면에서 내심 불안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짝 말린 생선을 튀기면 더 딱딱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인데 그것은 기우였습니다.

한 조각 씹어보는데 순간 '바사삭'.  식용유 CF를 연상할 만큼의 소리 뒤에는 강정 소스의 달짝한 맛이 와 닿습니다.

이거 대낮부터 맥주 한 잔 생각나게 하는군요. ^^

 

 

학꽁치 소금구이

 

사실 소금구이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몇 번 맛봤던 학꽁치 소금구이에서 만족스러운 맛이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창 학꽁치 낚시를 즐길 때는 회와 튀김 외에 가장 만만한 음식이 구이였습니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대충 손질한 학꽁치를 올려 소금만 뿌린 다음 굽는데요. 살은 너무 부드러워 곧잘 으스러졌고 맛은 맹탕이라 이후로 저는

'생물 학꽁치는 구이로 적합하지 않다.'고 잠정 결론은 내린 바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꽁치구이는 전혀 다른 생선의 맛이 났습니다. 깨가 쏟아질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제법 고소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와 지금은 계절이 달랐습니다. 아시다시피 학꽁치 제철은 겨울이고 이른 봄까지도 맛이 좋은 생선이지요.

5~6월은 산란철이라 맛이 맹하고 가을은 새살을 돋우는 시기라 맛이 덜 찼을 것입니다.

 

 

숯불에 구워 먹는 학꽁치 소금구이, 백령도에서

 

그런데 저는 서해로 낚시를 자주 가는 탓에 주로 가을에 낚이는 학꽁치를 잡아다 먹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겨울 학꽁치보다 맛이 덜했던 것.

심지어 백령도에서 갓 잡은 학꽁치를 숯불에 구워 먹었는 데도 대량으로 남기는 사태가 발생했지요. ^^;

이렇게까지 맛의 차이가 나는 또 다른 이유는 산지에서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서해보다는 동해산이 맛이 좋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겨울이면 서해 학꽁치들이 모두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초겨울에 접어들면서 동해 남부와 경상남도, 제주도로 입성해 낚시와 조업이 이뤄집니다.

그러니 한창때 나는 지역의 것이 맛있을 수밖에 없겠지요.

 

 

 

 

학꽁치 초밥

 

일식 초밥과 달리 투박하게 쥔 시장표 초밥.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갔습니다.

은빛 반짝이는 저 껍질은 씹는 식감을 주었고 투명 감이 훌륭한 흰살생선은 단맛을 내줍니다. 맛이 깔끔하네요.

 

 

학꽁치회

 

학꽁치는 칼질에 따라 식감과 맛이 전혀 달라질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생선입니다.

일반적으로 낚시꾼이 썰어 먹는 학꽁치는 널찍한 포를 두툼이 썰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일식에서는 오동통한 식감을 살리려고 꽈배기를 틀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한마디로 '조사버리네요.' ^^; 딱 재래시장에 걸맞은 막회 스타일.

 

대신 이런 회는 여러 움큼 집어 한입 푸짐하게 집어 먹어야 오물오물 씹는 맛이 있습니다.

조금 욕심을 부려 한꺼번에 많은 양을 넣고 씹어 봅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오래 씹게 되는데요.

이럴 때 학꽁치 속살에 깃든 맛. 그 속에는 살짝 비릿하면서 해초 비스름한 향이 느껴지는가 하면, 씹고 넘길 때 감도는 단맛의 여운도 있었습니다.

식감은 학꽁치회 자체가 두껍지 않으니 단단하다곤 볼 수 없지만, 가을에 맛본 학꽁치회보다는 확실히 탄력이 좋군요.

 

 

포항에서 맛본 학꽁치 요리 한상

 

학꽁치는 한대성도 난류성도 아닌 온대성 어류입니다. 너무 차갑지도 너무 따듯하지도 않은 수온을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지금 철은 적당히 차가워진 포항 앞바다에서 양질의 플랑크톤과 갑각류를 먹고 자랐기에 차진 식감과 단맛을 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쯤 되면 학꽁치도 당당하게 제철 별미로 손꼽힐 만 하겠죠? ^^

 

앞서 말했듯이 좋은 품질은 모두 일본으로 가는데 이제는 우리가 자체적으로 소비량을 늘려 좋은 품질의 학꽁치를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꽁치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법이 개발돼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과거에 전어와 방어가 그랬듯이 지금은 학꽁치가 그리 주목받는 생선은 아닙니다. 하지만 물고기의 운명을 그 누가 예측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적게 나는 식재료에서 많이 나는 식재료로 관심이 옮겨지기 마련이겠죠.

내 능력으로 어렵지 않게 찾아 먹을 수 있는 음식일 때 그 음식에서 무사안일을 느끼며 안주하려는 본능 말입니다.

닭(치킨)이 그랬고 삼겹살이 그랬으며 생선회로는 만만한 우럭, 광어가 그랬습니다.

 

이제는 삶의 질이 더 나아지니 자칭 미식가가 많아지고 매스컴에서 연신 때리는 방어나 전어, 도다리 등을 찾아 전국 팔도를 유랑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관심조차 받지 못했던 어종이지만, 지속적인 방송과 관심에 힘입어 수요가 급증하면 몇 년 안에는 그 자원이 어획량 감소로 이어집니다.

어획량이 감소하면 가격이 오르겠죠. 방어와 전어도 머지않아 공급이 달릴 것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일 것입니다. 

반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학꽁치는 여전히 풍족한 자원력을 자랑합니다.

몇 년 안에는 학꽁치가 매스컴의 포화를 맞고 수요가 급증할 날이 오지 않으니라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착실하게 학꽁치 요리법을 개발해 놓는다면, 나중에는 노후가 보장되는 유망 메뉴가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포항에서의 학꽁치 기행은 여기서 마치며, 포항의 죽도시장 탐방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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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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