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낚시여행(3), 차귀도 낚시의 불편한 진실


 

 

"만약, 비가 온다면 그날 일정은 숙소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농담으로 던진 말이 결국은 씨가 돼버렸습니다.

월요일 새벽 4시. 잠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제주도 서남부의 최대 격전지인 형제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찌감치 짐을 챙겨 나왔습니다.

이날을 위해 저는 일주일 전부터 배를 예약해뒀고 이날이 아니면 또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터라 수중전을 각오해서라도 강행했죠.

그런데 9시부터 내리기로 예보된 비가 새벽부터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합니다. 순간 우리의 제주도 낚시 일정이 암담해지더군요.

일단은 차를 몰고 사계항으로 향합니다. 현장에 도착해 바다를 보니 역시 낚시할 상황으로 보이지는 않는군요.

우웅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비는 더욱더 거세져 갑니다.

 

새벽 5시. 선장께 전화를 넣으니 받지 않네요.

일단 사계항에 차를 대고 대기 중인데 선장이 불빛을 비추며 바다를 살피러 나옵니다. 이미 우리는 반 포기 상태.

그래도 최종 판단을 선장에게 맡기기로 하는데 돌아온 답변은 예상대로 "오늘은 낚시가 힘들다." 였습니다.  

비바람도 문제지만 오전 10시에는 만조가 겹쳐 넙데기에 파도가 넘어올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형제섬 넙데기는 포기합니다.

 

 

동양콘도 앞, 제주도 애월

 

우린 그 길로 숙소로 들어가 한두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제주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6시 반.

TV를 켜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그렇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체크아웃을 넘긴 시간입니다.

다시 숙소를 나와 아침을 먹고선 구엄포구로 향했습니다. 밑밥은 전날 밤에 미리 개어놔서 충분한 상태.

일단 비바람을 피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비는 제주도 전 지역에 뿌리고 있어 바람이라도 피하고자 애월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빗방울은 좀 전보다 더 굵어지면서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쏟아붓네요. 상황을 보아하니 쉽게 그칠 비가 아닙니다. 

 

"아 제대로 망했다."

 

장대비를 뿌려대니 날씨도 상당히 춥고.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날씨가 진전되기만을 기다리는 일뿐입니다.

 

 

제주도 한림의 어느 카페에서

 

어느새 시간은 정오. 서울 일행과 함께 보낸 2박 3일 중 하루가 통째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해는 중천에 걸렸는데도 아직 낚싯대 한 번 담가보지 못했고요. 우리는 포인트를 남쪽으로 옮기기로 했는데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어 낚시 불가.

인근 카페에서 또다시 커피로 시간을 때웁니다.  ㅠㅠ

 

 

한림 판포 방파제

 

우리에게 차량을 내어준 즐거워야인생이다님은 월요일이라 출근한 상태. 그래서 지금은 밥곰님과 상원아빠님이 저와 함께 고생 중입니다.

그나저나 대단하지요. 이분들 모두 작년 이맘때는 서로 알지 못했던 사이입니다. 그러다가 작년 8월쯤에 열린 입질의 추억 모임에서 안면을 트고 지금까지

모임이라는 모임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형, 동생이 되었으니까요. 그게 아니면 이분들이 누군 줄 알고 자기 차를 맡기겠습니까? 

이렇게 인정과 배려가 많은 분들이 제게는 크나큰 인복입니다. 카풀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낚시는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함께 다니기 어려워요.

앞으로도 좋은 분들이 제 모임에 많이 참석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모임을 자주 주최해야 하는데 요즘은 통 그러질 못하네요.  

조만간 책을 출판하게 되면 그때 모임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이분들은 내일이면 서울로 올라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비가 온다고 언제까지 죽치고 쉴 수만은 없겠지요. 마침내 빗방울이 조금씩 잦아지니 천원짜리 우비를 입고 낚시를 강행합니다.

풍향이 남동풍으로 바뀜에 따라 바람을 덜 맞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날도 좋지 않고 발판도 미끄러울 것입니다.

이런 사나운 날에는 고기 욕심보다 못 잡아도 안전하고 편한 곳이 우선이기에 발판이 편한 콘크리트 방파제를 택했습니다.

 

 

빗방울이 여전히 거세 DSLR 카메라를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폰카로 찍어 화질이 좋지 않은 점 양해 바랍니다.

그런데 이 날씨에 낚시를 하러 온 미친 X는 우리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저 멀리 또 한 분이 계시는군요. ^^;

웨이더에 우비까지 뒤집어쓰면서 낚시 중인 현지꾼. 진정 낚시꾼으로 인정합니다. 뭘 잡나 살피니 어랭이를 낚아 올리시네요.

 

 

우리도 서둘러 낚시해 보지만 이 장면을 끝으로 한 시간의 짧은 낚시를 마무리합니다.

이유는 더 해도 가망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판포 방파제의 수심은 5~6m권. 그런데 이때는 간조라 가까운 곳 수심이 2~3m도 채 나오지 않았죠.

이런 수심대를 보이는 내항의 방파제는 만조 전후가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차라리 전날 했던 사계리 해안 초소에서 초들물과 저녁 물때를 보고 나오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드는군요.

 

 

사계리 해안 초소 포인트

 

그래서 우리는 다시 사계리 해안 초소로 왔습니다. 예상대로 포인트에는 우리밖에 없군요.

하기야 이런 날씨에 낚시하러 올 현지꾼이 어디 있겠냐마는 현재 시각이 4시니 앞으로 3시간 정도 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고기가 물어줄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한바탕 바다가 뒤집힌 탓에 포인트 주변은 온통 뻘물이고 수온도 꽤 낮아졌네요. 

만져보니 얼음물 수준. 혹시나 하고 던져보지만 생명체 하나 구경할 수 없습니다. 밑밥을 연신 뿌려도 보지만 잡어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는군요. 

더 해봐야 시간 낭비일 것으로 판단한 저는 낚시 시작 30분 만에 대를 접기로 했습니다. 

 

이날은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이기에 펜션을 잡아 바비큐 파티를 벌일 예정이었습니다.

동문시장에서 흑돼지를 사고요. 장을 본 것으로 거하게 한 상 차려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 계획은 바비큐장이 비에 젖으면서 무산되었습니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니 모든 게 귀찮아지는 시점. 바비큐를 못해 아쉽지만 그냥 편하게 흑돼지 전문점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일찌감치 제주시로 돌아온 우리는 때마침 퇴근한 즐거워야인생이다님과 합류. 제주에서의 마지막 만찬으로 서로를 위로합니다. 

펜션으로 돌아와 가볍게 맥주 한 잔하니 벌써 자정이 넘었네요. 다음날은 차귀도에서 마지막 낚시를 계획했었기에 늦어도 4시 반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다음 날 아침, 자구네 포구

 

낚시꾼들은 참으로 부지런해요. 전날 그렇게 술 먹고 자도 새벽 알람 소리에는 칼 같이 일어납니다. 그놈의 손맛이 뭐길래. 쩝.

항에는 6시까지 오라고 했지만 몇몇 분들은 포인트 선점을 위해 미리 와서 짐을 싣고 있군요. 우리보다 더한 사람들. ㅠㅠ

 

 

차귀도를 향해 떠나다.

 

독수리섬(지실이)이 보이고

 

고산 자구내 포구에서 차귀도까지는 배로 10분 정도 소요됩니다.

그 전에 독수리섬이 나오는데 저곳은 돌돔과 다금바리(표준명 자바리) 낚시 포인트로 꽤 알려졌죠. 

 

 

방어덕 포인트

 

독수리섬 방어덕에는 카고 낚시꾼들이 주로 내립니다.

 

 

차귀도 목여

 

우리는 차귀도 목여에 내렸습니다. 배에 타자마자 선장에게 목여에 내려달라고 부탁하니 지금 그쪽에 가는 사람만 우리를 포함해 아홉명이라네요. 헉.

어차피 지금은 목여에서만 고기가 나왔다며 다 같이 내리랍니다. 그래서 목여에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습니다.

저 끝에는 부부 조사님으로 보이는데요. 온종일 낚시하며 지켜봤는데 정말 그 많은 시간을 엉덩이 한 번 붙이지 않고 열심이시더군요.

낚시에 대한 열정이 존경스러울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수년 전 우리 부부를 보는 듯한 ^^;)

 

 

반대편은 이렇게 생겼는데 여기는 수심이 낮아 낚시가 어렵습니다.

 

 

차귀도 목여에서의 벵에돔 낚시는 난바다를 향해 던집니다.

활성도가 저조할 것으로 예상한 저는 비중이 무거운 벵에돔용 파우더를 섞어 밑밥을 구성했습니다.

그런데 이 밑밥이 하루 반나절이 지난 거라 좀 불안했지요. 원래는 형제섬 가려고 개 놓은 밑밥인데 다행히 날이 덥지 않아 썩지는 않았습니다.

 

 

채비는 0a(제로 알파)로 시작.

 

#. 나의 채비와 장비

낚싯대 : 머모피 사이버티탄 1-530

릴 : 다이와 임펄트 LBD 3000번.

원줄 : 쯔리겐 프릭션 제로 1.5호 서스펜드 타입

어신찌 : 쯔리겐 아시아 LC 제로알파, 조수우끼고무 M사이즈

목줄 : 쯔리겐 제로알파 1.7호로 시작, 한낮에는 1.5호로 변경

바늘 : 벵에돔 전용 바늘 4호와 5호

봉돌 : 종일 낚시하면서 너무 많이 바꾼 탓에 일일이 기억을 못함 ^^;

 

참고로 제가 쓰는 장비는 이렇다 정도로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제가 쓰는 장비라고 해서 좋은 장비가 결코 아닙니다.

저는 장비에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냥 되는대로 구입해 그것을 사용하면서 익숙해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사용 중인 장비를 따라 사지 마세요. 가령, 머모피 낚싯대나 오쿠마 릴 같은 건 그냥 있으니까 할 수 없이 쓰는 겁니다.

사용감이 불편해도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낚시 장비에 돈을 투자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럴 돈도 없고 ^^;

(알고 보면 생계형 낚시꾼임 ㅋ)

 

 

어쨌든 이른 아침 좋은 분위기를 맞고 있어 서둘러 낚시를 시작합니다.

미끼를 내리자마자 쪽 빨고 들어가니 꼭 열기처럼 생긴 볼락이 올라오네요. 하지만 이 어종은 표준명 볼락입니다.

볼락 중에도 회유성이 강한 무리가 있지만 붙박이도 있는데요. 이 녀석은 붙박이입니다.

산호가 있는 곳을 은신처 삼아 서식하기에 불그스름해졌을 뿐, 단순 보호색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어서 상원아빠님이 꽤 준수한 긴꼬리벵에돔을 올립니다.

원래 이런 씨알은 제게 있어 방생 사이즈인데 요즘은 워낙 불황이다 보니 준수하다는 표현을 다 쓰네요.

 

 

이어서 밥곰닙도 벵에돔 한 수를 거두더니

 

 

이번에는 연타석 묵직한 녀석을 걸고 손맛을 보는군요.

 

 

벵에돔

 

그런대로 씨알이 준수한 편입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활성도가 제법이군요.

 

 

이어서 상원아빠님은 씨알 괜찮은 볼락을 연신 낚습니다. 이날도 전에 이어 마릿수에 강한 면모를 보이시네요. ^^

 

 

제게는 청볼락이 달려듭니다. 이 청볼락은 볼락의 근연종으로 유전 형질이 다르지만 국내 어류도감에서는 단일 종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새로 편찬하게 된다면 이 부분이 수정돼야 할 텐데요. 이 청볼락은 제주도와 추자도, 동해 일부에 서식해 통영, 삼천포에 서식하는 소위 남해 볼락과는

여러모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맛은 볼락이 훨씬 좋습니다. 어류에 관한 연구가 미미했던 과거에는 임금님 수라상에 남해산 볼락을 진상했고 제주산은 맛이

떨어져 올리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 녀석이 바로 이 녀석입니다. 그래도 사실 없어서 못 먹습니다.

볼락 맛이 워낙 뛰어나서 그렇지 청볼락도 구워 먹으면 별미랍니다.

 

 

이번에는 밥곰님과 제가 쌍걸이로 올립니다.

 

 

표준명 긴꼬리벵에돔

 

제게 연달아 달려든 이 녀석. 날씬한 어체에 코발트 빛깔이 선명한 긴꼬리벵에돔입니다.

벵에돔도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아 보호색을 띠는데 이렇게 색이 밝은 개체는 기분이 좋아 상층까지 올라와 먹이 활동하는 것들이지요.

현재 입질 수심층은 약 2.5~3m. 채비가 정렬되면 원줄을 살짝 끌고 갈 정도니 긴꼬리벵에돔치고는 예민한 먹성을 보입니다.

 

 

여기서는 상원아빠님이 선 자리가 가장 좋고 즐거워야인생이다님이 선 자리가 가장 안 좋아 자리에 따른 조과 차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불황에 꾸준히 뽑아내시네요.

제 생각에 상원아빠님은 최근 1년 동안 낚시 실력이 가장 가파르게 오르지 않나 싶습니다. 누가 코치해줬는지 ^^;;

 

 

하지만 좋은 분위기도 잠시뿐, 우리에게는 너울성 파도라는 먹구름이 드리워지게 됩니다.

한창 들물이 진행되다 보니 가장 좋은 명당을 너울성 파도에 내줘야 했고 그곳을 포기 못 한 저는 이렇게 멀리서라도 공략해봅니다.

문제는 제가 선 자리에서 X지점을 공략하게 되면 원줄이 갯바위에 다 쓸리고 만신창이가 된다는 점입니다.

그 점을 해결하기 위해 저는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공략해 나갑니다. 

 

 

먼저 밑밥통을 안전한 후방에다 놓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밑밥을 포인트가 되는 곳에 몇 주걱 품질합니다.

 

 

이제 포인트를 향해 열나게 뜁니다. ^^;

 

 

빨리빨리! 지금 밑밥이 내려가고 있거든요.

시간차가 더 벌어지면 상층에서 노는 벵에돔의 입질은 받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서 너울이 밀려와 잠시 기다렸다가

 

 

건너뜁니다.

 

 

곧바로 캐스팅하고요. 이런 식으로 해서 두 마리 정도 잡아냈는데 이것도 만조에 이르면서 못하게 됐습니다.

 

 

결국, 들물과 너울에 못 이겨 높은 지대로 올라왔습니다. 시간은 정오가 되면서 벵에돔 입질이 뜸해졌습니다. 

아침에는 발 앞에서 재미를 봤는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면서 40m 이상 아주 멀리 날려야만 겨우 입질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됐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장타를 날려야 했는데요. 캐스팅은 50m까지 날리고 밑밥은 40m 정도 날려서 수차례 동조시킨 결과

 

 

겨우 한 마리 낚아내는 데 그쳤습니다. 상당히 먼 거리에서 받은 입질인데도 씨알은 충분치가 않네요.

 

 

이후 초썰물이 시작되면서 포인트 앞은 잡어 천국으로 변했습니다.

상원아빠님은 발밑에서 퐁당퐁당 낚시로 쥐치와 볼락 몇 마리를 연거푸 낚아내니 이날 차귀도로 들어간 출조객들 중 마릿수로는 장원일 듯합니다. ^^

 

 

제주도에서는 흔치 않은 노래미가 다 나오는군요. 

자리돔은 보이지도 않은 대신 죄다 볼락과 노래미가 낚이니 벵에돔 낚시에 적당한 수온이 아닐 것입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후가 되자 물색도 나빠지고 수온도 하강한 것으로 보이면서 더이상의 벵에돔 입질은 없었습니다.

입질 예상 수심을 중하층으로 설정한 뒤 채비를 여러 번 바꿔보지만 상황이 많이 어려워졌네요.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자 할 수 없이 발밑에 모인 볼락이나 잡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다시 썰물이 이어지면서 아침에 입질 받은 명당이 드러난다.

 

그런데 차귀도 관광 낚시배들이 갯바위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

 

낚시가 안 돼 한숨 자고 있는데 무언가 시끌벅적하길래 깼습니다. 살펴보니 차귀도 관광 낚시배가 여러 대 들어와 갯바위 주변을 에워싸는데요.

일반적으로 낚시 에티켓이라 함은 서로 간에 방해하지 않은 거리에서 행해지는 것이 기본인데 차귀도 낚시배는 그러한 금기를 깨고 갯바위에 바짝 붙입니다.

저 정도 거리면 갯바위에서 약 40~50m. 한낮에 입질이 뜸할 때는 보통 그 정도 거리를 공략지점으로 삼는데 보시다시피 배가 가로막고 있어 채비를 맘껏

던질 수가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엔진음입니다. 벵에돔은 소리에 굉장히 민감해 인위적인 소리가 나면 바위틈으로 숨어버리죠.

입질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배를 바짝 붙여서 낚시한다는 것은 갯바위에 내린 사람들은 낚시하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예전에는 배를 대더라도 갯바위에서 꽤 멀리 떨어트렸는데 지금의 모습은 매우 유감스럽네요.

 

차귀도 배낚시는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잡어 낚시입니다. 주어종은 어랭이, 자리돔, 전갱이로 포인트가 엄청나게 많고 방대해 굳이 여기서 하지

않아도 됩니다. 특별히 시기도 타지 않고요. 그런데 왜 하필 여기서 진을 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관광 낚시하러 온 사람들이 뭔 죄가 있겠습니까. 노골적으로 배를 갖다 대는 무개념 선장들이 문제겠지요.

 

카고나 선상낚시를 무시하는 그릇된 인식이 형성된 것도 이런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낚시 선진국인 일본처럼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배려해준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겠지요.

비단 낚시뿐 아니라 다른 취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서로 다른 취미, 다른 장르가 한 곳에서 맞부딪힐 때는 배려가 우선시 돼야 합니다.

비탈길에서 두 차량이 마주했을 때 내리막으로 후진해야 할 차가 먼저 양보해 주듯이 낚시도 이동과 포인트 선점력이 자유로운 쪽이 먼저 양보하고

배려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선상과 보트 낚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울 따름입니다.

 

 

차귀도 낚시의 불편함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날 예정된 철수 시각은 오후 6시였지만 낚시가 도저히 안 되자 조기철수 하기로 했습니다.

이때가 오후 4시. 선장한테 전화를 걸어 조기철수 하겠다고 하니 "그럼 좀 전에 배 지나갔을 때 탔어야지 이제 겨우 항에 도착했는데" 하며 팍 끊으시더군요.

그래봐야 10분이면 오는 거린데 소망호 선장이 전화 툭툭 끊기로 유명하다는 건 예전에 당해봐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습니다.

 

저는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곳(목여)에 남은 전원이 조기 철수하기로 합의했고 짐 정리도 마쳤다고 하니 "알았다."고 합니다.

그 후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배는 오지 않았습니다. 목여에 내린 전원이 대를 접고 배를 기다렸지만 결국, 이 배는 원래 철수 예정 시각이었던

6시가 다 돼서야 왔습니다. 갯바위 손님은 선장의 편의를 위해 한두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차귀도 갯바위는 한라호와 소망호가 격일제로 번갈아가며 운항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한라호가 출조를 맡고 소망호는 철수를 맡은 듯합니다.

두 낚싯배는 개인이 아닌 어촌계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차귀도 낚시를 독점하고 있어 아쉬울 게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조황이 좋든 나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만 태우고 다니면 끝입니다. 그 결과가 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지꾼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해경에 신고한다.'고 엄포를 놓으면 배를 몰고 온답니다.

확인된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그 정도로 늑장 대응과 배짱으로 낚싯배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날은 기준치 미달은 방생하고 먹을 만큼만 잡아왔습니다. 고기는 일행이 나눠 갖고요. 

 

 

철수 길에서 바라본 차귀도 풍경입니다. 

 

이곳은 똥여로 차귀도에서는 가장 먼저 내리고 싶어하는 명당입니다.

 

 

이곳은 장군바위로 똥여와 함께 특급 포인트입니다. 너울에 취약해 파도가 잔잔한 날에만 진입할 수 있지요.

 

 

독수리섬(지실이)입니다. 찌낚시보다는 주로 원투낚시를 많이 하며 돌돔과 다금바리(표준명 자바리)를 함께 노립니다.

 

 

지실이 왼편은 볼락 포인트입니다. 철수하는 꾼에게 조황을 물으니 수온이 차서 한 마리도 안 문다고 합니다. 

우리는 수온이 차서 볼락만 물던데 어찌 된 일인지 ^^;;

온종일 해무 속에서 낚시하다 보니 온몸이 축축하고 비린내가 납니다. 이 거지꼴로 비행기를 타기에는 민폐가 될까 봐 근처 공중목욕탕에 들렀습니다.

서둘러 샤워하고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곧장 공항으로 달렸습니다. 

 

결론, 될 수 있으면 4~5월에는 낚시를 하지 말자. ^^;

봄날의 제주도 낚시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당분간은 서해권 조행기로 뵙겠습니다.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 추신

조행기는 최대한 알차게 나눠 써야 제맛인데요. 이틀 치 분량을 하나에 다 쓰자니 속이 쓰리군요.

이것이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입니다. 돈 쓰고 몸 버리고 시간 낭비에 글감은 글감대로 살리지 못하는 (집에서 딸내미나 볼 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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