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 품질의 비밀, 중국산과 국산 황태 구별법


 

황태의 주원료는 명태입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즈음에 잡힌 명태를 강원도 북부 고산지대로 가져와 겨우내 말린 것을 우리는 황태로 알고 먹습니다. 12월 중순 즈음에 말리기 시작한 황태는 3월 봄바람이 불 때까지만 덕장에 걸립니다. 그러는 동안 혹한의 겨울 날씨로 밤에는 얼고 낮에는 살짝 풀리는 과정을 약 3개월 정도 반복합니다. 그 사이 황태는 수분의 증발로 부피가 약간 줄면서 안에 있던 각종 아미노산 성분이 응축돼 맛은 진해집니다. 그러다가 3월 중순께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거두는데 바로 출하하지 않고 저장고에서 서너 달 정도의 숙성 기간을 가집니다. 그래서 그해 생산된 황태는 3월이 아닌 5월 이후이며, 그 사이 숙성된 황태포 속살은 더욱 노랗게 변하면서 황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속살이 노래 노랑태라 불리기도 하는 황태는 그렇게 긴 시간과 하늘의 합작으로 완성돼 우리 곁에 돌아옵니다.

 

 

#. 흔들리는 황태의 정체성

현재 국내 황태 생산의 70%는 강원도 북부 고산지대에 있는 용대리 마을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용대리에서 생산된 황태라 해도 원산지는 '러시아'로 표기해야 합니다. 국내 명태 자원이 씨가 마르면서 원료 수급의 대부분을 러시아산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중국산 황태도 같은 러시아산 명태를 사용하기 때문에 원산지 표기가 같다는 점입니다. 황태 원료는 분명 명태지만, 황태의 맛과 품질은 건조 지역과 환경, 방식에 따라 전적으로 좌우되기 때문에 같은 러시아산 명태를 쓰더라도 가공된 국적과 생산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현행법은 황태를 가공한 생산지나 덕장명을 기입할 의무 사항이 없습니다. 이러한 맹점을 이용해 중국산 황태를 국산인 것처럼 속여 납품한 사범들이 대거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중국산 황태의 70% 이상은 공장 온풍기로 단기간에 말려 황태 특유의 색과 보풀의 질감, 찢어서 먹었을 때의 식감, 속살의 감칠맛 등 여러 면에서 부족합니다. 중국에서 생산되었든 국내에서 생산되었든 공장에서 말린 제품은 황태란 이름만 달고 나온 '건 명태'에 불과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건조해도 원산지 표기만 하면 되는 것이므로 황태 품질을 가늠하는 변별력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에 소비자는 황태란 말 하나로 믿고 살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A 제품(왼쪽)과 B 제품(오른쪽)

 

#. 황태 품질 보는 방법(또는 중국산과 국산 황태 구별법)

지금 제 앞에는 두 종류의 황태가 놓여 있습니다. 왼쪽 A 제품의 소재지는 북강릉 OO이고, B 제품은 정읍 OO입니다. A와 B 제품 모두 러시아산이라고 원산지 표기가 되어 있는데 A 제품은 생산지 표시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고(뒤에 성분 표시에도 없음) B 제품은 포장 상단에 '덕장명 : 옥수덕장(인제군 북면 용대리)'라 적혀 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A 제품에도 생산지 표기가 되어 있음을 뒤늦게 알았는데 다시 한 번 살피니 포장지 왼쪽 상단에 깨알같은 글자로 '대관령'이라 쓰여 있습니다.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습니다.) 사실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지금도 시중에는 생산지 표기가 아예 되어 있지 않은 황태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황태는 생산지가 매우 중요한데 이렇게 알아보기 어려운 위치에 잘 보이지 않게 적어 놓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직 포장을 개봉하지 않았음에도 두 제품은 빛깔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A제품은 밝은색이고, B 제품은 황태 특유의 진노랑 색이 납니다.

 

 

A 제품(위)과 B 제품(아래)

 

개봉해서 두 제품을 자세히 비교해 봅니다.

 

 

<사진 1> 생산지 표기가 안 된 A 제품(왼쪽)과 표기가 되어 있는 B 제품(오른쪽)의 건조 상태 비교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황태 색에서 적잖은 차이가 남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머리나 지느러미 부분을 유심히 보면 이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말린 것인지 조금은 가늠할 수 있죠.

 

 

A 제품의 보풀 상태

 

B 제품의 보풀 상태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는 김밥을 비롯해 여러 음식에 북어를 강판에 간 보푸리를 사용합니다. 치자와 같은 색이 나는 작물로 즙을 내 색을 물들이고 감칠맛을 더한 것입니다. 황태도 북어포처럼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데 강판에 갈았을 때 보풀이 부드럽지 않고 뻣뻣하면, 좋은 품질이 아닙니다.  

 

 

<사진 2> 제품(왼쪽)과 B제품(오른쪽)의 건조 상태 비교

 

황태는 같은 명태를 사용하더라도 어떤 기후에서 얼마나 정성껏 말렸느냐에 따라 맛과 품질이 결정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태 건조에 가장 적합한 기후를 보이는 곳이 용대리 마을을 포함한 강원도 북부 고산지대입니다. 이곳의 기후는 영하 20도를 넘나들고, 한낮에도 영하 10도를 웃도는 매우 추운 지역입니다. 원래는 원산(북한)에서 말리기 시작한 북어가 시초지만, 그나마 원산과 가장 가까운 기후를 보이는 곳이 용대리 마을이고 실제로 이 지역에서 말린 황태가 전국에서 품질이 가장 우수하고 맛도 보장됩니다. 

 

결국, 황태 품질은 명태의 원산지보다 생산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용대리를 비롯해 강원 북부 지방의 덕장에서 건조한 황태는 그 지역 이름이 생산지로 붙게 되며, 이것은 황태 품질을 가늠하는 척도이자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내세울 수 있는 최대 자랑거리이기 때문에 표시를 하지 않거나, 보일까 말까 할 정도로 작게 표시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생산지 표기가 안 되었거나 매우 작게 표기된 제품은 공장에서 온풍기로 말린 이름만 황태이거나 중국산일 가능성이 매우 큰 것입니다. 

 

 

A 제품의 상세 표기입니다. 예상대로 사용한 명태는 러시아산. 하지만 생산지에 대한 정보는 여기서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앞면에 작은 글씨로 '대관령'이라고만 적혀 있어 적어도 이 제품이 중국산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포장지 뒷면에 기입된 주소와 북강릉 OO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주소를 검색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두 곳 모두 유통 관련 소재지일 뿐, 생산지(건조 장소)나 덕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따라서 생산지 표시가 안 되었거나 아주 작게 쓰여있는 경우라면 소비자가 그 부분을 놓치기 때문에 이것이 어디서 건조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반면, B 제품은 원산지 표기는 물론, 생산지와 덕장명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상세 표기돼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황태는 강원도 인제(용대리)에서 생산한 것을 으뜸으로 치고 가격도 그만큼 높게 형성됩니다. 그런데 생산지 표기가 안 되어 있거나, 알아보기 어려운 곳에 작은 글씨로 표기한 제품이 용대리에서 생산된 황태와 가격에서 차이가 없다면, 여러분은 어느 것을 고르시겠습니까? 참고로 A와 B 제품의 가격은 몇백 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품질이 좋은 만큼 가격이 더해지고, 품질이 낮으면 가격도 낮아지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 논리가 이 황태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소비자가 눈으로 보고 황태 품질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상술이며, 이것이 우리가 황태를 구입할 때 생산지나 덕장명이 제대로 표시되었는지 확인하고 사야 하는 이유입니다. 법이 허술하니 소비자라도 꼼꼼히 따지고 구입해야 생산자도 생산지 표기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A 제품(왼쪽)과 B 제품(오른쪽)의 색감 비교

 

다시 한 번 A와 B 제품을 비교해봅니다. A 제품은 색이 밝고 <사진 1>과 <사진 2>에서 보았듯이 머리와 꼬리지느러미에서 충분히 건조하지 못한 흔적이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포장지만 봐서는 생산지(건조 장소)를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제품이 온전히 덕장에서 말린 황태인지 의심되는 것입니다.

 

 

 

쇼핑몰에서 구입한 C제품 

 

C제품은 아예 '수입원'으로 표기하고 있어 중국산이 유력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중국산 황태를 대량 수입하면서 단지 원산지만 표기한 상태로 유통시키고 있습니다. 공장 온풍기로 단시간에 말려 낸 것이 대부분이므로 국내에서 생산된 황태보다 색이 밝고 흽니다. 이것이 중국산과 국산 황태를 구별하는 기본적인 방법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A 제품이 국산 황태로 둔갑한 중국산 황태는 아니다. A 제품의 색이 용대리에서 생산된 황태보다 밝은 이유는 국내 공장에서 말린 이름만 황태이거나, 혹은 상단에 '대관령'이라고 아주 작게 표시된 것처럼 덕장에서 말려도 충분한 숙성 시간을 거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이지만, 이런 부분까지 소비자가 염두에 두고 황태를 구입해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A 제품은 소비자가 생산지 확인을 못하거나 쉬이 지나쳐버릴 수 있기 때문에 황태의 정체성이 의심될 수도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부분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만한 충분한 사유가 됩니다. 황태는 원산지도 중요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말렸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적어도 황태란 말을 달고 낸다면,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도 이것이 공장에서 말린 황태인지 덕장에서 말린 황태인지, 혹은 국내 건조인지 중국 건조인지를 표기해야 할 의무가 법적으로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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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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