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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는 잘 모르는 수입산 갈치 맛의 비밀(세네갈, 파키스탄 갈치)
가을에 제철 맞은 갈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몇 편에 걸쳐 갈치를 파헤치면서 지금은 목차라 할 만큼의 목록이 생겼으니 미처 읽지 못한 글이 있다면, 한 번쯤 챙겨 보시기 바랍니다.
#. 갈치 이야기 목차
1) 국민생선 갈치에 대한 모든 것, 생물과 냉동 구별법
5) 소비자 기만하는 자갈치 시장의 갈치 판매 실태
이어서 오늘은 수입산 갈치 중 가장 대표적인 세네갈과 파키스탄산 갈치에 관해 알아봅니다. 저는 국산뿐 아니라 세네갈산 갈치를 평소 먹어오면서, 같은 세네갈산 갈치인데도 맛에서 현격히 차이 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었습니다. 혹자는 세네갈산 갈치를 포함해 수입산 갈치는 무조건 맛이 떨어진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수입산도 수입산 나름이며 어떤 것은 상태가 좋지 못한 국산보다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수입산 갈치라고 무조건 등한시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기보다는 좋은 품질을 고르는 혜안이 필요하겠죠. 저는 세네갈산 갈치를 먹으면서 어떤 것은 정말 국산에 견줄 만큼 맛이 괜찮았음을 느끼다가도 어떤 것은 맛이 형편없어 내다 버리고 싶은 적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차이에 관해 정확히 밝힌 것은 아니지만, 유추를 해보면 노르웨이산 고등어와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보입니다.
노르웨이산 고등어는 수입업체와 그들이 책정한 가격에 따라 품질(맛)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같은 고등어라도 조업 시기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에 제철의 중심에 잡힌 고등어와 그렇지 못한 고등어, 여기에 씨알 선별에 따른 맛 차이가 더해져 품질과 가격이 결정됩니다. 노르웨이산 고등어는 '대서양 고등어'로 국내에서 잡히는 고등어와는 종류가 다르지만, 제철은 가을에 겨울로 국산 고등어와 엇비슷합니다. 이때 잡힌 고등어는 북대서양의 찬 수온을 이겨내기 위해 지방을 몸속에 가두어두므로 맛이 국내산 고등어보다 좀 더 고소하며, 씨알(크기)이 클수록 그 맛이 더 깊어집니다. 그래서 가격도 상품과 하품이 두 배 가까이 차이나게 되는 것이죠.
세네갈산 갈치는 우리 바다에서 잡히는 갈치와는 다른 종인 '남방갈치(이빨갈치)'로 제철은 늦여름부터 가을까지로 알려졌습니다. 이 시기에 주낙으로 어획된 은갈치는 씨알이 클수록 고소하지만, 우리나라로 수입되는 갈치가 모두 제철에 어획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맛이 떨어지는 소위 '비품'이 유통됩니다. 여기에는 그물로 잡힌 먹갈치도 포함될 것이며, 갈치 맛이 떨어지는 봄철이나 늦겨울 즈음에 잡힌 것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각설하고 여기서는 세네갈과 파키스탄이라는 두 수입산 갈치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봅니다.
부산 자갈치 시장
이곳은 수입산 수산물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닿는 항구 도시 부산입니다. 부산하면 자갈치 시장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곳에서도 수입산 갈치는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 자갈치 시장을 둘러본 결과, 원산지 표시를 한 상점은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하듯 '먹갈치'라는 표시만을 해놓고 팔고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상세히 다루겠습니다. 우선 사진에 보이는 갈치는 전량 수입산입니다. 가격을 묻자 4~5마리가 3만원. 씨알이 굵으면 4마리이고, 조금 잘면 5마리를 한 묶음으로 파는데 이는 상인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입산 갈치를 살피던 중 석연치 못한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언뜻 보면 다 같은 갈치로 보이지만, 뚫어지게 보고 있으니 크게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누어짐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표시한 것이 아래 사진입니다.
A와 B의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원산지를 묻자 아주머니는 '수입산'이라고만 말합니다. "수입산 어디?"라고 묻자 '세네갈과 파키스탄'이라고 합니다. A와 B는 세네갈과 파키스탄의 차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A → 세네갈산 갈치
B → 파키스탄산 갈치
둘의 차이를 묻자 그때부터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나옵니다.
"살 거면 사고, 말면 말지 그런 건 왜 물어. 갈치 장사하게?"
순간 빈정이 상했지만, 이 둘의 차이를 캐내기 위해서는 체면을 버리고 좀 더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 물건을 사지 않으면 둘의 차이를 알려줄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는 아주머니를 살살 꾀어 집요하게 캐내 봅니다. 그러나 상인은 '나는 척 보면 안다.'는 식으로 에둘러 말할 뿐, 어디서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설명하지 못해 결국에는 제 눈썰미로 파악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알게 된 결과와 상인의 말, 수입산 갈치의 유통에 관해 추가로 알아본 내용을 수렴해 보니 외형적인 차이도 차이지만, 맛에서도 극명히 차이가 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세네갈이든 파키스탄이든 이 둘의 갈치는 '같은 종'입니다. 남방 갈치의 특징으로 노란색 눈알을 꼽을 수 있으며, 옆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도 살짝 노랗지요. 이 노란색은 선도가 좋을 때일수록 연한 색을 띠며, 선도가 나빠질수록 진노랑을 띱니다.
선도라는 것은 해동한 이후 시간 경과에 따라 나빠집니다. 두 국적의 갈치는 잡아서 육동(육지에서 냉동)을 거쳐 선박으로 옮겨지며, 한국에 오기까지 30~40일이 걸립니다. 냉동한 상태이므로 이 기간에는 선도가 크게 나빠지지 않지만, 어획 후 육지로 옮겨지는 동안 선도가 상당 부분 떨어진 상태에서 냉동한 물량도 포함할 수 있으니 어획 후 냉동하기까지 시간이 짧은 쪽이 좀 더 신선한 상태로 들어오게 되겠죠.
외형을 자세히 보면 세네갈과 파키스탄의 차이가 보입니다. 몸에 상처가 적고 은색의 구아닌 색소가 비교적 잘 보존된 쪽이 세네갈산 갈치이며, 잔 상처가 많아 조금 거무튀튀하게 보이는 쪽이 파키스탄산 갈치입니다.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자세히 보면 그리 큰 차이는 아니지만 미묘하게 다른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갈치 표면에는 여성용 화장품에 주로 쓰이는 반짝이는 '구아닌 색소'를 다량 포함하고 있는데 이 구아닌이 잘 유지돼야 은갈치로서 상품 가치가 빛납니다. 구아닌의 보존은 조업 방식에 따라 확연히 나뉘는데 주로 연승주낙이나 채낚기(낚시)로 올린 갈치는 상처 하나 없이 잡아들일 수 있어 광택이 나며, 그물로 조업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갈치가 발버둥 치다 그물코에 끼이거나 서로 긁히기 때문에 몸에 상처가 많이 납니다. 그래서 목포의 유명한 먹갈치도 그물 조업으로 상처가 많이 나고 검게 된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조업 방식이 맛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습니다. 갈치 맛은 잡힌 해역(수온, 먹잇감)과 종류, 그리고 육동인지 선동인지 등의 냉동 시기, 보관 상태 등 복합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리나라로 수입되는 세네갈산 갈치는 대부분 주낙이나 채낚기로 낚은 것입니다. 반면, 파키스탄은 그물 조업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보이지만, 채낚기와 그물 조업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는 확실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상인의 말에 의하면 파키스탄산 갈치는 살이 뻣뻣하고 맛이 떨어진다며 제게 귀띔을 해주었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두 원산지의 갈치를 사 왔습니다.
자갈치 시장에서 집으로 배송된 수입산 갈치입니다. 구입할 당시에는 얼어있었는데 물건이 도착할 즈음에는 얼음팩이 들어있어도 어느 정도 녹은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해동된 갈치로 원산지를 구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세네갈산 갈치와 파키스탄 갈치를 구워봅니다. 맛의 정확한 차이를 위해 같은 부위로 구웠습니다.
이렇게 구워보니 껍질에서 색 차이가 조금 나는군요.
세네갈산 갈치를 굽자 먹갈치 마냥 거무튀튀합니다.
파키스탄산 갈치는 겉보기에는 매우 양호한 상태로 구워졌습니다. 이 정도 빛깔이면 먹음직스럽죠.
사람 이처럼 생긴 뼈는 파키스탄산에서만 나왔으며, 세네갈산 갈치에서 뼈가 나오지 않은 이유는 씨알이 작아서이거나 혹은 개체 간의 차이 정도로 보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맛' 차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정말 상인 말대로 파키스탄산 갈치는 맛이 없는지를 이번 테스트의 한 단면만으로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이번에 구입한 갈치로 판단해 보면 세네갈산 갈치의 완벽한 우세로 끝났습니다. 겉보기에는 파키스탄산 갈치가 먹음직스럽게 구워졌지만, 살은 상인 말대로 뻣뻣했으며 기름기가 부족해 고소한 맛도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비린내가 나서 먹다 남기게 되었으니, 남은 토막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입니다.
갈치 살에 비린내가 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선도가 나빠서이거나 혹은 산란기 때 어획된 갈치일 수 있지만, 브라질이나 칠레산 갈치처럼 처음부터 맛이 없는 이유는 같은 종이라도 서식 해역에 따른 수온과 먹잇감 때문이라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세네갈과 파키스탄 갈치는 같은 종류인 남방 갈치지만, 위에 열거한 여러 요인(제철 여부, 어획 시기, 냉동 시기, 보관 상태, 서식 해역 등)에 의해 맛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맛이 떨어지는 파키스탄산 갈치가 세네갈산 갈치보다 더 저렴하지는 않습니다. 자갈치 시장에서는 두 갈치가 '수입산'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취급되고 있었으며, 가격도 같습니다. 또한, 제게 갈치를 판 상인은 애초에 세네갈과 파키스탄 갈치를 섞어서 매대에 올려놨다가 판 것이므로 '두 원산지를 섞어 한 원산지로 파는 행위'가 충분히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수입산 갈치를 주로 사 먹는 주부들을 위한 내용입니다. 국산 갈치가 맛있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요즘처럼 주머니 사정이 얄팍할 때는 마냥 국산 생물 갈치만을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럴 때 차선책으로 수입산 갈치를 선택하게 되지만, 수입산 갈치도 다 같은 수입산 갈치가 아니라는 사실. 이 글을 통해 각인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곧 있으면 UAE(아랍 에미리트)산 갈치가 생물 상태로 대형 마트에 깔리게 됩니다. 아랍 에미리트산 갈치는 파키스탄산 갈치가 잡히는 조업 구역과 매우 가깝습니다. 다만, 차이라 한다면, 항구에서 공항까지 거리가 짧아 어획된 지 36시간 이내에 생물 상태로 항공 운송과 판매까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조업 방식도 낚싯바늘로 잡아들이기 때문에 얼핏 보아선 국산 은갈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류가 남방 갈치이므로 눈과 지느러미가 연노랑을 띤다는 것이 차이입니다. 이 차이를 소비자들이 모르면, 국내산으로 둔갑할 우려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러한 갈치 이야기를 통해 기존에 몰랐던 갈치에 대해 알고, 좋은 갈치를 고를 수 있는 안목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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