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회와 선어회의 차이, 제대로 알고 드시나요?


 

 

과거에는 소비자의 불신이 수조 확인으로 이어지곤 했다.

 

무더웠던 어느 날, 조용하던 횟집에서 한바탕 승강이가 벌어집니다.

도미회를 주문한 손님은 접시를 받자마자 횟집 사장을 부릅니다.

 

손님 : 이거 도미회 맞아요?

사장 : 네. 맞는데 무슨 일 때문이신지

손님 : 좀 전에 도미회를 주문하고 지켜봤는데 수조에서 도미 잡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그래요.

사장 : 아 이건 손님이 오기 전에 미리 잡아 놓은 겁니다.

손님 : 미리 잡아 놓았다니 그게 말이 돼요? 아니 수조에는 멀쩡한 도미들이 살아 움직이는데 언제 잡은 건지도 모를 도미를 내가

         어떻게 믿고 먹겠어요.

사장 : 손님, 그게 아니고 저희 업장은 영업 오픈 전에 미리 잡아서 숙성해 놓습니다. 그래야 맛이 더..

손님 :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이 이것이 언제 잡은 건지, 손님이 먹다 남긴 건지 그걸 어떻게 믿고 먹냐고요.

         수조에 산 도미가 많은데 그걸 굳이 미리 잡아 놓는 것도 이상하고. 내가 이런 일이 있을까 봐 주문 후에 쭉 지켜봤어요.

         도미를 시켰으면 보통은 뜰채를 들고 수조로 가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고, 이게 주방에서 나온 거라면 손님이 어떻게

         믿고 먹겠습니까?

사장 : .......

 

옆에서 지켜본 나는 답답한 마음에 한 수 거두려 했지만, 오지랖인 것 같아 관뒀습니다.

나는 손님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믿지 못하겠으면 뭣 하러 이집을 이용하려 했을까? 

주방에 불신이 가득한데 굳이 도미를 잡는지 안 잡는지 노심초사 지켜보면서까지 이용해야 했을까?

사람들은 횟집과 일식집을 이용할 때 전적으로 평판을 따집니다. 평판은 곧 그 집의 신뢰도나 다름없습니다.

신뢰도는 주방에서 나옵니다. 수조를 통한 전시효과도 중요하지만, 나오는 음식의 품질, 신선도, 그리고 요즘에는 인터넷과 SNS를

통한 입소문도 크게 좌우합니다. 이런 점에서 활어회냐 선어회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활어회 VS 선어회에 대한 논쟁이 붙은 적이 있습니다.

활어회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선어회에 대한 불신이 오늘날 '맛없는 활어회'를 비싼 값에 먹게 되는 주요 원인이라면서 거기에는

한국인의 비틀린 소비 심리도 한몫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소비자가 직접 횟감을 고르고 회 뜨는 것을 지켜보지 않으면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혹여 다른 사람이 먹다 남은 회를 섞지는 않을까? 회를 바꿔치기하는 것은 아닐까?

과연 이것이 내가 고른 횟감이 맞을까? 하는 불안과 불신이 생선회 문화 전반에 싹트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생선회 문화로 자리매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독특한 생선회 문화는 다름 아닌 '활어회 문화'입니다. 활어회를 지향하는 소비패턴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합니다.

간혹 일본에서도 수조를 설치한 식당이 있으나 일반적인 경우는 아닙니다. 얼마 전, 미국이 위생적인 이유를 들어 아예 활어회 판매를

중지시킨 것도 그렇고 일본은 물론, 북미권, 유럽, 동남아 그 어디에서도 수조를 비치하고 활어를 파는 곳이 드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반드시 수조를 설치해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 소비자의 불안과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수조는 유일의

신뢰 장치이며, 그러려면 전국의 고속도로에 수많은 활어 차들이 질주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드는 유지비는 실로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수조 설치비, 유지비, 단백질 스키머나 수질 정화기에 드는 비용하며, 활어를

실어 나르는 운송비까지, 이 모든 비용이 활어회에 더해지면서 결국은 소비자가 부담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긴 시간 동안 운송돼 맥이 빠진 활어가 맛이 있으리란 보장도 없습니다. 

식감만 있고 맛은 실종돼버린 활어회를 우리 국민은 비싼 돈을 줘가면서 먹어야 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

황교익 선생의 취지인데 논란은 엉뚱하게도 활어회 VS 선어회의 공방으로 가면서 취향을 저격당한 일부 네티즌들이 반감을 표했죠.

 

그렇다면 우리가 선어회를 위주로 소비하게 될 경우 가격은 활어회보다 낮아질까요?

수조가 사라지고 활어 차에 의한 운송비가 줄면 당연히 선어회 가격이 낮아져야 마땅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변에 선어회를 전문으로 파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어떠신가요? 가격이 활어회보다 확연히 저렴하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오히려 활어회보다 비싸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선어회에 대한 개념입니다.

사람들은 선어회를 숙성회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알고 보면 선어회는 숙성회와는 전혀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됩니다.

적잖은 신문 기자와 일부 음식 관련 칼럼니스트들이 이 부분에 대해 간과하고, 또 그것을 읽는 독자들도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기에

오늘은 숙성회와 선어회의 개념에 대해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활 방어회

 

숙성 방어회

 

숙성회를 위해 산 부시리를 망치로 때려 기절시키는 장면

 

우선 활어회는 말 그대로 산 생선을 잡자마자 썰어서 손님상에 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건 어렵지 않죠.

숙성회는 활어를 잡아서 1~2도의 저온에 몇 시간이고 숙성한 다음 썰어낸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활어를 잡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제 블로그를 탐독해 온 분들이 알만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활어회와 숙성회의 기준은 어디에 둬야 할까요?

 

이 부분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사후경직에 따른 화학적 변화를 설명해야 하는데 이 내용은 꽤 복잡하니 여기서는 간단히 쓰겠습니다.

일단, 산 고기를 즉살하면 수 분 동안 신경이 살아있기 때문에 근육이 꿈틀거립니다.

썰어보면 의외로 단단하지 않고 물컹하며, 씹어보면 찹쌀떡을 먹는 듯 다소 질겅거리는 식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후 극 초반의 횟감을 두껍게 썰었다간 질겨서 먹기 힘든 상태가 되므로 활어회는 얇게 써는 것이 일식에서는 론입니다.

 

그러다가 사후 1~2시간이 경과되면 ATP 분해에 따른 이노신산(IMP)이 증가하게 됩니다.

이노신산은 생선에서 얻을 수 있는 감칠맛 성분으로 숙성함에 따라 계속해서 늘어나 감칠맛을 상승시키다가도 약 24시간 정도

경과되면 최고점을 찍고 소폭 하락한 상태에서 쭉 유지되는 성질을 가집니다.

그래서 저는 활어회와 숙성회를 가르는 기준을 '사후경직'과 '이노신산'의 증가가 시작되는 1~2시간 내외로 보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넘기면 그때부터는 숙성이 시작된 것이니 활어회라 보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숙성회와 선어회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선어 횟감으로 경매에 부쳐진 삼치

 

앞서 저는 숙성회의 전제를 '활어를 즉살해 저온에 보관하는 것'으로 규정했습니다만, 선어회는 태생부터 다릅니다. 

마트나 재래시장의 어물전에 진열된 생선 역시 '선어'입니다. 선어는 죽은 고기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죽었다고 해서 '싱싱하지 않다.'라고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반찬감으로 사용하기에는 충분히 싱싱합니다.

다만, 배에서 잡혀 경매를 치르고 소매상으로 오기까지는 최소 36시간이 지난 것이므로 횟감으로 사용이 적절치 않은 것뿐이죠.

 

선어를 횟감으로 사용하려면 잡힌 지 24시간이 넘지 말아야 합니다.

원래는 48시간까지 두어도 상관없지만, 우리나라는 선어회란 개념이나 인지도가 낮다 보니 잡자마자 피와 내장을 빼고 얼음에

쟁여두는 작업을 어부나 상인들이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피라도 깔끔히 뺀 선어라면 다행이지만, 그마저 하지 않은 채 선어로

유통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잡힌 지 최대 24시간을 넘기지 않은 것을 선어 횟감으로 보고 있으며, 그 시간이

단축될수록 더 싱싱한 횟감으로 보고 있습니다.

 

선어는 이미 죽은 고기이기 때문에 시간이 곧 생명입니다.

일정 시간을 넘어서면 횟감으로 사용하기가 어려워지므로 도심지의 선어회 전문점은 산지로부터 신속하게 물건을 공수받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여기에 드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무엇보다도 선어횟감이 다른 일반 활어보다 특별한 어종일 경우가 많고 무게도 많이

나가는 것을 주로 공수하기 때문에 특별히 수조를 설치하지 않았다고 해서 가격이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선어 횟감도 얼음에 재어 놓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는 숙성이 진행됩니다. 업장에서 해체된 이후에도 손님상에 내기까지는

저온에 보관합니다. 그런 이유로 "선어회는 곧 숙성회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 둘의 태생적 차이는 분명히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알아본 선어회의 개념을 정리하자면, 활어를 손질해 저온에 보관하면 숙성회가 될 수 있습니다.

선어 역시 운송과 보관에 의해 숙성이 진행되므로 결과적으로는 숙성회가 됩니다. 그러나 활어를 숙성한 것과 선어를 숙성한 것은

산 고기냐 죽은 고기냐의 엄연한 차이가 있으므로 이 둘을 동일시하는 건 무리입니다.

다만, 글을 쓸 때 편의상 숙성회(선어회)식으로 병행 표기할 수는 있습니다.

 

선어회로 쓰이는 횟감은 주로 삼치, 민어, 덕자(대형 병어), 방어 정도이며, 부산 일부 지역에서는 일 년에 몇 마리 잡히지 않는 돗돔도

경매를 통해 선어 횟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굳이 활어회를 놔두고 선어회를 사용하는 이유는 해당 어류의 특성상 '활어 공수'

어렵기 때문이며, 자연산 대방어의 경우는 부피가 크고 환경 적응도에 민감해 수조에 살려 오기 어려운 것도 이유입니다

삼치와 병어는 잡자마자 금방 죽어버려 활어 유통이 어렵습니다. 민어는 일부 활어 상태로 유통되기는 하나 소수이고 값도 비쌉니다.

우리가 수산시장이나 일식집에서 사 먹는 연어회도 알고 보면 선어회입니다. 주로 생연어회는 노르웨이에서 직송한 것으로 이미

현장에서 피와 내장이 제거된 상태에서 운송된 것이므로 선어회의 개념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일반적으로 초밥집과 일식집에는 수조를 밖에다 놓지 않는다. 과연 불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혹자는 "선어회 맛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횟집에 대한 신용도 때문에 선어회를 잘 찾지 않는다."고 합니다.

비슷하게 생긴 횟감으로 교묘하게 바꿔치기하거나 선도를 눈가림하는 등 일부 상인의 소비자 기만과 상술 때문에라도 소비자는

선어회를 믿지 못하는 것이라며 꼬집었습니다. 

 

그런데 혹자가 말한 선어회란 대목이 과연 선어회를 제대로 인식한 말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건 누가 먹다 남은 재고품이지 선어회가 아닙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주변에 '선어회'를 내걸고 장사하는 횟집이 얼마나 있습니까?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선어회는 여수나 통영 등 해안가 지방 정도는 나가야 볼 수 있고, 도심지에서는 '선어회 전문점'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장사하는 곳이

소수 있을 뿐입니다. 그 외에는 전부 활어 횟집이거나 일식집입니다.

 

그 일식집에서도 일부 선어회를 취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산 고기를 잡아다 숙성시킨 '숙성회'를 팝니다.

초밥집과 일식집에는 수조가 없으니 선어를 취급한다는 말도 사실이 아닙니다. 수조를 전시품으로 사용하지 않을 뿐, 이들 업장은

영업 개시 몇 시간 전에 활어를 잡아다 미리 숙성을 시켜놔야 하기 때문에 주방이든 뒤뜰이든 수조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전시용으로는 사용하지 않으므로 수조 위생과 관리 면에서는 일반 횟집보다 열악할 수 있습니다. 

 

그 외 '선어회 전문점'이라는 간판과 메뉴를 내건 횟집은 수조가 없어도 오히려 전문점이라는 인식이 있어 손님의 신뢰를 쌓습니다.

단골 주당들이 모이거나 알만한 미식가들이 이용하는 그들만의 아지트이기도 합니다. 인터넷과 SNS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맛집으로

명성을 쌓아왔으니 선어회를 못 미더워서 우리 국민이 찾지 않는다는 말은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시중에 팔고 있는 초밥이며 일식집 생선회는 대부분 숙성회로 만듭니다.

단순히 소비자의 불신 탓을 수조 설치의 여부로 가리겠다면, 어째서 초밥집과 일식집에는 수조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이

싹트지 않는 걸까요? 그 이유는 '믿음이 가기 때문'입니다. 초밥 전문점과 일식집은 외관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함께 좋은 재료를

사용할 것이라는 기대치가 있습니다. 반면, 수산시장이나 포구의 좌판은 그렇지 못합니다. 특성상 위생의 사각지대에 놓였기 때문에

수조가 없으면 믿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특성적 차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선어회는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에서 우리 마음

속에 모순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활어회와 숙성회를 한 곳에 두고 시민들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를 시켰더니 대다수가 숙성회에 손을 들어준 것도 모순입니다.

이 모순과 불신이 있었던 이유는 상인의 상술도 한몫했지만, 앞서 횟집에서 승강이를 벌였던 손님처럼 무지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활어회, 숙성회, 선어회에 대해 잘 몰랐고 그래서 불신의 싹을 틔웠다면, 앞으로 잘 알고 먹으면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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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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