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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잡은 벵에돔, 생선회 도시락으로 선물하기
낚시로 잡은 고기를 지인들과 나눠 먹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달콤합니다. 제가 사는 지역이 서울이다 보니 주변 지인들은 벵에돔을 잘 모릅니다. 알고 있어도 "제주도에서나 맛볼 수 있다던 바로 그 생선회", 혹은 "제 블로그에서나 보았던 그 벵에돔"이란 환상이 있어 맛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하루는 그런 분들에게 회 맛을 보여주고 싶어 잡아온 벵에돔으로 열심히 회를 칩니다.
하루 중 가장 피곤한 시간인 자정. 제게 있어 자정은 낚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생선을 다듬고 장비를 정비하는 매우 귀찮은 시간이지만, 이날 만큼은 피곤함을 무릅쓰고라서도 선도가 가기 전에 빨리 떠서 저온 숙성해 두어야 했습니다. 이 분들이 생전 처음 먹어보는 벵에돔회를 어떻게 느끼고 좋아할 지를 상상하면서 말이지요.
회를 뜨고 남은 서덜은 탕감으로 비닐 포장해 이 역시 선물용으로 준비해 놓습니다.
이렇게 포를 뜬 생선 껍질은 살균처리가 안 된 상태이기 때문에 살에 닿지 않도록 저렇게 겹쳐 놓습니다. 살은 살끼리 겹치는 것이죠. 이는 회를 뜰 때 기본적인 사항입니다.
키친타월로 횟감을 말아 놓습니다. 이렇게 해야 뽀송뽀송하고 맛있는 생선회가 되겠지요. ^^ 이것을 밀폐용기에 담고 뚜껑을 꾹 닫은 뒤, 소고기 숙성으로 맞춘 김치냉장고에 넣어 둡니다. 작업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이제야 한숨 돌리며 잠자리에 듭니다.
다음 날 오후, 지인들에게 생선회 도시락을 돌리기 위해 칼을 꺼내 들었습니다. 숙성이 잘 된 벵에돔을 꺼내 토치 작업부터 합니다. 이렇게 불에 그슬려 껍질을 익히는 이유는 껍질에 많은 영양소와 더불어 지방의 고소한 맛을 살리기 위함이겠지요. 열에 녹아 활성화된 지방은 씹을 때마다 고소함을 주는 동시에 은은한 불맛도 안겨다 줍니다. 그래서 저는 벵에돔만큼은 껍질구이 회를 선호합니다.
굽자마자 얼음물에 담가서 꺼낸 뒤 다시 키친타월로 돌돌 말아 물기를 쫙 빼주고, 생선포 가장자리를 비롯해 갈비뼈와 한가운데 지아이(치자이) 가시를 모두 제거합니다. 그리고 포마다 두 줄의 칼집을 내면, 위 사진처럼 됩니다. 이 상태에서 칼을 세워 썰기 하면 일식집에서 많이 본 모양이 되겠죠. ^^
이날은 오랜만에 무채 칼을 꺼내 들었습니다. 식구들이 먹을 회와 몇 인분의 도시락까지 양이 꽤 되기 때문에 이날 무 한 개를 다 썼습니다. 하나는 껍질구이 회, 다른 하나는 껍질을 벗긴 일반적인 회로 구색을 맞춘 도시락을 몇 개 만드는데 도시락이 지인들에게 전달되려면, 이때부터 최소 한 시간은 걸리기 때문에 선도 유지를 위해 무채는 반드시 까는 것이 좋고, 밀봉해서 받으러 올 때까지 냉장고에 넣어 둡니다. 이케시메(신경 죽이기)로 즉살하고 피를 말끔히 빼서 온 것이기에 수 시간 숙성했음에도 탄력은 여전히 남아 있군요. 포 뜰 때만 해도 근육은 완전히 흰색이었는데 긴 시간 동안 숙성해 색은 꽤 붉어졌지만, 먹는데 아무런 문제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평소 애용하는 고추냉이를 올리고 도시락을 밀봉해 비닐 포장합니다. 그 옆에는 저만의 비법이 담긴 숙성 쌈장과 생선회 전용 간장으로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한 세트를 여러 개 만들어 지인들께 나눠주고, 아내의 아파트 옆 동 친구에게도 주고, 동생 체면도 살릴 겸 동생의 은사에게도 싸서 보냈습니다. 특별한 반응을 바라고 만든 도시락은 아닌데 돌아오는 반응 앞에는 "이말 꼭 전해달라."는 신신당부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대부분 벵에돔이란 생선회를 처음 접하다 보니 이런 형태의 생선회가 신기하면서도 독특하고 끌리는 맛 때문에 너무 맛있게 먹었다는 반응입니다. 이런 반응이라면 하루 몇십 개라도 도시락을 싸서 드리고 싶은데 말이죠. 아쉽지만 이제는 제 수중에 고기가 남아있질 않군요. ^^;
이렇듯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눠 먹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좋은 조과와 비례해 부쩍 사기가 높아진 제 열성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지난 2월, 6박 7일 대마도 출조에서 거둔 조과인데요. 처음 3박 4일간 잡은 것은 다른 일행에게 주었기에 정확히 말하자면, 3박 4일 동안 상원아빠님과 둘이서 잡은 것을 손질해 포장한 것입니다. 잔씨알도 많이 낚여서 작은 고기는 전부 방생하고 담은 것이지만, 그래도 적은 양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체감하는 양은 확 달라짐을 이번 계기로 새삼 느꼈습니다. 평소 자잘한 출조에서는 고기를 챙기지 않아 집 냉동실이 모처럼 빈 상태였습니다. 어머니와 딸내미가 생선을 워낙 좋아해 반찬감도 마련해야 하고, 모처럼 처형 식구들도 불러 회파티를 할 생각에 제 딴에는 넉넉히 챙긴 줄 알았는데 후다닥 도시락을 만들어 보내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일곱 마리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
그리고 제게 남은 것은 무채 칼 쓰다가 밴 상처. 피도 상처 모양처럼 겹겹이 흘러내리는 이것은 영광의 상처도 아니고 뭐도 아니지만, 지인들과 농가 먹으려다 얻은 나눔의 상처로 일축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회 치는 것을 매우 귀찮아했지만, 이런 나눔의 즐거움도 있으니 다음에는 누구에게 도시락을 선물해야 할지 즐거운 고민 하나 추가하며 낚시하는 기쁨을 얻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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