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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여행 2일 차, 료칸(슈쿠카이후)에서는 점심을 제공하지 않아 인근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로 합니다. 료칸 정문을 나와 왼쪽으로 몇 미터만 걸어 나오면 '카프리'라는 레스토랑 하나가 보이는데 유동인구가 적은 한적한 국도변이라 료칸 손님에 의한 매출이 상당 부분 차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관광객만으로 돌아가는 식당이라 속단하기에는 싸구려 느낌이 나지 않는 간판하며, 단아한 화분에서 제법 운치가 느껴집니다.
입구로 들어서자 몇 가지 액세서리로 자그마한 갤러리를 만들어 놓았고.
반지하인 내부는 다소 조잡해 보입니다. 주방으로 통하는 홀과 카운터를 지나치면
벽난로와 그랜드 피아노가
약간 그리스풍의 레스토랑 같기도 하고
통유리 너머로 바다가 보입니다. 담장과 테트라포드로 가로막힌 풍경이 조금은 아쉽군요.
숙소에서 낮잠을 실컷 자고 일어나니 오후 3시. 끼니를 건너뛰기에는 허기질 것 같아 간단히라도 늦은 점심을 들기로 합니다.
메뉴는 이게 전부지만, 일본어를 모르는 손님이라면 꽤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포커스는 피자와 파스타인데 뱅어나 문어를 사용한 음식들이 특색있어 보입니다. 여기서는 문어 피자와 뱅어 파스타를 주문해 봅니다.
콜라를 주문하자 호기심을 보이는 딸에게 한 모금 줬더니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콜라의 톡 쏘는 맛에 당황. ㅎㅎ
문어 피자(1,290엔)
도우는 얇고 쫀득한데 바싹한 느낌은 덜 하고, 문어와의 콤비가 과연 어울릴까? 하는 호기심에서 주문한 거였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립니다. 게다가 이 문어가 질기지 않고 야들야들하게 씹히면서 끝에 단맛이 느껴질 정도로 신선해 국내산(일본에서 국내산은 일본산) 생문어를 사용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근방에는 걸출한 문어 산지(히마카지마)가 있어 신선한 문어를 공수해 오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만약에 이것이 수입산 냉동 문어였다면, 셰프의 요리 내공은 상당한 수준일 것입니다.
문어 피자에는 할라피뇨 소스가 제공.
녹색 방울을 조금 떨어트려 먹어보니 이것도 별미입니다. 피자에 문어를 토핑하겠다는 발상도 특이하지만, 잘 삶은 문어의 야들야들한 식감과 씹으면 씹을수록 느껴지는 감칠맛이 조금 허전할 수 있는 피자에 확실한 포인트가 되어줍니다.
그나저나 할라피뇨 소스가 생각보다 맵지 않아 어린 딸에게 권해보는데
아무래도 22개월짜리 딸이 소화해낼 맛은 아닌가 보군요. 그런데도 저런 인상을 하고선 또 달라는 건 뭔지. ㅎㅎ
뱅어 파스타(1,400엔)
올리브유 베이스의 깔끔한 파스타에 바질잎과 뱅어를 가득 올린 특이한 파스타입니다. 이와 비슷한 파스타를 먹어본 적이 없어 어떤 맛인지 예상하기 어려운 가운데 저 뱅어가 정말 뱅어인지부터 살펴보기로 합니다.
여기서는 파스타 앞에 '시라스'란 표현을 붙였는데 원래 시라스란 특정 어류를 지칭하기보다는 멸치, 청어, 은어 따위의 치어를 말합니다. 우리가 밥반찬으로 먹는 뱅어포 또한 '시라스'란 개념에 들겠지요. 사실 우리가 먹는 뱅어포는 뱅어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당진의 어민들은 오래전부터 뱅어라 불렀지만, 실제 뱅어는 고도의 산업화와 강 하구의 오염에 의해 현재는 대부분 멸종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 식탁에 오르는 뱅어포의 99% 이상은 실치포입니다. 여기서 실치는 흰베도라치의 치어를 말합니다. 겨울에 알에서 부화한 실치는 이듬해 봄 수심 얕은 연안으로 몰리는데 이때가 정확히 4월 한 달에서 5월 초순까지라 산지에서 실치회를 맛볼 시기가 대단히 한정적입니다. 분명 뱅어가 없는 지역에는 이 실치가 뱅어를 대신해 행세해 왔기에 처음에는 파스타에 나온 시라스도 실치겠거니 여겼지만..
자세히 보니 이건 정말 뱅어로군요. 뱅어의 일어명은 '시라우오(シラウオ)'. 보통은 오염되지 않은 1급수의 강하구에 서식하는데 일본에는 아직도 이런 뱅어가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나고 있으며, 선도 좋은 생물 뱅어를 군함말이에 얹은 뱅어 초밥이 별미입니다. 사진의 뱅어는 초밥용보다 작고 건어물을 쓴 것이지만,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운 뱅어를 다른 음식도 아닌 파스타로 접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뱅어 외에 인상 깊었던 것은 바질잎입니다. 직접 기른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코끗에 스쳐도 향이 강렬할 만큼의 신선함은 어지간한 레스토랑에서 느끼지 못했습니다. 면은 정확히 알덴테를 구현해 심지가 덜 익어서 씹을 때마다 꼬득거립니다. 올리브유가 베이스인 파스타지만, 페페로치니의 매운 향이나 강렬한 마늘 향이 없어 어린 딸을 위한 선택으로는 탁월했습니다. 문어 피자도 괜찮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파스타에서는 탄탄한 기본기가 느껴질 정도로 인상적입니다.
이날 파스타와 뱅어를 흡입하신 우리 딸. ^^ 평소 멸치볶음을 좋아하니 뱅어도 그리 낯설지 않은 모양입니다.
카프리에서 좀 더 걸어가면 이와 같은 식당 간판이 나옵니다.
사진은 다른 일행이 드신 것으로 올립니다. 일본 가정식 컨셉이지만, 이것저것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정식 정도 돼 보입니다. 가격은 1,500엔이며 사진의 찬과 함께 밥과 장국이 제공되니 근방의 식당을 이용할 분들은 참고하기 바랍니다. 카프리는 슈쿠카이후 료칸 바로 옆에 있습니다. 별다른 기대감 없이 들어간 곳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특색있는 메뉴와 완성도 높은 뱅어 파스타에서 확실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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