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우연한 기회로 접한 다큐에서 일본의 료칸 문화를 알게 되었고, 거기서 본 정찬에 호기심을 가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이세키 요리는 작은 그릇에 다양한 음식이 조금씩 순차적으로 담겨 나오는 일본의 연회용 코스 요리라고 백과사전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화려하게 구성된 정찬식 코스 요리는 료칸의 자존심이자 가치이기 때문에 료칸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합니다. 저 역시 이 부분에 적잖은 기대를 품고 왔지만, 단체 손님으로 오게 되어서 첫날 저녁은 기대와 달리 입식 연회를 했고, 가이세키 요리는 둘째 날이 돼서야 맛보게 되었습니다.

 

 

료칸에서의 일정은 휴식과 힐링의 무한 반복입니다. 아침을 먹고 나와 산책을 하거나 온천욕을 즐기고 중간에 낮잠이 들어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도 딱히 정해진 일정이 없어 또다시 주변을 산책하는데 이번에는 가보지 못한 길을 걷기로 합니다. 바닷가를 구경하는데 한쪽에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 운치는 덜합니다. 료칸 건물 뒤쪽으로 난 작은 골목길이 눈에 띄길래 쭉 돌아봅니다. 

 

 

기억이 나는 장면은 근처 리조트의 잔디밭에서 바비큐 파티를 벌이는 풍경과 작은 해변 그리고 낡아서 이제는 장식용이 돼버린 버스 정도.

 

 

걸음마 경력이 이제 겨우 8개월 차인 딸내미. 아직은 걷다가 안기기를 반복합니다. 

 

 

이날도 전날처럼 사케 타임이 있어 가벼운 안주와 사케 몇 잔을 마시자 어느새 식사 시간. 연회장에 들어서는데 대부분 만석입니다. 이때는 동생이 몸담은 여행사의 한일 교류전 및 세미나가 진행 중이어서 이런 식으로 식사가 진행됩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인들의 시간관념은 신기하리라 만큼 똑 부러집니다.

 

식사 시간인 6시 정시가 되면, 가장 먼저 일본인 손님들이 착석하고 5~10분이 지나서야 한국인 손님이 들어와 빈자리를 메꾸는 식입니다. 료칸을 나와 버스에 탈 때도 약속된 시간이 되면, 일본인들이 가장 먼저 와서 앉아 있고 한국인 손님은 언제나 5~10분가량 늦습니다. 조금 삐딱하게 보면, 시간에 무슨 강박관념이라도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비지니스가 아닌 단순한 식사 시간이나 집결 시간에도 칼 같이 지키는 모습에서 약간의 융통성도 허락지 않은 철저한 시간관념이 엿보입니다.

 

 

우리 가족은 딱 5분 늦게 들어왔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어 구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동생과 다른 지인들과도 뿔뿔이 흩어지고. ㅎㅎ

 

 

일전에 여행 잡지와 다큐를 통해 료칸의 여러 가이세키 요리를 간접적으로나마 접했기에 비교할 만한 기준은 세워져 있었습니다. 요새는 워낙 가이세키 요리로 정평 난 곳이 많다 보니 그런 점에서 이곳(슈쿠카이후) 가이세키 요리의 첫인상은 매우 수수한 편입니다.

 

 

어쨌든 처음으로 시선이 간 음식은 생선회.

 

 

우선은 시원한 생맥주로 목을 축입니다. 일본의 맥주잔은 우리 것보다 훨씬 작습니다. 장단점이 있는데 맥주의 짜릿한 탄산과 청량감을 그때그때 느끼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작은 잔이 좋습니다. 저도 맥주를 양껏 마시기보다는 처음의 한병을 맛으로 음미하는 타입이라 이렇게 작은 잔에 따라 부어 홀짝홀짝 마시는 편이 낫더군요.

 

 

회는 먹다가 찍은 것인데 구성은 참돔과 잿방어이고 엄지손톱만 한 성게 알도 있습니다. 성게 알은 백반 등의 가공 처리가 되지 않은 것이어서 특유의 쓴맛이 없다는 점이 좋았고, 참돔회는 선어를 가져와 숙성했음에도 쫄깃한 식감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얇게 썰어(우스쯔쿠리라 불리는 회 썰기의 한 방식) 차진 식감을 극대화한 것인데 씹을 때 마치 찹쌀떡을 씹는 듯한 쫀득함이 느껴지니 선처리(항에서 처리하는 피빼기의 시점과 각종 시메 기술 등)가 잘 된 선어회입니다.

 

 

식욕을 돋우기 위한 식전 음식(젠사이)으로 오징어 초회가 나옵니다. 식감이 두툼하니 씹는 맛이 제법이고.

 

 

상큼한 드레싱을 얹은 문어 샐러드만으로도 작은 맥주잔 한두 잔 비우기에는 적당해 보입니다.

 

 

무화과 열매에 참깨 소스 조합은 생소하지만, 무화과의 단맛과 함께 참깨 소스의 고소함과 짠맛이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맛 조합이 독특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참돔(도미)를 간장 조림 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붉돔이로군요. 국내 수산업계와 일식에서는 참돔을 통상적으로 도미라 부르지만, 원래 도미란 말은 '농어목 도미과'에 속한 어류를 통칭하는 말로써 여기에는 대표적으로 감성돔과 참돔, 황돔, 붉돔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접하기 어려운 어종이 붉돔인데 여기서는 작은 붉돔을 간장 조림으로 낸 것입니다. 참돔과 붉돔은 외형상 90% 가까이 일치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아가미뚜껑의 테가 붉고, 제 1 등지느러미의 두 번째 극조가 유난히 길게 튀어나왔다거나 하는 어류 구분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붉돔을 조림으로 맛본 것은 처음인데 어린 참돔이 그러하듯 살이 물러지는 시점이 아닌, 경직 상태의 싱싱한 붉돔으로 조려내 탄력이 살아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붉돔은 참돔보다 어획량이 적고 맛도 덜해 국내에서는 선호하는 어종이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제철인 여름부터 가을에 한해 초밥을 쥐는 등 나름대로 붉돔을 활용하는 조리법이 잘 잡혀 있습니다. 이때는 9월 초순이고 절기상 여름이 끝나지 않았을 시기라 그런지 살에서 고소한 맛이 느껴집니다.

 

 

생선구이의 어종을 묻자 '긴다라(ぎんだら)'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긴다라는 은대구를 말합니다. 메로보다 지방의 풍미는 적어도 담백함은 필적할 만합니다.

 

 

음식이 바뀔 때마다 입가심용으로 먹기 좋은 절임 채소

 

 

일본식 달걀찜(차왕무시)

 

 

생선가스인데 제가 만든 광어가스에 견줄 만합니다. ^^; 속살이 보드랍고 촉촉해 어떤 생선을 사용했는지 궁금하군요.

 

 

이어서 소바가 나옵니다.

 

 

동생은 일본인 손님들을 상대로 비지니스 중

 

 

아내는 입이 짧은 딸내미 식사 거들기 바쁩니다.

 

 

다정한 모녀. ^^ 그나저나 딸의 머리 스타일과 옷이 은근히 잘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식사는 미니 장어 덮밥이 나옵니다.

 

 

맑은장국(스이모노)의 국물 맛이 아주 깔끔합니다.

 

 

후식은 과일로 마무리. 여기까지 먹으니 배도 충분히 부르고 전반적으로 다 맛있습니다. 다만, 코스 요리의 구성으로 다른 료칸에서 자주 선보이는 와규 스끼야끼나 샤브샤브 등의 육고기 요리가 없었던 점. 디스플레이의 미적 구성이 아쉽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잡지나 다큐에서나 볼 법한 일류 료칸과 비교했을 때이며, 가격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평가일 뿐입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은 상대적이기 마련이니까요. 료칸 여행을 처음하는 이들에게는 이 정도의 가이세키 요리도 수준급이고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식사 이후에는 가라오케를 두 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위스키와 사케는 무제한 이용 가능. 간단한 안주도 있으니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좋을 듯합니다.

 

 

딸내미가 접하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있는 가라오케 문화지만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잠시 있다가 숙소에서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잠을 청하기로 합니다. 다음 날은 료칸을 떠나 문어의 섬 히마카지마와 나고야시로 가는 일정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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