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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여행 2일 차 아침입니다. 료칸 내부를 둘러보고 가족 온천욕을 즐긴 후 사케 몇 잔을 마시고 저녁을 먹은 것이 전부인 하루를 보내자 똑같은 일정의 하루가 밝았습니다. 어제와 다른 점이라면, Full-Day로 쉴 수 있다는 것. 항공편 때문에 꼭두새벽부터 잠을 설쳐야 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일정이 정말 러프합니다. 따듯한 자연 채광에 눈이 떠지면서 들어온 장면은 어린 딸의 재롱.
평소였으면 시계부터 봤을 텐데 지금이 몇 시인지 몰라도 상관없는 이 상황을 한동안 즐기고자 미닫이문부터 열어봅니다. 정면에는 잔잔한 바다가 눈에 들어오고 바다를 향해 기대어 앉아 아직 덜 깬 잠을 날려버리는 여유로운 시간이 지금도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텁텁한 입안을 녹차로 달래며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바다만 바라봅니다. 지금쯤이면, 한창 출근길이 이어질 러시아워겠지요. 뒤늦게 시계를 보자 이제 막 8시가 되었습니다.
간단히 세수만 하고 내려가자 아침 식사가 한창입니다. 개인 손님들에겐 식사를 방으로 가져다주는지 몰라도 우리는 단체로 와서 함께 식사하나 봅니다.
간혹 식당에서 1인 반상을 접하긴 했지만, 이렇게 1인 반상만 늘어진 분위기에서의 식사는 처음입니다.
22개월인 어린 딸은 따로 숙박비가 들어가지 않았기에 엄마 무릎에 앉았습니다. 밥이나 장국은 얼마든지 더 주니 식사에 지장은 없어요. 배가 작은 모녀라 양이 모자라진 않았습니다. 대식가라면 밥 두 공기를 비워도 감질맛 날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아침밥이라는 사실로 적당히 위안 삼아야겠지요. ㅎㅎ
그리고 제 앞에 놓인 식사.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함인지 혹은 소꿉놀이하는 느낌이랄지. 우리와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밥상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우선 상큼한 드레싱을 끼얹은 샐러드로 입맛을 돋웁니다.
반상 가운데는 밑반찬이 놓여 있습니다.
어제 저녁 식사에 나온 달걀말이. 가쯔오부시 육수가 섞인 달큰한 맛이 우리 같은 한국인들에겐 물릴 수 있지만, 부드러움 하나만큼은 좋습니다.
다꾸앙, 무 짠지, 우메보시는 아침 식사마다 빠지지 않는 찬입니다.
김 절임과 뱅어인데 이곳은 뱅어를 활용한 요리(초밥, 파스타)가 발달한 만큼, 뱅어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전갱이구이입니다. 이렇게 뒤집힌 채로 나온 생선구이는 꼬리지느러미와 척추뼈를 함께 잡아 들어 올리면서 뼈와 살이 쉽게 분리됩니다.
개인적으로 생선구이는 등을 위로 보이게 내는 것이 젓가락질할 때 바싹한 껍질과 살을 함께 취하기 좋지만, 어린 전갱이의 껍질은 오히려 질기고 맛이 없어 걷어내고 먹는 편입니다. 보통 전갱이를 요리할 때는 모비늘(꼬리 부근에 있는 수술 자국처럼 생긴 딱딱한 뼈)을 발라내는 것이 정석이지만, 제거하지 않고 그냥 구워낸 것 또한 어린 전갱이의 투박한 껍질보다는 살 위주로 먹으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해 보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껍질 비중이 낮은 생선구이에 한해서는 뒤집힌 형태로 내는 것이 적절해 보이며, 료칸의 조리사는 이러한 부분을 잘 아는 듯합니다.
부들부들한 연두부에 간장을 살짝 끼얹어 먹습니다.
참마에 달걀노른자, 여기에 생고추냉이가 한점 올려졌습니다. 일본의 달걀노른자는 우리의 것보다 진하면서 비린 맛도 덜한 편입니다. 80년대를 기점으로 국내에서 사라져 간 백색 산란계가 일본에선 '하이라인 마리아'란 계량된 품종으로 시장 점유율을 60% 정도 차지한다고 들었습니다. 종종 대마도로 낚시하러 다니면서 느꼈지만, 생달걀로 밥을 비벼 먹어도 비리지 않고, 노른자 맛은 미묘하게 우리 달걀보다 진한 맛인데 이 정도 맛과 품질을 국내에서 접하려면 유정란 등의 특수란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좀 서글픕니다.
김은 두껍고 뻣뻣한 것이 우리 것보다 못하네요. 적어도 이 김에 한해서만 말입니다. 특이한 점은 김에 기본적으로 간장 양념이 발라져 있어서 아이들이 먹기에는 좋아 보입니다.
고슬고슬한 밥에 참마와 달걀 노른자를 끼얹어 후루룩 마시듯 먹으니 훌훌 넘어갑니다. 참마를 자주 접하지 못한 저로서는 그 질감이 흡사 콧물 같았지만, 위장에 그렇게 좋다니 앞으로 참마를 이용한 생선 요리를 만들어볼까도 생각 중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오니 이제 겨우 아홉 시. 발코니에서 시원하게 뻗은 바다를 보고 있자니 아침에는 좀처럼 마시지 않던 맥주가 다 당깁니다. 어젯밤에 마시려고 사둔 거였는데 저녁 식사에서 제공되는 맥주가 무한 제공이라는 사실에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티끌 하나 건드리지 않고 남겨버렸습니다. 사진에 마킹해 둔 것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던 맥주와 안주입니다. 특히, 저 오징어 채와 오징어 땅콩은 너무 짜지 않은 것이 중독성이 강해요. 귀국할 때 한 보따리 사서 지인들에게 나눠주면 좋아할 만합니다.
이러고 앉아 있으니 신선놀음도 이런 신선놀음이 없습니다. ^^;
마침 물때가 간조라 바닥이 훤히 드러나 있습니다. 저쪽에 한 여성 손님이 갯바위로 내려가 바다를 살피는데 물 들어오기 전에 우리도 나가봐야겠습니다.
바다를 구경하고 들어와도 점심때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료칸 여기저기를 구경하던 중, 스위트룸을 발견했습니다. 마침 청소 중인 아주머니가 문을 활짝 열어놓아서 살짝 엿보기로 합니다.
스위트룸의 발코니에는 일반 의자 대신 진동 안마 의자가 있군요. 이곳에서 안마를 받으며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을 상상하자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옥상 층에는 그 유명한 남녀혼탕이 있습니다. 혼탕은 손님이 좀 몰릴 때 남녀 여러 명이 이용해야 혼탕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 그럴 용기가 있을까요? ㅎㅎ
혼탕엔 한 분이 이용 중입니다. 이곳은 상황 봐서 이용해보고(결국, 이용해버렸지만) 후기를 남기겠습니다.
혼탕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만을 뚫고 나가면 태평양이고, 반대편에는 나고야시가 있죠.
이렇게 보고 있자니 뭔가 갑갑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듯합니다. 둘 째날, 료칸에서는 점심을 제공하지 않아서 근방의 레스토랑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편은 그곳에서 맛 본 특이한 음식과 함께 료칸의 가이세키 정식, 남녀혼탕 문화 편으로 이어집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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