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한 계획이나 일정을 짜지 않아도 되는 한가로운 료칸 여행. 그렇게 시작된 나고야의 료칸 시설에는 온천욕이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남녀혼탕이 있을 줄은 현장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남녀혼탕. 혹시 안면도 없는 남녀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온천욕을 즐기는 풍경을 상상했던 것은 아닐까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만, 자세한 사정을 듣고 경험하니 이곳의 남녀혼탕은 가릴 곳은 적당히 가리면서 온천욕을 즐기는 이곳에서는 평범한 관광 자원이자 문화입니다.

 

하지만 혼욕이 낯선 외국인들이 이용하기에는 문화의 갭이 큽니다. 특히, 함께 온 일행(남녀끼리)과 함께 타월 하나로만 몸을 가리고 혼욕을 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죠. 저는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남녀혼탕 문화를 경험할 수 있을지 몰라서 료칸의 체크아웃이 있는 마지막 날 이용해 보기로 합니다. 마침 이용객이 적을 것 같은 이른 아침에 말이죠. ^^

 

 

남녀혼탕은 료칸의 꼭대기 층인 8층에 있습니다. 혼탕이라곤 하나 탈의실은 엄연히 남녀 분리돼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탕은 남자 전용 탕이고 그 뒤로는 탈의실이 있습니다.

 

 

반대편은 여성 전용 탕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빼꼼히 들여다보면 다 보입니다만, 그걸 자세히 들여다보는 이상한 사람은 없습니다. 혼탕에서 그랬다간 변태로 취급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정 가운데인 이곳에서 남녀가 함께 혼욕을 즐깁니다. 저는 아내와 딸, 제 동생과 함께 혼탕을 찾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얼른 이용하고 나올 요량으로 말이죠. 그런데 혼탕 문화를 맛보기라도 보고 싶다면, 소수라도 이용객이 있어야 합니다. 가족끼리는 크게 의미가 없죠. 참 제 동생과 아내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형수 도련님 관계인 데다 동갑내기라서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끄럽다거나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럴 거면 애초에 혼탕을 이용하려 하지도 않았겠지요. 동생은 이곳에서 혼탕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었고, 우리는 처음입니다. 아내는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들어갔는데 대게 이런 류의 복장이나 수영복이면 그 손님은 대부분 한국인입니다. 이렇게 입고 들어가도 실례되는 것은 아니지만, 진정한 혼탕 문화를 경험했다고는 보기 어렵겠지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데 여전히 혼욕이 어색한 타지 관광객은 가벼운 수건 하나만 걸치고 탕에 들어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일본의 남녀혼탕 문화는 해가 갈수록 사라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혼탕에 익숙지 못한 일본의 젊은 세대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니까요. 연령대가 있는 일본인이라도 혼탕을 어색해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본인이라고 모두가 혼탕에 익숙한 것은 아니니까요. 남녀혼탕은 여전히 일부 계층의 문화이면서 호불호가 갈리는 취향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름 축제 기간이면, 료칸을 이용하는 젊은 손님 중 상당수가 혼탕을 경험하고자 이곳에 몰리곤 합니다. 혼탕 하면 나이 지긋이 먹은 노인들이나 이용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관광 수요가 급증하는 성수기에는 20~30대의 젊은 남녀들도 많이 이용한다니 료칸을 이용하실 분들은 시기를 잘 맞춰서(?) 오길 바랍니다. ^^; 

 

 

탈의실을 나서면 사케와 간단한 안주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남녀혼탕에서 내려다본 풍경, 나고야 이세만

 

시원하게 뻥 뚫린 풍경을 바라보며 우메보시 한입에 사케 한 잔 즐기는 것도 이곳 혼탕의 백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 아래 료칸 주변으로는 바닷가 산책길이 있고 콘크리트 방파제가 뻗어있어서 바닷바람을 쐬기 좋습니다. 지금은 만조라 방파제 아래엔 물이 차서 내려갈 수 없지만, 간조가 되면 지형이 드러나면서 바닥을 밟고 물 장난을 칠 수도 있습니다.

 

 

동생과 일본인 손님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른 아침, 손님이 많지 않을 시간대를 찾았는데 예상대로 두 분이 이곳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두 분은 일본 여성이고 연령대는 40대 중후반 정도로 보입니다. 두 분은 타월로 중요 부위를 가린 상태로 입수해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이 탕에 들어가자 몇 분 지나지 않아 일어나더니 여성 전용 칸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함께 있기가 쑥스러웠나 봅니다. 남녀혼탕이라도 입장하는 손님의 차림새는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일본의 남녀혼탕을 대변하는 내용이 아니며, 오로지 이곳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니 다른 지역의 남녀혼탕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염두하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한국인 여성은 아무래도 이런 문화가 익숙지 않아 반바지나 수영복을 입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현지에서는 그것이 눈살 찌푸리거나 크게 실례되는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진정한 혼탕 문화를 경험한다고는 볼 수 없겠지요. 한국인 남성은 대부분 긴 타월을 두르고 입장합니다.

 

반면, 일본인 여성은 긴 타월로 가슴과 중요 부위만 가린 채 입장하기 때문에 뒤돌아설 때는 엉덩이가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인 남성은 작은 타월로 중요 부위만 살짝 가리고 탕에 들어오며, 자릴 잡으면 타월을 옆으로 치워버립니다. 그런데 굴절 때문에 살짝 거뭇거뭇하게만 보일 뿐, 잘 보이지는 않아요. ^^;

 

아내는 딸과 함께 탕에 있다가 일본인 남성이 물속에서 전라를 노출하자 적응 안 된다며 나가버린 상태입니다.(...) 여성의 경우 긴 타월로 주요 신체 부위만 살짝 가린 채 온천욕을 즐기는 식이라 탕에 입장할 때와 자세를 고쳐 잡을 때, 그리고 일어날 때와 뒤돌아설 때는 가슴이며 엉덩이며 가려야 할 신체 부위가 순간적으로 노출됩니다. 그것을 개의치 않는 이들도 있고, 타월로 철저히 가리는 분도 있습니다만, 엉덩이 노출은 대체로 개의치 않아 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긴 타월로 하반신을 두르고 작은 타월로 가슴을 가리고 들어오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가리려고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문화가 신기하기도 해 곁눈질로 훔쳐볼 수는 있어도, 남의 신체 부위를 집요하게 보려는 사람은 없을뿐더러, 여기서 그러면 정말 이상한 사람 취급받으니 서로가 실례되지 않게 조심조심하는 분위기입니다. 처음 경험하는 분들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 점이 수두룩하겠지만, 이 역시 이곳의 문화이니 존중해야겠죠. 그나저나 처음 경험한 남녀혼탕에서 일본인 남성 한 분과, 여성 두 분 그것도 중장년층과의 경험이라니..

 

혼탕을 하고 나오기는 했는데 뭐랄까요. 일본의 남녀혼탕 문화를 제대로 체험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처음에는 타월 하나만 두르고 탕에 들어가 생전 처음 보는 여성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도 어색했는데 이것도 시간이 지나자 살짝 적응이 되려 합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들어가는 혼욕도 아니고, 타월로 가릴 건 가리고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이 정도면 이용객이 많을 때 한 번쯤 경험해 보는 것도 평생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운하게 온천욕을 마치고 아침 식사에 들어갑니다. 어제와는 조금 다른 반찬들이 눈에 띕니다.

 

 

기본은 흰 쌀밥과 장국, 그리고 어린 전갱이구이. 뜻밖에 전갱이 먹을 줄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대부분 한국인 여행객) 작은 전갱이라도 뼈만 잘 바르면 먹을 만한 살이 제법 나옵니다. 우선은 대가리를 찢어내고, 꼬리지느러미를 손으로 잡아서 쭉 들어 올리면 가운데 척추 뼈가 발라집니다. 갈비뼈 부위를 통째로 떼면, 한가운데에 박힌 잔가시(지아이)와 양쪽 가장자리에 있는 잔가시를 젓가락으로 쭉 발라내면 끝. 

 

 

이것은 참마에 연어 알

 

 

통째로 밥에 부어서 대충 비벼 먹으면, 짭조름한 연어 알이 간이 되어 술술 넘어갑니다.

 

 

이것은 간장 소스에 수란

 

 

수란은 두 번째 공깃밥(밥과 장국은 얼마든지 더 줍니다.)에 부어 휘휘 저어 먹습니다.

 

 

반찬으로는 짭조름한 명란.

 

 

부들부들한 달걀찜에 잔파와 곱게 간 생강이 올려졌습니다.

 

 

간 무에 간장 그리고 팽이버섯의 조합인데 소화는 잘되겠지만, 대부분 일본 찬들이 간장간장해 먹다 보면 질릴 수 있습니다. ㅎㅎ

 

 

다꾸앙, 무 짠지, 우메보시

 

 

파인애플과 요거트로 마무리. 아침부터 두 공기를 비우니 속이 든든합니다.

 

 

히마카지마행 여객선

 

나고야 료칸 일정은 2박 3일로 마무리합니다. 남은 하루 일정은 문어의 섬 히마카지마와 나고야 시내 관광 및 미식 여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지 여행사를 운영하시는 한국인 사장님의 권유로 이날 료칸에 온 손님 대부분이 히마카지마로 반나절 투어를 떠납니다. 히마카지마는 맛있는 문어가 나기로 유명한 섬으로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입니다. 현지에서는 일본인 여행자들이 줄 서서 먹을 만큼 인기 있는 횟집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맛보는 코스 요리가 기대됩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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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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