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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알라룸푸르 여행 2일 차. 차이나타운과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둘러 본 우리 가족은 이날 마지막 여정으로 부킷빈탕의 잘란알로 야시장에 들어왔습니다. 입구에 열대과일 파는 노점상이 몇 군데 있는데 언젠간 한 번쯤 맛보고 싶었던 두리안이 보이는군요. 그 맛이 어떨지 궁금했던 것은 순전히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천국의 맛, 누군가에겐 지옥의 맛"
세계에서 태국과 함께 두리안의 최다 생산국인 말레이시안들에게는 일상생활 속 과일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두리안이 생소한 우리에게는 새로운 맛을 즐기기 위한 하나의 도전일 것입니다. 하지만 특유의 냄새로 인해 이곳 사람들조차도 호불호가 갈리고, 호텔과 공공장소에도 반입을 금지하고 있어서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열대과일의 황제 두리안.
두리안은 모양도 유별납니다. 누구는 고슴도치같이 생겼다고 하는데 제 눈에는 왜 자꾸 에이즈 바이러스가 연상되는지 ^^; 어쨌든 수박도 여러 품종이 있듯 두리안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품종별로 취급된다고 합니다. 두리안은 전 세계에 약 30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표적인 품종으로는 차니, 몬통, 무상킹, XO, 파항, 다토 니나, 토화, 그린 뱀부, 마스, 진팽, 술탄, 골든 피닉스 등등.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두리안이 말레이시아와 태국을 중심으로 재배되고 있습니다.
품종에 따라 모양이 미묘하게 다르고, 맛과 향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죠. 고급 품종일수록 지독한 냄새가 덜하며, 값이 싼 품종일수록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리안을 처음 먹는 것인 만큼 상인 아주머니에게 가장 좋은 품종으로 추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른 두리안이 이것인데요. 가격은 우리 돈으로 약 16,000원 정도. 생각보다 비싸다고 하니 이 중에서 가장 좋은 품종이자 가장 비싼 두리안이라고 합니다. (바가지는 아니겠쥬? ㅎㅎ) 보기에는 작아 보여도 어른 4~5명이 먹을 양입니다. 품종을 물어봤어야 했는데 사진 찍는다고 잊었네요.
저의 얕은 지식으로는 모양과 과육 색으로 보아 무상킹으로 지레 짐작해 보지만,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두리안은 세로로 잘라야 저런 형태로 나와 과육이 중간에 잘리지 않고 깔끔히 나옵니다. 다시 이것을 세로로 반으로 가르면 손으로 잡아 빼서 먹기 좋은 상태가 됩니다.
코를 대자 확실히 특유의 냄새가 납니다. 이 냄새의 근원이 어딜까 싶었는데 껍질에서도 나고 과육에서도 나고 전체적으로 다 나는 듯합니다. 두리안은 냄새가 아주 고약하기로 악명이 높은데 처음 접한 이 두리안은 품종이 좋아서인지 신선한 향이 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싫어하는 향이 어떤 부분인지는 이 두리안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때 느꼈던 향은 뭐랄까? 양파 썩은 냄새? 혹은 음식물 쓰레기가 살짝 발효되었을 때 나는 시큼함이 은은히 날 정도인데요. 그 속에서도 달달한 향이 섞여 있습니다. 막상 입에 넣으면 지독한 냄새는 사라지고 천국의 맛이 이어진다는데 과연 그럴지도 궁금하군요.
처음 맛본 두리안은 그야말로 맛의 신세계였다
상인이 비닐장갑을 줍니다. 손이나 옷에 묻으면 그 냄새가 한동안 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손으로 과육을 잡아빼는데 별다른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도 쉽게 뭉개지네요. 입에 넣어보는데 이건 마치 크림치즈 같습니다. 커드터드 크림이라고 해도 될 만큼 입에서 사르르 녹아버리는군요.
확실히 입에 넣으니 냄새가 덜한데 그래도 코로 숨을 내쉴 때는 특유의 향이 납니다. 그 향이 먹을 때마다 진해지는지 일행 중 절반은 손을 놓았고, 우리 딸도 조금 먹는가 싶더니 고개를 돌립니다. 반면에 저와 동생은 거의 다 먹었습니다. 혹자는 두리안을 양파 썩은 냄새로 비유하는데 품종과 상태에 따라 악취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제가 접한 이 두리안만큼은 망고나 잭후르츠 같은 열대성 과일의 껍질에서 나는 동남아 과일 특유의 향이 조금 더 강하다 정도였습니다.
단맛이 강하고 신선한 향도 나는데 먹다 보니 감칠맛도 느껴져(실제로 말레이시아에서는 두리안을 조미료 대용으로 쓰기도 한답니다.) 이런 맛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두리안이 중독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한편으로는 일행의 절반이 먹다가 손을 놓았듯 호불호가 매우 갈리는 과일임에도 분명해 보입니다.
저는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참 먹던 중 일행이 '이거 칼로리 폭탄'이라고 말해 살짝 움찔한 것 빼곤 말이죠. 두리안은 단맛과 열량이 많은 과일입니다. 많이 먹으면 다이어트에 적일 수 있는데 그 점 말고는 우리 몸에 이로운 효능이 더 많다고 합니다.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에 좋고, 엽산이 풍부해 빈혈을 예방하고, 비타민 C가 많고, 칼륨이 많아 건강한 뼈를 유지하고, 혈당을 조절하고, 갑상선에도 좋고 등등. 효능이 워낙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는 어렵지만, 저의 두리안 첫 시식은 제법 괜찮은 경험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단, 먹고 나서 트림 공격 하기 없기)
요즘 생 두리안이 국내로 꽤 수입되나 봅니다. 최근 용달차에 두리안을 가득 싣고 와 아파트 입구에서 팔기도 하던데요. 그것이 상급 품종인지 하급 품종인지는 따져보고 사야 고약한 냄새도 덜할 것으로 보입니다.
두리안을 먹고 나자 배가 살짝 부릅니다. 워낙 먹거리 천국이다 보니 이날 저녁만 두 끼를 먹기로 했는데요. 앞서 파빌리온에서 저녁을 먹었고, 두 번째 저녁도 찜해 둔 곳이 있어서, 이제 겨우 3시간 정도 지난 시점에 온갖 길거리 음식으로 유혹하는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잘란알로의 야시장, 길거리 음식 편으로 넘어갑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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