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제주 공항


산방산, 제주 사계리

11일간의 그리스 여행을 마치고 첫 출조지를 제주도로 정했습니다. 1박 2일로 왔으니 하루는 도보 포인트에서 낚시하고, 남은 하루는 부속섬으로 들어갈 계획입니다. 공항에 도착한 저는 렌터카를 인수받고 사계리 용머리 해안으로 달렸습니다. 어차피 해질 때 한 타임을 보는 낚시라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중간에 밑밥을 개고 아침까지 먹고 느긋하게 도착했는데 물때를 안 보고 온 것이 화근.

현장에 도착하자 만조로 인해 수위가 높다는 이유로 관광객을 통제합니다. 10시부터 낚시하겠다는 제 계획은 틀어졌고, 통제가 풀리는 2시 반까지는 인근 카페에서 시간을 때워야 할 상황.  
  


오후 2시 반이 돼서야 포인트에 진입합니다. 이날 제가 낚시하게 될 무대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용머리 해안입니다. 수많은 갤러리를 등에 지고 낚시하는 기분이 색다르군요. 



낚시 준비를 마쳤습니다. 준비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몰려드는 관광객은 낚시 복장을 한 우리가 신기했는지 연신 사진을 찍고 갑니다. 어떤 분은 얼마나 잡았느냐며 말을 걸어오기도 하고, 다짜고짜 살림통부터 들춰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팔짱 끼고 지켜보는 사람도 있고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니 낚시에 집중이 안 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 와중에 그럴싸한 고기라도 잡게 된다면 주변의 이목을 받으면서 괜스레 으쓱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겠지요. ^^



이번 제주도 낚시는 상원아빠님과 함께 합니다. 채비를 마치고 첫 캐스팅을 하려는데 여고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암벽등반을 하네요?



맨손으로 등반하기에 그리 위험하거나 어려운 지형은 아니지만, 어쨌든 용기는 가상합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바위를 타는지는 모르겠네요. 사람들은 우와~ 저것 봐 하며 구경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바다에 익숙지 않습니다. 바닷물이 어디까지 들어올지 감을 모르죠. 그러다 보니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너울성 파도를 인지하지 못한 채 저렇게 앉아서 해조류나 홍합 따위를 구경하다가 갑작스레 들이닥친 파도에 당하기도 합니다. 좀 전에도 파도가 튀어 올라 아찔한 장면이 연출됐는데 그나마 빨리 물러났기에 바닷물 테러는 피했습니다.



낚시가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안 가던 조류가 썰물이 진행되면서 흐르기 시작합니다. 바로 앞에는 포말까지 치면서 그럴싸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입질은 없는 상황입니다. 대신 지속해서 들어간 밑밥에 잡어 활성도만 부추겼으니 잡어 분리를 철저히 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저 멀리 형제섬이 보입니다. 사계리에서는 최고 명포인트라 포인트 각축전이 치열한 곳입니다. 섬은 크고 넓은데 낚시가 잘 되는 곳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섬 왼쪽으로 떨어진 여가 하나 보이는데 저곳이 그 유명한 넙데기입니다. 사진을 편집하면서 바짝 확대하니 몇 명의 꾼들이 들어온 듯 보입니다.



긴꼬리벵에돔

주변 스케치를 하던 중 원줄을 가져가는 시원한 입질이 들어옵니다. 반가운 긴꼬리벵에돔이네요. 고기에서 느껴지는 온도감은 차가운 편입니다. 입질도 제법 하층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아 활성이 낮아 보입니다. 어쨌든 반가운 첫 고기라 방생하고.



용머리 해안 포인트에서 벵에돔 낚시를 즐기는 꾼들

오후 3시가 넘어가면서 포인트에는 해질 때 한 타임을 노리려는 꾼들이 늘었습니다. 관광객의 반응은 대체로 한 번 보고 지나치는 편이나, 그 와중에 낚시에 관심 있는 분들은 한참 동안 구경하기도 합니다. 이런 낚시를 처음 보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가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구라도 한 마리 잡아 올린다면, 주변 관광객의 이목과 환호성을 한 몸에 받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꼭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는 이상하게 고기가 안 잡힌단 말이지.



제 왼쪽에 보이는 곳은 화순항입니다. 에깅 포인트로 유명하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상원아빠님의 낚싯대가 휘었습니다.



쥐치

씨알이 제법 좋은 쥐치가 올라옵니다. 참 맛있는 녀석이죠.  



이어서 벵에돔까지 낚아내며 주변의 시선을 받았지만, 씨알이 작아 바로 방생합니다. 이럴 땐 뜰채를 댈 만한 고기가 잡혀야 환호성이 터지고 사람들이 모여들 텐데 말이죠. ㅎㅎ



낚싯대를 세우고 잠시 쉬어간다

시간은 정처 없이 흘러갑니다. 잡어가 온 사방에 퍼졌는데 그 종류가 황놀래기(어랭이)라 더욱 신경이 쓰입니다. 이 녀석들을 한곳에 묶어두려면, 발 밑에 꾸준히 뿌려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녀석들을 발밑에 묶어두고 최대한 먼 곳을 공략해야 하는데 이때 밑밥이 날아가다 중간에 흩어지기라도 한다면, 지금까지 했던 잡어 분리가 허사로 돌아갈 수 있으니 품질에도 신경 씁니다.

한 시간, 두 시간 그렇게 잡어 분리를 해 나가면서 해질녘 피크 타임을 맞이하는 것이 저의 계획. 여기서 4짜 벵에돔 한두 마리만 잡아가도 성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저의 계속된 노력에도 입질이 들어올 기미가 없습니다. 이쯤에서 저는 낚싯대를 세우고 무엇이 문제인지 처음부터 다시 접근해보기로 합니다.

지금까지 낚시한 자리가 포인트가 맞는지부터 점검에 들어가는데요. 편광안경을 쓰고 낚시 자리를 살피는데 대부분 모래밭입니다. 포말이 있고 조류 소통이 좋아도 모래밭에서는 원하는 씨알의 벵에돔을 낚기가 쉽지 않겠죠.



그래서 적당한 자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는데 오히려 툭 튀어나온 자리보다는 안쪽으로 살짝 굽어 들어간 이 자리가 여밭이더군요. 자리를 옮겨 낚시를 시작합니다. 발 앞에 밑밥을 5주걱 정도 뿌려주고 반응을 봅니다. 들끓을 정도는 아니지만, 이곳에도 어랭이가 제법 핍니다. 다시 밑밥을 발 앞에 몇 주걱 정도 넣고, 채비는 전방 15m 정도에 안착. 찌 부근에 세 주걱을 연타로 넣고 다시 발 앞에 세 주걱을 준 다음 기다립니다. 잠시 후, 원줄이 슬그머니 펴지더니 찌가 쭉 들어갑니다.   

"왔다!"



30cm급 벵에돔

이날 잡은 고기는 집으로 가져가기 어렵습니다. 적당히 회로 썰어 먹기만 하면 되는데 마침 적당한 씨알이 걸려들었군요. 이 정도면 뒤에서 뭐라도 반응이 오지 않겠냐며 돌아서는데 그 많던 관광객이 다 어디 갔나요? 한두 사람 지켜보는 것 빼곤 휑합니다. 하여간 낚시의 법칙이란..



옆에서 낚시하던 분은 제가 처음에 섰던 자리로 옮겼는데 마침 뭔가를 걸고 파이팅 중입니다. 씨알이 제법 좋아 옆 분이 뜰채 지원을 하는데요. 지나던 관광객이 가던 길을 멈추고 이 장면을 숨죽이며 바라봅니다.  



벵에돔인가 싶었는데 씨알 좋은 독가시치(따치)가 올라옵니다. 벵에돔이든 따치든 그게 뭐가 중요하리오.



어차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다 같은 생선인데 이왕이면 큰 고기가 갑입니다. 



제법 큰 생선이 잡히자 환호성이 터지면서 고기를 구경하려고 모여듭니다. 잠시 후..

제게 전형적인 벵에돔 입질이 들어옵니다. 꾼들이 흔히 말하는 똥벵에 패턴으로 찌가 살짝 가라앉다가 원줄이 슬그머니 펴지는 예민한 입질이죠. 충분히 기다렸다가 챔질하는데 턱~ 하고 걸린 느낌이 최소 4짜. 일단 대를 세우는데 역시 만만한 씨알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파고들 만한 여가 주변에 산재하다 보니 초반부터 기선을 제압하고자 바짝 감았습니다.

거의 다 끌고 왔을 즈음 녀석이 최후의 발악으로 발 앞 갯바위 안쪽으로 파고드는데요. 이때 제 낚싯대가 수면까지 휘어지면서 자세를 낮추게 합니다. 낚싯대가 활처럼 휜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파고들며 저를 들었다 놨다 하는 긴박한 상황. 뒤에서 지켜보던 관광객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저것 봐~ 큰 거 잡았나 봐"란 말이 귓가에 들렸고, 이제는 마무리를 잘해서 뜰채로 올리면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전부 모여들 게 뻔한 상황입니다.

그러면 그 고기를 사람들이 촬영할 수 있도록 내어주고, 저는 뒤로 물러나 이 흐뭇한 장면을 사진에 담아야지 라고 생각을 다 해놨는데.. 막판에 거의 다 올라왔을 때 갑자기 낚싯대가 하늘 위로 솟구칩니다. 순간 귓가에 들린 사람들의 탄성이 아직도 뇌리에 남더군요.

"아...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뒤에서 아쉬움으로 지켜보던 관광객들과는 왠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나. 그저 멋쩍은 웃음만 지어 보이며 채비를 걷는데 아니 터진 게 아니라 바늘이 벗겨졌네요. 입질이 하도 예민해 작은 찐따 바늘(가마가츠 나노구레)을 쓴 것이 여기선 마이너스가 된 것 같습니다. 제 입에서 이런 표현은 안 하는 편인데 '쪽팔린다.'란 말은 이럴 때 쓰는가 봐요. 낚시에서 갤러리는 양날의 검이더군요. 게다가 제 구명복에 커다랗게 박힌 입질의 추억은 어찌할지. 그 네이밍을 처음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략 이러합니다.

"푸풉~ 얘 저거 봐"
"뭐?"
"아니 등에 저거.. 입질의 추억이래 푸푸풉"
"(같이) 푸풉"

웃음소리 다 들리거든요? 허나 저도 그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방송 관계자와 미팅 자리가 있을 때 일입니다만, 저를 어류 칼럼니스트로만 알지 낚시나 입질의 추억은 모르는 분에게 제 닉네임을 들려주었을 때 반응도 비슷했으니 말입니다. 이 작명이 낚시를 모르는 분들에게는 제법 웃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습니다.



시간은 오후 6시.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무늬오징어를 낚으려는 꾼들도 한둘씩 모입니다.



상원아빠님도 열심이지만, 낚시란 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아쉽죠.



오늘은 이걸로 마무리합니다. 어쩜 둘이서 썰어 먹을 양만 잡혔는지



근처에 주방 딸린 숙소를 잡았는데 거기서 비늘이 튀거나 비린내를 풍기면 안 되니 손질은 여기서 다하고 갑니다.



이건 껍질 벗긴 쥐치입니다. 쥐치 껍질은 식용 불가라 무조건 벗겨야 합니다. 손질 중 간이 저만큼 나왔는데요. 저게 다가 아니고 배 속에 더 있을 정도로 간이 큽니다. 쥐치 생간을 조금 잘라 상원아빠님에게 맛을 보여줬더니 고소하답니다. 쥐치 생간은 버리지 마세요. 아귀 간(안키모) 뺨치는 진미입니다.

특히, 직접 낚아 선도가 살아있을 때는 생간 만큼 별미도 없습니다. 될 수 있으면, 수돗물에 씻지 말고 바닷물에 헹궈서 가져가시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와사비든 소금이든 찍어 드시면 그윽한 풍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횟감을 가지고 숙소로 들어갑니다. 다음 편에는 회와 쥐치 생간 시식기를 올리겠습니다. 다음 글을 보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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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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