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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은갈치 낚시를 위해 찾은 성산항
갑작스럽게 갈치낚시 일정이 잡혔습니다. 봄 갈치를 만나러 온 곳은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그리고 거기서 차량으로 다시 한 시간가량 달려온 성산항입니다. 집에서 공항까지 40분 정도 걸렸으니 편도 2시간 30분이면 닿는 생각보다 가까운 제주도. 물론, 공항에서의 대기 시간은 제외했지만 말입니다.
각자 대여한 장비를 챙기는 승객들
갈치는 여름~가을 어종이고 이때가 가장 잘 잡히는 철임에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인식이 있으니 봄에 갈치가 잡힐까 하는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잡힙니다. 어디까지나 제주도에 한해서입니다. 제주도는 연중 수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며, 아열대 해역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니 같은 아열대성 어류인 갈치가 일 년 내내 제주도에 상주한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습니다.
다만, 시즌 초반이어서 그날 기상이나 물때, 수온 따라 갈치 조황이 들쑥날쑥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일단 갈치는 너울이 있으면, 입질 빈도가 줄고 무엇보다도 몸이 힘들어지는데 이날이 그랬습니다.
저녁 7시 30분, 망망대해에서 바라본 일몰
예보와 달리 너울이 심해 배가 앞뒤로 바이킹을 탑니다. 저처럼 선미(뒤쪽)에 자리 잡으면, 심할 때는 4~5m 정도의 낙차를 느끼곤 하는데 이게 한두 시간도 아니고 밤새도록 이러면 정말 몸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기분까지 듭니다. 정말 인생의 쓴맛을 이날 다 볼 정도로 말이죠. 그 쓴맛이 위액이란 점은 안 비밀. ㅠㅠ 어쨌든 설레는 마음으로 채비를 투척하고 갈치가 물기를 기다립니다.
갈치낚시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던져놓고 세월아네월아 지켜볼 틈이 없습니다. 채비를 투척한 사이 미끼(냉동 꽁치)를 썰어놓아야 하고, 사진도 찍어야 하고, 뷰 파인터만 보고 있으면 멀미 나니까 먼 산도 좀 봐야 하는데 이 망망대해에 초점 맞출 먼 산이나 섬이 없으니 저 멀리 수평선을 둘러싼 갈치 배라도 쳐다봐야 합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초릿대를 보며, 갈치가 얼마나 물었는지도 점검해야 하고. 생각만 해도 쏠리네요.
첫 번째 채비 투척에서는 생명체 자체를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제 일행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인데요. 서둘러 미끼를 꿰어 던진 후
이번에는 사무장의 조언을 참고해 수심 65m까지 내립니다. 시즌 초반이라 갈치 활성도가 썩 좋지는 않습니다. 이곳 수심이 약 100m라고 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갈치 채비는 7단 채비입니다. 바늘과 바늘 사이의 간격이 2m로 앞뒤 여분까지 합쳐 대략 15~17m 길이는 될 겁니다. 65m를 내렸으니 그 아래 15m나 늘어진 채비를 생각하면, 제 봉돌은 바닥에서 약 20m 정도 뜬 셈입니다.
100m 바닥 지형은 사니질(모래)로 되어 있습니다. 중간중간 암초나 돌덩이가 있어 밑걸림이 가끔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내리는 건 부담이고요. 여기서 입질이 없으면, 10m 정도 더 내려보는 선에서 반응을 살펴볼 생각입니다.
오후 8시, 낮부터 줄기차게 내린 비가 서서히 수그러들고 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주변이 깜깜해지자 옆 일행으로부터 첫 갈치가 확인됩니다. 크기는 3지 정도.
반대편 상황을 보니 잠잠합니다. 아직 시간이 이른지 가뭄에 콩 나듯 합니다.
제 채비에는 도무지 반응이 없어 걷자 미끼 일부가 뜯겼거나 아예 없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생명체가 전혀 없다고 할 순 없겠습니다. 갈치가 문 흔적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입질이 약으니 벗겨지는 등 여러 가지 경우를 상상해 봅니다만, 현재로서는 수심 조절 외에 달리할 방법이 없습니다. 입질이 약으면, 꽁치를 좀 더 길쭉하게 썰어 좀 더 자연스러운 미끼 연출을 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고요.
채비를 내리고 기다리는데 멀미 때문에 앉아있기가 힘듭니다. 참다 참다 결국에는 선실에 들어가 눕기로 합니다. 그즈음에 저녁 식사가 있었지만, 멀미 때문에 밥이 눈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그렇게 저는 두 시간 정도 누워있었습니다. 설잠을 자다가 중간에 어떤 분이 선실에 들어와 무릎 꿇고 앉길래 뭔가 하고 봤습니다. 웃통을 완전히 벗었고, 바지도 벗은 채 속옷 차림으로 앉고선 양팔을 번쩍 들어 만세를 합니다?
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일촉즉발 한 상황임을 말해주었습니다. 토사물이 목까지 올라온 듯, 결국에는 선실 바닥에 쏟아냅니다. ㅠㅠ 저는 모른 척 잠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거들면 저까지 말려들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토한 양이 많지 않았고, 냄새도 생각보다 덜했다는 점. 한번 쏟고 나서는 속이 편해졌는지 걸레로 닦고 그 자리에 눕더랍니다.
드디어 첫수, 제주 은갈치
한숨 자고 나오니 어느새 자정. 속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그 사이 일행이 제 채비를 걷어다 미끼를 꿰어 내려주고 하셨는데요. 자정이 돼서야 첫수를 올렸습니다. 사실 이날 멀미할 만큼 심한 너울은 아닌데 약을 배에서 먹었더니 효력을 잃었나 봅니다.
그렇게 저는 갈치낚시로 밤을 하얗게 지새웁니다. 자정을 전후해 입질이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날은 깜깜무소식이었죠.
수면에는 철 잃은 만새기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옆 일행이 제법 준수한 씨알의 갈치를 낚았습니다. 이 시기에는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합니다. 마트나 백화점에서는 마리당 만오천 원에 파는 크기죠.
어느새 제 초릿대도 많이 숙였습니다. 촐랑거리는 것(고등어, 삼치)이 아닌 저렇게 다소곳이 고개를 푹 숙일수록 갈치가 많이 매달린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갈치가 계속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저 초릿대는 수면 아래로 폭 파묻힙니다. 갈치꾼들은 그 장면이 가장 설렐 것입니다. 좀 전에 일행이 너무 늦게 올려서 갈치 꼬리가 잘린 것을 봤습니다. 시간을 너무 많이 끌면, 동족이나 다른 포식자로부터 뜯길 수 있으니 대충 3~4마리 달렸다 싶으면 걷어 올리는 것이 좋습니다.
채비를 걷으니 두 마리. 현재 갈치는 수심 60m를 전후로 해서 입질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곱 개 바늘 중 윗 바늘을 물고 올라오면, 수심을 조금 올리고요. 아래 바늘에만 물고 올라오면 수심을 그만큼 낮추면 됩니다. 이 갈치는 3~4번(중간) 바늘에 물고 올라왔기에 계속해서 같은 수심층을 공략해 보기로 합니다.
번쩍번쩍 화려한 자태 뽐내는 제주 은갈치
이번에도 두 마리가 올라옵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제주 은갈치는 다른 지역의 갈치와 달리 자태가 우아하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선상 조명이 밝으니 조금만 각도를 틀어서 찍으면, 화면 전체가 번쩍번쩍 화이트홀이 생기기 일쑤지요. 거울처럼 반사해 얼굴을 들이대면 비칠 정도입니다.
이렇게 제주 은갈치가 유독 빛나는 까닭은 몸에 상처 하나 내지 않고 걸어 올리는 낚시라서 가능한 것이겠지요. 제주도 갈치 조업은 대부분 주낙이나 채낚기 방법으로 잡아들입니다. 그물에 치일 일이 없으니 그 연한 비늘이 떨어져 나가 볼품없이 돼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몸이 성하고 비늘이 온전히 붙어 있으니 선도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그래서 제주 은갈치의 상품성이 국내 다른 지역보다 높은 이유입니다.
자정을 넘기면서 아주 폭발적인 입질은 아니지만, 뜨문뜨문 입질이 이어지긴 합니다. 좀 더 부지런 떨면 마릿수 시동을 걸 것도 같은데 문제는 멀미입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 해결된 줄로만 알았던 멀미가 다시 고개를 틀고 기지개를 켭니다. 이쯤에서 선수 상황을 사진에 담기 위해 앞으로 나왔는데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속이 거북해집니다.
갈치가 안 나와서인지 멀미가 나서인지 혹은 둘 다 때문인지 적잖은 승객이 낚시를 포기하고 자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바다에 고기밥을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세 번. 아침에 시간이 없어 대충 먹었던 라면 냄새가~ 저녁에 요기했던 초콜릿 향과 섞여 위액이라는 양념에 잘 버무린 채... 그렇게 저는 멀미의 쓴맛을 보고 맙니다.
그래도 쏟고 나니 속은 한결 편해지네요.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본 사람은 없습니다. 입질의 추억이 바다에 고기밥을 주는 꼴사나운 장면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 삼고.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온 한조무역 박범수 대표님은 3.5지 갈치 두 마리를 잡고 포즈를 취해주십니다.
새벽 2시. 한동안 반응이 없었던 제 초릿대가
어느 순간 푹 숙이고 있습니다. 드디어 왔군요. 저 정도면 얼마나 매달려 있으려나 싶어
걷어보니 못 되게 생긴 갈치 한 마리와
순하게 생긴 갈치 한 마리가 올라옵니다. 제주 은갈치.. 아니 이제는 금갈치라 불러야 할 만큼 비싸졌으니 그 가치가 갈치에 투영되면서 영롱히 보이기까지 합니다. 크지 않아도 좋으니, 마릿수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난주(5월 첫째 주)에는 조황이 좋았다던데 이번 주(5월 둘째 주)는 너울로 인해 다소 주춤한 상황입니다.
이러다가 한두 물때 지나 6월로 넘어서면 본격적인 갈치 시즌으로 이어질 텐데 아무쪼록 올해는 낚시든 어획이든 은갈치가 많이 잡혀 모두가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조무역 박범수 대표님은 3.5지 사이즈로 무려 4마리나 거두어 냅니다. 1타 4피. 왜 자꾸 은갈치만 보면 돈으로 계산하게 될까요? 마트 물가로 마리당 15,000원씩 쳐도 지금 이 순간 6만 원을 벌어들인 셈입니다. 사실 저 정도 크기면 마리당 2만 원에 팔기도 하던데 그렇게 따지면 한 번의 투척에서 8만 원이나 벌어들인 것이고. 생각할수록 즐겁죠? ^^
멀미에 괴로워하는 필자
그러나 갈치낚시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수그러든 줄로만 알았던 멀미가 다시 올라오려고 합니다. 오늘 참 이상하죠. 멀미를 해도 이 정도는 아닌데 말입니다. 제가 갈치낚시를 하면서 금기가 있습니다. 절대 자지 말 것. 아시다시피 선비가 셉니다. 갈치 물가도 세죠. 그래서 갈치꾼들은 갈치배 탈 때 선비 뽑을 생각으로 합니다. 그러한 열정도 노력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멀미.
나는 멀미가 나서 죽겠는데 옆에서는 라면 냄새가 솔솔 나고. 보기엔 정말 먹음직스럽죠. 안 그래도 이날 온종일 굶었고 그나마 소화되던 것까지 바다에 쏟아부은 터라 배가 고프다 못해 쓰린데 말입니다. 한 그릇 드시라는 권유를 뒤로한 채 저는 또다시 선실에 눕고야 말았습니다.
이때가 새벽 3시. 갈치낚시하러 와서 저 스스로 만든 금기를 처음으로 깬 날이 바로 이 날이었던 것입니다. 한창 자고 있는데 박범수 대표님도 힘드신지 들어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날이 샐 때까지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갈치가 아무리 맛있고 비싸도 멀미 앞에 장사 없네요. 잠 안 자고 좀 더 했더라면, 몇 마리 더 잡았겠지만 대신 몸과 정신은 성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죠.
"나이가 드니 이 짓도 못해 먹겠다."고..
왜 이 고생을 하면서 낚시하나 싶습니다만,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단 말입니다. 며칠 지나니 또 가고 싶은 게 낚시라.. 이럴 때일수록 갯바위 낚시가 그립기도 하고 말이죠.
어쨌든 이날 제주 은갈치 낚시는 밤새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마무리됐습니다. 갈치낚시와서 쿨러에 얼음이 보인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인데요. 그것도 저와 박범수 대표님이 함께 잡은 게 이 정돕니다. 조과가 빈약하니 나누어 가져가기도 좀 그렇고 해서 제가 챙기기로 했습니다. 같이 고생했는데 저만 가져가기가 미안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일본 오이타 현에서 낚았다는 갈치 사진을 보고선 하나도 안 미안하더라는 ^^;
세상에 7~8지짜리 왕갈치를 쿨러 가득 담아오셨더군요. 갈치가 크면 맛이 없을 거란 편견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곳에서 잡히는 갈치가 제주 은갈치와 같은 종입니다. 그곳 갈치가 크다면 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실은 우리 연안의 갈치가 작아진 겁니다. 맛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야말로 끝내주었다지요.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사우나를 하러 갑니다. 식사와 사우나는 선비에 포함됩니다. 물론, 공항으로 오가는 픽업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저처럼 서울이나 각 지역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선 하룻밤 갈치낚시만 하다가는 손님이 많은 이유겠지요.
집으로 돌아와 잡은 갈치를 싱크대에 쏟았다
오전에 비행기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오후 1시. 시간대가 좋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루를 길게 쓸 수 있으니까요. 집에 도착한 저는 곧바로 갈치 손질에 들어갑니다. 한 끼 먹을 분량으로 포장해 일부는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일부는 냉동실에 넣어둡니다. 많이 잡으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좀 나눠주고 했을 텐데 그러지 못함이 아쉽습니다.
6월부터는 본격적인 제주 은갈치 시즌이 열리겠지만, 저는 갈치가 잘 잡히는 여름이나 가을에 한 번 더 다녀올 예정이며 그때까지는 다른 낚시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 낚시로 갓잡은 쥐치간의 놀라운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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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은갈치호(010-9121-7913), http://www.egc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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