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치기 제주도 낚시(상), 1타 1피가 즐거운 봄 볼락 낚시


 

 

 

 

부제 : '생선회 백반'으로 점심 먹기 프로젝트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단 하루라도 뻥 뚫린 풍광에 파묻혀보고 싶다는 생각.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한때 유행한 CF의 카피 문구처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저도 10년 전에는 남들과 다름없는 직장인이었고 그때는 주 6일제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주말의 낚시가 더욱 간절했지요. 하지만 결혼하고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 챙겨야 할 것들은 무수히 늘어났습니다. 가정은 물론, 주말 경조사나 집안의 대소사까지 겹치면서 낚시 기회는 대폭 줄어들었죠.

 

처음에 당일치기 제주도 낚시를 가자고 제안받았을 때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이런 일정을 필요로 하는 수요층이 반드시 있을 거란 생각에 더하여 저도 그리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니 때마침 치고 빠지는 낚시가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게 된 당일치기 제주도낚시는 조과에 대한 부담을 지우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오전 10시, 사계항

 

김포에서 7시행 항공편을 타고 와서 오전 10시에 사계항에 도착합니다.

 

 

동명호

 

배를 부르니 이 시간에 출조하는 꾼들은 우리뿐입니다. 평일이지만, 이미 이른 새벽부터 출조를 나간 꾼들이 형제섬 주요 포인트에서 낚시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산방산

 

불과 6시간 전만 해도 서울 집 이불 속에 파묻혀 있었는데 어느새 제주도 앞바다에 당도해 있다니. 세월이 빠른 만큼 교통편도 빨라졌지요. 이삼십 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텐데 말입니다. 어쨌든 형제섬에 다다르자 반대편에 주요 포인트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왼쪽 안테나여에 세 사람, 오른쪽 넙데기에는 네 사람이 내려서 낚시 중이로군요. 이들 포인트는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하고 새벽부터 움직여야 들어갈 수 있는 자리라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그 대신에 선택하여 들어간 자리는 작은 형제섬 코너. 말 그대로 '모퉁이'에 해당하는 자리인데 저는 처음 들어갑니다.

 

 

 

#. 나의 장비와 채비

로드 : 엔에스 알바트로스 1-530

릴 : 다이와 임펄트 2500번 LBD

원줄 : 쯔리겐 프릭션 Z 2호(세미 플로트 타입)

어신찌 : 쯔리겐 아시아 마스터피스 04번(000호), 조수우끼고무 M

목줄 : 쯔리겐 울트라 플렉시블 1.5호

바늘 : 벵에돔 전용바늘 5~6호

 

포인트 수심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밑밥에 잡어도 반응이 없고 벵에돔도 하층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여 처음부터 000(쓰리제로)찌를 이용한 하층 탐색을 시작해 봅니다.

 

 

이날은 특별히 사진 촬영을 도맡아주실 독자분(닉네임 일루바타)과 함께 했습니다. 갯바위 낚시를 하지는 않지만, 평소 제 조행기를 읽으면서 바다를 동경해온 분입니다. 이날은 고맙게도 낚시에서 가장 귀찮은 사진 촬영을 맡아주신다고 자처해주셔서 동행했는데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프로필 사진부터 함께 낚시하는 장면까지 혼자서는 찍기 어려웠던 컷을 담아주셨습니다.

 

 

코너란 포인트는 멀찌감치 봤을 땐 여러 사람이 내려도 될 만큼 널찍한 자리지만, 막상 내려보면 발판은 상당히 불편합니다. 삐죽삐죽한 현무암이 제멋대로 솟아나 있어, 평평한 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 밑밥통도 적당히 궤야 하고, 위 사진에서 보다시피 겨우 딛고 서 있을 만한 자리를 찾아 낚시하다 보면, 온종일 힘이 들어가 나중에는 사지가 뻐근합니다.

 

 

계속해서 밑밥을 쳐보지만, 멸치 새끼 외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다쇠오리 몇 마리가 포인트 내에 들어와서는 물속을 죄다 헤집고 돌아다닙니다. 예전에 아내가 물속에서 바다쇠오리를 낚은 적이 있었던 바로 그 녀석들인데 족히 10m는 잠수해 물속 사냥을 즐기기 때문에 이 녀석들이 포인트에 붙으면 벵에돔이 절대 떠오르지 않습니다.  

 

 

손가락을 댄 스풀은 당장에라도 후루룩하고 풀려나갈 것만 같은데 말이죠. 그런 저의 기대와는 달리 아직은 바다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합니다. 사실 조과에 따른 부담은 지우고 왔지만, 소정의 목표는 있었습니다. 이날 야심 차게 횟거리를 준비해왔기 때문에 점심때는 준비한 도시락과 쌈장, 구운 김과 함께 횟감을 몇 마리 잡아 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해 오면 안 잡힌다는 사실. 머피의 법칙인가요? ㅎㅎ

 

 

저만치 떨어져서 낚시하는 분은 신발짝만 한 볼락을 연신 잡고 있습니다. 속으로는 안 부럽지롱, 청볼락이잖아. 우린 계속해서 벵에돔을 노릴 거야~ 하는 심산으로 열심히 담그는데 이때 상원아빠님에게 들어온 첫 입질! 자리돔입니다.

 

 

그리고 제게도 요만한 자리돔이 물고 늘어지면서, 어느새 바다는 자리돔 떼로 바글바글 피어올랐습니다. 그새 없던 잡어가 지금은 완전히 자리 밭으로 변해버린 상황. 그렇다면 벵에돔도 피어오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니 슬슬 긴장감이 드는 가운데.

 

 

 

 

 

입질이 전~혀 없어서 낚싯대를 그만 내려놓습니다. 이때가 정오. 맛있는 벵에돔 껍질 구이 회를 김에 싸 먹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해왔는데 결국은 물거품이 되나 싶습니다. 늦어도 한두 시간 안에 도시락을 먹을 텐데 그때도 계속 이런 식이면...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푹 쉬어지고) 일단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 일루바타님이 챙겨온 드립 커피로 한 템포 쉬어갑니다.

 

 

그사이 쉬지 않고 낚시 중인 상원아빠님이 바닥층에서 어랭이 한 마리를 꺼내 올리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 자리가 비전이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끊임없이 불어 재끼는 북동풍에 온몸이 시달린 터라 이제는 벵에돔이고 뭐고 그저 바람 없는 조용한 곳에서 낚싯대나 드리우는 소박한 바람만을 갖기로 했습니다. 상원아빠님도 낚시가 어려운지 잠시 대를 놓고 포인트 여기저기를 살피러 다닙니다. 그리곤 꽤 괜찮아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고 해서 살펴보니 

 

 

이런 곳도 있었군요. 자리를 완전히 왼쪽으로 옮기자 북동풍을 완벽하게 막아주면서 낚시하기 더없이 좋은 여건이 펼쳐집니다. 하지만 이곳이 포인트인지는 담가봐야 알 수 있어 일단은 저 혼자 탐사를 시작해 봅니다. 그런데.

 

 

첫수부터 줄을 시원하게 빨고 들어가는 경쾌한 입질.

 

 

일단 어랭이로 첫수를 거뒀지만, 이때부터 볼락이 1타 1피로 물고 늘어집니다. (아까 청볼락이라 안 부럽다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 일행을 불러 아예 이곳에다 신접살림을 차리고 낚시를 시작.

 

 

잡어가 제법 있어서 발 앞에 몇 주걱을 주고

 

 

찌 부근에 한두 주걱씩 주면서 기다립니다.

 

 

아직 조수우끼고무가 찌에 붙어서 채비가 정렬되기도 전에

 

 

찌가 빨려 들어갑니다. 이어서 줄도 쫙 끌어당겨 챔질하는데

 

 

아 글쎄 이 중요한 순간에 원줄이 엉킬 게 뭐람. ㅎㅎ 고기는 달려 있는데 난데없이 줄 풀고 있느라 진땀 뺐습니다.

 

 

줄을 풀고 나서 대를 세우자 고기는 계속 매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봄의 전령사 볼락입니다. 이 정도면 쓸만한 씨알이지요. 제가 1타 1피로 이런 볼락을 잡아내는 사이 상원아빠님의 낚싯대는 여전히 잠잠합니다.

 

 

그러다가 어쭙잖게 걸린 벵에돔. 누군 볼락이고 누군 벵에돔이라니.

 

 

계속 담가보는데 역시 제게는 볼락이 물고 늘어지는데

 

 

상원아빠님은 작아도 벵에돔이 올라오고. 불과 1~2m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어종 차이가 난다는 것이 신기하죠?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선 홈통은 조류 소통이 완만해 볼락이 물고 늘어지는 것이고, 상원아빠님이 선 자리에는 보시다시피 갯바위 가장자리에 포말이 있고 조류도 횡으로 제법 가고 있어서 벵에돔이 물고늘어지는 식입니다. 뭐가 잡히든 상관없는 일이지요. 이제 곧 도시락을 먹을 텐데 그때 썰어 먹을 횟감만 장만하면 이날 소정의 목표는 다 한 것이니까요. 이렇듯 출조할 때부터 목표를 소박하게 잡으면 스트레스도 덜하고 뭐가 잡혀도 즐겁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대마도에서는 그게 안 되는 건지 ^^

 

 

역시 포인트 옮기길 잘한 것 같습니다. 비록, 씨알급 벵에돔은 아니지만, 지금은 담그는 족족 봄 볼락이 물고 늘어져 잔손맛을 원 없이 보고 있습니다.

 

 

오~ 이번엔 제법 힘을 쓰는 녀석.

 

 

 

은근히 기대했는데 당찬 손맛의 주인공은 볼락이었습니다. 요만한 것이 어찌나 바둥바둥 힘을 쓰는지 ㅎㅎ 사진이 역광이라 잘 안 보이겠지만, 추자도와 제주도에서 잡히는 볼락의 약 80%는 청볼락입니다. 다시 말해, 남해에서 잡히는 일반적인 볼락과는 종이 다르지요. 볼락구이의 명성이야 예나 지금이나 같아서 옛날 임금님 진상에도 볼락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때 반드시 남해산 볼락을 쓰도록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동해산과 제주산은 맛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죠. 당시에는 단순히 산지에 따른 맛 차이 정도로 알았지만, 진짜 이유는 청볼락이 볼락보다 맛에서 다소 뒤처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입니다. 청볼락도 없어서 못 먹는 고긴데 맛 차이는 무슨 얼어 죽을 ^^;

 

습성에서도 청볼락과 볼락은 차이가 있습니다. 남해 볼락은 철저히 야행성이지만, 청볼락은 이렇게 해가 중천에 떠도 먹이활동을 활발히 합니다. 다만, 그 시간이 오전까지입니다. 정오를 넘어서면 물때와 관계없이 입질이 뜸한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러니 잡아 놓으려면 지금이 적기일 것입니다.

 

 

갯바위 낚시를 처음 하는 일루바타님, 무려 첫수로 벵에돔을 낚았다

 

계속해서 1타 1피로 쓸만한 씨알의 볼락이 낚이자 이번에는 손맛이라도 좀 보라며 이날 사진 촬영을 맡으신 일루바타님에게 낚싯대를 쥐여줬습니다. 낚싯대는 이렇게 잡고 있다가 입질이 들어오면 챔질은 이렇게 하고 정도로만 알려주고 기다리는데 몇 초 되지도 않아 줄이 쫙 펴지면서 일루바타님이 반사적으로 낚싯대를 듭니다. 그리고 천천히 끌고 오는데 무려 벵에돔이 다 낚이네요. ^^

 

 

이번에는 볼락이 회유하는 구간을 넘겨 다소 멀리 던졌습니다. "4짜 한 마리만 잡히면 다른 것 필요 없다."는 바람으로 씩씩하게 던지자 바다도 씩씩하게 대답하려는지 이번에도 훽하고 빨랫줄 송구가 연상되는 입질이 들어옵니다.

 

 

씨알은 잘지만 25cm를 넘기는 벵에돔. 그런데 바늘이 벗겨지면서 눈에 걸린 채 올라오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ㅠㅠ

 

 

갑자기 볼락을 잡아보고 싶다던 상원아빠님이 저와 자리를 바꾸면서 홈통 쪽에 섰습니다. 채비를 던지고 저와 이야기하던 중

 

 

이번에도 훽하면서 찌가 총알처럼 들어가니 깜짝 놀라서 대를 새운 상원아빠님. ㅎㅎ

 

 

자리를 바꿔도 벵에돔을 잡는 사람은 계속 벵에돔을 잡는군요. ^^ 역시 저의 제자답습니다.

 

 

이제 낚시의 전반전이 끝났습니다. 초반에 아무런 입질도 받지 못해 야심 차게 만들어온 특제 쌈장을 모두 버려야 하나, 아니면 밥에 비벼 먹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포인트를 옮긴 것인 신의 한수가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횟감이 모이면서 이제는 썰어 먹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 순간을 위해 특별히 완도산 무공해 파래김을 살짝 구워서 준비했고, 특제 쌈장은 하루 정도 숙성해서 가져왔습니다. 이날은 수요일. 이제부터 갯바위에서는 한바탕 수요 미식회가 펼쳐집니다. 이 수요 미식회에서는 갯바위에서 벵에돔을 썰어먹을 때 어떻게 먹어야 가장 맛있는지를 알려주는 기준점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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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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