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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제주도 낚시(하), 갯바위에서 열린 수요미식회
갯바위에서의 미식은 바쁜 일상에서 지친 기분을 달래고 힐링하는 휴식처 같은 존재입니다. 마력의 장소라 할 만큼 평범한 음식도 갯바위에서라면 맛이 특별해지고 기분 전환도 되지요. 예전에 아내와 함께 다녔을 때는 종종 회를 떠 먹었는데 요새는 통 그러질 못했습니다. 낚시하랴 촬영하랴 바쁘다는 핑계로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도 않고 낚시하다가 얼마 전 결석에 걸려 수술까지 받았던 것을 보면, 제 마음의 여유가 어지간히 없었나 봅니다. 하지만 이날 만큼은 집으로 가져갈 생선을 탐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때는 두 시, 더 늦으면 식사 시간을 놓치기 때문에 이쯤에서 대를 세우고요. 잡을 때 이미 방생한 것도 있지만, 잡아 놓은 것 중 작은 것은 방생하고 썰어 먹을 만한 것만 골라서 회를 치기로 합니다.
그런데 자리가 너무 불편합니다. 어디 하나 평평한 자리가 없으니 이렇게 쭈구리고 앉아야 했습니다. 생선 손질할 때는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편히 앉아야 하는데 이런 자세면 힘이 더 들고 체력 소모가 크지요.
피를 빼고 포를 뜬 다음 토치로 껍질구이회를 만듭니다.
치익~ 하면서 올라오는 고소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힙니다. 토치 구이를 할 때는 살이 조금 익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충분히 구워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감은 전적으로 경험인데 얼마나 지져야 하는지는 조만간 동영상으로 공유하겠습니다.
칼에다 살을 바치고 토치로 굽다가 자꾸 굴러떨어져서 아예 도마 위에 놓고 굽습니다. 플라스틱 도마라 조금만 조절에 실패하면 도마를 태워 먹기 십상이니 이건 따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토치로 구운 회는 얼음물로 샤워를 시켜준 다음 키친타월로 꾹꾹 말아서 물기를 뺍니다. 갯바위에서 해먹을 수 있는 회 치고는 준비할 것이 많지만, 그래도 맛을 위해 이 정도 수고로움은 감수해야겠지요. ^^
대충 막 썰어 올리니 그럭저럭 한 접시가 완성됐습니다. 사진으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볼락도 다수 섞여 있습니다.
오늘의 갯바위 식사 메뉴는 편의점 도시락 밥을 이용한 벵에돔 쌈밥입니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한라산 소주도 빠지면 안 되겠지요?
모두 소주잔을 따라 놓고선 쌈부터 쌉니다. 먼저 향이 좋은 파래김을 팬에다 살짝 구워 준비합니다. 사진은 한 장이지만, 이후로는 김을 두 장씩 겹쳐서 밥을 얹고는 회를 2~3점씩 큼지막하게 집어서 전날 하루쯤 숙성해 둔 특제 쌈장에 듬뿍 찍어 올립니다. 특제 쌈장에는 매운 고추가 듬뿍 들어갔기에 취향에 따라 고추를 올리기도 합니다. 이 상태에서 건배하고 소주 한 잔을 입에다 털어 넣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대충 접어서 입으로 가져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
그냥 이곳은 천국이 됩니다. ^^
시간은 흘러 흘러 오후 3시. 이제부터 철수 때까지는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피딩 타임입니다. 그전에 어지럽혔던 갯바위를 한바탕 정리하고요. 식사하다 나온 쓰레기는 쓰레기봉투를 하나 정해 그곳에 모아둡니다.
바다 상황이 어떻게 변해 있나 살피는데 만조를 지나 초썰물로 돌아서면서 잡어들이 전부 사라지고 없습니다. 있던 잡어가 사라지면 둘 중 하나. 수온이 하강해 모두가 저활성이 되었거나, 혹은 포인트 내로 대물이 들어왔거나인데 느낌상 불길하게 전자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번을 던져보아도 생명체 흔적 하나 없고, 식사 전까지 따문따문 이어지던 볼락마저도 자취를 감추어버렸으니.
이런 저활성의 기운을 보일 때 자주하는 것은 아주 멀리 던지거나 혹은 갯바위 벽에 미끼를 바짝 붙여보는 것. 행여나 근방에 있을 눈먼 돌돔이라도 얻어볼까 하는 생각에 찌를 갯바위 모퉁이로 바짝 붙여 봅니다. 순간 총알처럼 들어가는 찌.
"역시 내 생각이 맞았.."
찌 들어가는 모양새도 그렇고 정말 돌돔을 기대했는데 탈탈거리는 휨새에 약간 실망한 눈치.
괜찮은 씨알의 볼락이 또다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이곳 제주도에서 낚이는 볼락은 대부분 청볼락입니다. 등이 푸르스름해 남해가 주산지인 볼락과는 구별되지요. 씨알 면에서도 다소 차이가 납니다. 갯바위나 방파제서 잡히는 일반 볼락은 10~15cm가 주종인 데 비해 청볼락은 대부분 20cm 전후로 씨알이 굵다는 점을 들 수 있고, 이렇게 벌건 대낮에도 올라온다는 점이 일반 볼락과 다릅니다. 볼락과 어류는 호기심이 많아 동료가 잡혀 올라가도 그곳에 군집이 흩어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호기심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볼락을 걸어놓고 몇 초간 놔두는 것. 그럴 때마다 녀석은 물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더 많은 동료를 끌어모으기 때문에 이러한 습성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니나다를까 한번 던진 그 자리에 다시 던지면
여지없이 물고 늘어지면서 잔손맛을 더합니다.
그런데 고기를 만져보니 오전에 낚은 볼락과는 꽤 심한 온도 차를 보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전에 밀물 때만 해도 물이 이렇게 차진 않았는데 지금은 고기가 아주 찹찹한 것이 썰물 때 수온이 급격히 내려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한두 마리라도 씨알 좋은 벵에돔을 만나고자 다소 멀리 던져서 채비를 가라앉혀봅니다.
수온이 내려갔기에 이 시간에 벵에돔이 피어오를 공산은 매우 낮다고 판단. 조금이라도 녀석들을 띄우기 위해 밑밥 양을 늘려나갑니다. 그렇게 일정 간격으로 들어간 밑밥띠 속에서 내 미끼를 넣어 천천히 내리는데 들어간 밑밥 양이 제법 많아 이쯤이면 뭐라도 들어와야 할 상황. 당장에라도 저 줄이 손에서 미끄러져 나갈 것만 같은 그런 상상을 수없이 되풀이하니, 이쯤이면 벵에돔에 대한 믿음을 넘어 집착에 가까워집니다.
캐스팅한 지 1분 30초, 밑밥이 찌를 중심으로 4~5주걱이나 들어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정말 뭐라도 입질이 와야 할 것 같은 느낌. 손가락에 살짝 걸린 줄이 스르륵 하고 나가는 상상도 이제는 지겹고. 채비를 걷어야 하나 망설이던 찰나! 상상 속에서만 되풀이되었던 원줄이 정말로 손가락을 간지럽히며 미끄러져 나갑니다.
"옳거니 왔다."
순간 강력한 힘이 전해지고(이쯤이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 끌어당기는 힘이 더~더~ 강력해야 하는데, 팔을 탈탈 흔드는 휨새가 영 쥐치 느낌입니다.
말쥐치가 낚였다
올려보니 역시 쥐치. 역시 믿음이 부족한 걸까요? ㅠㅠ
이제는 가는 해넘이를 붙잡을 길이 없고
안타까운 시간의 초침은 매정하게 흘러만 갑니다. 이제는 빈약한 조과를 받아들이고 대를 접어야 할 때.
철수 시각 30분 전, 한동안 잠잠하던 상원아빠님에게 벵에돔 한 마리가 걸려들었지만, 이 시간에 기대했던 크기는 아닙니다.
뒤늦게 발동이 걸린 걸까요? 제게도 '강력한' 입질이 들어왔는데 (낚싯대를 잡은 모양새가 대물에 대한 굳은 의지가 보이는군요. ㅎㅎ)
잔씨알급 벵에돔을 끝으로 당일치기 제주도 낚시는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조과는 빈약하지만, 그래도 저는 준비한 쌈장과 김을 맨밥에 비벼 먹는 불쌍사를 피해 무려 벵에돔 껍질구이회로 소진하면서 소정의 목표를 이루었음에 위안 삼아 봅니다. 철수한 우리는 그 길로 제주시로 올라가 고기국수 한 그릇씩 말아먹고 공항으로 향합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자정이라 새벽부터 꼬박 하루를 알차게 보냈던 것 같군요. 이날의 또 다른 소식은 함께한 일루바타님의 블로그(http://blog.naver.com/illubatal)에서도 차후에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평소 글로만 접하던 저의 조행기, 그리고 벵에돔 회를 직접 체험했기에 남달랐을 것이라 보입니다. 또한, 이분 덕분에 촬영의 부담을 지우고 마음껏 낚시할 수 있었음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이후 저는 쯔리겐 FG 클럽의 정출에 맞춰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거문도 출조를 점찍어 두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 4월의 출조지는 안갯속으로 묻히게 되었습니다. 요즘 낚시 한 번 가기가 매우 어렵네요. 어서 바쁜 일들을 마무리하고 마음 편히 낚시 좀 다녀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당일치기 제주도 낚시는 엊그저께 쓴 비용 산출과 효용성을 고려했을 때 한 번쯤 해볼 만한 일정입니다. 다만, 4월의 제주도는 영등철이라 볼락은 몰라도 벵에돔은 잡아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벵에돔의 입질이 살아나려면 최소 5월 중순 이후가 되어야 하며, 북제주보다는 형제섬을 비롯해 서귀포쪽 부속섬을 중심으로 시즌이 시작된다는 사실도 유념해 두기 바라면서 저의 조행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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