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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낚시 둘째날, 오전 11시 범섬
낚시 시작과 함께 발밑에 밑밥을 10주걱 정도 치고 반응을 살핍니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는가 싶더니, 계속된 품질에 서서히 피어오르는 잡어들. 수면 아래 돌아다니는 저 녀석들이 뭔지는 굴절된 모양과 빛깔로만 판단해야 하기에 경험이 필요합니다. 자리돔은 개체 수가 많지 않네요. 최근 제주도에 자리돔 개체 수가 현저히 줄었다는 보도를 종종 접하는데요. 실제로 벵에돔 낚시를 할 때도 그 많던 자리돔이 이제는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잡어는 제주에서 흔한 어랭이 종류로 보이는데.. 그런데 저 노랗고 널찍한 녀석은 아무리 보아도 모르겠습니다. 크기는 어른 손바닥만 한데 갯바위 라인을 따라 제법 민첩하게 움직이네요. 한 마리 낚아서 확인해 봅니다.
입질이 약습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겨우 한 마리 거는 데 성공. 잡어치곤 제법 힘 좀 쓰는데요.
표준명 노랑자리돔
어라? 어류도감에서나 보던 노랑자리돔입니다. 일반 자리돔보다 조금 더 따듯한 물을 좋아하는 남방계 어류인데요. 이 시기가 물이 그렇게 따듯할 때는 아닌데 제법 많은 개체 수가 모여 다닙니다. 덩치는 일반 자리돔보다 훨씬 크네요. 색이 예뻐서 관상용으로 키워도 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낚시로 잡은 것 치곤 너무 귀여워 살려주고 싶지만, 제 직업상 어류 정보를 하나하나 모아야 하니 녀석에게는 미안하지만 채집도록 하겠습니다. 저에게 있어 새로운 어종의 출현은 꽤 의미 있습니다. 사진 자료를 많이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맛을 보고 접함으로써 나중에 글을 쓸 때 이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긴꼬리벵에돔이 올라왔다
노랑자리돔 낚시는 잠시 접어두고 원래 노리고자 하는 벵에돔 낚시를 시작합니다. 이 자리(범섬 남코지)는 전형적인 썰물 포인트라 한창 들물인 지금은 좋은 조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되든 안 되든 일단은 채비를 담가보고, 안 되면 현장 상황에 맞게 수정해서 어떻게든 대상어를 잡아내도록 하는 것이 제게는 보람된 일이니까요.
조류 방향이 발 앞으로 빠르게 와 닿아 공략에 애를 먹었지만, 운이 좋았는지 긴꼬리벵에돔이 걸려듭니다. 채비가 한참 내려가서 문 것으로 보아 활성도는 그리 좋지 듯합니다.
표준명 황놀래기(제주 방언 어랭이)
이후로는 계속해서 잡어와의 싸움입니다. 발 앞 근처에는 노랑자리돔이 횡으로만 회유하고 있어 낚시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데 문제는 이 녀석입니다. 어랭이는 가까운 곳 먼 곳 할 것 없이 밑밥만 들어가기만 하면, 구름떼처럼 몰려와 미끼 내림을 방해합니다. 전방 30m로 충분히 캐스팅해도 밑밥만 들어가면 이 녀석들이 몰려와 미끼를 다 따먹는 상황.
열 번 던져 한 번이라도 잡어 층을 통과해야 그 아래에 있는 벵에돔을 잡을 수 있는데 지금은 속수무책입니다. 이럴 땐 품질을 중단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앞으로 피딩 타임 때까지는 5~6시간이 남았으니 적어도 1~2시간 이상은 발밑에만 품질 하면서 녀석들을 길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운 좋게 걸려든 긴꼬리벵에돔. 정말 멀리 캐스팅해서 받아낸 입질인데도 대낮이라 씨알이 잡니다.
상원아빠님은 잡어 밭에서 낚시하고 계십니다. 대낮에 안통은 힘들죠. 알고는 있지만, 지금 물이 들어오고 있어 발판이 나오질 않습니다.
관광 유람선이 수시로 다니는 것도 발목을 잡을까 싶지만, 제 생각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을 듯합니다. 어차피 이곳에 서식하는 어류들은 수시로 드나드는 뱃소리에 적응되었을 것이고요. 배가 저렇게 다니면서 파도를 일으키는 와중에도 고기를 걸어내는 장면도 종종 보아왔으니 말입니다. 다만, 관광객들이 손을 흔들어주면 거기에 화답을 해주는 것이 가끔은 귀찮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관광객들이 열심히 손 흔들어도 꾼들의 반응은 대체로 썰렁하죠. 낚시가 여유로운 취미라곤 하나, 갯바위에 나와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여유가 없죠. 찌 보랴, 밑밥 치랴, 채비 정비하랴, 그 와중에 입질 들어올까 봐 조바심내고.
처음에는 열렬히 손 흔든 관광객들도 꾼들의 반응이 영 시큰둥하자 내리더군요. 이럴 땐 저라도 흔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래서 저랑 상원아빠님이 열심히 손 흔들며 화답해 주었습니다. 낚시도 좋고 조과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여유도 가지면서 즐기는 낚시가 운치가 있잖아요.
시간도 시간이고, 물때도 물때인지라 주변에 고기를 걸고 힘껏 파이팅하는 장면을 보기는 어렵군요. 다들 낚싯대가 숙인 채로 잠잠합니다. 이럴 때 제대로 된 녀석을 한 마리 걸어서 뜰채질까지 해야 이목이 집중될 텐데요. 바다는 야속하기만 합니다. 계속해서 들물이 들자 제가 설 곳이 점점 없어집니다. 뒤로 물러나서 안전하게 낚시할 수도 있겠지만,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공략할 수 있는 지점이 홈통 그늘로 한정되면서 더는 이곳에서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하도 어랭이들이 극성이라 잡어 밭을 피해 자리를 옮겼는데요. 이곳도 조만간 물에 잠길 듯합니다. 일단은 안전을 위해 일보 후퇴.
좋은 자리 없나 포인트를 물색하던 중, 처음 이곳에 내리자마자 찜해 두었던 곳을 살펴봅니다. 이곳도 지금의 물때로는 고기가 잘 될 것 같진 않아 보이지만, 발판이 높아 파도에는 안전할 것 같군요. 그래서 자릴 옮기기로 합니다. 상원아빠님은 옮기고 싶지 않은 눈치인데 제가 설득해 억지로 옮깁니다.
일단 포말이 소멸되는 지점을 한번 노려보고요. 잡어 때문에 공략이 어려우면, 분홍색 표시까지 던져서 노려볼까 합니다.
새로 옮긴 자리에서 낚시를 시작하는데 바로 입질이 들어옵니다. 벵에돔인가?
작지만 벵에돔이군요. 거봐요. 제가 옮기자고 해서 옮기니 바로 나오잖아요. 어제 오늘 이틀간 낚시했는데 상원아빠님은 벵에돔 첫수를 이제야 올립니다. 사실 자릴 옮기고 싶지는 않았는데 저 때문에 억지로 옮겼다가 뜻밖에 벵에돔이 나오니 표정 관리가 안 되시는 느낌. ㅎㅎ
그리고 연타로 걸어내시는 상원아빠님. 호오~
두 마리째 나오자 이제는 우연이라 볼 수 없겠죠. 한낮이라 씨알은 작아도 지금은 잡어 층을 피해 벵에돔을 걸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잡어를 분리하고 밑밥과 동조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렇게 물고 올라오니 낚시가 재미있는 거죠.
표준명 놀래기
상원아빠님이 벵에돔을 두 마리 잡는 동안 저는 되려 잡어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상원아빠님처럼 30m 가까이 롱캐스팅해 그곳에서 밑밥과 채비를 동조하지만, 웬일인지 상원아빠님에게만 벵에돔이 물고, 제 채비엔 잡어가 연신 매달립니다.
시간이 훌쩍 지나 오후 2시를 가리킵니다. 만조를 지나 초썰물이 시작돼야 하는데 조류는 여전히 정체되어 있습니다. 초반에 벵에돔이 몇 마리 나오나 싶더니 이후로는 포인트 전체가 잡어밭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전반적으로 집어가 안 되고, 벵에돔도 저 아래 깊은 곳에 머물면서 피지 않으니 여러모로 까다로운 상황. 저는 다시 노랑자리돔이 생각나 몇 마리 더 잡아보기로 합니다. 마침 녀석들이 밑밥에 모여들었는데요. 수중쿠션이 찍 하고 내려가는 걸 보고 채자.
이렇게 노랑자리돔이 올라옵니다. 주둥이가 작아서 크릴을 쪼사 먹으니 찌로 어신을 보는 건 힘들고, 그나마 수중쿠션이 빨리 움직이면 채는 건데 이것도 물고 달아날 때나 알 수 있지, 입에 넣었다 뱉었다 하면 어신을 정확히 캐치하기가 어렵습니다. 분명 노랑자리돔은 많이 피는데 입질이 약아 도무지 낚을 방법이 없으니..
목줄찌를 달고 던져봅니다. 벵에돔 낚으라고 만든 목줄찌를 이런 데 쓰일 줄은 몰랐죠. 이제 목줄찌를 달았으니 노랑자리돔은 바짝 긴장해야 합니다.
표준명 자리돔
아니 너 말고 노랑자리돔 불러와~
표준명 어랭놀래기
아이고~ 미끼를 잔뜩 삼켜서 올라온 이 녀석. 그나저나 물고기 이름을 왜 이렇게 짓는지 모르겠습니다. 제주도에서 낚시하다 보면 총 4종류의 놀래기를 접합니다. 놀래기, 황놀래기, 용치놀래기, 어랭놀래기. 그리고 이들 어류를 제주도에서는 통틀어 어랭이라 부릅니다. 놀래기 종류를 제주도에서는 어랭이라 부르는데 실제로 어류도감에 등재된 표준명에는 어랭놀래기가 있다는 사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한치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오징어보다 맛있다는 한치의 표준명은 창꼴뚜기(혹은 창오징어)입니다. 한치가 꼴뚜기과에 속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어류학자들이 해당 생물의 뼈 구조 등 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생물학적인 특징을 근거로 분류합니다. 그래서 표준명이 창꼴뚜기가 됐는데 실제로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대부분 한치라 부릅니다.
요즘 베트남산 한치가 많이 수입됩니다. 같은 한치라도 베트남산 한치는 좀 더 따듯한 물을 좋아하는 난류성 두족류인데요. 제주 한치와는 종류가 다르죠. 베트남산 한치의 표준명이 뭔지 알면, 다소 어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베트남산 한치의 표준명은 '한치꼴뚜기'입니다. 한치꼴뚜기, 어랭놀래기 등등. 여기저기서 끼워다 맞춘 듯한 작명 센스에 통탄할 노릇입니다.
하도 잡어가 극성이라 이제는 30m를 넘겨 있는 힘껏 캐스팅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에서는 구워 먹기도 힘든 전갱이가 올라오네요.
이때 상원아빠님이 전방 30m 권에서 시원한 입질을 받고 대를 세우는데 혹시 벵에돔만 3마리째일까요?
다름 아닌 전갱이가 올라옵니다. 골치 아프게 전갱이가 붙었네요. 씨알은 제 것 보다 낫지만 그거나 이거나.. 그냥 방생합니다.
오후 3시
썰물이 시작되고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건너편 간출여에도 꾼들이 내립니다. 한참을 지켜보았지만, 그곳도 입질이 없기는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저녁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 자리가 어렵다고 판단.
저 멀리 군함이 지나고 있다
저는 다시 처음 낚시한 곳으로 옮겼습니다. 제가 내린 범섬 남코지는 전형적인 썰물자리인데 이제 썰물이 시작되었으니, 제대로 노려봐야겠지요. 멀리 군함이 지나고 있는데요. 그 뒤로 일으키는 파도가 상당합니다. 몇 분 뒤면 저기서 일으킨 너울이 이곳에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너울성 파도에 대비해야겠지요.
몇 분 후, 갯바위는 전에 없던 너울성 파도가 들이닥치면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상원아빠님은 밑밥통과 솔채를 잃을 뻔 했지만, 다행히 건졌고요. 이걸 두고 군함이 매너가 없다고 해야 할지. 제법 먼 거리지만, 저 정도 대형 선박이 힘껏 속력을 내고 지나면, 근처 섬에서 낚시하는 꾼들이 순간적으로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채비를 B찌로 바꿨다
#. 나의 장비와 채비
로드 : NS 알바트로스 1-530
릴 : 다이와 임펄트 2500번 LBD릴
원줄 : 쯔리겐 프릭션 Z 2호 서스펜드 타입
어신찌 : 쯔리겐 구레전과 B, 조수우끼고무 M
목줄 : 쯔리겐 울트라플렉시블 1.5호
바늘 : 벵에돔 전용바늘 6호
오후 4시. 이제는 썰물 조류가 제법 당찹니다. 0c 채비로는 원하는 수심층까지 내릴 수 없어 B찌에 B봉돌을 달아 전방 20m권을 공략할 생각입니다.
그 생각이 맞았는지 채비 바꾸고 첫 캐스팅에 줄을 확 가져가는 시원한 입질이 들어옵니다. 좀 전에 어랭이가 이런 입질을 보여서 황당했는데 이번에는 대 휨새부터 다르죠. 녀석이 갯바위를 따라 나가는 것으로 보아 긴꼬리벵에돔이 예상되는데요.
갯바위 근처로 끌려오자 더욱 격렬한 저항으로 처박습니다. 이럴 땐 대만 세우고 힘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수면에 띄우고 랜딩에 성공.
30cm를 조금 넘길까 싶은 긴꼬리벵에돔
"드디어 한 마리 했습니다."
지금까지 노닥거린 것은 잊어주세요. ㅎㅎ
썰물이라 물은 빠지고 있는데 갯바위 주변으로 파도와 포말이 더욱 거세게 몰아칩니다. 그래요. 좀 더 역동적으로 일렁거려야 벵에돔이 경계심을 버리고 가까이 들어오겠죠. 바다가 분위기를 잡아주는 것이 밥상이라면, 꾼들은 잘 차린 밥상을 제때 받아먹어야겠죠.
해가 지면서 포인트는 그늘이 집니다. 오후 4시가 넘어가면서 이제는 뭐라도 입질이 들어와야 할 타이밍이 온 것입니다. 한낮에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잡어가 지금은 주춤하네요. B봉돌로 깊게 내린 채비에서 반응이 없자 채비를 거둡니다. 그런데 크릴이 그대로 살아옵니다. 가장 성가시게 굴던 황놀래기(어랭이)가 어느 정도 빠진 것 같습니다. 밑에 벵에돔이 들어왔단 증거겠죠.
잡어가 빠진 틈을 타 공략 지점에 밑밥을 5~6주걱 정도 넣습니다. 곧바로 캐스팅한 다음, 밑밥이 들어간 자리에 찌를 놓고요. 서둘러 찌 근처에 5~6주걱을 추가로 넣습니다. 앞뒤로 밑밥이 들어간 일명 샌드위치 조법이라고나 할까요.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물면, 여긴 벵에돔이 없는 거라고 할 수밖에 ㅎㅎ
잠시 후, 줄이 광속으로 나갑니다. 본능적으로 빨려 나가는 원줄을 손가락으로 힘껏 누르며 대를 세웁니다. 턱 하고 걸리는 느낌이 나는 동시에 대는 활처럼 고꾸라지니 드디어 왔구나 싶어요. 베일을 닫고 녀석과 힘 다리기를 하는데 씨알은 좀 전에 잡은 녀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뜰채 대기도 애매한 사이즈라 파도를 이용해 들어뽕.
표준명 긴꼬리벵에돔
이렇게 올리자 숨은 가쁘게 몰아쉬어도 몸을 비틀지 않고 얌전. 바늘은 입술에 적당히 잘 걸렸네요.
손으로 잡아 올려도 얌전할 거란 믿음을 가지고 들어봅니다. 살이 통통히 쪄서 한 손으로 잡고 찍기가 버겁습니다.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자연 방생될 수도 있으니 라이브웰에 넣어 둡니다.
사실 오후 7시까지 할 수도 있었습니다. 요즘 일몰 시각이 늦어져서 어쩌면 6~7시가 최고 피딩 타임일지도 모릅니다. 그때까지 했다면, 씨알 굵은 긴꼬리벵에돔을 몇 마리 더 잡을 수도 있었지만, 비행기 시간에 쫓기면서까지 낚시하고 싶지는 않더군요. 항에서 손질하고 제주시로 오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리고, 식사도 이왕이면 맛있는 밥으로 먹고 싶으니 말입니다. 피딩 타임을 앞두고 철수해 무척 아쉽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이쯤에서 마무리합니다.
섶섬(왼쪽), 문섬(오른쪽)
철수하는 길에서 본 서귀포 섶섬과 문섬입니다. 문섬이 섶섬보다 좀 더 가까이 있는데 이렇게 보니 마치 동일 선상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군요.
제주 올림픽 경기장과 서귀포 시청
서귀포 일대 금싸라기 땅이죠. 특히, 왼쪽에 보이는 아파트 입주자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법환포구에서
30cm급 긴꼬리벵에돔 두 마리는 횟감으로 처리해 상원아빠님께 드리고, 구이감은 우리 딸내미를 위해 제가 챙겼습니다.
서울로 올라가면 그날 밤에 바로 드신다 했지만, 그래도 살이 덜 물러지게끔 이케시메했습니다. 예전에 대마도에서 구입한 이케시메 도구인데요. 몇 번 써보니 정말 괜찮습니다. 방어 같은 대형 어류는 힘들지만, 감성돔이나 벵에돔, 그 외 낚시로 잡는 일반적인 횟감을 장만할 때는 적당하고 휴대도 간편한 도구죠.
그리고 이케시메를 처음하시는 분들은 주로 꼬리 쪽을 잘라서 와이어를 넣는데 저도 몇 번 그렇게 해보니 횟감이 지저분해집니다. 보기에도 깔끔하지 않고요. 그런데 전용 도구를 사용해 양 눈 사이 미간을 찌르고 와이어를 넣으면, 보기에도 깔끔합니다. 위치야 한번 감을 잡으면 그 뒤로는 꼬리 쪽으로 하는 것보다 더 수월할 겁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방법은 다음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자리돔(위)과 노랑자리돔(아래)
사실 시간적 여유만 있었다면 충분히 낚시를 즐기고 나왔을 텐데 저는 항에 도착해서도 뭐 그리 할 게 많은지 말입니다. 집에서 비늘 튀는 건 싫어서 어지간하면 항에서 손질해서 가져가고요. 언젠가 쓰게 될지도 모를 칼럼을 위해 사진 자료를 확보해 두는 것도 제게는 낚시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자리돔과 노랑자리돔은 집으로 가져가 딸내미와 함께 비교 시식을 하게 되겠지요. 혹시 아나요. 최근 자리돔 개체 수가 줄어서 몸값이 비싸졌는데 그것을 노랑자리돔이 대신할 수 있을지. (근데 노랑자리돔은 뼈째 썰어 물회로 말아먹기에는 어려워 보일 듯합니다.)
제주시 모 식당에서 먹은 자리물회
이후로는 정말 분초를 다툴 정도로 스팩터클했습니다. 비행기 이륙 시각이 9시 5분이라 늦어도 8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하고요. 8시 30분에는 수속이 마감됩니다. 그런데 렌터카 반납 마감 시각이 8시 30분이었죠. 제주시에 도착해 공중목욕탕을 이용하는데 20분. 자리돔 잘하는 식당에 도착하자 7시 30분입니다. 그런데 식당은 만원으로 자리가 없어요. 빨리 들어가 대기를 걸어두려는데 한 남자가 저보다 한 발짝 앞서 들어가는 바람에 대기 1번이 될 것이 2번이 돼버렸고, 그 상태로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데 술손님이라 잘 나질 않아요.
시간은 7시 40분. 여기서 렌터카 반납소까지 15분 정도 걸리는 걸 감안한다면, 늦어도 8시에는 밥을 먹고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8시 30분에는 공항에서 짐 부치는 수속이 마감될 것이고.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더군요.
시간은 7시 45분. 자리 하나가 나와 대기 1번이 들어갔고, 그다음이 우리 차례인데 자리가 안 나는 겁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밥을 포기하려는데 아 글쎄 식당 아주머니가 이미 주문한 음식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네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리다가 시간은 7시 50분. 때마침 자리가 났고 앉으니 아주머니가 서둘러 반찬이 깔아주고요. 때마침 완성된 자리물회가 나옵니다.
자리물회를 광속으로 마시는데 이게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그래도 맛은 있었음). 그렇게 이어진 8분간의 먹이활동에 저 자리물회가 싹 비워지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지켜보던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심.
8분 만에 자리물회를 싹 비우고 나오자 8시. 일단 공항으로 출발합니다. 공항에 도착하자 8시 15분. 저는 짐을 부치는 사이 상원아빠님은 렌터카를 반납하러 갑니다. 집에 도착하니 거의 자정. 그대로 기절. 그렇게 1박 2일 제주도 낚시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며칠 후, 저는 요즘 가장 핫하다는 '그것'을 잡으러 진해로 향합니다. (끝)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 초보자도 손쉽게 낚는 한치 선상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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