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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깹니다.
"그렇지. 오늘은 제주도로 피서 낚시 가는 날"
그런데 시계를 보지 않습니다. 여느 때처럼 새벽 비행기를 타는 대신 오후 비행기를 타기로 했으니까요. 낚시하러 가는데 이렇게 여유 부려도 될까요? 그렇습니다. 야행성인 한치, 오징어 낚시는 철저하게 밤낚시 위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느지막이 공항을 찾아 여유를 부려봅니다.
이호태우 해수욕장
오후 3시, 제주도에 도착했습니다. 본격적인 피서철을 앞둔 해수욕장은 이런 풍경이었습니다. 7월 초라 아직은 본격적인 피서객이 몰리기 직전입니다.
한쪽에는 아이들이 모래로 탑을 쌓고, 한쪽에는 젊은 남녀가 온몸에 모래를 덮고 선텐을 즐기고 있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서핑을 즐기려는 분도 있고, 저 멀리 방파제선 낚시하는 사람도 보이니 지켜보는 저도 흐뭇한 표정이 절로 나올 만큼 낭만적이고 여유로워 보입니다.
제주시의 어느 식당
출항 시간은 6시 30분. 저녁 식사를 조금 서두르기로 합니다. 최근에는 제주도에 올 때마다 자리물회를 한 그릇씩 먹고 가는 듯합니다. 된장 베이스로 구수하면서 감칠맛이 좋은 육수에 자리를 잘게 썰어 넣었으니 적당히 씹히면서 부드럽게 넘어가네요. 시원하게 한 그릇 잘 먹었습니다.
제주시 도두항
날이 저물 무렵, 출항을 준비합니다.
제가 탄 배는 관광낚싯배입니다. 갈치낚시처럼 밤새도록 하는 낚시가 아닌, 밤 10시 30분까지만 하고 철수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배에 오를 수 있습니다. 단점은 낚시 시간이 길지 않다는 점. 출항은 저녁 6시 30분이고 10분 정도 달려서 풍을 놓고 준비하면 어느새 7시입니다. 낚시는 그때부터 할 수 있지만, 한치 오징어가 야행성이라 해가 완전히 지고 난 다음이라야 입질이 들어옵니다.
그랬을 때를 계산해보니 온전히 입질 받으면서 낚시를 즐길 시간은 저녁 8시부터 10시 30분까지로 약 2시간 반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짧고 굵은 낚시죠. 그러니 제주도로 여행 와서 짬 내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에서는 '자세'라는 낚시 도구를 무상으로 빌려주기 때문에 특별히 낚시 장비가 없어도 즐길 수 있는 것이 한치 낚시입니다.
다만, 이날은 한조무역 박범수 대표님과 동행하면서 지난번 진해 한치 낚시 때 사용한 메탈리스트 채비가 제주도에서도 먹힐지 테스트하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이 채비가 국내에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존에 한치 낚시를 즐기던 분들도 생소할 겁니다. 그래서 이날은 제주도 에깅낚시 동호회 분들과 함께 테스트 삼아 낚시를 시작해 봅니다.
포인트에 도착한 풍경
배는 10분 정도 달려 포인트에 도착합니다. 마침 이륙하는 비행기도 보이는데요. 그만큼 가까운 바다라 한라산과 제주시가 한눈에 다 보입니다. 이렇게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바다지만, 수심은 벌써 50m나 나오죠.
선장이 풍을 놓습니다. 배가 조류를 타고 천천히 흘러가기 위함입니다.
왼쪽은 슷데(이카스키테), 오른쪽은 메탈리스트
이날 제가 사용한 채비는 기존의 한치 채비가 아닌 매탈리스트 채비입니다. 두 가닥으로 갈라지는 일반적인 한치 채비를 쓰는데 위쪽은 가벼운 슷데를 달고, 아래 쪽은 60~80g 정도 나가는 무거운 메탈리스트를 답니다. 이 메탈리스트는 추의 역할을 하면서 조류에 밀리지 않도록 채비 중심을 잡아줍니다. 그러는 동시에 한치를 유혹하죠.
한치 낚시 초읽기를 알리는 일몰
아직은 해가 수평선 위에 있어서 입질이 없습니다. 혹시나 하여 바닥층까지 내려보지만 역시 입질이 없습니다. 어군탐지기에는 아무런 신호도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공허한 바다입니다. 그러다가 배가 집어등을 켜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난 한치 떼로 어군이 형성될 것이고 그때부터 낚시는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물론, 한치가 이곳에 모일 것이라는 전제가 바탕이 돼야 하겠지만요.
해가 지자 거짓말처럼 입질이 들어옵니다. 앞에 계신 분이 첫 입질을 쌍걸이로 걸었는데요. 시작부터 이러면 정말 기분이 좋겠죠.
이어서 한조무역 박 대표님도 뭔가를 걸었는데 한치가 아니네요? 일반 오징어가 올라옵니다.
내게 첫수로 낚인 시장표 오징어
잠시 후 제게도 첫 입질이 들어왔는데 제주도라 당연히 한치를 기대했지만, 웬 시장표 오징어가 올라옵니다. 이 녀석 요즘 횟집에 가면, 한 마리에 만 원씩 합니다. 물론, 살아있을 때 회를 쳐야 가능한 값어치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직은 완전히 집어가 되지 않아서 한치 유영층이 다소 깊습니다. 수심 17~20m까지 내린 다음, 3초간 마구 흔들어줍니다. 그리고 가만히 놓으면, 저 보라색의 매탈리스트가 수중에서 발버둥 치다 얌전해지면서 수직으로 똑바로 서는데 이때 오징어나 한치가 촉완(촉수)을 뻗어 사냥하면서 걸리는 방식입니다.
활성도가 좋을 때는 흔드는 와중에도 덥석 물지만, 보통은 흔들고 난 다음 10초 안에 입질이 들어오는 식입니다. 일단 입질이 들어오면 초릿대가 쭈욱 당겨지는 느낌이 나는데 어쩔 땐 구부러진 초릿대가 반대로 서버리기도 합니다. 또한, 활성이 좋으면 딴청을 부리다가도 깜짝깜짝 놀랄 만큼 초릿대를 잡아당기지만, 예민할 때는 다리만 걸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초릿대의 미세한 변화를 잘 감지하는 사람이 한 마리라도 더 많이 잡습니다.
이어서 제게 두 번째 입질이 들어왔습니다. 이 녀석 배가 고팠나요? 초릿대가 휘청거릴 정도로 잡아당겨 반사적으로 챘더니 반가운 한치가 올라옵니다.
씨알은 다소 자네요. 좀 전에 메탈리스트에 매달려 온 오징어와 달리, 이 녀석은 가볍고 작은 슷데에 걸려들었습니다. 덩치가 작은 만큼, 자신이 취할 먹잇감도 그에 비례해 작은 녀석으로 고른 것이겠지요.
슬슬 집어가 되는지 여기저기서 한치와 오징어가 번갈아가며 낚이기 시작합니다. 이분은 노출을 원치 않으신 것 같아 블러 처리해드렸는데요. 장비 없이 배에서 제공하는 자세만으로도 잘 잡아내십니다. 자세로 하면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을 만큼 초심자들이 사용하기에 좋습니다. 자세에는 여러 개의 에기가 주렁주렁 매달렸고 그 끝에는 추가 달렸는데요. 그냥 선장이 내리라고 하는 수심만큼 내린 다음, 가끔 흔들어주거나 고패질만 해줘도 알아서 매달려주니 낚시가 쉽습니다.
한치, 오징어는 밤이 깊어갈수록 활성도가 높아지는데요. 제주도에서는 9시~11시가 가장 피크 타임인 것 같습니다. 이 분은 한치와 오징어를 1타 2피로 올립니다.
이번에는 평소보다 좀 더 묵직하길래 기대하고 올렸는데
한치 대신 오징어만 쌍걸이 하니 이곳이 제주 바다인지 동해인지 헷갈릴 정도. 그리곤 녀석들이 뿜은 바닷물에 제대로 테러당하고 말았습니다. 얼굴에 바닷물 한 바가지 뒤집어 써가면서 해도 즐거운 한치 오징어 낚시. ^^
시간은 8시 45분. 선수에 계신 분이 씨알 좋은 한치를 올립니다.
이날 항구에서 입질의 추억님 아니시냐며 반갑게 맞아주셨던 당찬입맛 이철님. 이분도 우리 부부처럼 부부 동반 낚시를 즐기면서 사시니 보기가 좋습니다. 지금은 제 아내가 낚시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제는 딸도 컸기 때문에 이르면 올해 중으로 낚시 컴백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밤 9시, 쌍걸이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씨알도 점점 좋아지는 느낌입니다.
표준명 창오징어(방언 한치)
제주에서 주로 잡히는 오징어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제주 한치로 알고 있는 표준명 창오징어(창꼴뚜기)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에서 흔히 만나는 오징어(표준명 살오징어)입니다. 씨알도 괜찮아서 냉동실에 쟁여놨다가 먹고 싶을 때 꺼내 먹어도 좋으니 낚시를 마친 후에도 입이 즐겁죠.
오징어를 잡은 이철님과 한치를 잡은 박 대표님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오는 오징어와 한치 공습에 3시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사실 이 날은 태풍이 지나간 직후라 너울이 남아 있었습니다. 배도 크지 않아서 멀미약을 먹지 않았다면, 꽤 고생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기온은 고온다습해 비지땀을 흘릴 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맛의 힘은 대단한가 봅니다. 이 모든 불리한 여건을 싹 잊히게 만드니까요. 그야말로 짧고 굵은 세 시간의 낚시에 피서 한번 잘 즐긴다는 기분입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낚싯대를 접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많은 마릿수가 예상되는 고활성의 상황임에도 테스트 목적으로 여러 가지를 시도하다 보니 조과의 집중성이 떨어졌다는 점입니다. 한번은 수심 50m에서 풍을 흘리면서 낚시해 보고, 또 한 번은 수심이 15m밖에 나오지 않는 여밭에서 닻을 내리면서 하는 등 실험을 위해 포인트 이동이 잦았습니다.
한창 입질이 쏟아지는 상황임에도 몇 가지 실험을 위해 채비를 걷고 이동해야 하는 심정이 뭇내 아쉬웠지만, 이날은 한치 오징어를 많이 잡아가는 그런 낚시가 아닌,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인 낚시가 되는지를 테스트할 목적이었으니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이 한치 낚시를 하게 된다면, 적어도 이날보다는 더 많은 한치와 오징어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밤 11시, 입항
철수 후 어느 분의 쿨러를 들여다보는데 내용물이 흥미롭습니다. 몇 마리의 오징어가 들었지만, 이 중에 한치는 단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제가 제주도 해역에는 거의 서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화살오징어(동해 한치)가 이분에게만 몇 마리씩 잡혔다는 것입니다. 채비와 수심을 어떻게 했길래 화살오징어와 일반 오징어만 잡혔을까요?
왼쪽은 일반 오징어, 오른쪽은 동해에만 서식하는 줄로만 알았던 화살오징어
화살오징어는 창오징어와 더불어 똑같은 '한치'로 불립니다. 다 같은 한치로 불리긴 하나, 종은 엄연히 다르죠. 화살오징어는 울릉도와 동해를 비롯해 남해 동부권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에는 더 많은 개체가 서식하는데 현지에서는 '야리이까(ヤリイカ)'로 불리며 오징어의 제왕이라 할 만큼 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합니다.
그런 동해 한치가 제주도에서도 적게나마 잡힌다는 사실이 놀라운데요. 이를 제주 한치와 구분하는 낚시인이 아직은 많지 않습니다. 같은 한치인데 좀 더 길쭉하게 생겼거나 막연하게 다른 종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앞으로 화살오징어가 잡히면 제주 한치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외형과 맛에서 차이가 난다는 점이 흥미로울 것입니다.
낚시를 마친 저는 제주시의 한 호텔에 투숙했습니다. 평소 제주도를 찾을 때는 저렴한 모텔이나 펜션을 위주로 이용했는데 이렇게 낚시하고 호텔을 이용하는 것도 색다른 기분입니다. 하루 숙박 요금은 모텔과 비슷한 수준이니 나쁘진 않아요. 다만, 잡은 횟감을 썰어 먹기에는 아무래도 호텔이 불편합니다.
객실은 남자만 둘이라 싱글 배드룸.
그 와중에 한치 한 마리를 회로 썰어 먹기로 합니다. 이럴 줄 알고 휴대용 도마와 칼, 소스를 집에서 챙겨왔지요. (낚시꾼이 이 정도는 기본 아닙니까? ㅎㅎ) 맥주로 입가심하고 잠들면 그날은 꿀잠 잘 것입니다.
즉석에서 썬 한치회 한 마리
다리와 귀 부분은 숙회를 만들어 백된장 소스에 찍어 먹으면 별미입니다. 호텔에서 어떻게 숙회를 만드느냐고요? 방법이 있습니다. 호텔에는 대부분 커피포트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물을 끓여 오징어나 한치에 붓기만 하면 됩니다. 데치는 시간이 10초 정도로 짧으니 단지 스르륵 부어주기만 해도 숙회가 되고요. 원래는 그러고 난 다음 얼음물에 담가야 하는데 호텔에는 얼음물 대신 냉장고 안에 차가운 생수가 있으니 이걸 부어주면 됩니다.
회를 칠 때는 키친타월이 꼭 있어야 합니다. 키친타월로 꾹꾹 눌러 물기를 빼서 올리면 끝. 마침 객실에는 쟁반이 있어 접시로 사용할 수 있었고요. 생선회라면 비린내를 풍겼을 텐데 갓 잡은 한치는 비늘도 냄새도 없으니 간단히 썰어 먹기에는 딱입니다.
게다가 호텔 조식까지 먹고 앉았으니 낚시하러 와서 이런 호사가 어디있을까 싶기도 하고..
다음 날, 오전
충분히 자고 일어나 카페에서 커피 한 잔하는 여유도 가집니다. 오전 11시에 이륙하는 항공편이라 늦어도 10시까지 체크인을 마치면 끝. 김포 공항 주차비가 18,000원씩 나온다는 건 함정. (평일 기준으로 하루 15,000원)
집에 도착하자마자 2~3마리씩 담아 냉동실에 보관하면 됩니다. 한치가 편한 이유는 냄새나게 손질할 필요가 없다는 것. 통째로 냉동 보관한 뒤 나중에 꺼내먹을 때 해동하는데 그때 손질하면 더욱 편리하죠.
한치 시즌은 8월까지 보고 있습니다. 9월에도 잡히지만, 아무래도 7~8월만 못할 것입니다. 가족들이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쉴 때 혼자 나가서 하는 낚시라 가족과 함께 여행을 와도 가능한 낚시입니다. 짬 내서 3~4시간이면 열댓 마리 잡을 수 있으니, 숙소로 가져와 한치회로 야식 타임을 즐기는 모습이 상상됩니다.
저처럼 전용 장비를 갖춘 분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장비가 없는 분도 배에서 제공하는 자세로 하면 되니 준비물이라고 해봐야 목장갑이랑 아이스박스 정도입니다. 참 숙소에서 한치를 썰어 드시려면, 칼과 키친타월, 초고추장 정도는 준비해야겠지요?
정리하자면, 서울에서 늦게 출발해 제주에 도착, 3시간 짬낚시하고 호텔 투숙, 한치 썰어먹고, 아침에는 호텔 조식까지, 카페에서 커피 한 잔하고 느지막이 비행기 타고 서울로 복귀. 이것이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부여하는 1박 2일간의 호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주도 한치 낚시는 이걸로 마무리합니다. 지금은 다음 출조지를 고민 중입니다.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 나로도 탕건여, 짜릿한 가을 감성돔 낚시
제주도 한치 오징어 낚시 문의
피쉬헌터(010-3068-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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