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따우의 어느 민가

 

호찌민에서 125km 떨어진 붕따우는 여전히 생소한 여행지입니다. 옛날 프랑스 식민지였을 때 총독과 고관들의 휴양지로 알려졌고, 유전이 발견돼 원유를 채취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식백과에서는 '동양의 진주'라고 쓰여있는데요. 모래가 부드럽고 수심이 얕아 휴양지로 새롭게 개발된다고 하지만, 막상 가보면 우리나라 서해보다도 더 탁한 흙탕물에 딱히 수영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죠. 

 

저는 붕따우의 매력을 바다가 아닌 마을과 시장터로 보았습니다. 번듯하게 지어진 리조트와 시푸드 레스토랑보다는 민가가 밀집된 골목길의 오래된 노점상에서 먹는 쌀국수나 분짜조 같은 음식 말입니다. 이 부분은 차차 소개하기로 하고..

 

이 날은 EBS에서 방영 중인 <성난 물고기> 베트남 편 촬영 3일 차이 일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원래 계획은 붕따우의 어촌 마을인 프억 하이에서 현지 어부의 생활상을 둘러보고 그곳에 초대까지 받아 저녁을 먹고 잠을 자고 나오는 것이었는데요. 역시 현지에 도착하니 변수가 많습니다.

 

사정상 계획은 여차여차 수정되었는데요. 피디님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는 이곳 베트남 민가에는 개인 저수지나 연못을 만들어 생계형 낚시를 하는 주민들이 꽤 흔하다고 합니다. 즉석에서 섭외만 이루어진다면, 베트남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는데 다행히 물어 물어서 근처에 있는 한 민가를 찾아냈습니다.

 

 

들어가니 향이 피워져 있는데요. 제사로 지낼 음식으로 파파야 한 덩어리만이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재미있기도 합니다. 베트남은 불교국가로 알려졌지만, 실질적으로 불교를 믿는 국민은 약 11.7%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 외에는 토속 신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일상생활 속 미신적 요소가 많은데요. 가정이나 사무실 등에는 이렇게 지신(地神)이나 부(富)의 신을 보시고 복을 기원하거나 고사를 지내는 일이 많다고 하지요.

 

 

오래된 자기나 그릇을 진열해 놓은 것은 이따금 수석을 진열해 놓는 우리네 농가 풍경과도 닮았습니다. 조금 전 이 집 안주인께서 꽃다발을 가져다 테이블에 놓았는데요.

 

 

베트남에서는 특별한 손님이 오는 날이면 이렇게 꽃을 올려놓는다고 합니다. 예정에 없던 즉석 섭외로 오후의 자유시간을 빼앗겨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흔쾌히 촬영을 허락해준 유이 씨 가족들을 보면서 시골 인심이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촬영에 앞서 피디님들이 카메라를 세팅하는 동안 저는 유이 씨의 앞마당을 둘러봅니다.

 

 

 

 

 

비닐하우스가 있어 살짝 들여다보는데 개인 취미로 가꾼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법한 규모. 화원 사업을 하시는 걸까요?

 

 

각종 꽃과 묘목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정원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값비싸 보이는 분재가 가득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취미로 시작한 분재가 어느덧 100구를 넘었다고 합니다. 팔면 우리 돈으로 100만 원이 넘는 것도 있지만, 정말 아끼는 것은 몇백 만 원을 줘도 팔지 않을 만큼 분재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죠.

 

 

이 정도로 잘 가꾸고 사는 걸 보면, 농부 유이 씨는 붕따우에서 제법 잘 사는 부자이신가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

 

 

게다가 땅을 파고 물을 채워서 만든 인공 연못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유이 씨가 소유하는 정원에 있는 것이니 웬만한 여유로는 엄두도 못 낼 것 같습니다. 연못을 만든 이유는 처음에 분재들이 잘 자라도록 천연 습지를 조성한다는 것이 지금은 민물고기를 풀어서 아예 생태계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개인 전용 연못에서 낚시도 즐기고 반찬감도 얻으면서 자급자족한다고 하니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막연하게 그리던 꿈을 유이 씨가 실제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 취미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제대로 보여준 예라고나 할까요. 

 

 

열대 우림 속 연못 느낌이 나는 개인 전용 낚시터

 

이 정도면 취미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지금은 다른 목적으로도 활용한다고 합니다. 방학이면 호찌민시에 있는 초, 중 학생들의 체험 학습장으로 쓰인다고 해요. 낚시 체험을 통해 아이들이 자연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교감하게 하는 것이죠. 베트남 사람들은 비단 바다와 인접하지 않은 내륙이라도 어렸을 때부터 강이나 호수에서 낚시를 즐기며 자라온 것이 일상이자 흔한 일이라고 합니다.

 

메콩강을 비롯해 강과 호수가 많은 나라다 보니 민물고기를 식용으로 많이 쓰며, 제 블로그에서 익히 보아온 틸라피아나 팡가시우스 메기 같은 어류를 대량 양식하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작은 봉돌과 바늘이 전부인 채비

 

사진에는 담을 수 없었지만, 유이 씨가 시범 삼아 던진 채비에서 곧바로 팡가시우스 메기가 물고 올라옵니다. 이곳에서는 캣피쉬 혹은 바사피쉬라 부르는데요. 그렇게 큰 씨알은 아니었지만, 탈탈거리는 손맛이 저 얇은 대나무 낚싯대를 통해 느껴지는 듯합니다.

 

유이 씨의 채비는 아주 간결합니다. 대나무 낚싯대에 줄을 매달고 작은 납 봉돌과 바늘을 단 것이 전부. 낚싯줄에는 옥수수 줄기로 만든 수수깡 같은 것이 달려 있었는데 부력이 있으니 찌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쯤에서 저와 강성범 씨는 현지꾼(?)인 유이 씨와 내기 낚시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것도 계획 없이 갑작스럽게 이뤄졌는데요. 2:1로 붙어서 공평하지는 않지만, 승패를 떠나 집주인이 개인 전용 낚시터에서 베트남 전통 방식으로 만든 채비로 낚시하는 모습과 우리는 우리 대로 준비한 채비로 낚시하면서 좀 더 베트남의 민가와 이곳 사람들의 소박한 삶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결에는 난데없이 제 낚싯대가 걸리게 되었으니, 우리가 이기면 저녁 식사를 대접받고 유이 씨가 이기면 제 낚싯대를 드리는 것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EBS <성난 물고기> 베트남 편 中에서

 

이날 촬영분을 영상으로 공유합니다.

 

 

하늘이 어둑해지자 잠자리 한 마리가 제 머리 위로 선회 비행하면서 떠나질 않습니다. 베트남 잠자리라 모양이 생소한데요. 어렸을 적에 잠자리를 채집한 기억이 있어서 이런 생물학적 특징에 관심이 많았는데, 위 잠자리는 눈과 더듬이 모양이 꼭 우리나라의 명주잠자리(풀잠자리과)를 연상케 합니다.

 

 

유이 씨의 사모님은 낚시의 승패와 상관없이 우릴 대접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베트남 음식의 전통적인 맛을 보여주겠다면서요. 촬영 세팅이 끝나자 이제 막 음식이 완성되어 나옵니다. 베트남의 도시도 아닌 어촌의 민가에서 먹는 가정식이 흥미로운데요.

 

 

찬이 많지 않고 소박해 보이지만, 베트남 식탁에서는 빠지면 안 될 향채와 소스, 쌀국수 등이 눈에 띱니다.

 

 

베트남식 생선 탕인데 그 재료는 이제껏 제가 혹평했던 틸라피아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실 저는 맛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바다낚시를 즐기면서 고급 어종을 많이 접했고, 탕거리로 일가견이 있는 돔류나 쏨뱅이에 입맛을 들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틸라피아는 국내에서 도미회로 종종 둔갑하는 원흉으로 낙인찍힌지 오래여서 그다지 호의적인 인식을 갖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대만의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양식장에서 길러진 틸라피아와 친환경 연못에서 자란 틸라피아의 차이를 간과하기 전까지는 그랬죠.

 

사실 틸라피아가 죄는 아닐 것입니다. 식용으로 개량한 것은 그만큼 맛이 좋다는 증거일 테니 탓을 해야 한다면 자라온 환경과 열악한 위생 상태겠죠. 편견을 애써 버리면서 국물 맛을 보는데 염려가 됐던 민물고기의 흙내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딱히 향신료 맛도 없었으며, 우리의 맑은탕(지리)과 흡사하면서 후추 맛이 좀 더 도드라진 느낌이었을 뿐입니다. 수저로 살을 떠서 먹는데 보드랍고 살짝 고소하기도 합니다.

 

 

이날 우리가 잡은 틸라피아는 비늘도 벗기지 않은 채 통째로 튀겨졌습니다. 

 

 

틸라피아는 1인 1닭 아니 1인 1틸라피아네요. ^^; 비늘이 생각보다 억세지 않아 과자처럼 바삭했고, 살은 밋밋할 줄 알았는데 도미구이를 먹었을 때처럼 고소한 맛이 납니다. 이러한 맛은 먹잇감에 따라 좌지우지되는데 아마도 연못에 길러지면서 딱히 사료를 주는 것도 아닐 테니 생태계 순환에 의한 자연 먹잇감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같은 어종임에도 서식지 환경과 먹잇감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음을 틸라피아에서도 확인한 것이지요.

 

 

베트남에서 접한 쌀 종이는 대부분 이런 질감입니다. 딱딱해서 뜨거운 물에 적셔 먹는 것이 아닌, 그냥 이대로 싸 먹는 거죠.

 

 

느억맘이 들어간 늑맘매 소스

 

베트남 식탁에서는 빠지지 않은 느억맘. 느억맘은 '까껌(Ca Com)'이라 불리는 작은 생선을 발효해서 만든 맑은 액젓으로 우리네 까나리 액젓과 비슷한 향이 납니다. 느억맘은 음식에 감칠맛과 깊은 맛을 내기 위한 조미료로 사용되는 동시에 다양한 소스의 재료이기도 합니다.

 

사진은 유이 씨 사모님이 만들었다는 비법 소스인데요. 느억맘이 들어간 '늑맘매'란 소스입니다. 비주얼은 생선 젓국 향이 물씬 날 줄 알았는데 살짝 맛을 보고선 깜짝 놀랐습니다. 혹시 늑맘매의 '매'가 매실 '매'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실 원액의 단맛이 느껴졌는데요.

 

비록, 매실은 아니지만 마치 매실주를 담가 먹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발효했을 때 단맛이 나는 과실을 이용해 느억맘과 몇 가지 양념을 더 해 독특한 소스를 만든 것입니다.

 

 

당시에는 촬영 중이라 자세한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에 화면 캡쳐로 대신하는데요. 먹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쌀 종이에 튀긴 생선 한 조각을 올리고 쌀국수도 올립니다. 베트남에는 고수 향이 나는 라우람을 비롯해 민트 잎 같은 다양한 향채를 내는데 이것을 기호에 맞게 올린 다음, 스프링 롤처럼 돌돌 말아서 바로 늑맘매 소스에 찍어 먹는 겁니다. 첫맛은 역시 늑맘매의 진한 맛이 혓바닥에 붙어 쨘 하고 들어오는데요. 생선 액젓의 꼬릿함을 느낄 새도 없이 고추의 매운맛과 발효된 과실의 새콤달콤한 맛이 주는 조화는 그야말로 베트남의 향기가 묻어 있는 '단짠' 이었습니다.

 

맛 좋은 단짠은 중독을 부르는 법. 생각보다 생선 발효 맛이 덜나서 위화감도 적고요. 계속해서 손이 가게 했던 맛입니다. 라우람같이 고수 향이 강한 향채는 슬그머니 양을 줄이는 대신 제가 좋아하는 민트 잎과 베트남 깻잎을 좀 더 넣어서 싸 먹으니 맛도 맛이지만,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랄까요?

 

 

최근 태국 촬영을 마치면서 느낀 점은 베트남과 태국의 밥 차이입니다. 우리네 밥맛과 흡사한 것은 베트남 쪽이죠. 쌀 모양, 찰기가 꼭 집에서 먹는 밥 같았습니다. 반면에 태국의 밥은 모두가 아시다시피 길쭉하고 날아다니는 안남미 계열 일색입니다. 그 와중에 쏨땀(파파야로 만든 태국식 샐러드)과 곁들여 먹는 찰밥은 모양은 길쭉한 쌀인데 한국의 찹쌀밥처럼 찰기가 가득해서 놀라웠지만.. ㅎㅎ

 

 

그렇게 3일 차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촬영을 마친 우리는 붕따우 해변가에 인접한 한 호텔에 투숙합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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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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