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가물치 낚시 마니아라면 꼭 한번 낚아보고 싶은 꿈의 어종이 있습니다. 전 세계 37종의 농어목 가물치과 어류 중 두 번째로 큰 종인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가 그것입니다. 국내 가물치(노던 스네이크헤드 피쉬)가 약 1m까지 자란다면,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는 1.3~1.5m까지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마리를 걸어도 씨알이 크고 포악하기로 유명한 육식어류라 손맛이 아주 강렬하죠.

 

하지만 직접 낚기 전까지는 왜 이것이 꿈의 어종인지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민물낚시 경력이 거의 없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베이트 캐스팅과 루어 낚시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생소한 장비, 생소한 조법으로 방송 촬영에 임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시작해야 했죠.

 

준비할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베트남 촬영을 마치고 이제 한숨 돌리고 있는데 다른 팀에서 섭외가 들어온 것입니다. (성난 물고기는 여러 팀이 돌아가면서 촬영하는데 담당 PD 성향에 따라 느낌이 조금씩 다릅니다.) EBS1 <성난 물고기>는 시즌 2부터 해외로 완전히 컨셉을 돌린 탓에 일단 출국하면 기본 열흘 일정입니다. 이 기간에는 사실상 개인 업무가 마비되기에 미리 해놔야 할 일은 최대한 해결하고 가야 합니다.

 

 

태국에 도착한 첫날 밤의 어느 레스토랑

 

그렇게 저는 서둘러 태국으로 떠났습니다. 인천 공항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고 6시간을 날아온 곳은 태국의 수도 방콕.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위해 근처 레스토랑을 찾았는데요. 하필 이런 분위기입니다. 대부분 커플인데 데이트하기에는 좋은 분위기. 우리는 PD 두 명에 출연자 두 명. 여기에 출연자 매니저나 현지 코디네이터로 사내만 다섯이라 이런 분위기가 어리둥절합니다.

 

 

큰징거미 새우 구이

 

민물 왕새우로 2kg을 주문하는데요. 이쪽 동남아시아에서는 대량으로 양식되는 큰징거미 새우입니다. 새우살이 정말 탱글탱글한데요. 제가 여러 종류의 새우를 먹어봤는데 육질만 놓고 보면 이 녀석만 한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 살 맛은 다소 밍밍합니다. 어렵풋 하게 민물 특유의 향이 났지만, 과하지 않아 그럭저럭 씹는 맛으로 먹기에는 충분했죠.

 

다소 막연한 느낌으로 기억하다가 타이거 새우를 맛보게 되면, 큰징거미 새우가 가진 맛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날지도 모릅니다. 마땅히 느껴져야 할 새우 살의 단맛, 고소함이 생략되었음을 그제야 알게 되니 말입니다. 소스는 바질 페스토의 고수 버전인 고수 페스토입니다. 못 드실 분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이번 촬영팀은 대부분 고수를 잘 드시더군요. ^^

 

 

세계 3대 수프 중 하나인 똠얌꿍

 

태국에 왔으니 똠얌꿍을 지나치면 서운하겠죠. 얼큰하면서 시큼하기까지 한 국물 맛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다가도 한술 한술 떠먹다 보면 어느새 소주가 당기는 맛. 마시면서 해장 되는 기분입니다. 똠얌꿍은 늘 푸짐한 느낌이었죠. 전문점도 아닌 이런 레스토랑에서도 재료를 아끼지 않고 쏟아부을 정도니.

 

 

이미 방송 보신 분들이야 아시겠지만, 이번 태국 편은 코트의 황제, 농구계의 레전드인 우지원씨와 호흡을 맞추었습니다. 30~50대 세대 중 우지원씨 모르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저는 농구에 관심이 없었지만, 학창 시절 때 한창 농구 붐이 일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죠. 수업 끝나고 운동장에 나가보면 농구 골대가 비어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저는 당대의 대스타와 함께 방송 촬영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이러한 인연이 만들어지기까지도 약간의 우열 곡절이 있었는데요. 원래 촬영지로 낙점한 곳은 태국이 아닌 인도 북부의 내륙이었습니다. 촬영지가 인도 북부라는 소식에 저는 앞이 깜깜했죠. 어류에 관한 정보도 없거니와 그곳에서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기 때문입니다. 원래 내정된 출연자도 우지원씨가 아닌 축구선수 이천수 씨였다가 여차여차 바뀌게 되었습니다.

 

 

방콕 외곽의 어느 주택 단지

 

다음날, 우리는 곧바로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 낚시를 위해 전문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뚜이씨는 평소 미용실을 운영하는 원장이지만, 시간 날 때 틈틈이 낚시를 즐기는 태국의 프로 낚시인입니다. 그의 집에는 온갖 낚시 장비가 박물관처럼 전시되어 있는데요. 낚싯대 거치부터 각종 루어를 수납한 액자까지, 이 분이 보통내기가 아님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태국에서는 매우 유명한 낚시 클럽을 이끄는 프로 낚시인입니다. 주로 즐기는 낚시는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지만, 바다낚시도 즐긴다고 해요.

 

 

 

뚜이씨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낚시 수납함. 이 모습에서 저는 '섭외 하나는 제대로 되었구나'란 생각과 동시에 이 거대한 녀석을 낚을 확률이 이미 반절 이상 올라갔음을 직감했습니다.  

 

 

우리는 뚜이씨 일행과 함께 그들이 안내하는 비밀 포인트로 향했습니다. 비밀 포인트는 방콕에서 자가용으로 2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한적한 호수입니다. 화장실 때문에 중간에 휴게소에 들렸는데요. 태국도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국토가 넓고 남북의 길이가 매우 길어서 이런 2층 고속버스를 자주 봅니다. 구글 지도를 살펴보니 태국 북부인 치앙마이부터 남부인 푸켓까지 거리가 대략 함경도에서 제주도보다도 깁니다. 북부와 남부의 기후 차가 상당하겠죠.

 

 

불교 국가라 곳곳에는 이러한 불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휴게소 먹거리로 돼지 껍데기 튀김을 팔고 있는데요. 바싹바싹하긴 한데 돼지 껍데기 특유의 느글거리는 맛이 제 입에는 안 맞더군요. ^^;

 

 

새콤한 그린 망고는 단맛을 높이기 위해 소금에 찍어 먹습니다. 그런데 이 소금 어디서 많이 본 모양새죠.(근처에 순대를 파나? ㅎㅎ)

 

 

호숫가에 도착하자 원주민들이 낚시를 마치고 철수하고 있었습니다. 습지가 잘 발달했고 무엇보다도 흐르지 않은 고인 물가라는 점에서 대왕 가물치 서식처로 제격이란 느낌입니다.

 

 

호수 근처에는 이분들이 운영하는 펜션이 있습니다. 주로 낚시 캠프로 이용한다는데요.

 

 

저는 가물치 낚시를 잘 모르지만, 기본적인 어류 상식으로는 아침에 해 뜰 때와 일몰 시각에 맞춰 입질이 왕성할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확인한 결과도 그랬습니다. 게다가 이날은 구름이 잔뜩 껴서 주변 조도가 일찌감치 어두워진 상태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해질녘 피딩 타임이 좀 더 일찍 당겨질 수도 있겠지요. 

 

 

호수 풍경은 참으로 수려합니다.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꽤 커다란 뱀이 습지를 누비고 다니는데요. 이곳 주변은 코브라가 출현하는 곳이기도 하니 숲속을 거닐 때는 워커를 신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지 사람들 말로는 코브라가 먼저 공격할 일은 없으니 걱정 말라고 합니다. 어쨌든 코브라가 서식할 만큼 야생 호수에서의 낚시라니 기대가 되고 있는데요.

 

 

호숫가 가장자리를 기어 다니는 거대한 우렁에서도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순수함이 느껴져서 기대감을 높이는 가운데

 

 

꼬막 껍질

 

민물 호숫가에 웬 꼬막이? 순간 제가 알고 있던 상식을 의심해버렸습니다. 저 꼬막은 분명 바다 꼬막인데 어째서 호숫가에 서식할까? 자세히 보니 서식하는 꼬막이 아니고 누군가가 먹고 버린 꼬막 껍질입니다. ^^;; 이곳에 펜션과 더불어 식당이 하나 있는데요. 메뉴 중에 꼬막을 취급합니다. 꼬막은 베트남과 태국 앞바다에서도 서식해 이 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국민 조개 중 하나이죠.

 

 

야외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가 발견한 장면입니다. 소변기 바로 옆에 벌집이 있었다니. 소변을 보고 나서 떤 것은 분명 저 녀석들 때문일 겁니다.

 

 

이날 뚜이씨 일행이 준비한 장비입니다. 척 봐도 베테랑 느낌이 나죠.

 

 

PE 합사와 쇼크리더를 연결한 노트 좀 보십시오. 제대로 해놨습니다. 참고로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는 그렇게 두껍거나 강한 낚싯대를 쓰지 않습니다. 루어대 중에서는 배스 헤비대 정도가 알맞다고 해요. 바다에서 쓰던 농어대도 충분한데 다소 투박한 느낌입니다. 합사줄은 3호가 감겨 있으며 나이론 쇼크리더 역시 3~4호 정도 쓰입니다.

 

 

뚜이씨의 태클을 열어보았습니다. 각종 루어가 담겨 있는데요. 세분화하면 스피너 베이트, 미노우, 섀드 플러그 등등. 사진에는 없지만 버즈 베이트와 플로그(개구리)까지 루어 만물상이나 다름 없습니다.

 

 

태국 편을 진두지휘할 이용호 피디님은 제 갯바위 구명복을 입고 촬영에 나섭니다. 잘 어울리시네요. ㅎㅎ

 

 

첫날 우리에게 주어진 오후 낚시는 2시간 30분 정도. 이 시간이 지나면 해가 지고 녀석의 입질도 끝나게 됩니다. 그러니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과연 이 짧은 시간에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를 볼 수 있을지. 물론, 내일도 온종일 낚시라 기회는 남아 있지만, 이왕이면 빨리 낚아서 촬영 분량을 확보한 다음, 내일은 좀 더 편안하게 임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섀드 플러그(Shed Plug)

 

이날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를 위해 뚜이씨가 추천한 루어는 블루와 옐로우가 섞인 '섀드 플러그(Shed Plug)'. 그러나 낚시 시작과 동시에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힙니다. 방송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베이트 캐스팅은 처음입니다. 평소 익숙한 갯바위 릴 찌낚시 캐스팅으로 하니 채비가 나가질 않은 겁니다. 선상에서 타이라바만 했던 우지원씨는 캐스팅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으니 아마 저보다 더 당황했으리라 봅니다. 문제는 이 가물치 낚시가 정확한 캐스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낚시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모성 본능을 자극해서 낚는 특이한 낚시

먹이 습식으로 공격성을 유도해서 잡는 여타 루어 대상어종과는 달리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는 모성 본능을 자극하여 입질을 유도하는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먼저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를 낚으려면 호숫가 표면에 생기는 보일링부터 찾아야 합니다. 이 보일링은 치어 무리로 지름이 약 50cm 전후인 원반 형태입니다.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는 아가미로도 호흡하지만, 날이 좋으면 수면으로 올라와 공기 호흡을 합니다. 아가미 뒤쪽에 있는 특수 기관이 공기 호흡을 돕는 것입니다. 여건이 맞으면 약 30~40초 간격으로 보일링이 형성됩니다. 그 치어 무리 아래에는 늘 어미가 도사리고 있죠. 치어를 건드리는 녀석은 가차 없이 물어 죽이는 겁니다

 

같은 치어도 이왕이면 작을수록 모성 본능이 극대화됩니다. 손바닥만 한 치어는 어느 정도 자랐으니 어미가 적극적으로 보호하려 들지 않는 것이죠. 몸길이 10cm도 안 되는 새빨간 치어 무리는 반드시 어미가 지키고 있어 히트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빨간 치어 무리를 찾아다녔고, 보일링을 발견하면 재빨리 캐스팅하되, 보일링보다 2~3m 뒤쪽에 착수하도록 정확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다음, 미노우나 섀드 플러그를 끌고 와 치어 무리를 정확히 가르면 밑에 있던 어미가 덮치는 식입니다. 이론은 그러한데 막상 해보니 20~30번씩 정확히 던져도 한두 번 입질이 들어올까 말까 한 확률입니다. 이러한 확률을 부단히 높이려면 캐스팅 비거리와 정확도를 높일 수밖에 없겠지요.

 

또 하나의 변수는 타이밍입니다. 지름 50cm 전후의 보일링이 원반 형태로 떠오르다가 사라지는 시간은 고작 10초. 언제 어디서 보일링이 생겼다가 사라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뒤늦게 발견하고 던지면 이미 게임 종료입니다. 보일링이 생기는 즉시 던지면 2~3초 정도 소요됩니다. 나머지 7~8초의 시간 동안 입질 받을 확률이 올라가는 건데 그말은 즉, 보일링이 생기고 나서 3~4초 뒤에 던져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는 비거리, 정확도, 타이밍 등 완벽한 기술을 요하는 매우 까다로운 낚시입니다. 이걸 빨리 터득하지 않으면 아무리 뚜이씨가 옆에서 어드바이스를 해도 허사일 것입니다.

 

 

소리로 자극하는 버즈 베이트

 

양식장 근처에 딱 붙여 버즈 베이트를 끌자 두 번의 숏바이크가 났다

 

중간에 뚜이씨가 거대한 녀석을 걸고 싸웠는데 수면에 거의 올렸을 즈음 빠지고 말았습니다. 조용한 호숫가에는 안타까운 탄식이 흐릅니다. 이 상황에서 저는 캐스팅 연습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좀 전에 '고기를 빨리 잡아서 내일은 편하게 임하겠다.'는 생각은 지운지 오래입니다. 캐스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를 볼 일이 없다는 생각에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한 마리를 걸고 터트린 이후 입질은 완전히 끊겼습니다. 이제는 보일링도 없습니다.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가 위험을 감지하고 이 부근을 벗어난 것입니다. 정말 영리한 녀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후 우리는 양식장 근처를 노리기 위해 버즈 베이트를 달아 던졌습니다. 모양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프로펠러가 소리를 냅니다. 그러면 그 소리에 자극을 받고 물고기가 덮치는 식이죠. 이런 방식으로 던지고 감기를 여러 번 반복했는데 그 과정에서 두번 정도의 숏바이크가 발생했습니다.

 

퍽 하는 소리와 동시에 수면에 물 파장이 크게 튀었는데요. 뚜이씨는 양식장 근처에 은신하는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라고 합니다. 입질이 간사해 완전히 삼키지 않고, 경고의 의미로 쫓아내는 정도라 완벽한 바이트는 되지 않았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해당 방송분입니다.

 

 

<성난 물고기> 태국의 괴어,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001

 

<성난 물고기> 태국의 괴어,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002

 

 

다음 날 아침입니다. 새벽 2시에 출발한 우리는 다시 한번 어제의 격전지로 향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일출이 시작됐는데 안개가 짙어 배를 띄울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안타까운 시간을 흘려보내길 한두 시간 정도 지났을 즈음, 배를 타고 오전 낚시를 시작합니다.

 

방송 녹화 중이라 사진이 많지 않은 점 양해 바랍니다. 방송에도 편집돼서 나오지 않았는데요. 이날 오전에 제가 10kg 정도로 추정되는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를 낚았습니다. 물안개가 걷히자마자 나갔는데 녀석들의 활성도가 대단히 좋았습니다. 여기저기서 보일링이 생겨 적극적으로 공략했는데 이상하게 입질이 없습니다.

 

옆에 배를 모는 뚜이씨 일행도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러다가 철수 한 시간 전에 덜컥하고 입질이 들어왔습니다. 아~ 그런데 드랙을 꽉 잠가놔서 낚싯대가 배 밑으로 고꾸라진 것입니다. 녀석의 힘을 분산시키려면 서둘러 베일을 열어야 하는데 낚싯대를 빼앗긴 상황에서 그걸 조작할 틈이 없습니다. 낚싯대가 부러질 위기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는 썸바(클러치)를 눌러 줄을 풀어주는 것. 

 

덕분에 대를 세우고 파이팅을 할 수 있었고, 수면 직전까지 끌어올렸는데요. 거기서 안타깝게 벗겨지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썸바를 조작할 때 팽팽하던 텐션이 무너지면서 입에 박힌 바늘이 느슨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긴박한 장면을 왜 편집했을까? ㅠㅠ

 

 

모처럼 받은 입질을 놓쳐 마음이 무겁습니다. 점심 식사를 위해 잠시 철수했는데요.

 

 

어간장 소스를 곁들인 태국식 볶음밥인데 밥이 넘어가질 않는군요.

 

 

 

그래도 오후에 힘내서 잡아야 하니 지금은 좋든 싫든 먹어야 합니다. 지금 밥을 먹지 않으면, 다음 식사는 방콕으로 철수하고 나서인 밤 10시쯤일 수도 있으니.. 

 

 

그런데 갑작스레 비가 퍼붓습니다. 지금 1분 1초가 아까운데요. 처음에는 지나가는 스콜이라 여겼는데 구름이 점점 모이더니 장대비를 쏟습니다. 이때가 오후 2시. 어차피 해가 지기 시작하는 5시 30분에는 입질이 끊겨 철수해야 합니다. 내일부터는 다른 촬영 일정이 있어서 남은 2~3시간 동안 이 거대한 녀석을 잡아내지 못하면, 이번 방송도 결국 대상어를 보지 못했다로 결론 내야 합니다.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이죠.

 

 

비는 오후 3시가 돼서야 그쳤습니다. 발만 동동 굴리던 저와 제작진은 남은 두 시간 안에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야 하는 중책과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뚜이씨도 오전 낚시를 마치고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고 하더군요. 반드시 잡는 모습을 찍게 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것입니다. 제가 뚜이씨를 보면서 그 열정에 감탄한 것은 단순히 장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끝까지 책임지고 낚게 하겠다는 책임감이 느껴져서였죠. 뚜이씨는 근래에 보았던 몇 안 되는 진정한 낚시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배를 나누어 탔습니다. 뚜이씨와 우지원씨가 한 팀이고, 저는 현지 코디네이터와 함께 탔습니다.

 

 

지금 당장 포인트로 가서 낚시해도 될까 말까인데 출발 씬을 찍기 위해 드론을 날려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배가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피디님들 태우고 나가면서 30분을 까먹게 되죠. 방송 촬영이라 당연히 해야 하는 절차임을 잘 알지만, 지금 시간이 말입니다. 흑흑... ㅠㅠ

 

 

드디어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를 손에 든 우지원씨

 

운이 좋았는지 녀석의 입질은 시작부터 이어졌습니다. 뚜이씨가 한 마리 낚으면서 비상이 걸린 촬영에 한숨 놓게 된 것. 뚜이씨가 낚는 모습을 불과 20~30m 밖에서 지켜본 저는 뭐든 리액션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 성격이 그렇지 못합니다. 평소에 고기를 잡아도 과한 리액션보다는 조용히 묵묵히 낚시하면서 그 와중에 대물이 잡히면 살짝 웃는 정도인데 이게 방송으로 나가면 정말 밋밋하고 싱거운 그림이 됨을 그간의 경험으로 느꼈었죠.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 최종 격전지에서 낚은 이 녀석에게 뭐라도, 하다못해 춤이라도 춰야 할 판인데 제 성격이나 캐릭터상 그건 좀 아닌 듯하고요. 사실 저는 뚜이씨보다 출연자인 우지원씨가 잡아내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뚜이씨야 전문가로 나왔으니 잡는 것은 당연하게 비칠 수 있으나, 낚시 초보 캐릭터인 우지원씨가 잡아냈을 때의 그 감동과 환희는 연기하라고 해도 표현하기 힘든 실제 리얼 아니겠습니까.

 

그런 이유로 당시 뚜이씨가 잡았을 때 기쁘기보다는 '결국 내가 잡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만 커지면서 기분은 더욱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뭐라도 말은 해야겠고 (카메라가 저의 리액선을 기다리고 있음 ㅠㅠ) 해서 했던 말이 이렇습니다. 

 

"한 마리 잡고 너무 시끄럽게 구는데요. 저래서 고기 다 놓치면 어떡하려고. 한 마리 잡고 조용히 해야지 두 마리, 세 마리 잡고 하는 거지"

 

그러고 나서 피디님 표정을 보니 저의 리액션에 꽤 흡족해 하신 듯한데요. ^^; 정말로 제 감정에 충실했다면 박수치면서 '축하합니다' 딱 한 마디로 끝냈을 텐데 시청자가 보는 관점에서는 좀 더 재미를 유발할 수 있는 감정선이 필요했으리라 봅니다. 스승으로서의 질투심도 그중 하나인데 어떻게 비쳤는지는 모르겠군요. ^^ (방송이란 참 어렵습니다.)

 

 

뚜이씨와 우지원씨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후 우리는 갈라져서 포인트를 찾아 나섰습니다. 배를 모는 분이 개구리 모양 플로그를 써보라고 권하길래 썼는데요. 가물치 낚시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플로그는 개구리밥이 무성한 습지로 던져 수면에 파장을 내며 폴짝폴짝 뛰어야 합니다. 그런데 좀 전에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를 잡은 곳은 호수 한 가운데였죠.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플로그보다 호수 가운데를 공략하는게 맞을 것 같아 오전에 쓰다 터트린 루어를 달기로 했습니다.

 

저는 좀 더 적극적으로 포인트를 찾아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코디네이터의 통역을 통해 전달됐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호숫가를 찾아 해맸는데요. 도무지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라 할 만한 보일링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시간도 없으니 입술이 바짝바짝 타오르더군요.

 

이날은 호숫가를 끝에서 끝까지 다 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구석진 기슭에 기적같이 보일링을 발견합니다. 붉은색 핏빛이 선명한 치어 무리. 바로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의 어린 치어였습니다. 근처를 둘러보아도 보일링은 이것뿐. 이제 놓치면 모든 게 끝장이란 생각에 신중히 캐스팅합니다.

 

마음이 급해서 캐스팅 정확도가 떨어지네요. 이러면 안 됩니다. 보일링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시간은 불과 10초 남짓. 보일링이 생길락 말락 할 때의 잔잔한 파동을 조기에 발견해 그보다 2~3m 뒤로 정확히 꽂아 넣어야 합니다. 그리곤 보일링이 사라지기 전에 케익 자르듯 정확히 가르며 들어와야 하죠.

 

엄청나게 섬세하고 게임성이 짙은 낚시입니다. 그렇게 20회를 던졌습니다. 도무지 반응이 없습니다. 캐스팅은 보일링이 생길 때 딱 한 번 허용됩니다. 보일링은 같은 장소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고, 녀석들이 이동하기 때문에 그 경로를 예상하며 수면을 훑어야 합니다.

 

어떨 땐 엉뚱한 곳에 보일링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마치 제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죠. 보일링과 보일링의 간격이 벌어진 것은 녀석들의 이동속도 또한 빨라졌음을 의미합니다. 계속되는 캐스팅에 녀석들이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잘못했다간 아예 포인트를 벗어나면서 이대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너무 소란을 피운 걸까요? 녀석들이 숨을 쉬려고 올라올 때 바로 던져야 했지만, 저는 일부러 두 타임 쉬어주었습니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음껏 숨을 쉬며 경계심을 누그러트리란 의도입니다. 그렇게 두 번 정도 보일링을 흘려보내다가 다음 보일링이 눈앞에 일어났습니다. 배에서 불과 10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정말로 녀석들의 경계심이 누그러졌는지 배 가까이 접근한 것입니다. 보일링이 생기려고 할 즈음 재빨리 채비를 던졌고 그대로 감아서 보일링을 가를 때만큼은 속력을 줄였습니다. 이때 치어 무리의 정중앙을 가르고 빠져나오려던 찰나 갑자기 퍽 소리와 함께 수면에 물이 튑니다. 낚싯대가 고꾸라졌고 저는 온 힘을 다해 버텼습니다. 오전에 드랙을 잠갔다가 파이팅을 망쳤는데 이번에는 미리 대비한 게 주효했습니다.

 

민물고기라 힘이 세면 얼마나 세 하던 저의 거만함은 오전에 치른 파이팅에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지금까지 낚시하면서 정말로 진지하게 싸워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번 녀석에는 사활을 걸었습니다. 방송에서는 제가 너무 쉽게 끌어올린 것처럼 묘사되었는데요. 실제로는 드랙을 가져가며 깊숙이 들어간 녀석을 2분이나 싸우면서 올렸습니다. (파이팅에서 2분은 꽤 긴 시간이지요.)

 

 

8~9kg급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

 

수면에 올리자 시커먼 녀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입니다. 이빨을 봤는데 물렸다간 손가락 끊어지겠더군요. 방송에는 안 나왔지만, 콜라 캔을 물리자마자 아작이 난 모습도 찍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뱀 대가리 가물치임이 실감납니다. 습식본능이 아닌 모성본능을 자극해 낚아내는 독특한 낚시 기법. 민물고기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강렬한 힘. 위험에 처할 땐 본능적으로 깊은 곳으로 처박는데 그때의 손맛이 꼭 대물 벵에돔 같았던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이 녀석이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덕분에 손맛도 봤고, 방송에서도 체면을 살렸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촬영만 하고 놓아주었습니다. 어미가 잡힌 후 치어들의 보일링이 더욱 격렬했는데요. 현지꾼의 말로는 어미가 사라져서 찾고 있다는 겁니다.

 

그 말에 어찌 방생을 안 할 수 있을까? 참고로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는 현지에서 잘 먹지 않습니다. 맛도 없고 흙내가 나서 식용으로는 선호하지 않는다는군요. 처음에는 우리도 맛을 보려다 포기했습니다. 여기서는 손맛만 보고 방생하는 스포츠 피싱이죠. 덕분에 저도 이제껏 하지 못했던 새로운 낚시를 배우고 갑니다. 함께한 우지원씨도 고생 많았습니다.  

 

낚시를 마친 우리는 또 다른 여정을 향해 나아갑니다. 아래는 제가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쉬를 낚았던 방송분입니다. (다음 편 계속)

 

 

<성난 물고기> 태국의 괴어,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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