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가 손꼽는 최고의 미어(味魚) ‘다금바리’

 

바다는 넓고 어종은 다양한데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횟감의 종류는 대단히 한정적입니다. 그것도 한국, 중국, 일본에서 생산된 양식산이 대부분, 자연산은 언감생심이지요. 자연산은 기상에 민감하고 계절을 타며, 무엇보다도 바다 생태계 변화와 남획으로 개체 수가 줄어 공급량이 늘 부족합니다.

 

이 와중에 잡힌 자연산도 대부분은 산지 식당과 고급 일식집에 팔려나가면서 소시민에게 돌아갈 몫은 거의 없어요. 그렇다면 '미식가가 손꼽는 최고의 미어(味魚)’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에 일반 소비자들은 우럭이나 광어, 도미(참돔) 정도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생선회 좀 먹어봤다는 미식가들은 돌돔이나 감성돔, 복어, 도다리 등 값이 나가는 횟감을 꼽을 것이고 보통의 소비자가 접하는 범위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쪽에 정통한 식도락가나 전문 낚시꾼, 어부들에게 물어보면 꽤 생소한 횟감이 거론됩니다. 이를테면 “긴꼬리벵에돔, 벤자리, 붉바리, 자바리, 볼락, 줄가자미, 괴도라치, 붉은쏨뱅이 등등”

 

 

자연산 자바리(제주 다금바리)

 

여기서 자바리는 제주 다금바리를 말합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다금바리, TV나 뉴스에서 거론되는 다금바리는 모두 제주도가 주산지인 자바리를 뜻해요. 이 자바리를 제주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다금바리라 불렀는데요. 어찌 된 일인지 어류도감에 등재된 표준명은 자바리가 되었고, 엉뚱한 어류에 다금바리란 명칭이 붙게 되었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 이후 어류도감이 제작되면서 국내 학자들이 일본 자료 중 상당 부분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벌어진 일이라는데 무게가 쏠리지만, 정확한 이유는 그들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사용 중인 국명 중 상당수가 일본의 것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많습니다. 참돔, 참가자미, 돌가자미, 돌돔 등이 그러한데 어쨌든 이 장에서는 도감상 명칭인 자바리로 표기했고, 이해를 돕기 위해 제주 방언인 다금바리를 병행 표기하였음을 밝힙니다.


 

양식 자바리

 

#. 자바리에 대해서
표준명 : 자바리(농어목 바리과)
학명 : Epinephelus bruneus
방언 : 다금바리
영명 : Kelp grouper
일명 : 쿠우, 쿠에(クエ)
전장 : 1m
분포 : 우리나라 남해 및 동해, 제주도, 일본 중부 이남, 중국, 필리핀, 인도
음식 : 회, 초밥, 탕
제철 : 연중 맛의 차이가 크지 않으나 산란을 준비하는 5~7월이 특히 맛있다.

어류의 박식도 : ★★★

(★★★★★ : 알고 있으면 학자, ★★★★ : 알고 있으면 물고기 마니아, ★★★ : 제법 미식가, ★★ : 이것은 상식 ★ : 모르면 바보)

 

 

자연산 자바리의 턱 구조와 이빨

 

#. 생태와 특징
자바리(제주 다금바리)는 수심 80m 이상 암초대에 서식하는 표준명 다금바리와 달리 연안성 어류입니다. 수심 50m 이하 얕은 바다의 암초를 끼고 사는데 낮에는 바위 틈이나 수중 굴에 운둔하다가 밤이면 본격적인 먹이 사냥을 시도하지요.

 

많이 이동하지 않으며 한곳에 정착하는 토착성 어류입니다. 주 먹잇감은 작은 생선이나 오징어류인데 직접 먹잇감을 사냥하기보다는 자기 앞에 지나가기를 기다리다가 일격에 덮치는 방식이지요.

 

자바리는 성격이 까탈스럽고 예민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날이면 며칠을 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심지어 며칠을 굶기도 하다가 날이 풀리면 마치 굶주린 호랑이처럼 한번에 배를 채우기도 해 바다의 호랑이란 별명도 붙습니다. 산란은 8~10월경에 하며, 조업량은 수온이 높은 가을에 가장 많습니다.


 

양식 자바리(제주 다금바리)

 

#. 자바리의 양식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바리(제주 다금바리)를 양식화 하는데 실험 소식만 간간이 들릴 뿐, 실제로 상용화했다는 보고는 없었습니다. 자바리는 치어 때부터 단독 생활을 하며 영역을 지키려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사육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지금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바리 양식에 성공한 국가가 되었는데 비록, 일본만큼 크게 키워서 출하하진 못하지만, 주로 1~2kg 내외로 키워서 출하합니다. 주로 제주도 내 횟집이나 재래시장으로 공급되며, 최근에는 수도권 유료 낚시터에도 유통되고 있어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자바리(제주 다금바리)를 맛보기 위한 최적의 장소는 제주도입니다. 지금은 양식과 자연산이 한데 섞여 판매되며, 거래되는 가격도 다르므로 횟감을 구매할 때는 반드시 양식인지 자연산인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연산과 양식의 구별은 현재로서 쉽지 않아요. 그나마 배를 갈라 위장에 든 내용물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양식은 사료를 먹기 때문에 이렇다 할 내용물이 없지만, 자연산은 소화되다 만 생선 비늘과 조개껍데기가 나올 수 있으며, 그마저 수조에 오래 머물면 배설되기에 자연산 여부를 가리기란 쉽지 않아요. 

 

또 다른 포인트는 이빨의 발달입니다. 자연산은 이빨이 발달해 매우 날카롭고 불규칙한 배열을 가집니다. 양식은 이 부분에서 규칙적이지요. 그래도 소비자가 이빨을 보고 판단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전적으로 업체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표준명 다금바리(일본명 아라)

 

#. 표준명 다금바리에 관하여
가장 헷갈리는 것은 도감상에 등재된 표준명 다금바리와 제주에서 부르는 다금바리입니다. 표준명 다금바리는 아열대성 어류로 저위도 해역 즉, 규슈 남단을 비롯해 대만, 필리핀, 남중국해에 걸쳐 분포합니다. 자바리처럼 장소를 이동하지 않고 한곳에 정착하는 것은 같지만, 수심 80m 이상 깊은 암초대에 서식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낚시로는 잡아내기 어렵지요.

 

일본 관동지역에서는 이러한 심해 다금바리를 선상에서 수심 250m까지 채비를 내려 잡는데 흔히 잡히지도 않지만, 잡더라도 수압차로 금방 죽어버리기 때문에 대부분 선어 횟감으로 유통됩니다다. 가격적인 부분이나 고급어종으로서의 인식은 자바리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한편, 일본에서도 자바리와 다금바리를 놓고 무엇이 진품인지 가리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자바리의 일명은 쿠우(クエ, 쿠에가 아닌 장음으로 발음해 쿠우)이고, 다금바리의 일명 아라(アラ)인데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대마도를 비롯한 규슈 지역에서는 이 둘을 바꾸어 부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자바리와 다금바리를 혼동하는 국내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때 자바리(제주 다금바리)로 곧잘 둔갑됐던 능성어

 

#. 자바리와 능성어의 관계
능성어(제주 방언 구문쟁이)는 한때 짝퉁 다금바리 논란에 휩쓸린 어종이었습니다. 두 어종은 모두 농어목 바리과 어류로 사촌지간입니다. 예전에는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자바리(제주 다금바리)로 곧잘 둔갑했다가 적발된 사례가 있었지요. 반대로 상술은 없었지만, 다금바리라는 이름값에 기대어 판매한 횟집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지금은 자바리와 능성어를 구별하는 정보가 많이 퍼졌고, 관심 있는 소비자라면 두 어종을 구별하기 때문에 둔갑 사례가 많이 줄었지요. 참고로 자바리와 능성어의 차이는 체형과 무늬, 턱 구조, 이빨에서 차이가 납니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는 무늬입니다.

 

자바리는 일명 호랑이 무늬라 하여 불규칙한 마블이 형성되고, 그 무늬가 눈 위까지 침범합니다. 반면에 능성어는 일명 아디다스 줄무늬라고 해서 예닐곱의 굴곡 없고 규칙적인 줄무늬가 특징입니다. 자바리와 달리 눈 위로는 줄무늬가 침범하지 않다는 점에서 구분됩니다.

 

문제는 두 종이 성체로 자랐을 때입니다. 두 어종이 몸길이 80cm 이상이면 점차 줄무늬가 사라지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구별이 매우 어려워집니다.


 

돌돔과 함께 노리는 자바리 낚시

 

#. 자바리와 낚시
국내의 자바리(제주 다금바리) 낚시는 일부 소수 마니아들 사이에서 행해지며, 제주도의 특정 포인트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집니다. 미끼는 고등어를 통째로 꿰어 쓰며, 주간보다는 야간에 히트 확률이 많기 때문에 저녁부터 밤새 이뤄지기도 하지요.

 

장비는 다금바리 또는 돌돔 전용대를 쓰고, 장구통 릴에 원줄 20호 이상이 쓰이는 아주 투박한 낚시입니다. 자바리 자원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훨씬 많습니다. 일본 관동지방을 비롯해 규슈 전 지역에서 자바리 낚시가 이뤄지는데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포인트를 노리기 위해 선상낚시도 성행합니다.

 

 


자바리에서 나온 각종 부산물(껍질, 위장, 간 등)

 

자바리로 뽀얗게 국물 낸 맑은탕(지리)

 

#. 자바리의 식용
자바리는 한일 양국 모두 최고급 횟감이란 인식을 가지기 때문에 대부분 싱싱할 때 회와 초밥으로 즐기고, 그 부산물은 데쳐먹고 뼈는 푹 고아 탕으로 즐깁니다. 일본에서는 자바리를 이용한 코스 요리가 발달했는데 그중에서도 전골요리(나베)가 유명하지요.

 

 

우리나라는 제주도 산모들이 출산 후 먹는 생선일 만큼 보양 식재료로 손색없습니다. 지금은 양식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자연산 자바리를 믿고 먹을만한 식당이 제주도 내에서도 많지 않습니다. 당장 생각나는 횟집이라면 진미식당과 남경미락 정도. 그리고 서울, 수도권 및 일부 지방 도시의 호텔 일식이나 유명 스시집 정도이기 때문에 여전히 귀한 식재료라 할 수 있지요.

 

 

자바리(제주 다금바리) 회

 

미식가가 손꼽는 최고의 미어(味魚)는 어떤 맛일까요? 그 비싸다는 돌돔(갓돔)을 제치고 대한민국 최고 횟감으로 우뚝 선 제주 다금바리 맛은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혹시 숙성하지 않아서일까요? 그래도 저는 몇 번을 되씹으며 맛의 포인트를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대략 스무 번가량 씹자 죽이 돼버린 살점 속에 미묘한 맛이 느껴지긴 합니다. 그런데 반복적인 시식에서 제주 다금바리 맛은 뒤늦게 발동 걸립니다. 처음 쫄깃한 식감 외에 엷은 바다 향이 고작이던 회에서 고소함이 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바리(제주 다금바리)의 근 섬유질이 느껴지는 탄력 있는 살

 

그 고소함은 고등어나 참치회의 기름짐과 달랐습다. 지방에서 느껴지는 풍미가 아닌 근육에서 나는 엷은 고소함. 비록, 느리게 다가왔지만, 그 여운이 오래토록 남는 고급스러움이 있었지요.

 

제주 다금바리는 참치와 달리 지방이 적고 근육량이 많기 때문에 그 맛을 느끼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즉흥적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맛은 아니지만, 아련하게 느껴지는 그 맛에 또 생각나는 생선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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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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