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명 자바리(제주 다금바리)

 

"다금바리를 아시나요?"

 

이제는 제법 익숙한 단어인 다금바리. 먹어본 이들은 적어도 들어본 이들은 많은 다금바리. 다금바리 하면 주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요? '생선회의 황제', '최고급 횟감', '제주도 특산물' 심지어 '전설의 물고기'란 수식어까지 심심찮게 붙습니다.

 

그런 다금바리가 어쩌면 한 종류가 아닐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다금바리를 둘러싼 진품 논쟁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인터넷 뉴스와 카페, 블로그, 커뮤니티에서 논쟁이 일었는데, 지금은 유튜브 댓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A : (위 사진을 보며) 저건 다금바리가 아니고 자바리네요.

B : 자바리도 다금바립니다. 제주도에선 다 그렇게 불러요.

A : 자바리와 다금바리는 엄연히 다른 겁니다. 포털에서 다금바리 쳐보세요. 진짜 다금바리는 농어처럼 생겼고 가격도 엄청 비쌉니다.

C : 제주 사람입니다. 제주도에선 사기 치려고 그런 게 아니에요. 원래 제주도에선 다금바리라 불렀습니다.

A : 그럼 포털 검색이나 도감에 나온 다금바리는 뭔지 제주 사람이 설명 좀 해 보시죠.

 

이 모든 논쟁의 원인은 <한국어류대도감>의 표준명과 실생활에서 불리는 이름이 달라서입니다. 그렇다면 다금바리는 뭐고 자바리는 뭘까요?

 

 

산 상태의 표준명 자바리(제주 방언 다금바리)

 

#. 우리가 알고 있는 다금바리는 '자바리'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금바리, TV나 뉴스, 칼럼 등에서 말하는 다금바리의 정식 명칭은 자바리입니다. 학술적 명칭인 자바리가 다금바리로 불리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시다시피 자바리의 주산지는 제주도입니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자바리가 잡혔고 식용했는데 그때부터 제주도는 이 어종을 '다금바리'로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 표준명은 자바리지만, 제주도민들은 오래전부터 다금바리로 불러왔던 것. 이렇듯 구전으로 이어진 이름(다금바리)이 표준명이 되지 못한 채 다른 물고기(Niphon spinosus)로 넘어가게 된 이유가 석연치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혹은 그 이전(조선 후기)부터 자바리는 엄연히 다금바리로 불러왔던 것이 어찌 된 연유로 자바리가 된 것인지는 당시 어류 명칭을 짓고 도감을 편찬한 학자들만이 압니다. 당시 학자들은 다금바리가 아닌 자바리란 이름을 지으면서 제주도민들이 부르던 다금바리는 엉뚱하게도 'Niphon spinosus' 라 불리는 농어목 농어과 어류에 붙였습니다. (이 녀석은 생김새가 꼭 농어를 닮아 국내에선 뻘농어라 불립니다.)

 

한국의 바닷물고기 어류도감이 일제강점기 시대를 거친 이후 편찬되었다는 점에서도 석연찮게 느껴졌지만, 어느 학자도 이 부분에 관해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90년도에 들어 일본에서는 농어목 농어과였던 '표준명 다금바리(Niphon spinosus)'를 농어목 바리과로 편입했음이 뒤늦게 밝혀집니다. 때문에 다금바리와 자바리는 모두 농어목 바리과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에도 제주도에선 여전히 자바리를 다금바리로 불렀고, 한국의 언론도 그렇게 불렀으며, 제주도에서 "다금바리를 먹었다."고 한들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선어 상태의 제주 다금바리(표준명 자바리, 학명 : Epinephelus bruneus)

 

어쨌든 다금바리로 불리는 자바리는 지금도 여전히 최고급 횟감으로 통합니다. 주산지는 제주도이며, 예부터 특산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자바리 완전 양식에 성공해 제주도 내 횟집과 수산시장으로 유통 중인 줄 압니다. 따라서 제주도에서 자연산 다금바리를 찾는다면, 반드시 자연산과 양식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터넷 포털 지식백과와 어류도감, 국립수산과학원에서 말하는 다금바리는 뭘까요?

 

 

표준명 다금바리(방언 뻘농어, 학명 : Niphon spinosus)

 

#. 학술적 의미의 다금바리
포털 사이트에 '다금바리'로 검색하면 위 어종이 나옵니다. 주로 두산백과나 우리바다 어류도감, 국립생물자원관의 검색 결과가 그러한데요. 여기서 말하는 다금바리는 도감에 등재된 표준명 다금바리. 즉, 도감 편찬에 참여한 어류 학자들이 생물 종을 규정할 때 명명한 이름입니다. 내용을 살피면 몸길이 1m 정도의 바닷물고기이며, 제주도를 포함한 남해에 서식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표준명 다금바리(Niphon spinosus)의 국내 분포 현황

 

실제로 다금바리는 국내에 분포합니다. 다만, 우리나라 해역보다 더 따듯한 바다에 서식하는 열대성 어류다 보니 상대적으로 수온이 낮고 계절적 변화가 뚜렷한 국내 해역에는 개체 수가 적을 뿐입니다. 자바리와 달리 수심 100m 이하의 깊은 암반대에 숨어 살며, 야행성이고, 좀처럼 서식지를 벗어나지 않는 탓에 공식적으로 추산되는 어획량은 없습니다. 

 

다금바리가 서식하려면 100m를 전후한 심해에 암초까지 발달해야 하는데 그런 조건을 만족하는 곳은 국내 해역에 흔치 않습니다. 한반도의 연근해 지질 환경은 수심 100m 이하에서 대부분 사니질(모래)이나 갯벌로 구성됩니다. 이런 이유로 다금바리의 분포지는 매우 제한적이며, 아래와 같이 서식 조건을 만족하는 세 지역 외에는 전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는 지도에 표시된 숫자)

 

1) 제 6광구 및 대한해협

2) 제 4~5광구 및 제주 분지, 동중국해

3) 제 3광구 및 가거도, 가거초 해역

 

 

표준명 다금바리는 심해 어종답게 심해 낚시 어종과 일부 포인트를 공유한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대구, 띠볼락, 눈볼대, 홍감펭)

 

이러한 이유로 다금바리는 그물 조업이든 낚시든 잘 잡히지 않는 겁니다. 앞서 설명한 제주도 자바리(제주 방언 다금바리)와는 분명 차이가 있는 것이죠.  

 

위판장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멸종됐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국내 해역에 서식합니다. 그 증거를 심해 낚시 조황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부산 및 포항 일대에서 출항하는 심해 낚시로 제6광구 및 대한해협에서 낚시가 이뤄집니다. 여기서 다금바리가 몇 마리씩 잡히데요. 이는 심해 낚시 대상어인 띠볼락(참우럭), 홍감펭, 대구, 눈볼대(아까무쯔) 같은 어종과 일부 포인트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어종의 포인트 공통점은 수심 80~100m 이하에 암반이 발달했다는 점입니다.

 

 

표준명 다금바리(Niphon spinosus)의 전 세계 분포 현황

 

다금바리는 우리나라 해역에만 서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열대성 어류다 보니 일본 남부지방과 대만, 필리핀에 이르는 해역에 더 많은 개체가 서식합니다. 이들 해역은 수심이 매우 깊고도 암반까지 발달했습니다. 수온 또한 연중 20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더욱 최적화된 서식지를 제공합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분포지로 따진다면, '전설의 물고기'라 불릴 만큼 희귀어종은 아니란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 관동지방 및 규슈에서는 오래전부터 다금바리 심해 낚시가 성행합니다. (저 또한 다금바리를 잡기 위해 EBS <성난물고기>팀과 일본 원정 낚시를 제의했고 기획 단계에 돌입했지만, 끝내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표준명 다금바리 회

 

다금바리는 지금까지 설명한 특성으로 인해 잘 잡히지 않을 뿐, 멸종된 것은 아닙니다. 어쩌다 잡혀도 깊은 수심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수압 차로 눈알이 튀어 오르고 부레가 부풀어 금방 죽습니다. 위판장에 다금바리가 가끔 들어오는 걸 봤는데 대부분 죽은 상태였죠. 그래서 우리나라는 표준명 다금바리가 유통될 수 없는 구조이며, 한시적인 특별 공수 외에 꾸준히 취급하는 곳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앞서 살펴보았듯 다금바리와 자바리는 엄연히 다르지만, 두 어종 모두 최고급 횟감임에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두 어종이 모두 잡히는 일본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다금바리의 정식명이 '아라'이고, 자바리는 '쿠우' 또는 '쿠에'라 표기합니다.

 

그런데 어류 명칭이 체계적으로 확립된 일본에서조차도 규슈에서는 다금바리를 '쿠에'로 표기하고, 자바리를 '아라'로 표기하는 등 거꾸로 쓰고 부르는 일이 허다합니다. 결국 일본도 국내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두 어종 모두 '환상의 물고기'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표준명 상의 다금바리가 진짜 다금바리인지? 아니면 제주도에서 다금바리로 부르는 자바리야말로 진짜 다금바리인지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게다가 한국의 어류 명칭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어류 명칭이 국명으로 이어진 사례가 습니다. 대표적으로 참돔(마다이), 돌돔(이시다이), 참가자미(마가레이), 돌가자미(이시가레이) 등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짜와 가짜 논쟁을 펼치는 것도 도감 상 명칭과 실생활에서 부르는 명칭이 달라서 오는 혼란 때문인데요. 이 모든 원인이 몇 어류학자의 작명 센스로 인해 혼란이 가중된 점을 고려한다면, 이제는 어류학자들이 발 벗고 나서서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쓰던 이름은 살리고, 일본에서 유래된 명칭은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오늘 이 시간을 통해 표준명 다금바리와 자바리(제주 방언 다금바리)에 관한 상식이 바르게 전파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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