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비싼 명품횟감, 줄가자미(속칭 이시가리)를 아십니까?"

 

귀하고 맛도 뛰어난 생선회는 언제나 미식가들이 동경하는 횟감으로 발품 팔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맛보길 원합니다. 대표적으로 돌돔, 민어, 긴꼬리벵에돔, 대방어, 덕자 병어 등이 있으며, 흔한 광어라도 7~8kg 이상인 자연산이면 미식의 무용담으로 삼을만한 귀한 횟감입니다.

 

  

줄가자미의 유안측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값비싼 생선회는 따로 있습니다. kg당 가격으로는 이들 횟감을 따라올 수 없는, 그래서 마음을 먹지 않으면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생선회이기도 합니다. 제주 다금바리, 흑산도산 참홍어, 얼리지 않은 참다랑어, 그리고 오늘의 주제인 줄가자미가 그렇습니다.

 

  

#. 줄가자미에 대해서  
표준명 : 줄가자미(가자미목 가자미과)

방언 : 꺼칠가자미, 옴가자미, 돌가자미(X), 이시가리(X)
영명 : Rough scale sole
일명 : 사메가레이(サメガレイ)
최대 몸길이 :70cm
분포 : 일본 전 연안, 우리나라 동해와 남해, 동중국해, 캐나다 BC주 앞바다, 사할린
음식 : 회, 소금구이, 조림, 초밥
제철 : 겨울(1~3월)
어류의 박식도 : ★★★★

(★★★★★ : 알고 있으면 학자, ★★★★ : 알고 있으면 물고기 마니아, ★★★ : 제법 미식가, ★★ : 이것은 상식 ★ : 누구나 아는)

 

 

 

줄가자미의 무안측

 

#. 특징과 생태

줄가자미의 양 눈은 다른 가자미와 동일하게 오른쪽에 몰려있지만, 수심 100m 이상의 심해에서 독특한 먹잇감을 먹고 자란 탓에 다른 가자미와는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이 있습니다. 등에는 질기고 딱딱한 피질로 둘러싸여 있고 배 부분이 진한 자색을 띠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색은 어릴 때 흰색이었다가 성장하면서 점점 진해지는 경향이 있어 줄가자미가 주로 먹는 극피동물(거미불가사리류)의 성분이 축적된 결과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줄가자미는 시장에서 '이시가리'라는 이름으로 취급됩니다. 맛과 희소성, 가격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에 평범한 가자미라고 얕보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꼭두새벽부터 가자미 조업이 한창인 어부들(울산 앞바다)

 

추운 겨울 바다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외국인 노동자 선원

 

#. 줄가자미 조업은 극한직업

줄가자미를 비롯한 가자미 조업은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이뤄집니다. 선단의 규모와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곳 정자항에서 출항하는 배는  3~4명의 선원을 태우고 2시간 항해 끝에 포인트에 다다릅니다. 줄가자미 조업은 전날 미리 깔아둔 자망을 걷어 올리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그 길이가 무려 2,000m에 달합니다. 처음에는 기계가 끌어 올리지만, 그 뒤로는 네 명의 선원이 각자 위치에서 묵직한 그물을 끌어당겨 직접 고기를 빼내야 합니다.

 

기계는 쉴새 없이 그물을 토해내며 선원들의 작업 속도를 종용합니다. '반드시 살려야만 제값을 받는다.'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1분 1초가 금쪽같습니다. 그물코에 엉킨 것을 빼내려다 시간을 지체하게 되면 기껏 잡은 횟감이 죽어버려 상품성을 망치기도 합니다. 그렇게 꼼짝없는 중노동에 팔다리가 뻐근하지만, 2,000m의 그물이 다 올려지기까지는 멈출 수 없는 고된 작업입니다

 

 

2,000m짜리 저인망 그물로 잡는다

 

그렇게 줄가자미 조업은 하룻밤 사이 2,000m짜리 자망을 5~6개나 끌어올립니다. 주로 잡히는 것은 용가자미(경상도에서는 참가자미란 이름으로 취급)와 기름가자미(경상도에서는 물가자미란 이름으로 취급)이며, 줄가자미는 약 400~500마리의 가자미가 잡힐 때 한 마리꼴로 잡히는 셈입니다.

 

중간에 대구와 꼼치(물메기)도 잡히지만, 줄가자미 서식지와는 환경이 달라서 이들 어종이 잡히는 해역에서는 줄가자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드디어 줄가자미가 어획되는 순간

 

줄가자미는 수심 50m에서 500m에 이르는 깊은 바닥의 저층에 서식합니다. 취재 당일은 수심 150m에서 올라온 만큼 심해성 어류이므로 낚시로는 잡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개펄과 모래에 서식하는 다른 가자미와 달리 줄가자미는 반드시 자갈과 돌바닥이 섞여 있어야 합니다. 그곳에 엎드려 있다가 거미 불가사리나, 갑각류, 갯지렁이 등을 먹으며 성장합니다. 최대 몸길이는 70cm에 달할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워낙 개체 수가 적고 성장 속도가 느린 탓에 주로 4년생인 30cm 전후가 가장 많이 어획됩니다.

 

 

여러 척이 겨우 잡아다 모은 줄가자미가 고작 열댓 마리

 

#. 금 1돈보다 비싼 줄가자미
현재 줄가자미는 양식산을 맛볼 수 없습니다. 2013년경 양식 연구가 시작됐지만, 출하할 만큼 상품성을 키웠는지는 불투명한 상황. 따라서 우리가 접하는 줄가자미는 전량 자연산입니다. 개체 수가 많지 않고, 성장 속도가 느리며 서식지도 우리나라 동남부에만 집중된 탓에 희소성이 높죠. 여기에 겨울철 명품 횟감을 찾는 미식가들의 수요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늘 공급이 부족합니다.

 

거래 단가는 평균적으로 kg당 약 4~5만 원선입니다. kg당 13.000~15.000만 원인 용가자미보다 3배가량 비싼 편입니다. 이렇게 사들인 줄가자미는 여러 밑반찬과 함께 손님상에 올리면서 kg당 20만 원을 받게 되니 금 1돈(현 시세 : 173,000원)보다 비싼 편입니다.

 

가격만 놓고 보면 15~22만 원을 받는 다금바리와 비슷한 수준인데 이것이 고급 일식집이나 호텔로 가게 되면 30만 원 이상 뛰고, 소위 두당으로 값을 매기는 코스 요리나 오너셰프의 오마카세에 포함하면, 그때부터는 보통의 서민이 지불해야 할 범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만약, 격식을 차리지 않은 시장터 횟집에서 줄가자미를 최대한 저렴하게 맛보고자 한다면, 울진에서 포항에 이르는 동해안 수산시장을 권합니다.


 

돌가자미 또한 이시가리란 말로 취급하기에 줄가자미와 혼동할 수 있다

 

#. 줄가자미와 자주 혼동되는 돌가자미(일명 돌도다리)
줄가자미의 별칭인 '이시가리'는 딱딱한 돌을 의미하는 '이시'와 가자미를 의미하는 '가레이'가 우리식 발음으로 변형돼 '이시가리'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유사 어종인 돌가자미(일명 이시가레이, イシガレイ)와도 발음상 비슷해 이 둘을 혼동하거나 동일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죠. 그러나 '이시가리'는 일본에서도 사용하지 않은 국적 불명 단어입니다. 

 

돌가자미와 혼동을 주기도 하지만, 줄가자미보다 가격이 저렴하므로 반드시 구분해서 취급해야 하며, 이 둘을 헷갈리게 하는 '이시가리'란 명칭은 사용을 지양하기를 권합니다. 일본에서는 줄가자미를 '상어가자미(사메가레이)'로 부릅니다. 우리나라는 단단한 '쇠줄'을 의미해 오늘날 표준명이 줄가자미가 된 것으로 추측합.

 

 

줄가자미 위장에서 소화되다 만 거미 불가사리의 잔해

 

#. 줄가자미의 식용
앞서 말했듯 줄가자미는 국내에서 거래되는 횟감 중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최고급 횟감입니다. 생선회 맛은 먹잇감(혹은 사료의 구성)이 지대한 영향을 줍니다. 육식성 어류에서는 고소한 풍미가, 해초를 뜯어 먹고 사는 어류에서는 해초 향이(발효되면 씁쓸한 갯내가), 개펄의 유기물을 먹고 사는 숭어나 간재미는 그 지역 개펄 질이 맛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줄가자미 역시 먹잇감의 성분에 따라 맛과 향이 좌우됩니다.

 

줄가자미는 다른 가자미처럼 갯지렁이와 새우를 먹기도 하지만, 심해성 극피동물인 거미 불가사리를 주로 먹음으로써 줄가자미 특유의 향을 갖습니다. 동해의 차디찬 저층에서 축적된 단단한 육질과 고소한 지방도 특징입니다. 제철은 겨울이지만, 어획량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름기가 덜한 여름에 증가하면서 정작 제철인 겨울에는 귀한 횟감이 돼버렸습니다. 


 

시가 20만 원 상당의 줄가자미 회, 사진은 칼을 직각으로 세워서 썬 얇게치기(일명 이도기리)

 

줄가자미를 먹는 최고의 방법은 단연 '회'입니다. 일본에서는 소금구이(플랑베)를 하거나 밀가루에 부쳐서 튀겨먹는 '무니엘' 방식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현재로서는 줄가자미의 맛을 따라잡을 가자미 종류는 없다고 할 만큼 독보적인 가치와 희소성을 갖는데 이는 줄가자미만이 가지는 특유의 식감과 육즙, 지방의 풍미가 크게 일조합니다.

 

특히, 회를 써는 각도에 따라 식감과 맛이 크게 달라집니다. 칼을 직각으로 세워서 썬 얇게치기(일명 이도기리)는 가자미 뼈째 썰기(일명 세꼬시)에 자주 사용되는 방법으로 속살 단면적은 좁지만, 얇으면서 길게 썰었을 때 느껴지는 식감과 줄가자미 특유의 육즙과 풍미를 살린 칼질의 한 방법입니다.

 

 

특제 된장에 찍어 먹는 맛도 각별하다

 

이렇게 썰면 줄가자미 단면에 특유의 엠보싱이 나타나게 되며, 씹으면 톡 하고 터지는 재미있는 식감과 달큰하고 구수한 육즙의 맛이 돋보입니다.

 

 

칼을 뉘어서 썬 넓게 뼈째썰기(일명 홍기리)

 

붉은빛이 나는 것은 피가 아닌 거미 불가사리를 먹고 축적한 지방이다

 

또한, 칼을 사선으로 뉘우고 회 면적이 넓게 나오도록 썬 것을 '홍기리'라 부르는데 마땅한 우리 말이 없어서 여기서는 '넓게 뼈째 썰기'라 하겠습니다. 줄가자미를 넓게 뼈째 썰면 단면에 불그스름한 색이 돋보이는데 중간중간 핏기처럼 나타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피가 아닌 심해성 어류에 나타나는 지방으로 우리가 줄가자미 회를 먹고 '맛이 구수하게 받친다.'고 느끼는 근원이기도 합니다.

 

 

뼈째 썰어 까쓸해 보이지만, 막상 먹으면 굉장히 부드럽다

 

뼈 맛이 가미된 형태이므로 뼈째 씹는 꼬들꼬들한 식감을 극대화한 썰기라 할 수 있죠. 줄가자미(이시가리)는 연중 맛볼 수 있지만, 11~3월에 특히 맛이 좋습니다. 동해 묵호항, 속초, 울산, 포항, 부산 등지를 방문할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맛보기를 권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 관련글 보기

긴꼬리벵에돔과 무늬오징어는 무슨 맛으로 먹을까?

전문가도 잘 모르는 병어와 덕자병어 차이

최고급 생선회, 맛의 승자는? 돌돔 vs 강담돔 vs 긴꼬리벵에돔

환상의 생선회 '넙치농어'를 아십니까?

진품 다금바리(アラ)회, 숨가빴던 시식기

 

정기구독자를 위한 즐겨찾기+


Posted by ★입질의추억★
:

카테고리

전체보기 (3971)
유튜브(입질의추억tv) (581)
수산물 (635)
조행기 (486)
낚시팁 (322)
꾼의 레시피 (238)
생활 정보 (743)
여행 (426)
월간지 칼럼 (484)
모집 공고 (28)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03-19 13:50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