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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생선회, 맛의 승자는? 돌돔 vs 강담돔 vs 긴꼬리벵에돔
언젠가 '최고의 미어(味魚)'에 관해 거론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맛있는 생선회를 꼽으라면 우럭, 광어, 도다리 정도이고 좀 더 나아가서는 감성돔, 참돔, 농어, 돌돔을 꼽기도 합니다. 일반인들이 선호하는 생선회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런데 이를 일식 애호가와 미식가, 낚시꾼으로 확장하면 꽤나 생소한 횟감들이 거론됩니다.
"긴꼬리벵에돔, 벤자리, 붉바리, 다금바리, 능성어, 붉은쏨뱅이, 강담돔, 넙치농어, 뿔돔, 줄가자미(이시가리), 대구횟대, 띠볼락(참우럭) 등등"
주관적인 취향과 관점이 들어가긴 하나 대체로 수렴된 의견은 위와 같습니다. 지금까지 낚시와 수산물 취재를 해온 제게도 인상적인 생선회가 몇몇 있습니다. 그 목록과 링크를 걸어드립니다.
1) 다금바리 : 진품 다금바리(アラ)회, 숨가빴던 시식기
2) 자바리(제주 다금바리) : 제주 다금바리 기행(2),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맛
3) 벤자리 : 최고의 맛, 여름 벤자리회
4) 줄가자미(이시가리) : 한국에서 가장 값비싼 생선회, 줄가자미의 황홀한 칼맛
5) 넙치농어 : 환상의 생선회 '넙치농어'를 아십니까?
6) 돌돔 : 자연산 돌돔 시식기
7) 쥐치 간과 긴꼬리벵에돔 : 바다의 푸아그라 쥐치 생간과 긴꼬리 벵에돔회
위에서부터 긴꼬리벵에돔, 강담돔, 돌돔
이날은 그간 인상 깊었던 몇몇 횟감을 한 자리에 모셨습니다. 사진은 얼마 전, 대마도에서 잡아 온 긴꼬리벵에돔과 강담돔, 돌돔인데 공교롭게도 세 어종의 씨알이 비슷해 비교 시식하기에는 이보다 나은 조건이 없습니다. 왼쪽의 알은 돌돔의 것으로 아직 산란 전임을 말해주는 것이어서 맛의 기대가 큽니다. (알은 소금구이로 먹었습니다.) 이날 시식단을 초대해 '최고의 미어(味魚)'란 말이 아깝지 않은 세 어종을 비교 시식해 맛의 승자를 가려봅니다. 시식단은 근처에 사시는 저희 처형 식구입니다. ^^;
<사진 1> 긴꼬리벵에돔
먼저 긴꼬리벵에돔부터 손질에 들어갑니다. 우리 연안에 서식하는 벵에돔은 벵에돔과 긴꼬리벵에돔 두 종류로 구분됩니다. 벵에돔과 달리 긴꼬리벵에돔은 세찬 조류를 거슬러 회유하는 특징이 있으며, 벵에돔보다 약 10cm 정도 더 크게 성장해 최대 몸길이가 85cm까지 보고 됩니다. 다만, 긴꼬리벵에돔의 주 서식지는 일본 규슈와 혼슈 남단으로 20~25도 정도의 아열대 해역에서 크게 성장하기 때문에 국내에는 60~65cm 정도까지만 보고되고 있습니다.
긴꼬리벵에돔의 회유 반경은 대양을 횡단하는 참치에 비할 수 없지만, 거리상으로 수천 킬로미터는 족히 됩니다. 해마다 봄이면, 대만에서 북상하는 쿠로시오 해류에 몸을 실어 제주도와 남해 연안에 도달합니다. 염도 높은 고수온을 좋아하므로 연안류가 많은 서남해에는 상대적으로 개체 수가 떨어지며, 서해에는 거의 서식하지 않아 조과와 어획량이 전무합니다.
국내 주산지로는 제주 모슬포 앞바다를 꼽습니다. 모슬포와 가파도 사이의 해협은 수심이 깊고 물살이 세 긴꼬리벵에돔이 연중 잡힙니다. 낚시 포인트는 주로 경남과 전남의 먼 섬에 포진됩니다. 같은 씨알이면 벵에돔보다 긴꼬리벵에돔이 힘이 강해 낚시꾼들에게 인기가 있으며, 특유의 지방 감과 단단한 근육이 주는 차진 맛은 돌돔에 견줄 만합니다.
긴꼬리벵에돔은 감성돔, 참돔과 같은 흰살생선으로 <사진 1>과 같이 불그스름한 혈합육 가운데 미묘한 푸른 빛이 섞인 잿빛을 낸다는 게 특징입니다. 살이 단단해 숙성회로 먹기에 알맞으며 특히, 겨울에 잡힌 긴꼬리벵에돔은 하루 이상 숙성해도 식감이 물러지지 않아 초밥용으로도 알맞습니다.
이제 겨우 한 마리를 포 떴을 뿐인데 칼에는 기름기가 잔뜩 묻어나옵니다. 이 기름기가 긴꼬리벵에돔의 고소한 맛을 내는 지방입니다.
<사진 2> 돌돔
다음은 돌돔을 손질합니다. 돌돔은 말 그대로 암초나 돌무더기가 많은 곳을 서식지 삼아 생활합니다. 최대 몸길이는 70cm가 넘으며, 얼마 전 대마도에서 73cm 돌돔이 낚여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다금바리와 줄가자미를 제하고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며, 돌돔꾼 중 일부는 자신이 잡은 돌돔을 횟집에 팔아 출조 경비를 뽑기도 합니다.
돌돔은 바다낚시의 끝판왕입니다. 수많은 바다낚시 대상어 중에서도 파이널 보스란 이미지가 있어 여러 장르의 낚시를 즐기다가도 최종적으로는 돌돔을 꼭 잡아봐야 할 낚시꾼의 로망입니다. 저는 이번 대마도 출조에서 돌돔 원투낚시에 처음 입문했습니다. 익숙지 않은 장비와 캐스팅에 애를 먹었지만, 마지막 날 이 녀석을 잡는 데 성공하면서 우리 집 식탁에 올릴 수 있었습니다.
포는 일반적으로 '삼마이오로시'라 불리는 석 장 뜨기를 합니다. 저는 일식이 직업이 아니라 좀 서툴러도 양해바랍니다. ^^; 제 직업은 글쟁이입니다. 글쟁이라도 어류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는 낚시로 직접 잡아보고 손질하면서 터득하는 것이므로 다소 서툴어도 이 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제게 있어 낚시는 단순히 손맛을 보고 회를 썰어 먹기 위함이기보다는 해당 어종의 습성과 생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과 영감을 얻는 수단입니다.
40cm급 돌돔을 손질하니 이만한 서덜이 나왔습니다. 대가리와 뼈를 넣고 푹 고우면 여름 보양식으로 손색없는 돌돔 곰국이 되겠죠.
돌돔 회는 이런 빛깔을 띱니다. 진한 붉은색 혈합육에 티끌 하나 없는 흰살에서 황태자의 고귀한 자태마저 느껴집니다. 황태자란 표현이 과하지 않은 이유는 그간 자라오면서 먹어치운 돌돔의 먹이에서 비롯됩니다. 이날 잡힌 돌돔의 위장에는 제가 사용한 성게가 가득 들었고, 전날 잡힌 돌돔에는 소라(제주 뿔소라)가 잔뜩 들었습니다. 또 어떤 돌돔은 전복을 먹기도 하며, 오분자기를 비롯해 한우 1++보다 비싼 참갯지렁이 등 그간 자라오면서 먹어치운 것만 수백에서 수천 만원어치이고, 값비싼 먹잇감의 영양분이 살에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사실에서 횟감의 황제나 황태자란 표현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사진 3> 강담돔
마지막으로 돌돔 사촌인 강담돔을 손질합니다. 강담돔은 돌돔과 매우 유사하게 생겼으면서도 특유의 호피무늬(혹은 교련복 무늬)가 눈에 띄는 고급 횟감입니다. 지역의 수산시장에서는 돌돔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보다 조금 낮은 가격에 팔지만, 그래도 감성돔과 참돔보다는 높은 시세를 유지하며 여전히 고급 횟감으로 군림 중입니다. 서식지는 돌돔보다 위도가 낮고 좀 더 따듯한 바다를 선호하지만, 국내에서는 강담돔이 돌돔보다 귀하고, 남방 강담돔보다 맛이 좋아 돌돔과 쌍벽으로 취급됩니다. 다만, 시중에 유통되는 돌돔과 강담돔은 대부분 일본산 양식입니다. 야생에서 자란 강담돔은 최대 90cm까지 성장하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강담돔과 돌돔은 뼈와 머리를 장식으로 올립니다. 키친타월로 진액 같은 불순물을 깨끗이 닦고, 냉장 보관해 두었다가 이렇게 회를 뜰 때 올리면 됩니다.
그 위에 무채를 올리고.
이렇게 회를 올리면 고급 일식집에서나 볼 수 있는 통사시미가 완성됩니다. 그 옆에는 껍질을 살짝 데쳐 얼음물에 담갔다 빼낸 껍질 숙회(일명 유비끼).
강담돔 뱃살
생선회 애호가라면 가장 먼저 손이 갈 부위인 뱃살.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습니다.
돌돔도 같은 방법으로 담아냅니다.
돌돔 뱃살
어서 한 젓가락 들고 싶으나 사진 기록을 위해 침만 삼키고 있습니다.
돌돔 껍질 숙회
돌돔 하면 버릴 게 없는 생선으로 유명합니다. 식도와 위장, 간, 창자는 데쳐서 먹고, 쓸개는 소주에 타 먹습니다. 그리고 돌돔 껍질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얼음물에 담갔다 빼면 꼬들꼬들한 식감이 일품입니다. 이날 돌돔 껍질과 강담돔 껍질도 비교 대상이 되었는데 강담돔 껍질이 생각보다 연하고 흐믈흐믈해 식감과 맛에서는 돌돔 껍질에 점수를 더 줬습니다.
긴꼬리벵에돔
긴꼬리벵에돔은 반은 껍질을 벗겨 썰고, 나머지 반은 토치로 살짝 구워 둥그렇게 둘러쳤습니다. 긴꼬리벵에돔은 반질반질한 표면에서 녹진한 지방감이 느껴집니다.
특히, 토치로 구워 불맛을 살린 뱃살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위입니다. 이것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는데 살짝 구운 김에 저 부위를 한두 점 올리고 특제 쌈장 소스와 갓 지은 보리밥을 올려서 입에 넣으면, 아마도 그 사람의 기분은 천국을 날고 있을 것입니다. 특제 쌈장 소스를 블로그에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지금 준비 중인 저의 세 번째 책에 양보하기 위함이니 이점은 양해 바랍니다. ^^;
잡힌 산지가 같고 씨알도 비슷하며, 제철도 비슷한 조건에서 돌돔 vs 강담돔 vs 긴꼬리벵에돔의 진검 승부가 펼쳐지는 순간입니다. 아무리 낚시를 즐기는 저라도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이런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맛이란 다분히 주관적이라 의견 차가 나올 수 있지만, 이렇게 한 자리에 놓고 비교 시식을 하면, 맛의 미묘한 차이가 좀 더 명료하게 느껴지면서 승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소스를 찍지 않고 살 맛만 보고, 두 번째는 고추냉이 한점을 올려 간장에 찍어 먹습니다. 이후 초고추장과 쌈장에도 찍어보면서 여러 방법으로 맛을 본 결과, 이날 시식단의 의견이 슬슬 모입니다. 돌돔 vs 강담돔 vs 긴꼬리벵에돔의 승자는
1위 긴꼬리벵에돔
2위 돌돔
3위 강담돔
이라는 예상을 뒤엎는 결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유가 있었는데 아래 사진을 보면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날 횟감을 공수하는 과정에서 저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피는 제대로 뺐는데 돌돔과 강담돔은 내장을 챙겨야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가져온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소화되다 만 성게는 녹아서 흐물거렸으며 악취가 났습니다. 생선 내장은 생선의 모든 부위 중 가장 먼저 부패하는 기관입니다. 스티로폼 박스에 각얼음을 넣어도 내장만큼은 숙성이란 개념 자체가 통하지 않는 부패에서 가장 취약한 부위입니다. 내장을 데쳐 먹더라도 손질하자마자 바로 먹을 것이 아니라면, 버려야 했음을 순간 잊었던 것입니다.
대마도에서 서울로 가져오면 꽤 많은 시간이 지납니다. 스티로폼 박스를 열었을 때는 얼음이 70% 이상 녹은 상태이며, 냉기는 어느 정도 보존돼 고기 자체는 찬 상태를 유지하지만, 내장에는 소화되다 만 음식물의 악취와 가스가 회 맛을 망친 것으로 보입니다. 강담돔과 돌돔에서 성게 특유의 갯내가 난 것도 이 때문이고. 처음 몇 점은 의식하지 않았지만, 계속 먹으면서 누적된 향은 우릴 거슬리게 했고 특히, 강담돔은 갯내가 심해 절반 이상 남기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젓가락은 긴꼬리벵에돔에 집중됐고, 토치로 그슬려 불향을 가미한 껍질구이회가 이날 가장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다음 날, 긴꼬리벵에돔으로 쥔 초밥
잘 숙성된 긴꼬리벵에돔의 껍질 구이 초밥은 언제나 옳은 선택이 되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이번 시식은 그렇게 허무한 결과로 끝이 나버렸습니다. 제아무리 버릴 게 없는 돌돔과 강담돔이라도 즉석에서 잡아먹을 게 아니라면, 내장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으로 위안 삼아봅니다.
다음날 저는 남은 긴꼬리벵에돔으로 초밥을 쥐었습니다. 불향이 은은히 나는 껍질구이 벵에돔은 언제나 저를 만족시켜 줍니다. 이런 걸 보면 벵에돔 낚시가 낚시를 모르는 일반 사람과 미식가가 누릴 수 없는 큰 혜택임을 실감합니다. 불꽃 튀는 승부를 예상했던 이번 시식은 몇 가지 문제로 허무하게 끝나버렸지만, 그래도 이 세 어종이 최고급 생선회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직은 다른 어종보다 자원량에서 여유가 많은 세 어종입니다. 후세에도 이들 어종이 최고의 생선회로 남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잘 보존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시식 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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