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가자미 잡이(상), 겨울 별미에 가려진 힘겨운 사투


 

 

일반적으로 가자미는 구이와 조림용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동해에서는 산 가자미를 즉석에서 썰어내는 '뼈째 썰기(일명 세꼬시)' 회로 유명합니다. 살아있다면, 종류 막론하고 어느 가자미든 횟감으로 먹을 수 있지만, 특별히 이 계절에 맛이 좋은 가자미는 몇 종류로 제한됩니다. 대표적인 횟감용 가자미로는 '참가자미'와 '용가자미'를 꼽습니다. 동해에서는 이 두 가자미를 각각 '노랑가자미'와 '참가자미'로 잘못 불리고 있지만, 주머니 얄팍한 서민이 맛 좋고 싱싱한 가자미 회를 맛보기에는 이만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날 저는 좀 더 특별한 횟감을 찾아 나섰습니다. 소위 '회 좀 먹어봤다는 미식가'들 사이에서 이시가리란 말로 통하는 '줄가자미'입니다. 줄가자미는 제주 다금바리, 흑산도산 참홍어, 그리고 生참다랑어와 함께 최고의 생선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요즘 한창 제철인 대방어의 kg당 평균 시세가 30,000~35,000원임을 고려한다면, 그보다 3~4배나 높아 우리나라에서는 명실상부 가장 비싼 생선회이고 또 이 철에 한껏 맛이 올라있어 미식가로서는 놓칠 수 없는 별미입니다. 그것을 소개하고자 떠난 이번 기행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맙니다.

 

 

새벽 2시, 울산 정자항

 

2016년 1월 초순, 저의 가자미 기행은 기록적인 한파가 꿈틀대기 시작한 시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은 수술로 제거했지만, 이때만 해도 1.8cm의 결석을 몸(요관)에 지닌 채 떠나야 했던 긴 항해에서 행여나 배라도 아파져 온다면 진통제만이 절 구해줄 유일한 수단이기에 심리적인 부담을 떠안은 채 배에 올라야 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긴 항해 시간입니다. 애초 여덟 시간인 줄로만 알았다가, 현장에서 '작업 시간만 8시간'이라는 말을 듣고선 눈앞이 캄캄했던 것. 게다가 찾고자 하는 줄가자미도 최근에 어획량이 떨어지고 있어 '운 좋아야 한 마리'라는 극악한 확률로 기약 없는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선원들이 대기 중이다

 

김창완 선장

 

이날 가자미 조업을 보여줄 김창완 선장님. 특별히, 주의보가 아니면 무조건 조업을 나간다기에 이 지역에서는 다른 어선보다 출항 횟수가 많기로 유명합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사진상에는 여기저기 붙은 부적이 눈에 띕니다.

 

 

MBC 어영차 바다야 촬영팀

 

배 한 쪽에는 촬영 준비가 한창입니다. 이번에 방영되는 주제가 바로 '줄가자미'인데 과연 하루 조업에 한 마리 나올까 말까 한 줄가자미를 이날 볼 수 있을런지.

 

 

밤바다를 가르기 시작한 가자미 어선

 

어탐기에 나타난 수심이 143m를 가리킨다

 

가자미 조업은 가는 데만 2시간, 작업하는데 8시간, 그리고 돌아오는데 2시간, 이렇게 총 12시간 정도 진행됩니다. 속력을 높여 망망대해를 가른 배는 두 시간 만에 작업 현장에 도착. 좌표를 확인하고 서치라이트를 분주히 비추며 부표를 찾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외국인 선원 3명과 한국인 사무장 1명. 좁은 선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나와 작업복을 입는 모습에서 어부의 고단한 삶이 느껴집니다. 특별히 주의보가 아니면, 매일 반복되는 힘겨운 일상 아니 사투에 가까운 작업인데 그나마 이날은 먼바다치고 파도가 잔잔한 편이라서 다행입니다. 내일부터 해상 날씨가 나빠진다는 예보에 촬영을 하루 앞당기자는 선장의 판단이 적중한 것입니다.

 

불행 중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겨울 바다는 겨울 바다인가 봅니다. 남부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영하 1~2도에 매섭게 불어오는 북풍은 어부는 물론, 촬영팀의 체감 온도를 낮추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동계용 낚시 하의에 거위털 패딩으로 무장한 저도 사방이 뻥 뚫린 바닷바람에서 속수무책이더군요. 첫 그물을 올리기까지의 두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이윽고 시작된 그물 작업

 

 

가자미 조업은 자망을 걷어 올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수심 150m 개펄 바닥에 놓인 자망을 1차로 끌어올리는 일은 기계가 하지만, 그 뒤로는 4명의 선원이 각자의 위치에서 일일이 끌어당겨야 하는 고된 작업입니다. 파도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으며 연신 오르내리는 선수(船首)는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할 선원의 체력을 빼앗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기계는 쉴새 없이 그물을 토해내며 작업 속도를 종용합니다. 그물코에 낀 고기를 빼내는 데 시간이 지체되면 지체될수록 작업량이 쌓이면서 부하가 걸리기에 손이 아주 재빠르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빼낸 가자미는 즉각 물칸에 던져 넣어 살립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군더더기가 없어야 하며, 밥 먹는 시간 외 여덟 시간 동안은 쉬지 않고 일해야 하니 극한의 직업이 따로 없습니다. 만약, 저 같은 사람이 이 일을 했다면 하루 뛰고 며칠간 몸 저 누웠을 것입니다.

 

 

어부의 일거수일투족을 화면에 담고 있다

 

점점 쌓이는 그물

 

양쪽에 자리한 선원은 그물을 바짝 당기고, 뒤쪽에 앉은 선원은 그물코에 걸린 고기를 빼냅니다. 2,000m에 달하는 그물을 전부 걷어올리면 어느새 사람 키만큼 쌓이고 그것을 다시 바다에 흘리기까지 드는 시간은 약 1시간에서 1시간 20분. 이런 작업을 여섯 번 반복하면 하루 작업이 끝나는 고된 일상입니다. 조업량과 관계없이 월급으로 급여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렇게 매달 번 돈을 가족에게 송금할 것입니다. 고국에서는 대졸자가 취업해도 우리 돈으로 50만원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3배가량 벌어들일 수 있으니 일이 고되어도 가족을 생각하면 멈출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가장은 힘들어도 몸이 녹슬지 않아야 하며, 쉴 새 없이 석탄을 때우며 달리는 폭주기관차와도 같은가 봅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외국인 노동자이지만, 객지에서 고된 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그들은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표준명 용가자미(지역에서는 참가자미로 잘못 불리고 있다.)

 

아직 그물 하나도 못 건져 올렸는데 가자미가 이렇게 쌓였습니다. 이렇게 잡힌 산 가자미는 항으로 돌아오자마자 즉시 경매에 치르고, 활어차에 실려 각 지역의 횟집으로 옮겨집니다. 주로 경주, 감포, 울산, 포항, 부산 등지의 횟집으로 많이 나가며 그중 일부는 소량이나마 수도권으로 오겠죠.

 

 

상자에 담긴 가자미는 이미 죽었거나 죽기 직전인 것들입니다. 횟감으로는 쓸 수 없지만, 한 번의 조업에 꽤 많은 양이 나오므로 반찬 감으로  판매되겠지요. 조업을 지켜보니 활어와 선어의 비중은 약 7:3 정도입니다. 어획된 100마리 중 30마리가 그물코에 끼여 발버둥 치다 죽거나 활력이 둔화해 선어가 됩니다. 

 

 

가자미가 쉴새 없이 올라온다

 

가자미 풍어 속에 큼지막한 대구도 종종 올라오고

 

발버둥 치다 그물을 감아버린 대구

 

비교적 간단히 빼낼 수 있는 가자미와 달리 큼지막한 대구나 아귀가 올라오면, 어부의 손동작이 더욱 빨라집니다. 기계는 계속해서 그물을 토해내는 가운데 엉킨 그물을 풀고 대구를 상처 없이 빼내는 작업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어지럽습니다. 작업 시간은 지체되고 들어오는 그물이 계속해서 쌓이면 선장은 기계 작동을 멈춥니다.

 

 

이런 식으로 빼낸 대구도 한둘씩 쌓여 갑니다. 대구는 살아있어도 활어 유통이 대단히 어려울 뿐 아니라, 주로 탕감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렇게 구석에 방치합니다.

 

 

물메기도 올라오고

 

 

표준명 기름가자미(지역에서는 물가자미로 잘못 불리고 있다.)

 

주로 횟감으로 쓰이는 용가자미와 함께 꾸득히 말려 지지고 조려먹는 기름가자미도 모습을 종종 드러냅니다.

 

 

대물급 아귀가 걸려들었다

 

표준명 황아귀

 

우리가 흔히 '아귀'로 알고 있는 표준명 황아귀. 나중에 항에서 재보니 5kg이 나왔고 일반 소비자가로 5만원에 낙찰되었습니다.

 

 

표준명 꼼치(지역 방언 물메기)

 

어떨 때는 대구가 연이어 올라오는가 하면, 어떨 때는 물메기가 연이어 올라오곤 합니다. 2,000m짜리 그물을 여섯 개나 거둬들이니 그 넓은 지역이 같은 지질, 같은 서식 환경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물메기가 잡히기 시작하면 가자미 조업량은 다소 주춤한 경향이 있습니다. 산 가자미를 많이 잡아야 그날 벌이가 올라가는 선장 입장에서는 연신 올라오는 물메기가 탐탁지 않겠지요.

 

 

표준명 눈볼대(지역 방언 아까무쯔, 빨간고기)

 

이 지역 차례상의 단골손님이자 고급어종인 눈볼대도 간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깊은 수심에서 잡히면 수압 차로 인해 오래 살지 못하므로 대게 이런 생선은 선어 유통입니다. 구워서 먹으면 맛이 일품이죠.

 

 

물메기의 것으로 보이는데 가끔은 이렇게 흉측한 뼈만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물에 갇혀 발버둥 치다 죽으면, 그 뒤로 달려드는 것이 가자미 그물에는 잘 걸리지 않는 새우입니다. 

 

 

작업은 새벽을 거쳐 동도 트지 않은 아침으로 이어졌다

 

이때부터는 가자미가 쏟아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잡히고 있었습니다. 이 추세라면 만선의 기쁨은 시간 문제. 선장의 얼굴이 밝습니다. 하지만 가자미가 쏟아져 올라오는 만큼 작업 트래픽도 쌓이고 있습니다. 기계는 계속해서 그물을 끌어올리면서 미처 처리되지 못한 가자미가 점점 쌓여만 갑니다.

 

 

시간은 어느덧 6시. 일출을 약 한 시간 반 정도 남긴 시점에서 총 6개의 그물 중 3개가 마무리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가자미를 비롯해 대구와 물메기까지 쌓이고 있지만, 저와 제작진이 애타게 찾는 줄가자미(일명 이시가리)는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남은 3개의 그물에도 나온다는 보장이 없고, 한 마리라도 나와서 녹화 분량을 채우지 못한다면, 12시간의 고된 취재는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조타실로 들어가 현재의 작업 상황과 줄가자미에 대해 선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상황을 지켜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명품 횟감 줄가자미. 이렇게 가자미가 수백 마리씩 잡히는 데도 이리 귀할 줄이야. 가자미 일이백 마리 중 한 마리는 나오겠지라 생각했던 제 판단은 틀렸고 이제는 더도 말고 한 마리라도 나와주길 바라는 간절한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두 마리도 필요 없다. 한 마리라도 나와준다면, 12시간 동안 추위에 시달리고 멀미에 쓴 물을 토해야 했던 기억도 말끔히 떨쳐내리니. 그렇게 애타는 마음으로 작업을 지켜보다가 어느새 제 주변에는 아무도 없음이 느껴졌습니다. 선실로 돌아가니 촬영팀들은 멀미에 지쳐 쓰러져 있었고, 항으로 돌아갈 시간은 점점 다가옵니다. 과연 이날, 최고의 명품 횟감 줄가자미를 볼 수 있을지. (다음 편 계속)

 

※ 해당 방송분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방송 보러가기 (로그인 필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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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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