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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가자미 잡이(하), 동해의 명품 가자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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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부터 시작된 가자미 잡이는 밤새 이어졌고, 쉼 없이 올라오는 가자미로 일손은 더욱 바빠져만 갑니다. 하지만 저와 촬영팀이 찾고 있는 줄가자미(일명 이시가리)는 아직도 보이지 않습니다. 일이백 마리 중 한 마리 나올까 말까 한 표준명 도다리(담배 도다리)보다도 더욱 극악한 확률인 줄가자미는 일반 가자미가 사오백 마리 정도 잡힐 때 겨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는 수준입니다. 2,000m짜리 그물을 여섯 개나 끌어 올리는 고된 작업에서 이제 겨우 절반을 넘겼지만, 우리가 애타게 찾는 동해의 명품 가자미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입니다.
여섯 개의 그물 중 세 번째 그물을 끌어올리는 중입니다. 수심 150m의 개펄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가자미는 대게 용가자미와 기름가자미가 주종. 선장이 포인트를 제대로 짚었는지 앞선 그물보다 더 많은 가자미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에 맞춰 선원들의 손놀림도 빨라지고 있지만, 한꺼번에 많은 가자미가 올라오면서 작업해야 할 가자미가 쌓여만 갑니다. 사실 정지된 사진으로는 거친 현장감을 표현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겠죠. 계속해서 귀둥이를 때리는 매서운 겨울바람과 시끄러운 모터 소리, 그리고 쉼 없이 흔들리는 배의 진동은 완전히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그물을 끌어올리기 시작하면, 작업을 멈추지 못하는 특성에 고된 노동은 가중되기만 합니다. 특별히 그물이 엉켜서 선장이 기계 작동을 멈추지 않은 이상 2,000m에 달하는 그물을 전부 끌어올리기까지는 쉼 없이 이어집니다. 끊임없이 토해내는 그물에서 재빨리 가자미를 분리해 살려야 제값을 받기에 조금이라도 작업이 지체되면 제값을 받아야 할 가자미는 헐값이 되고, 입항 시간에도 차질이 생기겠지요. 굉장히 고단하고 힘든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했던 이들의 삶이기에 묵묵히 일하는 뒷모습에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타국의 매정한 현실이 묘하게 교차합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가자미들
많은 가자미가 잡혀 옴에 따라 MBC 어영차바다야 촬영팀도 바빠집니다. 시청자들에게 생동감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자 다양한 장비들이 동원되는데요. 그중 하나가 방수 카메라를 이용, 그물에서 분리된 가자미가 이곳으로 던져지며 차곡차곡 쌓이는 장면입니다.
제법 큼지막한 문어가 그물에 걸려온다
문어는 주로 암초가 무성히 발달한 곳에 서식하기 때문에 뻘밭에 사는 가자미 잡이에서는 드물게 올라오는 편입니다.
작업 상황을 지켜보며 어구의 장치를 콘트롤 중인 선장
왼쪽 어군탐지기에는 현재 물속 상황이 어떠한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수면에서 150m 바닥에 이르기까지 부유하는 생물을 점 단위로 표시해주는데 바닥이 붉은색인 이유는 수많은 점이 모여서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 점은 가자미의 먹이가 되는 동물성 플랑크톤이나 작은 꼴뚜기가 무수히 깔린 것으로 보이며, 선장은 이것으로 가자미 포인트를 유추해 그물을 내립니다. 어군탐지기는 반드시 '움직이는' 해양 생물만을 점 단위로 표시하므로 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가자미나 광어, 그밖에 움직임이 없는(휴식 중인) 어류는 잡아내지 못합니다. 사진의 어군탐지기를 보면 50~100m 사이에 많은 어군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직접 눈으로 보지 않은 이상 그것이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노련한 선장은 이 계절, 이 시간에 무엇이 떼 지어 다니는지를 거의 정확히 유추해 냅니다. 사진의 흰 점들은 대부분 동물성 플랑크톤이거나 작은 꼴뚜기들이라는 것이 선장의 설명.
표준명 용가자미(위), 기름가자미(아래)
우리가 애타게 찾던 명품 가자미는 여태 소식이 없어서 앞서 잡힌 가자미에 관해 부연 설명을 덧붙입니다. 사진은 용가자미와 기름가자미로 모두 동해에서 동남해에 걸쳐 서식합니다. 우리 연안에 서식하는 20~30여 종의 가자미 중에서는 가장 흔한 가자미죠. 같은 동해라도 특히, 경상남북도에 집중 서식하기 때문에 이 지역의 수산시장에는 활 용가자미와 꾸득히 말린 기름가자미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용가자미와 기름가자미의 제철은 겨울에서 봄까지이며 두 어종의 살성과 식감, 맛, 영양 성분이 판이하므로 용도 또한 달리합니다. 우선 용가자미는 살이 담백한 흰살생선으로 활어 유통이 많아 이 지역(울산, 경주, 감포, 부산)에서는 활어회 뼈째썰기(세꼬시), 물회 재료로 인기가 좋습니다. 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쫄깃한 식감을 가졌으면서 씹으면 씹을수록 차지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죠. 다만, 살 자체는 깊은 맛을 내지 않으므로(숙성하지 않은 이유로) 이 시기에 연해진 뼈 맛을 빌린 형태로 뼈째썰기(세꼬시) 혹은 실처럼 얇게 썰기(이도기리)로 칼맛을 살립니다.
한편, 기름가자미는 생명력이 짧아 금방 죽고, 이를 활어회로 썰어 먹지도 않으므로 활어 유통은 드물며, 대부분 선어로 들여와 경매를 치른 뒤 건어물로 판매됩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름(지방)이 많아 열을 가한 화식(火食)에 의해 지방이 활성화하면, 고소한 풍미가 나는 생선입니다. 그래서 기름가자미는 주로 구이로 먹었을 때가 가장 맛있습니다.
표준명 용가자미(위), 기름가자미(아래)
두 가자미를 뒤집으면 차이가 명확히 보입니다. 용가자미는 흰 배를 중심으로 가장자리에 자색 띠가 꼬리 쪽으로 이어지지만, 기름가자미는 전체가 어둡고 자색을 띱니다. 주둥이 크기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광어는 입이 크고 사나운 이빨을 가졌지만, 도다리와 가자미는 입이 작고 이빨도 없습니다. 기름가자미는 그러한 가자미의 특징을 잘 나타내지만, 용가자미는 가자미과 어류 중 입이 큰 편이고 잔 이빨도 있습니다. 그래서 동해 사람들은 입이 큰 용가자미를 두고 '아구다리(아구 = 입)'라 부르기로 합니다.
생선 이름과 관련해 한 어종을 두고도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불려서 이 문제는 꽤 복잡합니다. 용가자미와 기름가자미가 대표적인데, 이 두 어종은 경상도에서 각각 참가자미와 물가자미로 '잘못' 불리고 있습니다. 참가자미와 물가자미는 따로 있으므로 표준명으로 불러줘야 하지만, 울산을 비롯해 경주, 포항 등 경상도에서는 용가자미에 없는 '참'자를 붙여 자기 고장에서 많이 나는 횟감용 가자미를 홍보하는데 열을 올렸습니다. 그 결과 용가자미는 전국적으로 '참가자미'로 잘못 인지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 지역 횟집에 가면 수조에 용가자미가 가득하지만, 메뉴판에는 이구동성 '참가자미'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대다수 상인과 어부들은 참가자미가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란 이름이기 때문에 용가자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중 일부는 오랫동안 참가자미라 불렀던 이 가자미가 용가자미임을 알면서도 주위 분위기에 편승해 참가자미로 취급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진짜 참가자미는 이 지역에서 많이 잡히지도 않을뿐더러 용가자미가 참가자미 행세를 하고 있어 다른 이름(노랭이, 노랑가자미)으로 부릅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주요 원인은 자기네 고장에서 많이 나는 수산물의 상품성을 높이는 데서 비롯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류도감의 표준명을 무시함으로써 진짜 참가자미의 존재 가치를 희석하고 명칭에 의한 상거래 혼선을 빚기에 저는 이 현상을 '지역 이기주의의 발로'로 보고 있으며 척결돼야 할 관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앞서 국립수산과학원은 잘못된 사투리 및 근거 없는 명칭을 순화하고자 포스터를 배포해 계도를 유도했지만, 허사로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아침 7시 30분
꼭두새벽에 시작된 작업은 아침이 돼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폭발적으로 잡히는 가자미에 선원의 손길은 더욱 분주해집니다.
물칸에 쌓이는 가자미들
물칸에 활 가자미가 차곡차곡 쌓여가지만, 일부 죽어버린 가자미는 이렇게 따로 분류해 놓습니다. 한창 제철인 용가자미는 활어 기준으로 경매 단가가 kg당 13,000~15,000원에 거래됩니다. 이것이 횟집에 옮겨지면 각종 부요리와 함께 한 상 차려지며 '참가자미회'라는 이름으로 1kg에 5~7만원 정도 받게 됩니다.
그에 비해 명품 가자미인 줄가자미의 경매 단가는 kg당 4~5만원, 소비자가로 15~20만원 선임을 감안하면 용가자미보다 3~4배나 비싼 것입니다. 하지만 어획률은 용가자미의 1/400이 될까 말까 해 1/1000 확률로 낚이는 범가자미(멍가레)와 함께 국내에서 가장 비싼 명품 가자미로 인식됩니다. 이 정도 가격이면 제주 다금바리와 흑산도산 참홍어, 그리고 生참다랑어 회와 견주어도 절대 꿀리지 않는 수준입니다.
지금까지 총 여섯 개 그물 중 3개를 걷어 올렸습니다. 닻을 올리고
한 개의 그물 부피가 이렇게 커서 올린 즉시 바다로 내립니다.
절반의 작업이 끝나고 아침을 먹기로 합니다. 한 선원이 갓 잡은 대구를 손질합니다.
내장을 빼고 내장을 감싼 검은 막을 깔끔히 제거합니다.
암컷 대구에서 나온 명란 좀 보십시오. 2월 산란기를 앞두고 알집이 터질 듯 꽉 들어찼습니다. 사실 싱싱한 대구라면 쓸개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내장을 탕거리로 쓸 수 있지만, 여기서는 알과 간(애)만 넣은 다음.
큼지막한 대구 한 마리를 통째로 넣고 끓이기 시작합니다. 바람 때문에 가스 불이 약해서 이후로 한 시간은 족히 끓여야 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작업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이윽고 식사 시간이 찾아왔는데 8시간의 고된 노동 중 유일하게 쉬는 시간도 이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된 노동의 대가에 비해서는 허술한 상차림이지만, 척박한 여건 속 바다 한가운데서 갖는 식사는 이게 최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대충 때려 넣고 끓인 투박한 대구탕이지만
이 안에는 동해의 차디찬 바다맛과 선원들의 땀이 한껏 녹아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갓 잡힌 대구로 끓인 탕이라니 더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국물 한 모금 호로록하고 마시자 언 몸이 스르륵 하고 풀리면서 경직되었던 근육도 풀어지는가 싶습니다. 소금 외에 별다른 간을 하지 않았고, 다른 부차적인 육수 재료를 쓰지 않았음에도 국물에서는 감칠맛이 폭발합니다. 이제 막 이노신산(IMP)이 생성되기 시작한 대구에 녹진한 맛을 가득 품었을 대구 간, 그리고 몇 가지의 채소가 합작해 낸 결과입니다.
인도네시안 선원들은 작업을 서두르기 위해 밥을 말아서 그릇째 들고 마시듯 식사하는데 그 모습이 안 돼 보이기도 합니다. 촬영팀은 멀미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멀쩡한 사람은 나뿐인가 봅니다. ㅠㅠ
조업 막바지에 기적같이 나타난 줄가자미
지금까지 수백 마리의 가자미를 잡아들였지만, 이번 취재의 주제인 줄가자미는 여태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선장님은 아마도 네 번째 그물에서 나오지 않을까 예측했는데 그 말이 적확히 적중했습니다. 이유는 네 번째 그물이 놓인 지질이 앞서 작업한 곳과 다르며 줄가자미 어획 확률이 그나마 높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가자미는 사니질(모래)과 개펄에 주로 서식하지만, 줄가자미는 자갈과 돌이 적당히 섞여야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지형을 좋아하는 물메기가 자주 혼획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메기가 많이 나오면 가자미 어획량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표준명 줄가자미
어쨌든 작업 막바지에 그토록 찾았던 줄가자미를 볼 수 있어 저는 물론, 촬영팀들도 한시름 놓았습니다. 새벽잠을 포기하면서 고생한 보람이 이 한 마리로 보상받은 기분입니다.
줄가자미는 한눈에 척 봐도 다른 일반 가자미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껍질에는 돌처럼 딱딱한 피질이 무수히 나 있어 일식 조리사가 손질하기 가장 까다로운 횟감이기도 합니다만, 속살이 내어주는 맛은 가히 환상적이라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줄가자미는 이 철에 꼭 한 번 먹볼 만한 제철 생선회이면서 미식가들의 입담에 자주 오르내리는 명품 생선회입니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험해지고 있습니다. 이날 오후부터 날씨가 안 좋아진다는데 그 예보가 거의 정확히 들어맞는 것입니다.
결국, 이날은 여섯 개의 그물을 다 끌어올리지 못한 채 항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이유는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날씨가 험해져서도 아닙니다. 어부의 로망인 '조기 만선'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울산 정자항
활 가자미도 많이 잡았지만, 그만큼 선어 가자미도 이만큼 쌓였습니다.
가자미가 쏟아지자 분류작업이 시작됩니다.
용가자미(왼쪽), 기름가자미(오른쪽)
분류는 기본적으로 종류를 나누고 크기별로 선별하는 것입니다.
물메기(표준명 꼼치)도 이만큼 잡혔습니다. 이것들도 즉시 경매에 부쳐져 각 지역 식당에서 물메기탕 재료로 쓰일 것입니다.
생긴 건 못났어도 속풀이만큼은 확실히 해주는 녀석들이죠.
안쪽에서는 어구 정비가 한창입니다.
곧바로 시작되는 활 가자미 경매
정자항에는 입항 시간에 맞춰서 온 횟집 차들이 줄을 씁니다. 이 중에는 중간 상인도 있지만, 횟집이 직접 차를 몰고 와 어선과 직거래를 하기도 합니다. 어획한 활가자미는 크기가 대동소이하므로 15kg 단위로 잰 다음 곧바로 활어 차에 싣습니다.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큰 녀석으로 고르고자 경매인의 손이 바쁩니다.
줄가자미
또 다른 배에서는 줄가자미를 많이 잡아 놓았다며 취재를 위해 보여주었습니다. 한 마리도 보기 어려운 줄가자미이기에 한날 한순간에 잡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며칠 분량을 모아 놓았다가 줄가자미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 팔아넘기는 것입니다.
취재를 마치고 바지를 살피는데 조업은 혼자서 다 한 것 같군요. ^^; 동해의 명품 줄가자미를 찾았으니 이제 맛 보러 가야겠죠? 다음 시간에는 부산에서 가자미만 전문으로 15년을 취급해 온 곳에서 한국에서 가장 비싼 회 중 하나인 줄가자미(이시가리)를 만나봅니다.
※ 해당 방송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방송 보러가기 (로그인 필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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