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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어회는 육질이 쫄깃쫄깃해 씹는 식감이 살아있지만, 감칠맛 성분인 이노신산(IMP)은 극소량이거나 거의 없는 상태이므로 생선회 특유의 감칠맛은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활어회 소비가 가장 많고 초고추장과 양념 된장, 각종 쌈채, 그리고 소주를 곁들여 먹는 생선회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생선회 본연의 맛을 느끼는 맛 중심보다 씹는 식감으로 회 맛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숙성회는 숙성되면서 이노신산(IMP)이 다량으로 생성되기 때문에 생선회 고유의 감칠맛을 느낄 수 있지만, 숙성 시간이 길어지면 식감이 물러지므로 일식과 숙성회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는 3~6시간 정도의 짧은 숙성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소개하는 내용은 6시간 이상 숙성하거나 혹은 부둣가에서 육상으로 수 시간을 공수할 때 식감이 물러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전문 낚시인과 일식과 횟집 종사자들이 한 번쯤 참고해볼 만한 내용입니다. 활어차로 활어를 수송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항에서 고기를 즉살해 피와 내장을 뺀 상태로 얼음을 채워 운송해왔습니다. 이렇듯 산 고기를 죽여서 가져온 횟감을 '선어회'라고 하며, 이를 냉장 보관해 썰어내면 '숙성회'라는 개념이 붙게 됩니다. 둘은 비슷한 개념이지만, 어디서 즉살했느냐에 따른 차이가 있습니다. 숙성회는 주로 업소에서 활어를 잡아다 숙성하지만, 선어회는 배나 항에서 즉살해 얼음에 채운 상태로 경매에 부쳐 운송한 것이므로 생선이 죽고 난 이후에 발생되는 사후경직의 출발선이 다릅니다. 당연히 선어회의 죽은 시점이 빠르고 사후경직도 빠른 만큼, 회가 물러지는 시점도 빨리 옵니다. 그래서 서울, 수도권과 내륙 지방에서 선어회를 공급받으려면 당일 배송(혹은 특송)이어야 하며, 받은 이후부터 일정 시간 안에는 모두 팔아치워야 하기 때문에 업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시간 싸움이 전개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선어회 전문점은 주로 해안가를 낀 도시에 많이 성업하게 됩니다. (예 : 여수)
반면, 숙성회는 활어차로 운반된 활어를 업장의 수조에 보관해 두었다가 영업 개시 수 시간 전에 잡아다 놓는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활어가 받는 스트레스를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만 놓고 본다면, 선어회가 뱃전이나 항에서 곧바로 피를 뺀 것이므로 더 싱싱하고 맛있어야 하는데 좀 전에 말했듯이 공수에 시간이 걸리는 지역에서 이러한 선어회를 잘못 취급하면 육질이 푸석해지는 문제를 늘 떠안고 있어야 하므로 서로 간에 장단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선어회 처리 기술은 일본에 미치지 못하고, 일부 선원과 어부들은 피 조차 빼지 않은 상태로 삼치나 민어를 단지 얼음에만 채워 내는 정도의 인식을 갖고 있어서 특별히 산지가 아니라면 제맛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이케시메(신경 죽이기)입니다.
이케시메를 마친 대방어, 노량진 수산시장
이케시메(活け締め)는 일본에서 건너온 생선의 즉살 방법의 하나로 우리 말로는 '척수 신경 죽이기' 정도입니다. 물고기에서 가장 큰 뼈인 척추에는 척수가 흐르는데 스테인레스 재질로 된 얇은 철사 줄을 이용해 척수를 손상, 제거함으로써 횟감의 사후경직 속도를 지연시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선은 죽은 뒤 수분 이내에 사후경직에 들어갑니다. 어종과 크기에 따라 차이는 있습니다만, 숨통이 끊긴 이후 늦어도 30~40분 안에는 생선 등이 굽거나 꼬리가 휜 상태에서 딱딱하게 굳어갑니다. 그것이 사후경직이며 근육이 일시적으로 단단해졌다가 5~6시간이 지나면 다시 풀어지면서 육이 물러집니다. 물론, 3~4시간을 실온에 방치해 두면 육이 물러지는 시점도 앞당겨지며, 숙성에 적합한 1~3도의 보관환경에서는 반대로 늦춰질 수도 있습니다.
생선회의 감칠맛 성분인 이노신산(IMP)는 숨통이 끊기고 난 이후 약 2~3시간부터 생성되기 시작해 24시간째 포화됩니다. 다시 말해, 24시간을 숙성하면 감칠맛이 최대치에 근접하지만, 그때는 이미 육이 물러져 우리나라 국민이 좋아하는 차진 식감을 만족시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켜줄 수 있는 방법이 이케시메(신경 죽이기)인 것입니다.
위 사진은 노량진 수산시장의 어느 상회에서 시전 중인 이케시메입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이케시메를 하는 곳은 이 집이 유일하며, 그외 몇 군데의 전문 일식집, 전문 숙성회 전문점, 그리고 소수의 전문 낚시꾼에 한해서입니다. 이집의 경우는 3년 전에 이케시메를 시도했다가 어떤 이유에서 중단했고, 다시 시작한 시점은 최근 3개월 정도부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케시메의 숙련도에서 다소 낮아도 되는 꼬리쪽 척수 관통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케시메 도구
사진은 이케시메에 사용되는 도구(이하 시메 도구)로 일본에서는 규슈나 관동 지역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구글에서 '神経絞め'라고 검색하면 개인 사업자가 이 도구를 만들어 파는 사이트도 나오며 전화로 주문 받습니다. 가격은 우리 돈으로 약 3만원 정도이니 국제 배송비를 포함하면 5~6만원까지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산은 어떤 방식으로 제작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일반 시판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둘 다 사용해 본 소감은 일산 제품이 훨씬 낫다였습니다. 이 부분은 아래쪽에 다시 설명하고 우선은 이케시메를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위 사진은 2.5kg 상당의 양식산 참돔입니다. 먼저 꼬리쪽 비늘을 살살 긁고 칼 뒤꿈치를 댄 다음, 손바닥으로 칼등을 내리쳐서 꼬리를 절단하거나 반쯤 자른 뒤 꺾어 척추가 드러나게 합니다.
잘 보면 척추에 구멍이 나 있는데 여기에 이케시메 도구를 끝까지 밀어 넣습니다.
척추의 절단면을 보면 한가운데는 딱딱한 뼈로 막혀 있으며 등 방향으로 구멍이 한 개, 배 방향으로 구멍이 한 개 나 있는데 배쪽은 혈관이며, 등쪽에 난 구멍이 척수입니다. 이 척수 구멍에 시메 도구를 끌까지 밀어 넣어 반복적으로 쑤십니다. 이렇게 하면 저 구멍 안에 있던 척수가 일부 새 나오거나(뽀얀 사골 육수 같은 게 나옵니다.) 손상 입히면 물고기의 에너지 대사와 신경을 담당하는 화학 성분이 생성되면서 즉살 후 수 분 만에 일어나야 할 사후경직을 수 시간 뒤로 늦추게 됩니다. 그만큼 육이 물러지는 시점을 최대한 뒤로 연장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횟감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렇게 하면 하루 이상 숙성해도 육이 쉬 물러지지 않아 식감과 맛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대부분 사용하는 방식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극소수의 업소 외에는 여전히 도입되지 않고 있어, 선어회와 숙성회의 가장 큰 단점인 '육이 물러지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업소에서는 이 방법이 도움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삼치, 병어, 민어 등 선어회를 위주로 공급하는 어부들도 이러한 기술을 도입해 도시 사람들도 선어회를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케시메를 마친 횟감은 얼음물에 10분 정도를 넣어 둬야 합니다. 이렇게 즉살된 생선은 체내에 쌓인 에너지 대사가 방출되면서 근육에는 열이 오르게 됩니다. 그 열은 횟감 온도를 높이며, 횟감의 크기(씨알)이 크면 클수록 온도가 높아져 사후경직이 시작되는 시점을 앞당기게 합니다. 평소 숙성회를 처리할 때도 포를 뜨면 깨끗한 거즈에 말아 냉장 보관해 둬야 하듯이 이렇게 덩치가 큰 생선일수록 많은 열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10분간 얼음물에 담갔다가 빼서 포를 뜨면 이후부터는 일반적인 숙성회를 만드는 방법과 같습니다. 이케시메의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피를 먼저 뺀다.
아가미를 찔러 피를 빼는 일반적인 방법과 더하여 송곳으로 관자놀이에 해당하는 부위(측선이 끝나는 눈 뒤쪽)를 찔러 신경을 마비시키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고기가 파르르 떨면서 격렬하게 저항하지 못합니다. 아가미를 긋고 꼬리에도 칼침을 놓아서 물에 담가두면 피가 빠르게 빠져나갑니다.
2) 이케시메를 한다.
이케시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눈과 눈 사이를 시메도구(송곳처럼 생겼으나 끝 부분이 갈라진 침으로 되어 있다.)로 깊숙하게 찌른 뒤 그곳에 스테인레스 줄을 넣어서 척수를 관통시키는 방법이 있고(주로 방어, 참치, 전갱이 등 방추형 물고기에 사용) 콧구멍을 찔러 구멍을 낸 다음 스테인레스 줄을 넣어서 척수를 관통시키는 방법이 있으며(주로 참돔 등 측편형 물고기에 사용), 오늘 소개하는 방법은 초보자가 하기에 알맞은 것으로 꼬리를 자르거나 반쯤 꺾어서 드러나는 척추에 스테인레스 줄을 넣어서 척수를 관통하는 방법입니다.
※ 숙련되면 1)과 2)의 과정을 맞바꾸어도 되며, 활어회는 이케시메 할 필요가 없습니다.
3) 10분간 얼음물에 담가 놓는다.
이유는 설명했으니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서울에 사는 저도 횟감 공수에 적잖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거제도, 여수, 통영, 혹은 그 외 먼바다 섬에서 낚시로 잡은 고기를 어떻게 하면 쫄깃한 육질 그대로 가져올 수 있을지. 그러한 고민의 결과로 앞으로는 항에서 이케시메를 해서 가져올까 합니다. 당장은 시메 도구를 구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위 사진의 스테인레스 줄로 할 생각입니다. 써보고 괜찮으면 굳이 4~5만원을 들이면서 시메도구를 살 이유가 없겠지요.
위 제품은 대마도에서 낚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구입한 선상낚시 편대 채비용 스테인레스 줄입니다.
직경은 0.4mm부터 다양하게 있으며, 가격은 우리 돈으로 약 3,000원에 11개가 들어있습니다.
제가 구입한 것은 직경이 1.0mm, 길이 50cm로 40~50cm급 참돔, 감성돔을 이케시메하기에 적당한 굵기입니다. 만약, 길이 80cm 이상인 대방어나 부시리를 이케시메해야 한다면, 직경 1.5mm, 길이는 최소 80cm 이상인 스테인레스 줄을 구입해야 하는데 그 정도의 길이는 선상낚시 채비 용도로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대방어를 취급하는 업소에서는 시메 도구를 구입해야 할 것입니다. 어종과 씨알에 따른 이케시메 도구의 직경과 길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도미과 어종(참돔, 감성돔)
크기 40~60cm : 직경 1.0mm, 길이 50cm
크기 60cm 이상 : 직경 1.2mm, 길이 80cm
2) 벵에돔, 벤자리, 농어(도미과 어류보다 척수 관통 구멍이 조금 작습니다.)
크기 30~40cm : 직경 0.8mm, 길이 30cm
크기 40~60cm : 직경 1.0mm, 길이 50cm
3) 부시리(히라스), 방어, 잿방어, 전갱이
크기 40~60cm : 직경 1.0mm, 길이 50cm
크기 60~80cm : 직경 1.2mm, 길이 80cm
크기 80~100cm : 직경 1.5mm, 길이 100cm
시메 도구로 적합한 재질은 이렇게 구부려도 다시 복원이 되는 스테인레스여야 하며, 직경과 길이가 해당 어종의 몸 구조에 잘 맞아야 합니다. 시메 도구의 길이는 어류의 척수를 꼬리쪽부터 측선이 끝나는 아가미 부근까지 모두 관통할 수 있어야 하며, 직경은 척수를 관통할 때 너무 굵어서 들어가지 않아도 문제지만, 너무 얇아서 척수의 손상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위 자료를 기준으로 시메 도구를 구매하시고 만약, 구입이 어렵다면 저처럼 낚시점에서 선상낚시 편대 채비용 스테인레스 철사줄을 구입합니다. 그런데 선상낚시용 스테인레스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척수 관통시 효율적으로 척수를 손상하려면, 스테인레스에 특수 요철 처리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위 사진은 시메 전용 도구가 아니기 때문에 표면이 매끈합니다. 매끈한 만큼 척수를 효율적으로 손상시키려면 더 많이 넣었다 뺐다를 반복해야 하면서, 모서리로 긁어줘야 하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가격이 싸더라도 여러 개가 든 선상낚시용 스테인레스를 구입할 것인지, 아니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특수 요철 처리가 되어 있는 시메 도구를 구입할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사용자의 몫이지만,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더 많은 일식집과 횟집, 상회 등에서 이케시메 즉살법을 사용해 소비자들이 쫄깃하고 차진 숙성회를 먹을 수 있도록 합리적인 생선회 문화로 자리매김 하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 내용은 국내에서도 매우 희귀하고 생소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방식을 처음 접한 일반 소비자들은 '잔인하다.'라 여길 수도 있으나, 실은 그 반대입니다. 이케시메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씹는 식감을 좋게 하기 위함도 있지만, 물고기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안락사를 유도하기 위함입니다. 물고기의 안락사는 고생사보다 씹는 맛에서 배 이상 뛰어나므로 우리가 평소 맛있게 먹었던 숙성회, 선어회, 초밥의 완성도에는 이러한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도 미식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소비자의 미각 수준과 맛의 기준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일식업계도 그에 따른 기술의 도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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