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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기만하는 수산시장(자갈치)의 상술과 편법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 지 고민입니다. 꼬인 실타래를 풀지 못하면, 더욱 걷잡을 수 없이 꼬일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면 심한 비약일까요. 이날 둘러본 자갈치 시장은 어렸을 때 느꼈던 정이 가득한 이미지보다 장사치들로 우글거리는 소굴 같았습니다. 어느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상술과 편법이 바이러스처럼 퍼져서 지금은 집단적 현상을 만들었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시장 상술은 도를 넘었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 자갈치 시장
표준명 홍민어(점성어)
우선 수조가 있는 횟집을 둘러보는데 자갈치 시장이라고 해서 앞바다에서 나는 싱싱한 자연산만 취급하지는 않습니다. 수도권에서 흔히 보는 중국산 양식과 남해 일대에서 양식산 활어들도 많습니다. 사진은 흔히 '점성어'로 알려진 홍민어입니다. 민어과에 속한 생선이지만, 여름철 보양식인 민어와는 종류가 다르고 맛과 가격에서도 확연히 뒤처집니다. 점성어는 전량 중국에서 건너온 양식이고 민어는 대부분 자연산입니다. 가격은 민어의 1/5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주로 서민형 횟집과 초밥집이 선호하는 재료죠. 사실 이 어종이 가진 유해성(항생제와 발암물질)은 별도로 따져야 할 문제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점성어를 민어로 표기해서 팔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원산지 표기판에는 어종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가 태반입니다. 여름철 보양식 민어는 대부분 국산입니다. 만약, 중국산이라 표기한 것이라면 그것은 민어가 아닌 홍민어(점성어)임을 간주하고 거래해야겠죠. 원산지 단속에는 원산지 표기뿐 아니라 올바른 어종 표기도 포함됩니다. 의도적이든 무지에 의한 것이든 점성어를 민어로 표기한 것은 분명 고쳐야 할 일입니다.
군소(물돼지)
이날 자갈치 시장을 쭉 둘러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손님을 대하는 상인의 응대입니다.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이나 툴툴거림은 여기선 별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손님은 왕이다.'라는 구세대적인 생각도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물건 구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가격'과 '종류'를 묻는 소비자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다시 말해, "살 거면 알려주고, 사지 않을 거면 알려주지 않겠다."는 식의 태도이지요.
한 예로, 가격을 물으면 알려는 주는데 그 외의 질문(어종, 원산지)이 반복되거나 상인 입장에서 불필요한 질의 응답이 이어지면, '그래서 살 거요. 말 거요'식의 짜증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자갈치 시장에 있는 모든 상인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특정 상인들로부터 불쾌함을 느꼈다고 해서 그 시장 전체가 도매금으로 취급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시장에는 전반적인 분위기란 게 있습니다. 시장이든 음식점이든 그 지역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이유와 문제를 앓고 있는 것입니다. 자갈치 시장은 해가 거듭될수록 상술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일부 관광객과 외지인이 주로 이용하는 시장터가 돼버렸습니다. 과거와 같이 부산 시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재래시장의 모습은 많이 줄면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가 시장 전체의 이미지로 번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어물전 상인은 신경이 날카롭습니다. 장사는 안 되는데 사지는 않고 묻기만 하니 짜증이 솟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본래 가졌던 시장 상인의 친절과 정은 서서히 실종돼버렸고 지금은 "그래서 살 거요. 말 거요."만이 남았습니다. 단적인 예를 본인이 직접 겪기도 했지만, 옆 손님과의 상거래에서도 충분히 느꼈는데 위 사진은 꼬챙이에 꿴 군소입니다. 바닷가 사람들이야 어렸을 때부터 익히 보았던 것이지만, 내륙 지방과 도시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군소를 물어오는 손님이 있었는데 이때 상인의 대답은 오늘날 처한 자갈치 시장 상인의 심리를 우회해서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군소를 가리키며) 이게 뭐예요?"
"(팔짱 끼고 다른 곳을 보며 대답 없음)"
"이게 뭐죠?"
"수산물입니다."
"그니깐 이름이 어떻게 되는데요."
"(시선 처리는 땅과 하늘을 번갈아 보며) 수....산....물"
자갈치 시장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갈치입니다. 어물전의 절반 이상은 가을에 제철인 갈치가 한가득 깔렷습니다. 한번은 갈치를 사려고 기본적인 가격 정보와 원산지를 물었고(표기가 없어서) 그렇게 상인과 저는 갈치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 상인이 난데없이 우릴 향해 고함칩니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이것이 어떤 상황인지 싶어 상인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옆 상인은 내가 아닌 나와 대화를 나눈 상인에게 호통치듯 말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즉 슨, '어차피 살 사람이 아닌데 뭣 하러 말을 섞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때의 저는 갈치 판매 실태를 꼬집기 위해 자갈치 시장을 찾았습니다. 국산과 수입산을 구분하지 않고 파는 상술과 편법을 파악하고자 들린 것이고 물론, 갈치도 구입하면서 상인과의 대화를 통해 현재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거래 행태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본 상인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저를 쏘아붙이는 대신 저를 응대한 상인에게 윽박지르듯 '상대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저는 머슥하게도 그 현장에서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사지 않을 거면 그냥 가시오."
이날 제가 느낀 자갈치 시장은 각박함을 넘어 삭막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자갈치 시장이 안고 있는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국민 생선인 '갈치'를 판매하는 편법입니다. 갈치는 우리나라에서 고등어를 제치고 가장 인기 많은 생선입니다. 선호도에서 단연 앞서기 때문에 국산이든 수입산이든 찾는 수요는 계속해서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연안의 갈치 자원은 한정적입니다. 작은 그물과 주낙으로 잡아들인 갈치는 연간 수백 톤을 웃돌면서 씨알을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잡아들인 탓에 우리 연안의 갈치 자원은 하향 곡선을 그리며 추락 중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물량은 수입산 갈치로 수요를 메꾸고 있습니다. 부산은 수입산 갈치가 가장 먼저 닿는 유통의 중심지이자 총본산입니다. 그런데 자갈치 시장에서는 수입산 갈치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갈치 어물전을 둘러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원산지 표기 없이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먹갈치'만 표기했다는 점입니다.
여기도 먹갈치, 저기도 먹갈치. 먹갈치 외에는 갈치에 대한 그 어떠한 정보도 알 수 없습니다.
국산이라 표시된 갈치는 원양산이거나 아프리카산 갈치로 이는 원산지 표기법 위반이다
간혹 제주산과 국산이라 표기한 경우는 있어도 수입산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 갈치가 어디서 온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원산지를 물으면 제대로 답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국산이라고 속이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실제로 자갈치 시장에서 국산 갈치는 없다는 게 중론입니다. 설사 있어도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이곳을 둘러본 결과, 국산이라 확신할 만한 갈치는 시장 입구에서 대충 깔아놓고 팔고 있었던 풀치(씨알이 매우 작은 갈치) 뿐이었으며, 풀치마저도 그물에 손상돼 상품성을 잃은 것을 헐값에 파는 것이었습니다.
눈이 노란색을 띠는 남방 갈치는 필리핀과 오키나와를 포함해 인도양과 아프리카 해역에 분포한다
시장 매대에 올려진 수입산 갈치는 대부분 세네갈과 파키스탄산이지만, 그것을 지목해 원산지를 물으면 대부분 '국산'이라 답변이 돌아옵니다. 유도 질문을 완전히 배제하고자 '이거 수입산이죠?'라 물어도 돌아오는 답변이 '국산'임에 혀를 내둘렀죠. 이날 저는 아내와 어린 딸과 함께 부산을 여행 중이었기에 차림새로는 완벽한 관광객이고, 어쩌면 그래서 원산지 둔갑을 만만히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원산지를 제대로 표기하고 파는 곳은 단 한 군데도 보지 못했고, 물었을 때 양심적으로 밝힌 상인은 5~6곳 중 1곳에 불과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원산지 표기를 가리고 팔고 있었기 때문에 이 와중에 홀로 원산지를 밝히고 파는 상인이 오히려 바보 같고 이상하게 보일 만큼 자갈치 시장 내에서는 비양심 상거래와 상술이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팽배해졌습니다.
※ 갈치는 크게 갈치와 남방 갈치로 나뉜다.
일본산 갈치는 우리 연안에서 잡히는 갈치와 같은 종이고 낚싯바늘로 잡는 방식도 비슷하기 때문에 외형과 맛에서 제주산과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을 악용해 자갈치 시장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산 갈치를 제주산 은갈치로 속이고 판매해 왔습니다. 또한, 인도양과 서아프리카 해역에서 잡힌 남방 갈치는 주로 세네갈과 파키스탄 산으로 들어오지만, 이러한 원산지를 표기하지 않거나 심지어 국산으로 팔고 있었습니다. 남방 갈치 중에는 국산으로 대놓고 표기해서 파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국내 선단이 1~2달 동안 수만 해리를 나가, 공해상(혹은 공동 어업 구역)에서 어획한 것이므로 '원양산'으로 구분해서 판매해야 합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유통한다면 국내 해역에서 조업된 국산과 원양산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며, 이는 더 큰 상거래의 혼란과 상술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국내산 갈치와 수입산 갈치에 관해 쓴 포스팅이 있으니 아래 관련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갈치는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생선인 만큼 원산지 단속에서 특별 대상이 되며, 원산지 표기 의무 수산물에 속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갈치 시장에서는 원산지 표기 의무를 지키는 상인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적당히 손님 봐가면서 수입산을 국산으로 속여서 팔고 있는 실정이며, 외형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일본산 갈치를 제주산으로 둔갑해 팔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자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산지 단속의 손길은 추석이나 설 등 특수를 맞을 때만 시행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단속이 시급해 보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상인의 자체적인 자정력으로 고쳐지지 못한다면, 결국 시장을 구하는 길은 철저한 법의 단속뿐입니다. 그마저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자갈치 시장은 제2의 용산 전자상가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1922년을 기점으로 부산 수산주식회사와 함께 성장해 온 자갈치 시장은 부산을 대표하는 수산시장이자 랜드마크입니다. 활어는 물론, 선어와 싱싱한 수산물을 저렴하게 살 수 있고 또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했죠. 근대화를 이루면서 함께 성장했고, 이곳을 구심점으로 모인 상인들은 곧 서민이자 우리네 어머니들이었습니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자갈치 시장하면, 싱싱한 수산물을 저렴하게 사다 먹거나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들리게 되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부산은 무역이 활발한 항구도시로 우리나라에서는 수입산 수산물이 가장 먼저 닿는 곳입니다. 대규모 집하장이 있고 경매를 치르며 물류를 분류하고 운송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죠. FTA로 인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산물이 들어오고, 자갈치 시장은 수입 수산물의 집결지인 만큼 원산지 표기 단속이 다른 지역보다 더욱 철저히 이뤄져야 함에도 어찌 된 일인지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 사이 시장을 찾는 손님은 올바르지 못한 상거래의 희생양이 되면서 그러한 인식의 악화는 불경기를 낳고, 시장 상술을 낳으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에 피해자는 소비자는 물론, 상인도 포함입니다.
저는 예전에 활기를 띤 자갈치 시장이 그립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 손잡고 찾아가 부담 없는 가격으로 싱싱한 회를 사 먹었던 그 시절 말입니다. "누가 좀 자갈치 시장 좀 구해주세요."라고 한다면, 관련 부처와 관할 구청이 귀 기울이고 신경 써 주어야 할 때입니다. 자갈치 시장이 부산 여행의 최대 명소로 손꼽히면서 재래시장 특유의 정과 매력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제2의 용산 전자상가가 될 것인지. 시장 상인의 자정능력과 법의 관리가 없으면 자갈치 시장의 미래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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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생선 갈치에 대한 모든것(제주 은갈치, 생물과 냉동 구별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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