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수산물 이야기에 일본명이 들어가야 하는 이유


 

 

<사진 1> 한치

 

<사진 2> 한치

 

<사진 1>과 <사진 2>는 모두 한치란 이름으로 팔린다. 모양새가 달라 둘의 차이를 물어도 되돌아오는 답변은 '한치의 종류일뿐 자세한 건 모른다.'이다. 국내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한치는 한치일 뿐, 한치에 종류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특히, 한치 산지로 유명한 제주도에는 한치가 단일 종으로 어획되고 있으며, 어민과 상인 모두 그렇게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사진 1>과 <사진 2>를 살펴보자. 둘 다 한치로 판매되는 오징어이나 모양새는 분명 다르다. 종류가 다른 한치가 별다른 구분 없이 취급되고 있는 이유. 혹시 여러분은 혹시 생각해 보셨습니까? 일본에서는 <사진 1>과 <사진 2>의 한치를 각각 '야리이까(ヤリイカ)'와 '겐사키이까(ケンサキイカ)'로 구분해서 취급한다. 우리나라는 일찌감치 이 둘을 구분 짓는 표준명을 각각 '화살꼴뚜기(화살오징어)'와 '창꼴뚜기(창오징어)'로 오징어 도감, 한국어류학회, 국립수산과학원에 등재해 놓았지만, 홍보 부족인지 다른 문제 때문인지 현지 상인과 어부가 이러한 표준명을 아예 모르고 있으며, 단지 '한치'란 말 하나로 통용되고 있다.

 

심지어 "같은 한치라도 야리이까가 더 맛있다."라 하였으니 어부들이 야리이까는 알아도 표준명인 화살꼴뚜기는 모르는 것이다. 화살꼴뚜기와 창꼴뚜기는 엄연히 종류가 다르고 맛도 다르다. 제철과 어획 시기가 다르며, 어획량도 다르기 때문에 가격에서도 서로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용어는 현재로써 우리 귀에 익숙지 않은 표준명이 유일하다. 

 

그래서 나는 표준명을 전면에 내세우고 괄호 안에 일본명을 함께 표기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어릴 때부터 친숙한 야리이까의 국내 표준명을 전하고자 한 것이다. 

 

 

<사진 3> 광어 지느러미살

 

광어 지느러미살은 꼬득꼬득한 식감과 고소한 맛으로 광어 회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부위다. 그러나 이 부위를 사람들은 여전히 '엔가와' 또는 '엔삐라'로 부른다. 굳이 어촌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일본식 명칭은 이미 도시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지 오래인 것. 최근 몇 년 새 불어난 선술집(이자카야)의 열풍에 힘입어서 일까? 그렇지 않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 일제감정기 때 국내로 흘러들어온 일식에서 그리 불러왔기 때문에 그것이 몇 세대를 거치면서도 오늘날까지 습관처럼 불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부위의 올바른 명칭을 알리는 방법으로 국명과 괄호 안 일명 표기를 써왔다. 

 

- 광어 지느러미살(엔가와, 엔삐라), 또는 광어 담기골살(엔가와, 엔삐라)

 

만약, 일본명을 완전히 배제한 채 '광어 지느러미살'만 표기했다면, 이 부위의 우리식 명칭을 모르는 이들은 자기가 알던 엔가와(혹은 엔삐라)가 광어 지느러미살과 같은 부위인 줄 어떻게 확신하겠는가?

 

 

 

 

<사진 4> 부시리 회

 

알다시피 부시리는 방어의 사촌으로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한 번은 재래시장에서 "부시리 어떻게 팔아요?"라고 물었는데 상인이 "부시리가 뭐냐?"고 되묻더니 자기들도 몰라서 어리둥절한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재래시장에는 부시리란 말 자체가 생소한 언어다. 그런데 여기서 부시리란 말 대신 '히라스'로 바꾸면 상황은 180도 변한다. 히라스란 말로 거래하면 안 통할 상인이 없다는 것이다.  

 

부시리를 설명하는 내 글에는 반드시 '부시리(히라스)'란 표기가 따른다. 만약, 그 글에 '부시리'만 표기했다면, 내 글을 접한 관련 종사자들이 자신이 취급하는 히라스와 부시리의 관계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읽는 이로 하여금 부시리가 정확히 뭔지 모르는데 그것도 정보라고 쓴 글인가?

 

내 표기법은 히라스(부시리)가 아니다. 야리이까(화살꼴뚜기)가 아니다. 스끼다시(반찬)가 아니지 않은가? 부시리(히라스)이며, 화살꼴뚜기(야리이까)이고, 반찬(스끼다시)이다. 고급 일식집만 들락거리는 몇몇 미식가 블로그의 설명을 보라.

 

"사키츠케가 먼저 나오고 젠사이가 나온다. 이어서 카니 우니 나가이모 소멘으로 구성한 젠사이2가 등장하고 본식으로 넘어가서 이꾸라, 우니, 마구로, 사바, 스즈키로 구성된 모리아와세가 나온다. 스시는 호타테가이, 마다이, 이시다이, 아까미 조금, 니싱의 칼집이 예술이다."

 

그런 블로그에서도 달리지 않은 태클일진대, 내 글에는 잊을 만 하면 달리고 있다.

 

 

정말 잊을 만 하면 달린다. 그 말은 즉, 위 댓글러처럼 표현하지는 못해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독자가 더 있다는 이야기다.

 

"저 놈은 뭔데 명칭마다 일본어를 써 붙이나 재수없게"

 

어쩌면 댓글러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내 글을 접하는 사람 중 적어도 절반 이상은 일본명을 궁금해하지도 알려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더 씁쓸한 이야기를 알리자면, 우리가 철석같이 믿는 그 잘난 표준명도 상당수는 일본 도감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나 있을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일식 문화가 우리의 식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친 것과 함께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같은 바다에 놓여있어 식재료에 사용되는 거의 모든 해양 생물의 명칭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현지 어민과 상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써오던 명칭이 더 친숙하다. 나이 60~80살이나 먹은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써오던 명칭이란 것은 무엇일까? 그 명칭은 다름 아닌 '일제의 잔재'에서 비롯된다.

 

"이시가리, 아구다리, 아까가리, 야리이까, 히라스, 엔가와, 시마다이, 아까다이, 구로다이, 오도리, 하모, 아지, 아나고, 도리가이 등등등"

 

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그들 밑에서 일하고 배우는 선원, 직원, 여기에 일제의 잔재에서 비롯된 명칭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상거래에 임하는 식당주, 손님, 현지 소비자들에 이르기까지 뼛속까지 새겨진 일본식 명칭을 우리말 표준명으로 각인시키려는 방법을 나는 지금까지 내 글에 녹여내려고 애를 써온 것이지, 겨우 저런 지적이나 받고자 습관적으로 집어 넣은 것이 아니란 말이다.   

 

단지 표준명 하나로는 설득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지금까지 듣고 써온 그들만의 일본식 명칭에 조금이라도 표준명을 알리고 불리도록 유도하려면 일본 명칭과의 대질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했던 거였다. 한 번 생각해 보자. 80년대 포장마차에서 아나고 회를 기억하는 386세대를 위해 내가 "붕장어(아나고)"라 표기하면, 그 사람은 자기가 지금껏 아나고라 알고 먹었던 그 장어의 표준명이 붕장어임을 알게 된다.

 

하모도 마찬가지다. 식당에 가면 전부 하모 샤브샤브라 써 붙였지, 갯장어로 표기한 집은 손에 꼽을 정도다. 거기에 하모가 정확히 우리말로 어떤 장어인지 알리려면 '갯장어(하모)' 정도의 표기는 해줘야 할꺼 아닌가? 이게 과연 지적질의 대상인가? 지적질하기 전에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내가 쓰는 손목시계, 내가 입는 옷, 내가 먹는 음식, 내가 타는 자동차, 그리고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모두를 침묵시키고 거북목을 만드는데 일조한 스마트폰에 얼마나 많은 일제 부품이 들어가는지를 말이야!!! 

 

애국은 뼈아픈 기억을 지운다고, 회피한다고 혹은 일본이란 말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고 애국하는 게 아니다. 필요시에는 적절히 이용하면서 우리말로 순화할 생각을 해야지, 무조건 쓰지 않는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사람이 살면서 누군가의 조언을 경청하고 귀담아들어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절대 양보해선 안 될 문제도 있다. 그것은 내가 지금껏 지켜온 소신이며, 그 소신을 더욱 굳건히 지켜나가야 할 때이다.

 

산지에서 직접 조업 배를 타고 선장과 이야기해 보라. 산지 수산시장에서 상인과 조금만 거래해 보라. 그럼 표준명과 일본명 대질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가 하는 일은 일본에서 건너와 일상적 언어가 된 것을 우리말로 알리고 계도하는 일이다. 단지 일본명을 적었다는 사실만으로 지적받아야 한다면, 지금 이 시각에도 일본말을 우리말처럼 쓰는 현지 어부와 상인들, 또 그곳의 소비자들까지 모두가 평생 우리말을 깨우치지 못할 수도 있다. 댓글러의 말대로 누구에게는 일본명이 필요 없을 수도 알고 싶지도 않지만, 누구에게는 표준명과 일본명의 대질을 통해 지금껏 내가 알던 용어를 버리고 우리말을 쓰는 데 일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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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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