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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한 낚시 민숙
대마도는 지역 특성상 '쯔리민숙(釣り民宿)'이 많습니다. 절반 이상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사업체죠. 여기서 '쯔리(釣り)'는 낚시를 의미하는데요. 낚시 전문 민숙집이다보니 손님의 90% 이상은 낚시 손님입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여기서의 일과는 낚시에 집중됩니다. 민숙집에 따라 보통은 하루 세끼 손님의 식사를 책임지는 주방과 식당을 함께 운영하는 편입니다.
고단한 낚시를 마치고 돌아오면 보통은 이런 저녁 식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리사가 일본 분들이라 일본 가정식에 가깝습니다. 재료는 주로 현지(대마도)에서 장을 보며, 김치나 밑반찬은 한국에서 가져오니 한식을 곁들이는 셈입니다.
가끔은 우리네 정서와 맞지 않거나 익숙지 못한 일본 음식이 나와 당황하게 하기도 합니다. 오므라이스인 줄 알고 펼쳤더니 맨밥이라는 반전이 ^^;
김밥인 줄 알고 먹었는데 알고 보니 여러 가지 반찬을 한입에 먹도록 배려하지 않았나 싶은 ^^;;
점심으로는 김치와 단무지, 깻잎이 전부인 식사가 나옵니다. 주로 많은 반찬이 필요 없는 덮밥이나 국수 종류죠.
가끔은 손님이 가져온 라면을 곁들이기도 합니다. 군 제대 이후 얼마 만에 먹는 뽀글이인지, 낚시하러 와서 먹으니 정말 꿀맛이더군요. (저도 다음부터는 봉지 라면을 챙길까 합니다.)
종일 낚시를 하는 날이면, 민숙집에서 도시락을 챙겨줍니다. 도시락은 마을에 있는 도시락집을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도시락은 전형적인 일본 가정식이라 어떤 반찬은 우리 입에 안 맞는 것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일본 음식이 달달한 편이니 김치가 간절히 생각나기도 하죠.
벵에돔, 무늬오징어, 뿔소라 모둠회가 곁들여진 저녁 식사
하지만 저녁만큼은 제법 잘 차려 나옵니다. 낚시를 왔으니 자연산 회가 빠지면 서운하겠지요. 횟감을 비롯한 생선 요리는 낚시로 잡은 자연산을 쓰는데요. 가끔은 손님이 잡은 고기를 자발적으로 보태기도 하지만, 보통은 민숙집 스텝분들이 남는 시간을 활용해 잡은 것을 사용합니다.
낚시로 잡은 물고기는 선착장 물칸에 보관해 며칠이고 살려둡니다. 거기에는 다금바리(표준명 자바리)도 몇 마리 있는데요. 몇 달째 키우는지 아예 양식을 시도한다는 후문이(...) 그러니 특별히 태풍이나 주의보가 연일 이어지지 않는 한, 물칸에는 늘 손님에게 제공할 횟감이 헤엄치고 있습니다. 조황이 안 좋은 날에도 회만큼은 밥상에 올려야 하니까요. 지켜보니 그날그날 선상 낚시로 잡은 벵에돔을 주로 쓰더군요.
벤자리 토치 구이회
여름에는 제철 맞은 벤자리, 그것도 40cm를 훌쩍 넘는 돗밴자리를 썰어내기도 합니다. 사진은 토치로 껍질을 구운 것인데 먹어본 자만이 아는 별미죠.
生 참다랑어 회
재수 좋으면 얻어걸린 회를 맛보기도 하는데요. 이날은 우연찮게 손님 한 분이 생일빵을 쏜다며 경매장에서 그날 잡힌 참다랑어를 65만 원에 사 왔습니다. 그리곤 테이블당 한 접시씩 풀었지요.
자연산 돌돔회
이날은 낚시로 잡은 돌돔을 회로 내달라 부탁했더니 이렇게 통째로 나왔습니다. 기념사진을 찍은 뒤, 이번에는 제가 테이블당 한 접시씩 돌렸습니다.
홍해삼
어떨 때는 선착장으로 해삼 몇 마리가 기어들어 오기도 합니다. 스텝분이 그냥 뜰채로 퍼 올리던데요.
즉석에서 썰어낸 해삼 회
이런 날은 운이 좋은 겁니다. 괜히 옆에서 구경하다 한 접시 얻어먹었죠. ^^;
벵에돔 조림
가끔 민숙집 대표님과 사모님 내외가 계신 날에는 사모님의 음식을 맛볼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런 날은 일본 가정식 비중이 줄고 한식 비중이 느는데요. 지금까지 벵에돔 조림을 여럿 먹어봤지만, 사모님이 만든 벵에돔 조림이 단연 으뜸이었습니다. 다음에도 먹고 싶은데 요새는 만날 기회가 없더군요. ㅠㅠ
벵에돔, 돌돔, 참돔의 뼈가 들어간 매운탕
생선탕은 허여멀그레한 맑은탕(지리)도 담백하고 구수하니 좋지만, 이렇게 한국식 매운탕으로 나올 때면 내가 왜 소주를 사 오지 않았나 하는 깊은 빡침이 메아리칩니다.
대마도 현지에서 판매하는 삼겹살
그래도 낚시꾼들이라 그런지 생선회를 쌱쌱 비우지 않는 편입니다. 수도권 분들과 남부지방 분들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에서는 생선회보다 고기가 인기 많습니다.
일본식 불고기
날이 풀리면 바비큐를 하기도 합니다. 새우가 맛있었는데 블랙타이거였군요.
2박 3일은 모르겠고 3박 4일 정도 오면, 그중 하루는 저녁 식사로 야외에서 바비큐를 하는데 겨울에는 추워서 안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날 풀릴 때 와야 여러모로 고생 안 하고 좋습니다. 그런데 이게 타이밍 맞추기가 여간 쉽지 않아요. 게다가 물때까지 맞추는 등 모든 여건을 맞추고 오려면 정말 천운이 따라야 할 겁니다. ㅠㅠ
각설하고 대마도로 낚시 오면 거의 90% 이상은 맛보게 되는 생선회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이곳의 주요 낚시 대상어인 벵에돔과 긴꼬리벵에돔인데요. 이날은 폭우가 쏟아져서 일찍 철수했습니다. 손님 대부분이 낚시하러 간 사이야말로 민숙집 스텝분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지켜보니 이날 저녁에 쓸 횟감을 손질하느라 분주합니다.
오늘 아침에 잡은 것으로 추정되는 벵에돔과 긴꼬리벵에돔을 손질 중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벵에돔 회는 약 35~40cm 전후가 가장 맛있다고 보는데요. 민숙집에서도 이 정도 씨알을 가장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이날은 민숙집 손님이 많아서인지 7~8마리를 잡았습니다.
시장에 가면 손질의 편의를 위해 제일 중요한 뱃살도 가차 없이 잘라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는데요. 여기서는 일식집처럼 부위를 살리는 섬세한 손질이라 좋습니다.
긴꼬리벵에돔입니다. 옆구리에 지방 찬 것 좀 보세요. 4~5월 산란기를 앞두고 지금 한창 살을 찌울 때입니다.
이날 저녁은 특별히 '반반'으로 부탁했습니다.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이 아니고요.
벵에돔 반, 긴꼬리벵에돔 반입니다.
<사진 1> 긴꼬리벵에돔과 벵에돔 반반 회
두 어종의 맛 차이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저도 두 어종을 자주 비교해가며 먹는 편이지만, 이게 서식지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고 계절에 따라서도 맛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둘의 맛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만이 답일 것입니다.
게다가 저의 주관적인 해석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겁니다. 될 수 있으면 현장에서 만난 낚시인, 선장, 어부, 민숙집 스텝분 등의 의견을 취합해 나름의 데이터를 쌓아놓는 편이 나중에 칼럼을 쓸 때 도움이 됩니다.
위 사진도 비교 시식을 위해 부탁한 건데요. 가운데 뭉텅이는 모두 긴꼬리벵에돔이고 둥글게 둘러친 것만 긴꼬리와 일반 벵에돔으로 나누었습니다. 이 둘의 생김새는 한 끗인데 과연 맛의 차이는 얼마나 날까요?
우선 <사진 1>로 보았을 때 긴꼬리벵에돔과 벵에돔의 외형 차이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맛과 식감 또한 비슷합니다. 꾼들이 흔히 말하는 "긴꼬리벵에돔이 훨씬 쫄깃하고 맛있다."는 부분도 구전에 구전이 더해진 상태에서 맛을 보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처음 맛보았을 때 이 둘의 차이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한 점, 두 점, 세 점 맛보자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기는 합니다. 긴꼬리벵에돔의 식감이 일반 벵에돔보다 약간 더 차지고 단단한 느낌입니다. 평소 두 어종을 썰어본 경험으로는 칼이 들어갈 때 조직감이 다른데 막상 먹어보면 큰 차이는 없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계속 씹어보면 잘근잘근 씹히는 근육의 치밀함에서 긴꼬리벵에돔이 우세하나 이 역시 두 어종을 한 자리에서 비교 시식했을 때라야 알 수 있을 만큼 미묘한 차이입니다. 같이 드신 분들의 의견만 보아도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 확실히 긴꼬리벵에돔이 일반 벵에돔보다 맛이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오랫동안 씹었을 때의 뒷맛은 확실히 긴꼬리벵에돔이 벵에돔보다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단순한 비교에 불과합니다. 이것으로는 둘의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죠. 서식지와 먹잇감에서 오는 향미가 다르고, 씨알에 따른 맛의 차이가 있으며(여기선 비슷한 씨알끼리 회를 쳤습니다.), 이때는 긴꼬리벵에돔보다 일반 벵에돔이 산란 준비가 덜 된 관계로 지방이 덜 찼을 수도 있습니다. 매우 복잡하죠.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생선회 식습관 중 하나가 양념 된장과 각종 쌈채에 곁들여 먹는 건데요. 이렇게 먹으면 사실상 맛의 차이를 알아차리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
제 경험으로는 활어회로 긴꼬리벵에돔과 벵에돔의 비교는 크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둘을 숙성했을 때의 차이는 꽤 있습니다. 언젠가 이 둘을 함께 숙성해서 먹어 본 적이 왕왕 있었는데 단순히 살이 물러지는 정도의 차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고소한 지방 풍미에서 완전히 갈렸습니다.
생선회를 일정 기간 숙성하면, 살은 물러지겠지만 이노신산(IMP)이라는 감칠맛 성분이 오름을 아는 분들은 알고 계실 겁니다. 여기에 더하여 생선은 껍질과 살 사이, 혹은 혈합육에 지방을 가두어 둡니다. 그래서 토치나 끓는 물을 이용해 껍질을 익히면 지방을 활성화해 고소한 풍미가 더해지는데요. 일정 기간 숙성한 회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갇혔던 지방이 풀리면서 풍미가 더해지는 것이지요.
가끔 생선회를 30일 이상 숙성하는 등 특별한 숙성법을 구사하는 고급 일식당이 있는데요. 이것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갇혔던 지방을 활성화해 풍미를 증진시키는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긴꼬리벵에돔과 벵에돔의 지방을 원심분리기를 이용, 추출하여 그 함량을 뽑아낸 데이터가 아직은 국내에 없지만, 그간 숙성해서 먹어본 경험으로는(사실 대마도에서 잡은 고기는 집으로 가져오면서 좋든 싫든 숙성되는 탓에) 긴꼬리벵에돔의 지방이 벵에돔보다 앞선 편이어서 먹어보면 풍미가 조금 더 깊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표준명 흰꼴뚜기(일명 무늬오징어, 흰오징어, 아오리이까, 미쓰이까 전부 같은 오징어를 칭한다.)
이날은 대마도를 떠나는 날입니다. 한창 고기를 손질하는데 민숙집 스텝분이 옆에서 낚싯대를 흔드는 겁니다. 대낮부터 낚싯대 흔든다고 무늬오징어가 잡힐까? 싶었는데 떡하니 1kg짜리 무 사이즈를 잡아내는 겁니다. 깜짝 놀랐죠. 이럴 줄 알았으면 비 맞고 파도 맞으면서 벵에돔 낚시하기보다는 편하게 선착장에서 오징어나 잡을걸. ^^;
제가 무늬오징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자 그 모습이 측은해 보였는지..
다리를 구워내 오시더군요. 아이고 이런 황송할 때가.. ㅠㅠ 그런데 귀한 무늬오징어라 그런지 회는 안 주네요.
싶었는데 서비스로 회까지 썰어 내오는 겁니다. 그것도 모양까지 예쁘게 잡아서.. (김실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감동 ㅠㅠ)
무늬오징어로 두 가지 맛을 보라고 두 가지 모양으로 썰어냈는데요. 제각각 맛의 특징이 있습니다. 얇고 길게 썬 것은 젓가락으로 한 뭉텅이 집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 좋고.
이렇게 칼집 내서 얇게 저민 것은 고추냉이을 한점 올려 달달한 회간장에 찍어 먹을 때 맛이 기가 막힙니다.
물론, 반대로 먹어도 맛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ㅎㅎ
무늬오징어의 단점은 숙성했을 때 나타납니다. 신경 마비를 하지 않고 긴 시간 놔두었다가 썰어 먹으면, 진액의 끈끈함에 식감을 버리죠. 하지만 이렇게 갓 잡은 무늬오징어는 뭘 어떻게 먹어도 맛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늬오징어는 특유의 아닥아닥 씹히는 식감이 다른 오징어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입니다. 치밀하고 단단한 육을 씹으면 씹을수록 차지고 단맛이 나서 알만한 낚시인과 미식가들은 제주도까지 내려가서 챙겨 먹는 귀한 횟감이죠.
최근에는 방송을 통해 무늬오징어가 알려지면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무늬오징어의 맛을 접할 수 있는 곳은 역시 제주도입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동문 시장에 가면 가끔 활 무늬오징어가 횟감용으로 들어오며, 죽은 것은 자주 봅니다.
무늬오징어 회를 취급하는 횟집도 늘고 있습니다. '미쓰이까'라는 국적 불명의 단어를 메뉴판에 올리지만, 이는 무늬오징어를 뜻하는 것이니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권합니다. 무늬오징어는 5~8월 산란을 거치면 죽어버리는 단년생이며, 최대 2년까지 생존합니다. 그러므로 어획량이 적은 한겨울보다는 산란기 때 맛볼 확률이 높으니 이 시기 제주도나 대마도를 방문한다면 한 번쯤 맛보시길 권해 봅니다.
오늘은 대마도 낚시민숙 음식과 긴꼬리벵에돔, 무늬오징어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편을 끝으로 3년 5개월 만에 부부 동출한 대마도 조행기는 마무리를 맺을까 합니다.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 아내에게 들이닥친 낚시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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