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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45분 SRT, 경기도 동탄역
이날은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갯바위 낚시를 꿈의 무대인 대마도에서 한다는 것. 6개월 만에 벵에돔 낚시. 일 년 만에 대마도 출조. 그리고..
SRT 연결통로와 짐칸
그리고 이 글의 제목인 '낚시의 꿈'을 이룰 것이라는 생각에 잠을 뒤척였고 그렇게 저는 상기된 기분으로 열차에 올랐습니다. 늘 서울역에서 KTX만 이용하다가 이날은 처음으로 SRT를 이용해 봅니다. 사진은 연결통로와 짐칸인데요. KTX와 마찬가지로 낚시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한 편입니다.
오전 8시 5분, 부산역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국제여객선 터미널로 이동.
오전 11시 30분, 대마도 히타카츠항
9시 30분에 출항하는 여객선을 타고 대마도 북단인 히타카츠항에 도착합니다.
대마도의 한국인 관광객 급증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만, 갈수록 더욱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 덕에 부산 대마도 여객선도 증편된 것 같고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호텔 관광버스들이 항구에 즐비합니다.
항에는 낚시 민숙집 버스가 마중 나와 있습니다. 주말이고 벵에돔 시즌이라 많은 낚시 손님이 대마도를 찾고 있었는데요. 이 역시 방송과 블로그로 알려진 탓에 낚시객이 좀 더 늘어난 느낌이 듭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대마도 낚시는 전문 낚시꾼들의 전유물로 여겼는데 세월의 무쌍함이랄까, 여기에 빠르게 변화하는 낚시 산업과 대중의 관심에 힘입어 이제는 고른 유저층과 연령대가 대마도를 찾는 것 같습니다.
대마도에서의 첫 식사
중간에 마트와 피싱샵에 들려 필요한 물품을 사고 민숙집에 도착했습니다. 방 배정을 받고 곧바로 점심부터 먹는데요. 이제 막 대마도에 도착한 낚시인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기라도 하듯 얼른 옷 갈아입고 낚싯대 챙겨서 나오라고 합니다.
오후 2시, 기대를 가득 품고 대마도의 첫 출조를 나갑니다. 지금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이날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후 5시 10분에 철수한다니 이날 실질적인 낚시 시간은 2시간 반 정도입니다. 갯바위에서 두 시간 반은 정말 후딱 지나가는데...
사람 기다린다고 길가에 두 시간 반 동안 서 있어보라면 끔찍하겠지요. 사람 구경도 잠시, 춥고, 지겹고,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그런데 갯바위에서 2시간 30분 동안 낚시하라면 길거리에 25분간 서 있는 느낌밖에 안 들 것입니다. 큣대와 낚싯대를 들고 있으면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르는지 ^^;
어쨌든 오래간만에 바다를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한달전, 성난 물고기 촬영으로 갔던 인도네시아의 열대 바다는 제외하고요. 갯바위 낚시가 되는 이런 바다 말입니다. 겨울에는 기상이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하기에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다가 잘 골라서 와야 합니다. 그나마 저는 일정 조율이 자유로운 편이라 가능한 일이지 직장인들에게는 언감생심일 것입니다.
그나저나 바다가 너무 장판이네요. 파도가 너무 없어도 벵에돔 낚시는 불안합니다.
첫 출조지가 어딜까 싶었는데 재작년에 한번 내린 사이방이란 포인트입니다. 겉보기에는 직벽의 모습이지만, 대마도 서쪽은 지형이 대체로 낮습니다. 갯바위가 우람하게 솟아도 막상 던져보면 수심이 2~3m밖에 안 나오는 곳이 대부분이죠.
벵에돔 기본 채비인 제로찌
#. 나의 장비
로드 : 엔에스 알바트로스 1.5-530
릴 : 다이와 임펄트 2500 LBD
원줄 : 선라인 머슬라드 2.8호
어신찌 : 쯔리겐 구로비기 0호, 조수우끼고무 M
목줄 : 토레이 일본선 2호
바늘 : 벵에돔 전용 바늘 6호로 시작
2018년 첫 출조지가 된 대마도. 첫 채비는 적당한 자중, 적당한 비거리를 공략할 수 있는 제로찌로 선택하였습니다. 들리는 정보로는 벵에돔 입질이 매우 약다고 합니다. 여부력을 줄인 제로찌 채비로 미약한 어신을 캐치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낚시를 시작합니다.
저와 함께 내린 울산팀은 곳부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낚시 시작하자마자 뭔가를 걸어냅니다.
울산에서 오신 김상언씨가 30cm급 벵에돔을 낚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찍고 이것저것 하느라 아직 첫 캐스팅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한 수 올리는 모습입니다. 대낮부터 벵에돔이 물어주는 상황이라 기대를 품고 첫 캐스팅을 하는데 머지않아 약은 어신이 들어옵니다. 저의 2018년 첫수는
표준명 무점황놀래기(어랭이)
다름 아닌 황놀래기. ^^;
벵에돔 낚시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잡어가 바로 황놀래기죠. 제주도에서는 어랭이라 부르는 바로 그 생선 말입니다. 꼭 알아둘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황놀래기도 엄밀히 말하면 두 종류가 있습니다. 황놀래기와 무점황놀래기. 사진은 무점황놀래기인데 과거에는 단일종으로 여겼던 황놀래기가 지금 우리 연안에는 두 종류가 서식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죠.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닙니다만.. ㅎㅎ
표준명 긴꼬리벵에돔
이어서 2018년도 두 번째 고기는 긴꼬리벵에돔으로 당첨되었습니다. 요즘 도시어부와 성난 물고기를 통해 이제는 대중에게도 조금씩 친숙해지고 있죠. 이 녀석이 다 자라면 몸길이 80cm에 육박하지만, 초대형 개체는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여태껏 잡힌 국내 최고 기록은 제주도에서 잡힌 68cm가 공인된 기록. 이 녀석은 6.8cm가 조금 넘어 보이는군요. ^^;
이어서 제게 연달아 입질이 들어오는데 저 뒤에 울산팀도 벵에돔을 걸고 파이팅 중입니다. 낮인데도 제법 활성이 좋군요.
표준명 벵에돔
2018년 세 번째로 낚인 고기는 33cm급 일반 벵에돔입니다. 이 녀석은 30cm가 넘으니 일단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 낚시의 꿈
누구나 저마다 낚시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 겁니다. 대부분은 대물과 사투 끝에 품에 안은 대어(大魚)일 것입니다. 저도 대어를 향한 갈망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같이 낚으면 더 좋고, 함께 꽝 쳐도 좋은 그런 낚시 파트너 말입니다.
예전에는 아내가 저의 좋은 낚시 파트너였는데 출산과 육아로 낚시를 못 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처음에는 독자로서 만났지만, 지금은 저의 소중한 지인이 돼버린 몇몇 분들과 함께 출조하는 것이 전부가 돼버렸습니다.
사실 제 주변에는 낚시를 자주 다니는 지인들이 많지 않습니다. 서울이라는 특성도 한몫하고요. 낚시 클럽이나 토너먼트 경기를 통해 활동할 수도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낚시 모토와는 거리가 있고, 무엇보다도 그럴만한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상은 함께 낚시를 즐길 만한 파트너가 많지 않았죠. 동출 제안은 많이 들어오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나가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와중에 저와 함께 낚시를 즐기고 촬영 일까지 도우며 동고동락한 몇몇 분들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이번 대마도 낚시에서는 모처럼 특별한 분과 함께했습니다. 고대하던 '낚시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죠.
바로 제 아내입니다.
2014년 8월, 아내의 고별전에서
임신 6개월로 배가 불러서 구명복이 잠기지 않아 억지고 잠그고 낚시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벌써 3년 5개월이 흘렀습니다. 아내는 사진의 긴꼬리벵에돔을 마지막으로 낚싯대를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딸은 38개월째 접어들면서 제법 어린이다워졌습니다. 횟수로는 벌써 5살이네요. ^^ 딸은 동탄에 사는 처형에게 잠시 맡겨졌습니다. 아내와의 첫 출조지를 모색하는데 아무래도 지금 시기에 국내 갯바위는 여러모로 열악하고 고생만 할 것 같아 대마도를 택한 것이 공교롭게도 고별전과 데뷔전 모두 같은 지역이 돼버렸습니다.
3년 5개월 만에 받아낸 아내의 첫 입질
시작부터 잠잠했던 아내가 드디어 첫 입질을 받아냅니다.
가차 없이 들어뽕하더니
31cm급 벵에돔
익숙한 포즈로 벵에돔을 잡아 올립니다. 이 고기는 무려 1,222일 만에 잡힌 아내의 첫수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제게도 비슷한 씨알의 벵에돔이 올라옵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체고가 좋은 돼지 벵에돔이네요. 나중에 배를 따보면 알겠습니다만, 부쩍 살이 찐 것 같습니다. 그만큼 먹잇감이 풍부하다는 의미겠지요.
두 시간 낚시에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어 갑니다.
이제는 4짜가 넘는 대물 벵에돔이 덜커덕 물어줄 시간인데 이상하게도 입질이 뚝 끊겼습니다. 심지어 잡어들도 먹이활동을 멈추었는지 크릴이 그대로 살아옵니다. 좀 전까지 활발했던 입질이 뚝 끊겼다는 것. 바다에 심상치 않은 조짐이 일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입질은 끊겼지만, 이럴 때일수록 봉돌을 물렸다가 뺐다가 위치도 조절해가며 열심히 하는 아내. 3년 5개월 만에 들어보는 낚싯대가 조금 어색하답니다. 처음에는 바늘 묶기와 직결 매듭을 까먹은 줄 알고 채비를 만들어 주려 했는데요. 아내가 직접 한다고 해서 내버려 두었는데 역시 기우였네요. 자기도 까먹은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몸이 낚시를 기억하고 있었답니다. ^^
재차 캐스팅과 품질을 해보지만, 야속한 바다는 대답이 없습니다.
전방 15m 안쪽으로는 비전이 보이질 않아서 제로찌를 B찌로 바꾸고 좀 더 먼 곳의 심층을 공략하기로 합니다.
그리곤 30cm가 조금 넘어가는 벵에돔을 마지막으로 짧은 오후 낚시를 마무리합니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늘 아름답기만 합니다. 낚시 시간이 짧은 게 아쉽네요. 대를 접기 직전, 대물 긴꼬리벵에돔으로 추정되는 녀석을 걸자마자 터트렸습니다. 이때가 오후 5시로 이제 막 긴꼬리가 들어올 시점인데요.
한동안 입질이 없길래 이대로 끝나나 싶었는데 찌가 총알같이 들어갑니다. 반사적으로 챘고 강력한 힘에 낚싯대가 고꾸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하늘로 솟았죠. 바늘 위 목줄이 깔끔이 잘린 것으로 보아 긴꼬리벵에돔이 틀림없는데 인제 와서 목줄과 바늘을 새로 무장하기에는 늦었습니다. 한 시간만 더 했더라면.. ㅠㅠ
그렇게 아내의 데뷔전은 벵에돔 한 마리로 소소하게 끝났습니다. 두 시간 반의 짧은 워밍업을 마쳤으니 내일부터 분발해야겠지요. 내일은 어떤 일들이 우릴 기다릴까? 변화무쌍한 겨울 바다라 지금으로선 한 치 앞도 예상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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