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회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60~70년대만 해도 바닷가 생선을 산채로 운송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고, 더욱이 여름이면 쉬이 상하기 때문에 내륙 지방 사람들이 맛볼 기회는 더욱 적었습니다. 그 시절 물회는 지금처럼 별식이나 별미란 인식보다는 어부들 사이에서 빠르고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끼니였던 것.

 

생선 살을 얇게 쳐서 올리고, 수중에 있는 채소도 채 썰어 올린 다음, 집에 있는 각종 장류(된장, 고추장)에 식초를 곁들이고 물을 부어 말아먹었던 것이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물회의 원형입니다. 80년대 후반에는 양식 산업과 운송수단이 발달하면서 도심지 사람들도 싱싱한 활어회 맛을 볼 수 있었는데 이때도 물회는 여전히 바닷가 지역을 중심으로 소비되는 여름 한 철 음식이었습니다.

 

물회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내륙과 도심지로 들어오게 된 시기는 2000년도에 들면서니다. IMF를 극복하고 국내총생산(GDP)이 늘자,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생긴 국민은 단순한 의식주 해결이 아닌 '잘 먹고 잘살자'는 미식 트랜드에 동참했고, 그로 인한 외식 산업이 발달했으며, 그즈음에 인기를 얻기 시작한 각종 먹방 TV 프로그램에 힘입어 지역 토속음식으로만 알려졌던 물회는 이제 바닷가 지역을 넘어 내륙과 도시로 들어오게 됩니다. 

 

지금은 대형 마트를 비롯해 쇼핑몰과 산지 직송으로도 맛볼 수 있게 되었죠. 더욱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 특성상, 지역마다 다르게 발달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알아봅니다. 지역마다 다른 개성 만점 물회, 여러분의 취향은 어디에 있습니까?

 

 

울릉도식 오징어 물회

 

#. 울릉도의 오징어 물회

오징어의 제철은 여름, 주산지로는 속초와 울릉도가 빠질 수 없습니다. 울릉도식 오징어 물회는 국숫발처럼 얇게 썬 싱싱한 오징어와 빙수를 연상케 하는 살얼음이 되직한 양념장과 만나 어우러집니다. 기온이 높아서인지 살얼음 녹는 속도가 빠르게 느껴집니다. 젓가락으로 몇 번 돌리자 빙수에서 녹아내린 약간의 수분과 되직한 양념장이 쉬이 섞이면서 시원한 비빔 회가 됩니다.

 

비빔 회를 먹는 동안 살얼음은 계속해서 녹아내리면서 이제야 물회다운 면모를 갖춥니다. 국물이 생기자 공깃밥 하나를 뒤집어 말끔히 말아먹습니다. 이렇듯 울릉도의 오징어 물회는 빙수 같은 살얼음이 서서히 녹으면서 다양한 질감과 맛을 선사합니다. 소면이냐 공깃밥이냐는 그 옛날 경양식집에서 밥이냐 빵이냐를 놓고 선택하는 고민을 안겨 줍니다.

 

새콤달콤한 양념장이 다소 과하다 느껴질 때도 있지만, 더위에 지쳐 입맛을 잃은 터라 그 맛에 개를 끄떡입니다.

 

 

강원도 퓨전식 가자미 물회

 

#. 강원도의 가자미 물회

물회의 고장이라 할 수 있는 강원도와 경북 포항은 토박이들이 주로 먹는 전통 물회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퓨전 물회로 양분됩니다. 전통 물회는 시원한 물만 부어 먹는 형식인데 양념장이 물에 희석되면서 조금은 밋밋한 맛을 냅니다. 퓨전 물회는 감칠맛이 좋은 육수를 슬러시 상태로 얼린 다음, 부어 먹는 형식으로 최근 '물회의 대중화'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강원도 물회 하면 속초를 꼽는데요. 속초는 가자미의 고장답게 가자미를 뼈째 썰어 올립니다. 다만, 전량 자연산에 의존하는 가자미 특성상 기상과 어획량에 따라 수급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메꿔주는 것은 전적으로 양식 광어의 몫. 어른 손바닥만 한 양식 광어는 단가가 저렴할 뿐 아니라 가자미처럼 뼈째 썰어 낼 수 있고, 양념장에 비비면 맛의 구분이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이 둘을 섞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념장은 고추장이 기본인데 가게에 따라 소량의 된장을 넣기도 합니다. 속초에 유명한 모 물회 집은 얼린 사골 육수를 사용하며, 어떤 집은 인스턴트 냉면 육수나 동치미 육수를 사용하고, 심지어 인공 조미료(다시다) 육수를 살얼음으로 사용하면서 외지인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맛 내기에 급급한 나머지 사이다나 환타 같은 탄산음료까지 동원되는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강원도의 전통 어부식 가자미 물회밥

 

#. 동해의 횟밥? 물회밥?

한편, 토박이들이 주로 먹는 어부식 물회는 각얼음에 생수를 부어먹는데 집집에 따라 손님이 알아서 양념장을 조합해 먹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주로 고추장과 식초, 설탕으로 간을 맞추며 그래도 맛이 모자라면 초고추장을 추가로 넣어 맞춥니다. 기본은 물에 훌훌 말아먹는데 적당한 시점이 오면 공깃밥을 엎습니다. 

 

동해에서는 이런 식으로 먹는 물회를 '횟밥', 또는 '물회밥'이라 부르는데요. 주재료는 강원도에서 가장 저렴하다 할 수 있는 기름가자미(현지에서는 물가자미, 미주구리로 칭함), 청어 등을 사용합니다. 일반적으로 물회는 비린내가 나는 등푸른생선을 쓰지 않는다고 알려졌지만, 울릉도의 꽁치물회, 묵호항의 청어물회처럼 예외도 있습니다. 

 

여기에 물을 부었으니 깔끔한 맛은 있지만, 감칠맛은 퓨전식 물회보다 덜해 새콤달콤 육수 슬러시에 길들인 외지인들의 입맛을 돌려세우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저 전통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만족하는 것으로.. 

 

 

포항 죽도시장에서 퓨전 물회

 

물회라기보다는 비빔회에 가까운 포항식 퓨전 물회

 

#. 포항식 퓨전 물회

때로는 전통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퓨전이 지역 명물로 자리 잡으면서 또 하나의 전통이 되기도 합니다. 포항식 퓨전 물회가 그러한데요. 여기에는 물회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물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새빨간 양념에 무친 비빔회에 육수 슬러시가 한 움큼 들어가는 것이면 충분하죠

 

입에 넣으면 이가 시릴 만큼 차가우면서도 연이어 느껴지는 자극성 양념에 잃어버린 입맛을 일깨웁니다. 주로 사용하는 횟감은 크게 양식과 자연산이 있으며 가격 또한 달라집니다. 양식은 우럭, 광어, 쥐노래미(놀래미), 가숭어(밀치)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자연산을 선택하면 주로 동해에서 나는 자연산 잡어를 되는대로 섞어 씁니다. 그 종류로는 등가시치, 홍치(빨간횟대), 말쥐치 등이 있는데 도시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횟감이면서도 맛도 있으니, 포항을 방문할 때 한 번쯤 맛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진해에서 맛본 무채 듬뿍 한치 물회

 

거제도의 부시리 물회

 

#. 남해식 물회

남해식 물회는 포항의 고추장 양념에 영향을 받은 경상남도식 물회와 제주도식 된장 물회의 영향을 받은 전라남도식 물회로 양분되는데 지리적으로는 강원도와 제주도의 중간에서 조금씩 영향을 받아서인지 남해식 만의 뚜렷한 특색을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양식 활어를 쓰며, 산지에서 잡히는 연산으로는 한치나 부시리, 용치놀래기(술뱅이), 청보리멸, 말쥐치(객주리)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철에 따라 멍게가 들어가기도 하며, 전국 어디서든 맛볼 수 있는 전복(양식) 물회가 무난한 인기를 끕니다. 포항과 마찬가지로 살얼음 육수를 부어주며, 고추장의 투박한 맛이 중심인 물회로 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식 한치 물회

 

제주도식 모둠 물회

 

제주도식 자리 물회

 

#. 제주도식 된장 물회

그 옛날 제주도는 고추가 귀한 탓에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대신 된장으로 맛을 냈습니다. 물회도 예외는 아닌데요. 이곳의 어촌 사람들은 집집이 담가둔 집된장과 보리밥을 발효시켜 만든 쉰다리 식초를 이용해 구수하고 개운하면서 새콤한 물회를 만들어 먹었던 것이 오늘날 제주도식 된장 물회의 원형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된장은 오늘날 제주도 음식의 정체성이자 뚜렷한 개성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물회에서 된장은 비린내를 줄이는 역할 그 이상으로 음식의 감칠맛과 구수하면서 깊은 풍미를 내는 데 일조합니다. 여기에 제피나무 잎을 다져 넣어 특유의 향을 살렸는데 처음에는 외지 관광객들로부터 호불호가 갈리던 것이 지금은 빠져선 안 될 토속 재료로 자리매김합니다.

 

다만, 제주도 내에서도 일부 관광지 횟집의 물회는 제주도식 된장 물회의 정체성이 의심될 만큼 고추장 비율이 높습니다. 아무래도 육지 사람들의 입맛을 의식한 것이라 일면 이해는 갔지만, 그만큼 개성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아열대 기후를 가진 제주도는 다른 지역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횟감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대표적으로 제주 바다에서 나는 한치와 자리돔이 있는데요. 한치(표준명 창오징어)는 오징어와 비슷한 두족류로 식감은 오징어보다 부드럽고 단맛이 나는 고급 횟감입니다. 자리돔은 뼈째 썰어 특유의 까슬까슬함이 있지만, 뼈가 연해지는 산란철(5~7월)의 자리돔 중 몸길이 5~6cm 내외의 작은 것은 물회 재료로서 최고로 칩니다.

 

한치와 자리돔은 봄부터 여름까지가 제철로 이 시기 제주도를 여행한다면 갓 잡은 활어로 맛볼 수 있습니다. 한치의 경우 냉동해도 맛이 크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일 년 내내 맛볼 수 있는 물회 재료입니다. 이 밖에도 제주도는 다른 지역에서 쉬이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물회로 지역색을 살리고 있습니다.

 

최근 알려지기 시작한 옥돔 물회를 비롯해 어랭이(황놀래기) 물회, 성게와 소라, 문어가 들어간 모둠 물회는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꼭 한 번 맛보아야 할 별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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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 추억 ★입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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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사짓는제주한량
    2018.08.06 14:3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입질의 추억님 블로그 제주 토박이 팬입니다~^^*

    이번 물회 편 글을 통해 대한민국에도 참 맛있고 다양한 물회가 있구나!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저도 더 정확한 자료는 찾아봐야 하겠지만, 제주도민 입장에서 본 제주도식 물회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고자 글을 남깁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제주도식 물회는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대신 된장으로 맛을 낸 물회'가 아닌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춧가루가 제주에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된장식 물회가 있었고, 쉰다리 식초 뿐만 아니라 막걸리 식초(예를 들면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발효 식초) 등을 이용해 새콤한 맛을 더 했습니다.
    발효 식초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풍부하지 않아서 집집마다 갖고 있던 식초들은 아니었구요, 이 보다 구하기 쉬웠던 재료가 제피나무 잎이었습니다.
    제주도민 중에서도 호불호가 가리는 재료이긴 합니다만, 제주물회 풍미에 더할나위 없는 재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추천하건데 물회 뿐만 아니라 쌈된장에도 이 제피나무 잎을 섞어서 먹으면 색다른 쌈장 맛을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제주는 현재 고추장 또는 고춧가루를 더 많이 사용해서 물회를 만드는 식당이 많은건 사실입니다. 제주도민들도 느끼는 것이지만 관광객(육지 사람들) 입맛을 의식한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제주도식 된장 물회는 위에 나오는 육지식 물회 보다는 새콤달콤한 맛이 훨씬 떨어지거든요. 아무래도 장사를 하는 식당이기 때문에 한정되어 있는 제주도민 입맛 보다는 관광객 입맛을 따라 달라지는게 아닐까 싶네요.

    옥돔 물회와 어랭이 물회, 성게, 소라 물회가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님의 글에는 의문입니다.
    이미 잘 알려지기는 했으나 오징어(한치), 자리물회 보다 선호도에서 뒤떨어졌다는 게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해삼, 전복이 들어간 물회와 마찬가지겠죠.
    문어가 들어간 물회는 퓨전물회로 알려지고는 있습니다만, 소문으로만 듣던 물회라 맛은 저도 모르겠네요.

    한정된 곳에서 자세한 설명을 하기엔 어렵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 글에도 그러할테니까요.
    제주에 터를 잡고 제주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그래도 좀 더 알려드리고자 장문의 글을 올렸네요.

    암튼. 매일 잘 보고 읽고 부러워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몸 건강히 꾸준한 활동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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