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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비치 호텔의 별비치 가든 그리고 아내의 수작
3박 4일로 떠난 제주도 낚시가 여행이 될 정도로 성격이 모호해진 계기가 있었는데요. 낚시 비중 70%, 여행 비중 30%로 계획을 짠 것을 탐탁치 못해했던 아내가 반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낚시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제가 제주도에서 할 일은 당연히 바다낚시를 즐기면서 그와 관련된 컨텐츠를 생산하는 것이였죠. 되도록이면 주어진 시간에 충분히 낚시를 하고 고기도 많이 잡으면서 보다 재밌는 에피소드를 만들어 오는 것이 이번 제주도 방문의 주된 목적이였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 큰 맘먹고 제주도로 내려와 낚시를 했던 첫날, 아내가 돌연 태도를 바꿔버린 것입니다. 제가 낚시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지요.
벵에돔 낚시를 위해 밑밥을 투척중인 아내
꿈에 그리던 제주도에서 바다낚시. 환상적인 비경속에서 아내와의 동반 출조는 아마도 우리나라 600만 낚시인구의 로망이 아닐까. ^^; 겨우겨우 허락받고 눈치밥 먹으며 낚시를 하고 계신 남편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어쩌면 저처럼 아내와 함께 갯바위에 선다는 것은 복에 겨운 일일런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과정들이 있었지만 알고보면 제 아내도 낚시자체가 좋아서 하는 건 아니였습니다. 그저 서방이 좋아서 따라다니는거지.^^*(앗 돌 날라오는 소리 ㅋㅋ)
최근 몇 달 동안 엄청나게 바빴던 아내였는데 이제는 좀 한가해져서 저와 함께 제주도행 비행기에 함께 몸을 실을 수 있었습니다. 다소 이른 시즌이지만 벵에돔을 잡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아내. 유난히 화이팅 넘치는 자세로 낚시에 임했지만 아쉽게도 벵에돔 얼굴은 못보고 볼락 몇 마리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어요.
그런데 이 날은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다 저녁에 또 다시 낚시를 하는 강행군을 펼쳐야 했습니다. 이유는 야간에 키로가 넘는 대형급 무늬 오징어를 낚기 위해서였죠.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제주도까지 내려와서 낚시를 할까 하는 마음에.. 스케쥴이 빡빡하지만 아내는 그런 저를 이해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낚시로 시작해 낚시로 끝내겠다는 저의 야심찬 포부(?)에 제동을 건 사건이 발생했으니..
저녁에 오징어 낚시를 위해 낚시복으로 갈아입어야 할 아내가 갑자기 샤랄라한 옷으로 갈아입더니 "낚시 안해" 선언을 해버린 것입니다. 이미 서로가 함께 계획한 것이였고 아내도 이견이 없었는데 이제와서 옷을 바꿔 입고 낚시를 못하겠다니.. 갑작스런 아내의 변신에 순간 혼란에 빠졌습니다. 처음엔 어쩔려고?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아내 표정을 보니 알만해요. 사실 진이 빠질만도 합니다. 제주에 도착한 첫 날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 그 뙈약볕에서 낚시를 하다 왔으니 몸이 피곤할 만도 하지요. 그런데 또 다시 낚시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그냥 이대로 쉬고 싶었을 겁니다.
마침 해비치 호텔에서 제공하는 별비치 가든이란 쿠폰이 있었는데 그걸 제게 내미는 거예요. 알고보니 바다가 보이는 탁 트인 공간에서 파도 소리도 듣고 누워서 밤 하늘의 별도 보면서 로맨틱하게 와인한잔 마시는 그런 프로그램이였습니다.
"이거 언제 구입했냐?"
"글쎄(웃음)"
"너 혹시 일부러?"
"하지만 강요는 안할께. 실은 나도 오징어 낚시 해보고 싶었고.. 하지만 당신의 판단에 맡길께. 낚시가 중요하다면 우리 그냥 낚시하러 가자.
대신 이 쿠폰은 오늘 사용 안하면 끝나"
정말 혼란스러운 순간입니다. 이번 제주도 낚시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다름아닌 무늬 오징어 낚시였여요. 지금 못하면 내일은 다른 스케쥴이 있어서 못하게 될텐데.. 낚시를 포기하자니 멋지게 무늬 오징어를 낚아내는 에피소드가 아쉽고, 별비치 가든을 포기하자니 아내가 걸리고.. 그리고 이어지는 아내의 말~
"고민하지말고 우리 그냥 낚시하러가자."
그녀는 맘에도 없는 소릴 하고 있어요. 옷은 이미 샤랄라하게 갈아 입어놓고선 -ㅛ-;; 결국은 제가 졌습니다. 여기까지와서 로맨틱한 시간 한번 못보내고 올라간다면 그것도 참 억울하겠지요. ^^ 열심히 일한 아내에게 기껏 주어진다는 보상이 땡볕에서 낚시하는 거였나 싶기도 하고..
해비치 호텔에서 제공해 준 별비치 가든현장. 이용 시간은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아직은 해가 저물지 않아서 밝은데요. '섬모라'로 불리는 호텔 레스토랑을 가로질러 정원으로 나가보니 이렇게 4팀이 이용할 수 있도록 야외 소파를 준비해 논 풍경입니다.
별비치 가든의 메뉴판, 제주도 표선 해비치 호텔
가격이 좀 후덜덜하죠? 하지만 모처럼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겠다면 맨 아래쪽에 있는 메뉴 정도는 한번 시켜볼만 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우리는 쿠폰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메뉴는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잠시후 웨이터가 와서 서빙 해주는데..
낚시에 지친 아내를 달래준 별비치 가든, 제주도 표선 해비치 호텔
기본 안주와 와인 두잔이 제공되더군요. 와인은 화이트와 레드 중 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와인을 사용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아마 메뉴판에 나와 있는 하우스 와인이 아닐까 추측할 뿐 정확한 정보가 없는데요. 적어도 이때 나온 와인만큼은 둘다 만장일치로 레드가 조금 더 맛있다고 느꼈는데 사실 이런데선 맛보단 또 분위기 아니겠습니까. ^^
"여보, 나 따라 낚시하느라 고생많았어"
"웅 당신도 수고했어 ^^*"
"그런 의미에서 내일 낚시도 파이팅 하자구! 알람 새벽 4시에 맞춰놓는거 잊지말구"
"헐~"
처음엔 낚시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쉬웠지만 이렇게 아내가 좋아하니 여기 오길 잘했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낚시 좀 못하면 어때, 이렇게 좋아하는데..아마 낚시갔어도 꽝쳤을 꺼야"
하는 생각에 마음의 위안을 얻기 시작합니다. 고생한 아내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어서 기분이 뿌듯한거 있죠.^^*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 날 저녁, 오징어 낚시 아주 좋았다네요. ㅠㅠ)
정면엔 드라마 아이리스로 유명해진 김태희 등대가 보이는 풍경, 제주도 표선
날이 어둑해지자 웨이터가 촛불과 난로를 켜주고 있다.
"살다보니 낚시하러 다니면서 이런 호사를 다 누려보네"
아직은 밤 공기가 차가워요. 가벼운 자켓을 입었지만 그래도 좀 쌀쌀했는데 마침 웨이터가 오더니 양털 이불을 주고 가셨습니다. 이불이 가벼우면서도 참 따듯하더라구요. ^^
그렇게 제주에서의 첫날은 저물어갑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선 찰랑이는 파도소리가, 뒤에선 나지막한 볼륨의 클래식이 나오며 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몸은 어느새 폭신한 소파에 동화되어 갔습니다. 이런 곳에서 와인 한잔 하며 누워 있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습니다.
별비치 가든, 제주 표선 해비치 호텔
오늘따라 와인 한잔 마시는데 왜 이리 뜸을 들이는 걸까? 벌써 비어지려고 하는 와인이 이토록 아쉬운 적이 있었던가. 조금씩 아껴먹자.. 왠지 그래야만 이 분위기가 오래토록 지속될 것 같습니다.
깜빡이는 촛불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도 편안해지고 눈도 편해지는 기분이예요. 이대로 있다가는 저도 모르게 눈이 스르륵 감길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보니 촛불이 아니였어요. 진짜 촛불처럼 불규칙하게 깜빡거렸지만 위에서 보니 전등이였던 것입니다. 재밌네요. ^^
누워서 바다바람을 쐬며 마시는 와인 한잔의 여유. 행복해하는 아내의 표정을 보니 비록 낚시를 못했지만 이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기엔 충분하였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라고 말하는 아내. 지금까지 제주도에 오면서 낚시하느라 여행다운 여행 제대로 해본적이 없었기에 늘 미안했는데 이것을 계기로 앞으로의 스케쥴 또한 낚시보단
여행 비중이 대폭 늘어나게 되었답니다. 다음날, 여느때 같으면 꼭두새벽에 일어나 낚시배에 몸을 실었겠지만 이 날은 오전내내 호텔방에서 뒹굴뒹굴하다 오후에서야 낚시배에 몸을 실었어요. 아주 특별했던 손님 두분을 모시고 말입니다. ^^ 그 이야기는 다음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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