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죽도시장 구경, 식인상어와 개복치 해체 장면


어느 지역을 방문했을 때 재래시장을 구경하는 일은 저에게 있어 큰 즐거움입니다.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하는 낯익은 풍경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먹거리,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은 재래시장을 탐방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특히, 생선만 보면 본능적으로 눈이 바빠지다가도 한동안은 쥐죽은 듯이 서서 관찰하는 제 모습이 마치 장난감 코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수산시장은 제게 있어 지상 낙원과 같은 곳이죠. ^^ 지난번 포항 죽도시장을 찾았을 때의 일입니다. 서해와는 사뭇 다른 동해 수산물들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군요. 특별히 눈길을 끈 것은 거대 물고기인 '개복치' 해체 장면과 식인상어까지, 다른 곳에는 보기 어려운 주역들이 포항 죽도시장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포항의 죽도시장으로 나들이를 떠나봅니다.



과메기 등 각종 건어물을 팔고 있는 포항 죽도시장


전갱이를 손질하는 아주머니

포항 죽도시장에 나가 보니 전갱이를 횟감으로 손질하는 장면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것도 낚시꾼들을 아주 귀찮게 하는 20~25cm 남짓한 어린 전갱이들이 주류입니다. 작아서 양쪽으로 포를 뜨면 마리당 두 쪽 밖에 안 나옵니다.
저것을 12~14마리가량 포를 떠서 바구니에 올린 게 15,000원이니 참 저렴하죠? ^^


전갱이는 고등어만큼의 기름기는 아니지만, 붉은살생선회 중에서는 담백한 맛을 갖고 있습니다.
고등어 회가 구수하다면, 전갱이 회는 고소한 맛이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전갱이는 30cm가 넘어가는 성어가 아니어서 오히려 고소함이 지나치지 않았고 덜 느끼한 편입니다.
요 바구니는 식당에 들어가 먹기 위해 하나 사두었습니다. 포항 물회와 전갱이회 이야기는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가시배새우

싱싱한 건 회로 먹는 가시배새우지만, 죽어버려 상품성이 덜한 것들을 모아다 찌개나 구이거리로 팔고 있었습니다.
위에 물렁가시붉은새우도 보이네요. 가시배새우와 물렁가시붉은새우는 식당에서 각각 '닭새우'와 '꽃새우'로 불리고 있습니다.
새우회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익숙한 녀석들이지요.


40cm에 달하는 대고등어 다섯 마리가 단 돈 만원. 서울, 수도권 마트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가격입니다. ^^
여기서는 부산 생물 '참 고등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서 관찰한 결과.


전부 망치고등어(점백이)만 모아다 팔고 있었습니다. 참고등어는 그 옆에다 따로 모아놓고 파는데요.
이렇게 고등어에다가 '참'짜를 붙여서 파는 물건이 참고등어가 아닌 망치고등어라면 아무래도 오해의 소지가 있겠지요.
고등어 종류에 관해 잘 모르는 소비자들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망치고등어는 배에 검은 반점이 무수히 흩어져 있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간혹 배에 검은 반점이 없는 것도 있습니다. (화면의 바구니에서 가장 오른쪽)
그러나 등과 배의 경계면에 횡렬로 검은 반점이 나 있으면 역시 망치고등어입니다.

망치고등어는 일반 참고등어보다 지방이 적어 맛도 덜하지만, 여름에 참고등어의 지방 함유량이 최저로 내려갔을 때 한시적으로 맛을 능가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겨울이니 참고등어가 더 맛있을 텐데 그것도 엄밀히 말해 미묘한 차이입니다.
특별히 의식하고 먹지 않는 한, 맛으로는 가려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각종 물회 재료들

한쪽에는 지나가는 손님에게도 팔고 주로 식당 납품용으로 물회용 뼈째썰기(세꼬시)를 썰고 있었습니다.
숭어(밀치), 어린 광어, 가자미, 학공치, 오징어로 구성되어 있네요.


잠시 건어물 코너로 갔습니다. 여기서는 무려 쥐포 50마리가 단돈 만 원.
요즘 쥐치가 귀해 쥐포를 그 쥐치로 만들었을 리 없겠지만, 하여튼 저렴한 가격입니다.


알을 가득 품은 가자미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기름가자미

포항에서 가장 많이 나는 가자미를 꼽으라면 단연 기름가자미를 들 수 있습니다.
기름가자미는 살에 기름기가 많아 생물로 구우면 푸석해 잘 부서집니다. 그래서 이 가자미는 꾸득하게 말린 건어물이 많습니다.
기름기가 있으니 고소하고(이는 사람마다 호불호) 무엇보다도 가격이 저렴해 서민들의 반찬감으로는 효자지요.
저도 기름가자미에 관한 추억이 있습니다.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구워주신 기름가자미 한 마리로 공깃밥을 비웠던 게 생각납니다.
그때 당시에도 임연수어와 함께 가격이 저렴한 생선이었으니 자주 식탁을 오르내렸습니다.

그런데 이곳 죽도시장과 구룡포에서는 기름가자미를 '물가자미(미주구리)'라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구입한 물가자미를 동해시 묵호 시장으로 가져가 상인에게 물으면 이를 '기름가자미'라고 합니다.
같은 동해지만, 한 어종을 두고 부르는 명칭이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배에 노란테가 있는 참가자미를 '노랑가자미'로 부르는 지역이 있으며, 배에 암적색 테가 있는 용가자미를 참가자미로 취급하는 곳도 있습니다.
포항과 구룡포에서 파는 '물가자미(미주구리)'도 실은 '기름가자미'로 맛의 수산업적 가치는 두 어종 모두 비슷합니다.
언뜻 보면 생김새도 비슷해 일본에서도 두 어종을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해도 그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표준명이야 어쨌건 시장 상인들은 그 지역에서 생선을 취급하며 반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분들에게 있어 생선 명칭은 표준명보다도 자기가 태어나서 줄곧 불러온 명칭이 진리일 겁니다.


물메기탕 재료로 사용되는 '꼼치'

물곰탕, 혹은 물메기탕에 사용되는 재료도 알고 보면 다양합니다.
서해와 남해에서는 꼼치가 사용되고 동해에서는 꼼치는 물론 미거지나 아가씨물메기 등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메기탕에는 정작 물메기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 ^^


즉석에서 한 입 베어먹고 싶을 정도로 싱싱한 해삼

청각에 올린 활전복이 먹음직스럽다.

문어

2만 원짜리 활어회

3만 원짜리 활어회

바구니를 선택하면 즉석에서 회를 쳐 주는데 가격이 참 착합니다.
그리고 포항 죽도시장이 마음에 든 것은 '호객행위'가 심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이곳도 호객행위가 있기는 합니다. 
지나가거나 구경 좀 하고 있으면 '뭐 잡수게?' 또는 '뭐 찾아?', '딴 데 가지말고 여기서 잡숴' 정도가 고작입니다. 
행인을 붙잡고서는 다짜고짜 수조에서 물고기를 꺼내 저울질하며 흥정해 오는 노량진 수산시장의 호객행위와는 성격부터 다릅니다. 
똑같은 호객행위라도 받아들여지는 게 이렇게나 차이가 납니다. 


포항의 명물 고래고기

청상아리

시장 손님의 이목을 끈 것은 식인상어의 일종인 청상아리.
입가에 피로 붉든 모습이 괴기스럽습니다. 그 옆에는 잘려나간 지느러미는 삭스핀 재료로 대기 중입니다.




개복치

거대 물고기 개복치의 모습입니다. 어떻게 바닷속에 저런 물고기가 살고 있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기만 합니다.
저는 아쿠아리움에서만 봤을 뿐, 이렇게 실물을 본 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마침 크기가 큰 것과 작은 게 같이 잡혀 온 모양인데요. 왠지 그 모습에서 어미와 새끼가 연상되려 합니다. 
(개복치의 생태 상 어미와 새끼가 함께 걸려들 리는 없음) 



개복치는 경골어류강 복어목 개복치과의 바닷물고기입니다.
최대 몸길이 약 4m로 최대 2,000kg까지 자란다고 해요. 평균 몸길이는 2~3m인데 너비 또한 2~3m로 널찍합니다.
이렇게 거대한 몸집을 불릴 수 있었던 까닭은 '연골'로 된 척추와 뼈 구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개복치는 잔가시가 없고 한가운데 연골로 된 척추가 유인한 뼈대어서 기동성이 적고 느린 속도로 물속을 부유해 초대형 플랑크톤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답니다. 온대성 어류로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도 서식하고 있으며 동해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개복치는 오징어를 먹으러 들어왔다가 정치망에 곧잘
걸려든다고 해요. 주로 먹는 것은 해파리. 하지만 시력이 안 좋은 개복치는 수면에 떠다니는 비닐을 해파리로 오인해 먹다가 폐사하는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보호 어종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바다의 중층을 헤엄치고 다니지만, 파도가 없고 맑은 날에는 수면에 지느러미를 내놓고 태연하게 다닙니다.
보통은 측편된 몸을 세워서 다니지만, 그러다가 귀찮아지면 누워서 떠다니기도 합니다.
한 번에 낳는 알의 수는 3억 개가량으로 정말 엄청납니다. 대한민국 인구의 대여섯 배에 해당하는 숫자가 한 어미에서 방출되는 꼴이지만, 생존율은
극히 희박해 이렇게 성어로 자라기 위해선 엄청난 확률을 뚫고 생존해야만 합니다. 3억 마리 중 살아남는 개체는 10마리도 채 안 되니 815만 분의 1이
라는 로또 확률보다도 더 적은 것입니다. 일단 생존에 성공하면 평균 체중이 1,000kg까지는 불어나 바다에서 이를 잡아먹을 수 있는 대상은 상어, 고래
등을 제외하면 별로 없다고 알려졌습니다.


개복치를 다듬고 있는 상인, 포항 죽도시장

마치 묵처럼 말랑말랑한 개복치 근육

한 마리에서 나오는 살 양도 엄청납니다. 위 사진은 개복치의 특수 부위가 아닌 일반 근육입니다.
개복치의 모든 살이 하얗고 묵 같은 질감을 가졌습니다. 한때는 개복치를 못 먹는 생선으로 분류했으나 지금은 한국, 일본, 대만 등 일부 나라에서
식용하고 있습니다. 이곳 포항과 속초에는 개복치 회, 물회, 수육, 탕을 취급하는 곳이 있습니다.


개복치 해체 작업이 한창이다.


개복치의 수명은 약 20년. 
평생을 바닷속을 부유하며 해파리, 오징어 등을 먹으며 편하게 살아왔을 텐데 잠깐의 방심으로 이렇게 긴 삶의 여정을 해체로 마감해야 하는 개복치가
조금은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생긴 것도 순박해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을지도요.
개복치를 해체하는 장면은 참치 해체 이상으로 스케일이 컸습니다. 여러 사람이 역할을 분담해서 하는데도 워낙 덩치가 커 시간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이 겨울에 한 마리만 해체해도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히는듯하였습니다.

잠시 다른 곳을 둘러 본 사이 이미 한쪽 면은 포를 뜬 상태니 속살과 내장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가운데 녹색 빛이 나는 것이 개복치 쓸개.
쓸개 한 덩이 크기가 어른 주먹보다도 컸습니다. 그 옆에 노란색은 간으로 그 크기가 거대했지만, 사진상에서는 일부만이 빼꼼히 보이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위장과 창자가 조밀하게 있습니다. 이렇게 해체된 개복치는 이를 취급하는 식당으로 팔려나갑니다.

평생을 정처 없이 떠돌며 살아온 개복치의 생태가 궁금했습니다.
개복치는 시간이란 개념도 없이 해파리나 씹으며 목적 없는 부유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일정한 회유 반경이 있는지 서식처가 따로 있는지도 아직은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이 넓은 대양을 느리게 돌며 살아왔을 개복치의 삶이 어쩌면 경쟁 사회에서 살고 있는 인간보다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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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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