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지난 편을 못 보신 분은 여기를 클릭 → 제주도 섶섬 낚시(상), 낚시하러 왔다가 화보 찍은 날

 

 

오후 3시, 제주도 섶섬

 

벵에돔은 약속의 고기입니다. 오후 3~4시부터 시작된 입질이 일몰 전에 폭발하는 그런 그림을 그리면서 낚시하는데 예상대로 한낮에는 뜸하던 입질이 3시를 기점으로 잦아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줄을 시원하게 가져가 딴청 부리던 제가 깜짝 놀라며 챔질합니다. 후두둑 하며 쭉 나가는 시원한 입질인 만큼, 긴꼬리벵에돔이 기대되고.

 

 

그런데 이 느낌은?

 

 

또다시 독가시치(제주 방언 따치)가 올라옵니다. 이제는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약속을 어길 셈인지? (벵에돔 왈~ 누가 너랑 약속했더냐? ㅎㅎ)

 

 

바늘에 설 걸렸는지 올리자마자 자동 방생 됩니다.

 

 

방생된 독가시치는 파도가 쓸어가고. 이날 독가시치를 몇 마리째 낚았는지 세지 않아서 모르지만, 얼마나 잡아내던 서울 사람은 가져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독가시치를 집으로 살려갈 수 없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즉살해 피와 내장을 제거하고 얼음에 재워야 맛있는 횟감이 되는데 그럴 자신이 없고 또한, 집으로 귀가한 늦은 밤에는 정리하고 자기 바쁘니 회가 당기지도 않습니다.

 

철수 후 2~3시간 안에 썰어 먹을 것이 아니라면, 구이나 매운탕감으로 챙기면 되는데 이날 잡은 독가시치를 다음날까지 보관해 서울로 가져가도 선도를 보장할 수 없고, 자칫 갯내가 나서 버려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것이면 차라리 손맛만 보고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는 게 낫겠죠.

 

사실 이 날은 벵에돔을 잡아도 캐치앤 릴리즈 할 생각이었습니다. 딸내미 밥반찬이라면, 지지난달에 잡은 갈치 고등어로도 충분하니, 특별히 지인들 불러서 회 파티를 열 것이 아니면 고기를 챙기지 않게 된 것이 요즘 저의 모습입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생선 손질도 귀찮고, 그 뻔한 회 맛(?)을 굳이 볼 필요도 없고(...)

 

그러고 보면 낚시 초창기 때 저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되죠. ^^; 끼니 걸러가며 전투낚시를 일삼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낚시 좀 안 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낚싯대를 놓고 앉아버리니 말입니다. 좋게 말하면 연륜인데 이젠 체력도 부치니 예전처럼 눈에 불을 켜면서 낚시하게 되지는 않더군요. 

 

 

그나마 지금은 시간이 시간인지라 독가시치 성화에도 눈먼 벵에돔 한두 마리가 물어줄 것이 기대되는 타이밍입니다. 가까운 곳은 잡어가 성화를 부려서 채비를 조금 멀리 던져 가라앉힌 다음,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면서 입질을 받아내는 식인데 미끼가 수심 4~5m를 뚫고 내리면 여지없이 들어올 만큼 녀석들의 활성도가 극에 달했습니다. 이번에도 뒷줄이 후두둑 나가는 아주 시원한 입질이 들어옵니다. 서둘러 베일을 닫으며 대를 세우자 '턱'하고 걸리는 둔탁함.

 

 

대를 최대한 세워 힘을 쓰지 못하도록 기선을 제압해보지만

 

 

어찌나 힘을 쓰는지 저 자세로 수 초를 버텨야만 합니다. 양팔로 버텨도 될 것을 굳이 한 팔로 잡고 버텨보는데 그 바람에 팔꿈치 옐보우가 와서 요즘 고생 중입니다. 이제는 파이팅도 몸 사려야겠네요.

 

 

이번에도 고개를 내민 건 독가시치. 이쯤 되니 바다에 독가시치밖에 없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을 만져보니 초겨울임에도 뜨뜻미지근해요. 아무래도 벵에돔 낚시는 독가시치가 빠져야만 제대로 될 것 같군요.

 

 

잡힌 독가시치는 평균 씨알이 준수한 편입니다.

 

 

저는 독가시치에 한 번도 찔려본 적이 없지만, 등과 배지느러미에 독이 있어 찔리면 심하게 붓고 통증이 온다고 알려졌습니다. 집이 가까운 현지꾼들은 횟감으로 가져가곤 하는데 서울까지 공수는 정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제주시에는 독가시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횟집이 있는데 수조에는 꼭 이 정도 되는 독가시치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한 상에 6만원으로 수년째 동결인데 별다른 반찬(츠케다시)은 없지만, 이 녀석 한 마리로 한 접시 푸짐히 썰어 나오곤 하죠.

 

가치로 따지면야 얼마가 됐든 돈이 되는 녀석이지만, 제주도에서는 흔하디흔해 일부 꾼들은 잡자마자 목줄을 끊고 발로 밀어 방생하는 고기입니다. 작년 5월에는 독가시치를 주제로 한 방송 촬영에서 직접 낚아내는 장면을 찍기 위해 3일 동안 애썼는데도 잡는 데 실패한 이 고기가 11월에는 그야말로 담그면 나오는 수준입니다.

 

 

서둘러 채비를 정비하고 바다의 심연에 던져 넣습니다. 아무리 독가시치 천국이라지만, 개중에 분명 벵에돔이 섞여 놀고 있을 터. 전열을 가다듬고 미끼를 탐하는 녀석을 상상하며 입질을 기다립니다. 채비가 바닥층 근처로 들어갈 때 쯤 베일을 닫고 가는 원줄을 슬쩍 잡아당기는데 그 순간 원줄이 빨랫줄 송구처럼 쭉 나갑니다. 베일이 닫힌 상태라 챔질이 늦으면 대도 세워보지 못하고 기선을 제압당할 수 있으니 반사적으로 챔질.

 

 

아~ 이번에도 꾹 처박으며 기분 좋은 손맛을 보이는가 싶더니 파이팅 중반부터는 독가시치 특유의 떠는 힘이 전해집니다.  

 

 

날을 바짝 세우며 올라오는 독가시치(따치).

 

 

곧바로 방생하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사방에는 독가시치로 낚싯대가 수그러들 새가 없습니다.

 

 

한창 입질이 이어지자 진작에 촬영분을 확보한 일루바타님. 아무리 낚시를 안 한다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손맛을 체험하기 위해 제 낚싯대를 잡아 듭니다. 알려준 대로 채비가 충분히 가라앉자 뒷줄을 살며시 잡고 기다리는데 

 

 

이번에도 지체 없이 들어와 줍니다. 처박는 특유의 힘에 양손으로 버티다가 제가 했던 것처럼 질질 끌어 올립니다.

 

 

 

"저도 한 마리 했습니다."

 

어복이 있네요. 이 많은 꾼 중 낚싯대를 잡고 선 시간이 불과 몇 분도 채 되지 않는데 그사이 두 마리나 잡아냈으니.

 

 

그런데 이 독가시치가 조금 묘합니다. 주둥이에 살짝 걸려 올라왔는데 바로 옆에 또 다른 바늘이 달렸군요. 아마 다른 꾼에게 잡혔다가 방생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써 이 녀석은 두 번째 방생으로 명을 이어가네요.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오후 4시, 제주도 섶섬

 

지금부터 일몰까지는 벵에돔의 시간.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분위기가 그랬듯 벵에돔을 잡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독가시치 입질 대신 벵에돔 입질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이, 또한번 시원한 입질이 들어옵니다. 녀석들 이제는 생각할 틈도 안 주네요.

 

 

일단 대를 세우는데 지금 1분 1초라도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는 시점이라 강제로 끌어올려 봅니다.

 

 

급할 때는 뜰채질도 생략, 대가 1.5호대라 질질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만만한 씨알의 독가시치가 걸려들었습니다. 곧바로 방생.

 

 

재빨리 캐스팅해 입질 반경에 들면, 베일을 닫은 뒤 뒷줄을 잡아 살짝 팽팽하게 둡니다. 벵에돔아~ 벵에돔아~ 어디에 있니.

 

 

왼편에 선 현지꾼도 연신 독가시치를 낚아냅니다. 순간 손으로 잡고 있던 뒷줄이 움찔해서 대를 세우는데

 

 

이번에는 씨알이 잘아도 벵에돔. 겨우 벵에돔을 잡았나 싶었는데 씨알이 이런 식이면, 오늘 낚시는 오리무중에 빠질 공산이 커 보입니다.

 

 

사진을 전부 찍지는 못했지만, 저곳에서 25~30cm 정도의 벵에돔이 한두 마리 나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입질은 쉴 틈을 주지 않고 철수 시각까지 이어졌습니다. 10마리 중 한두 마리만이 벵에돔이고 나머지는 독가시치.

 

 

비록, 독가시치지만 입질을 받아내고 손맛을 보는 것이 중요한 시점에서 예찬씨의 낚싯대가 잠잠하길래 일단은 급한 대로 제 낚싯대를 건내 봅니다. 이미 채비가 일정 수심 안으로 내려간 상태여서 수초 안에 입질이 들어올 것임은 이제 기정사실입니다. 그런데 바다가 사람을 가리는지 혹은 낚싯대 주인이 바뀌니 텃세를 부리는 건지 입질이 도통 없네요.

 

이럴 때는 대를 살짝 들었다 놓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바닥에 누워있을 크릴이 50cm 정도 폴짝 튀어 올랐다가 가라앉으면 주변에서 먹이 활동하던 독가시치나 벵에돔에 발각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지요. 팔꿈치 관절이 허용되는 한도 내에서 대를 살짝 들었다 놓으면, 10~15초 안에 입질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 시간이 지나도 입질이 없으면, 미끼가 없어졌다고 보고 곧바로 채비를 회수해 다시 던지는 게 낫겠지요.

 

지금은 독가시치가 많이 붙었습니다. 바늘에 크릴이 붙어 있다면, 지금 바로 입질이 들어와야 정상입니다. 속으로 초를 잽니다. 10초 안에 입질이 들어올 것이라고 장담했기 때문에 이 안에 입질이 들어와야 제 체면이 섭니다. ^^;

 

"5, 4, 3, 2, 1 이제 입질 들어온다!"

 

입질이 없네요. 저는 거짓말쟁이가 돼버렸..

 

 

 

순간 입질이 들어옵니다. (휴~) 전유동을 처음 해보는 예찬씨. 잡고 있던 손에서 뒷줄이 쓱 하고 빠져나갔을 기분을 느끼고 챔질했을 것입니다. 이 느낌이 좋아서 벵에돔(독가시치 포함) 낚시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ㅎㅎ

 

 

드디어 한 수 올렸습니다. 앞으로 뒷줄 관리하고 채비만 잘 내린다면, 내년 벵에돔 시즌 때는 동네 앞에서도 얼마든지 손맛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 멀리 서귀포항과 문섬이 보인다

 

5시 30분이 되자 정확히 철수배가 들어옵니다. 올해는 마지막이 될 제주도 범섬과 섶섬. 내년에는 독가시치 대신 벵에돔 손맛을 가득 보여주길~

 

 

제주시에서 즐거워야인생이다님을 만나 그분이 추천한 식당에서 저녁을 들기로 합니다.

 

 

나중에 자세한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날 맛본 돼지고기 샤브샤브는 정말 괜찮았습니다.

 

 

제가 갔던 다른 두 곳도 괜찮았지만, 돼지고기의 담백함과 함께 알싸한 갓김치와의 궁합이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곳입니다.

 

 

다음 날 오전, 제주도 애월 고내리

 

2박 3일 제주도 낚시 일정의 마지막 날이 밝았습니다. 혼자였으면 이날도 새벽에 낚시를 나갈 것인데 두 분이 일어나지 못해 출조를 포기했습니다. 사실 낚시꾼에게 있어서 알람 소리에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 예찬씨는 5분 간격으로 세 번씩 울리게 알람을 맞추었고 그 알람에 저는 눈을 떴지만, 바람에 창문이 요란하게 흔들리는 걸 보고선 마음을 반쯤 접고 기다렸습니다.

 

두 번째 알람이 울리는데 번개 같은 속도로 끄고 다시 잠이 드는 예찬씨. ㅋㅋ 세 번째도 알람이 울리나 싶어 5분을 기다렸는데 역시 울리자마자 끄고 잠드는 예찬씨.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루바타님은 거의 혼수상태. 이러면 깨우기도 미안합니다. 사실 혼자였으면 지금 당장 낚시복으로 갈아입고 나갔겠지만, 연신 유리창을 두들기는 바람 소리에 저도 마음이 약해집니다. 결국은 낚시 포기. 

 

 

오전 10시. 충분히 자고 일어난 우리는 애월 고내리의 해안가에서 바닷바람이나 쐬어봅니다.

 

 

근처에 유명한 해물 라면집에서 아점을 먹고요.

 

 

비행기가 저녁 8시라 그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길래 동문시장을 구경하기로 합니다. 개인적인 취재도 할 겸 찾은 거였는데 최근 날씨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수산물이 다양하게 입하되지는 않았습니다. 

 

 

딱새우(표준명 가시발새우)

 

보통은 딱새우를 1kg에 만 원씩 파는데 상태는 조금 다르지만, 어떤 곳은 만원에 2kg이 좀 안 되는 양으로 팔고 있어서 날름 사 왔습니다.(아마도 떨이 처분인 듯) 이 딱새우를 지중해식으로 볶아서 까주니 딸내미가 잘 먹더군요. 소박했던(?) 2박 3일 제주도 낚시는 여기서 마칩니다. 조만간 장박 낚시가 계획되어 있는데 이날 독가시치 잡느라 팔이 혹사당했는지 팔꿈치에 옐보우가 와서 상당히 신경 쓰이는 요즘입니다. 앞으로는 파이팅을 할 때도 한 팔로 무리하지 말아야겠네요. ㅠㅠ 계속 이어지는 조행기,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제주도 섶섬 출조 문의

원투호(010-8201-8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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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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