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뉴타운 맛집] 간판없는 돈까스 카레 음식점


서울 서북부 끝에 있는 은평뉴타운은 근방에선 가장 살기 좋은 동네입니다.
뒤에는 북한산이 자리 잡고 그 앞에는 창릉천이 흐르는 완벽한 배산임수(背山臨水) 조건을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미분양 사태, 도로 교통 혼잡 등의 적잖은 문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은평뉴타운은 임대료가 높아 근처 동네보다 물가가 조금 비싸며, 음식 퀄리티도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배달 음식)
그런 이유로 은평뉴타운에서 '맛집'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몇몇 중국집들은 경쟁이 아닌 가격 단합이 있었고 배달 음식도 기본이 덜 됐지만, 
어쩔 수 없이 시켜 먹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근처의 읍내(연신내)로 나가 외식하기에는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겠고요.
가게세 부담으로 식재료와 음식이 질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은평뉴타운에서 식당으로 살아남는 생존율은 손에 꼽을 정도로
낮습니다. 물론 국민 간식인 '치킨집'을 제외하고입니다. 현재 은평뉴타운은 치킨 관련 업종만 해도 열 곳이 넘습니다.
중간에 고깃집, 횟집, 곱창집 등이 생겼지만 결국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해 가게를 접어야 했으며 얼마 전에는 이 동네에선 유수의 전통(?)을 자랑
했던 부대찌개 집이 가게를 비우고 말았습니다.



간판도 없는데다 눈에 띄지도 않는 돈까스 커리 맛집

그 와중에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신참내기 음식점이 있습니다. 은평뉴타운에서 요식업으로 살아남는다는 게 아직은 뭔지 모르는 듯한.
적잖은 임대료를 내야 하면서도 식재료 엄선과 음식에는 나름 공들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집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맛집"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꽤 힘겹게 버티고 있더군요.
저는 이 근방에서 파는 거의 모든 음식을 맛봤지만, 아직 '맛집'이라 불릴 만한 곳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집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보시다시피 테이블은 4개뿐입니다. 평수가 작고 간판 대신 "OPEN"이라는 천 조각만 걸려 있으므로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죠.


언제 사라질지 모를 은평뉴타운 맛집, 메뉴판

굳이 상호를 갖다 붙이자면 메뉴판에 써 붙여져 있는 "카레가 맛있는 집"이라고 해 두겠습니다.
메뉴는 홍대의 여느 일본 음식점에서나 볼 법한 돈까스, 가츠동류입니다.
맨 아래 '네꼬맘마'는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간장 비빔밥이라고 해요.


한 명이 일할 수 있는 단출한 주방

일식, 돈까스 쪽으로 주방 경력이 있는 사장님이 이곳에 가게를 열었다고 하는데요.
보시다시피 가게가 작고 조리와 서빙을 혼자서 합니다.
그런데 주방을 가만 살펴보면 사용하는 양념들을 손님이 볼 수 있도록 전면에 배치해 둔 것이 특이합니다.


마치 "우리 가게는 이런 소금을 쓰고 있다"를 손님들에게 보이고 싶은지 소금도 눈에 잘 띄는 곳에다 비치해 두었군요.
해당 제품은 마트에서 2천 원이 조금 안 되는 가정용 소금인데 대량으로 판매하는 음식점이라면 사용이 어려울 겁니다.
이렇게 소규모 음식점이라서 이런 소금도 사용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이 집을 5~6회 정도 갔던 것 같습니다. 오전에 일정이 바빠 밥 해먹기 어려울 때 가끔 들립니다.
사장님과 몇 차례 대화로 알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의 식재료를 소매점에서 구입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슈퍼에서 장 본 것으로 음식을 만든다는 것 

하루 몇 인분 안 나가므로 대량 구매가 없고 근처 슈퍼마켓에서 필요할 만큼만 식자재를 구입해 음식을 만든답니다.
우리가 익히 알아온 음식점 이미지와는 상반되지요.


보리차

수제 피클

음식은 물론 샐러드, 소스류, 카레까지 전부 직접 만든다고 해요.


등심 돈까스 7,000원


돈까스 두께가 제법이죠? ^^
거친 입자의 튀김 옷도 허투르지 않습니다.


간 고기가 아닌 등심살로 만든 돈가스입니다.
중간에 힘줄도 보이는데 씹히는 맛도 제법이고 무엇보다 큼직한 고기가 씹는 내내 촉촉함을 줍니다.


돈까스 소스도 시판하는 제품이 아닌 것 같아 물어봤더니 직접 만든 거라고 해요.
혹시 '루'를 만든 거냐고 물었더니 직접 루를 만든다고 합니다. '루'는 브라운소스(혹은 하이라이스, 하야시소스)의 기본이 됩니다.
저도 예전에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할 때 루를 저어 본 적이 있었는데요. 이게 꽤 귀찮고 땀나는 작업입니다.
요새는 어지간하면 시판 소스를 쓰지 루를 직접 만들어 소스를 만드는 곳은 적어도 동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드니까요.
여기에 사장님은 직접 만든 소스에다 시판용 소스를 섞기도 한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오히려 맛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하네요.

돈까스 자체는 홍대, 강남역 등에서 맛볼 수 있는 돈까스 전문점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거기도 고기 두께가 만만치 않고 각자의 노하우가 있을 겁니다. (대표적으로 사보텐, 돈돈돈까스가 있죠.)
그런 대형 프랜차이즈와 비교했을 때 이곳 돈까스가 그리 특출난 수준이라고 말하기에는 모호하지만, 그래도 이 집 음식이 신선해 보이는 것은
체계화된 레시피가 아닌 개인 레시피라는 점이에요.
임대료가 다소 비싸고 음식 맛없기로 유명한 은평뉴타운에서 이 정도 퀄리티를 접한다는 게 반가운 것이겠지요. ^^
 

카레 덮밥 7,000원


카레에 특별히 종류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종류도 이름도 없는 평범한 카레 같습니다만, 맛은 평범하지가 않습니다.
일본식 커리를 기초로 한 인도식 카레라는데(인도식이라 하기에는 맛이 좀 부드럽습니다.)
특이한 건 위에 고명으로 올린 버섯 외에는 건더기가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대신 컬리플라워, 당근, 브로콜리 등을 갈아서 커리 페이스트와 함께
끓였다는 점. 커리 페이스트는 일본식 커리 전문점으로 납품되고 있는 제품이고 여기에 사장님의 감각으로 몇 가지 향신료를 첨가해 카레 맛을 조합한다고
해요. 그래서 카레 맛이 늘 일정치는 않는다고 합니다.

또 어떤 날은 손님의 취향에 따라 '리코타 치즈'를 얹어 주기도 합니다.
이 날은 리코타를 올리지 않았지만, 전에 먹었던 카레 라이스에서 리코타 치즈의 조합은 꽤 훌륭했습니다.
부드러운 치즈가 카레에 베이면서 독특한 풍미를 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위에 올린 고명은 흔한 새송이버섯입니다. 인근의 슈퍼마켓에서 산 것으로 보입니다. ㅎㅎ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이런 스타일의 커리는 자칫 '밋밋함'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풍미는 진하나 무엇보다 평소 먹던 카레와 맛 자체가 다릅니다.
그래서 건더기에 익숙한 손님을 의식해 쇠고기를 넣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 중이랍니다. 
제 생각에는 쇠고기 건더기 정도는 씹혀주는 게 좋다고 봅니다. ^^
카레 풍미는 시내의 커리 전문점보다 결코 뒤지지 않은 맛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좀 더 맵고 자극적인 커리를 한두 종류 만들어서 손님 취향에
반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리코타 치즈 토핑과의 궁합이 어울리는 만큼 옵션으로 붙이는 것도 좋고요.
아직은 레시피가 체계화되지 않았지만, 잘 다듬으면 더 좋은 카레가 나오리라 봅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다시 이 집을 찾았습니다. 사실 은평뉴타운에서 제대로 된 먹거리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허투른 점이 있었고요. 
근방에 있는 프랜차이즈는 기본도 안된 음식에 논할 가치를 못 느끼고 있습니다.
몇 개월 전 한우 곰탕집(이것도 프랜차이즈)이 있어 몇 번을 방문했다가 뜻밖에 맛이 좋아 '프랜차이즈임에도 불구' 소개를 해볼까 했는데 얼마 못 가
가게를 정리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던 곳은 수지타산이 안 맞는지 몇 개월 못 버티고 정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식업은 순수한 마음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든가 봅니다. 또 그렇게 만든 음식을 손님들이 알아주면 다행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조미료 맛이 좀 나야 '맛있다'고 하는 세상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세태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치즈 크로켓 3개 3,000원

메뉴판에는 고로케라 쓰여 있지만, 저는 크로켓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원래는 3개가 나오는데 남은 게 2개뿐이라며  그냥 서비스로 튀겨 주셨어요.


안에 치즈가 꽉 찼습니다. 치즈 맛도 고무같이 질겅거림이 아닌 부드럽게 녹아들면서 적당히 간이 되어 있고 고소한 맛을 냅니다.
식전으로 먹기에 부담 없어 보이고요.


이날은 수제 피클 대신 무말랭이가 나왔습니다.


에비가츠동 7,000원

함께 나온 두 가지 샐러드

양배추에 참깨 드레싱이 뿌려진 샐러드와 감자 범벅(매쉬드 포테이토 느낌의) 샐러드로 맛이 깔끔합니다.


에비카츠동은 총 4개의 새우가 들어 있군요. 한 마리는 달걀 후라이 아래 숨어 있습니다.
새우가 총 네 마리라 한 마리 한 마리가 크게 실한 건 아니지만, 적당한 크기로 만족하고요.
다만, 밥에 들어간 덮밥용 육수(보통 가쯔오부시 육수를 사용)는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한국은 밥알이 흥건히 젖어 들어갈 정도의 덮밥을 선호합니다. 먹다가 메마른 느낌을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이 집의 밥맛을 보고 확신이 든 것은 사장님의 장사 마인드입니다. '많은 수익을 남기자'와는 전혀 거리가 멀어 보여서요.
안 그래도 유지비가 많이 들 텐데 하루 몇 손님 받아서 유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사장님은 손님이 맛있게 먹어주는 그 원동력으로 장사한다며, '자기 만족'이라 했지만, 그것도 현실적으로 받쳐주는 선에서나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사용하는 쌀이 우리 집 쌀보다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쌀눈이 붙어 있고 찰기도 빼어나 밥맛에도 대단히 신경을 쓴 흔적이 보여요.
어떤 쌀을 사용하는지는 개인적으로 여쭤봐야겠습니다.


안심 돈까스 8,000원

대게 일본식 돈까스가 그러하겠지만, 건장한 성인 남성이 드시기에는 아쉬울 수 있는 양입니다.



등심보다 치감은 약하나 폭신하고 촉촉한 맛이 좋은 안심 돈까스.
그 두꺼운 살점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튀김 옷과 분리가 잘 돼 젓가락으로 집으면 홀라당 벗겨진다는 점이에요.
이는 살점과 튀김 옷 사이에 수분이 생기면 그리되며 보통 냉동 돈까스가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 집의 고기는 냉동육이 아닌 것 같습니다. 생고기로 반죽해 뒀다 어쩐 일인지 냉동실에서 꺼내더군요. 
이 집은 하루 손님이 몇 팀 안 됩니다. 아마도 언제 팔릴지 몰라 냉동실에 넣어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이는 회전율이 좋지 않은 소규모 식당의 비애이기도 합니다.  



위치는 롯데 공인중개사와 은평 제일교회 사이에 있다.(본문 아래 지도 첨부)
네비주소 :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21번지(은평 제일교회 주소임)
주차 : 교회 앞 삼거리에 있는 gs마트 골목에 가능


음식은 괜찮은 퀄리티지만, 동네 분위기와는 다소 안 맞고(홍대, 신촌에서 하면 잘 될 성싶은 메뉴라) 간판도 없어 여전히 손님이 붙지 않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에 가도 몇몇 은행 직원들만 보일 뿐, 네 테이블이 전부 돌아가지 않는 실정입니다.
위 사진에서도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간판 정도는 달아주는 게 좋지 않겠느냐 했지만, 사장님은 다른 생각이 있으신듯하고요.
이렇게 장사하다가 손님이 안 붙으면 봐서 가게를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네요.

거의 모든 음식과 소스, 반찬류를 직접 만들고 들어간 재료도 착합니다. 음식 만드는데 열정과 정성이 있고요.
하지만 장사수완은 잘 모르겠습니다. ^^; 이런 걸 보면 요식업은 역시 열정만 갖고는 하기 힘들구나란 생각이에요.
그래도 저는 이 집 음식이 '착한 식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준 착한식당'에 걸맞은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이런 후미진 곳까지 일부러 찾아와 맛을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근방에 살고 계시다면 적극 권합니다.
사장님이 하고 싶다던 "손님 취향을 반영한 맞춤형 음식"으로 메뉴판에 없는 요리를 선보이고 싶다는데요. 그런 날이 꼭 오기를 희망해 봅니다. 

※ 추신 : 해당 업소는 며칠 전 폐업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안타깝네요. 더 좋은 곳에서 꿈을 이뤄나가시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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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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