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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물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하는 광치기 해변. 이른 아침에는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며 장엄한 빛의 세레나데를 담을 수 있고, 바닷물이 빠져나간 썰물에는 숨어있던 갯가가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생동감 있는 색채와 태고의 신비함까지 담을 수 있는. 여기에 광치기 해변의 자랑인 성산 일출봉 풍경까지 더해지면 누가 찍어도 그림이 될 수밖에 없는 풍경 여행지입니다.
바다에서 우뚝 솟은 장엄한 화산섬(원래 성산 일출봉은 섬이었다고 함)은 광치기 해변에서 빠질 수 없는 단골 소재지요. 그런데 제가 찾은 시각은 아침도, 썰물도 아니었습니다. 벌건 대낮, 아주 평면적인 빛의 산란만이 드리워진 채 하필 '만조'와 겹치다 보니 생동감 있는 갯가가 모두 물속에 잠겨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돼버린 것입니다.
"이럴 때 광치기 해변을 즐기는 방법이란?"
다름 아닌 '말타기'였습니다. 말 타고 타박타박 걷는 해변 산책. 광치기 해변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그 현장을 스케치해봅니다. ^^
광치기 해변의 심볼이라 할 수 있는 말
한가로이 쉬고 있는 말
제주도는 걷기 좋은 길이 많이 있습니다. 제주 방언으로 '좁은 골목'을 뜻하는 올레는 이제 제주도를 상징하는 산책로가 되어 많은 관광객을 불어 모으고 있습니다. 그 중 광치기 해변은 2007년 9월 8일 처음으로 올레길 시대를 열게 된 올레길 1코스의 종착점으로 시흥초등학교까지 총 15km 구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산 일출봉의 웅장함을 그 어디보다도 잘 관찰할 수 있는 이 독특한 해변은 사실 지나가는 여행지로만 인식되어 있습니다. 우선 규모 자체가 아담합니다. 차를 댈 수 있는 공간도 좁고 한낮의 성수기 때는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이기는 하지만, 막상 와보면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특히, 봄철 유채꽃이 만발할 때는 해변 풍경 보다도 인근의 유채꽃 사유지에서 일정 금액을 내고 찍는 기념 촬영이 많기도 하지요.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광치기 해변의 풍경도 시시각각 변하므로 남들이 다 움직일 때 가면 특유의 운치라든지 낭만적인 모습을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일부 사진가들과 배낭 여행자들은 극적인 장면을 담거나 혹은 여유와 운치 있는 여행을 위해 남들이 움직이지 않은 시간대를 택해 이곳을 방문하곤 합니다.
때는 정오. 가족여행이다 보니 이른 아침부터 차를 몰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느지막이 숙소를 빠져나와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아끈다랑쉬 오름'. 그나마 아침 빛이 살아 있을 때 억새의 춤사위를 찍을 생각이었지만, 먹구름의 방해공작으로 모처럼 찾은 오름 여행은 이렇다 할 장면을 담지 못한 채 물러나야만 했고 이제는 어디서 무엇을 찍어도 촬영에는 불리한 정오가 왔습니다.
하지만 마냥 불평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겠지요. 자연의 법칙은 자연의 법칙. 그냥 물 따라 흘러가는 데로 자연에 맡긴 채 나머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시선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요. 물때표를 확인하지 않고 찾아간 광치기 해변은 진정한 속살을 꼭꼭 숨긴 채 누런 모래사장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해가 천정에 솟아 극적인 연출을 하기에는 어려웠고 그 웅장하다는 성산 일출봉도 이날 따라 왜 그리 평범해 보이는지.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란 게 다 그렇지"
어느새 저는 어머니 환갑 기념으로 온 여행에서 '포스팅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좋은 장면을 건져야 글이라도 한 꼭지 더 쓸 게 아냐! 라며 말이지요. ^^; 눈 앞에 보이는 건 황량한 모래사장뿐. 빛의 리드미컬함도 없고 생동감 넘치는 갯가도 없습니다. 광치기 해변은 제게 "너무 늦었잖아. 이제 어떡할래?"라고 말하는 듯하였습니다.
"흐음 그러게"
눈에 들어온 건 개산책
"개산책이 광치기 해변에서 주제가 될 순 없겠지"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뭔가 소재거리를 찾고 있던 나. 그 와중에 신난 건 어머니와 아내, 동생입니다. 광기치 해변의 진짜 속살은 저 바닷속에 잠겨 있는데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웅장한 성산 일출봉 풍경과 모래사장만으로도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개산책도 커플천국 솔로지옥"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던 이 풍경이 지나고 보니 참 특이해 보입니다. 어떻게 개 커플들이 저리 판박일까? 이럴 때 쓸쓸한 동네 개 한 마리가 저들 사이로 지나가 줬으면 참 재밌는 그림이 나올 텐데. 얼마 전 포항 구룡포로 과메기 취재를 갔을 때 일입니다만, 동네마다 과메기가 어찌나 많이 널렸던지 그곳은 개들도 과메기를 물고 다니더라.
대략 이러한 수준의 절묘한 샷을 담아 왔다면 보는 이도 재밌고 얼마나 좋아. 그런데 개가 물고 있었던 건 과메기가 아니고 과메기 공장에서 과메기 냄새가 밴 비닐봉지였으니 그게 과메기였으면 얼마나 재밌겠어. 소재를 찾아다니는 유랑객에게는 어느 정도 운도 따라줘야 한다는 사실. ^^
말식사
하여간 그러고 서 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말도 안 보이네? 가뜩이나 악조건인데 말까지 없으면 나는 뭘 찍으란 말야! 그렇게 저는 제게 직면한 상황이 마냥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말 두 마리가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는데 이 날 따라 말이 왜 그리 반가운지 아주 그냥 말에서 후광이 비치는 듯하였습니다. 말 주인은 사료 차를 말 앞에 대더니 밥을 줍니다.
아마도 일하기 전(?)에 먹는 식사가 아닌가 하였습니다. 식사를 마친 말은 태평하게도 그대로 누워버립니다. 우리는 말에게 일 시키러 접근하였습니다. 그 일은 모델이었습니다. 단지 모델만 되어주면 돼! 라고. 그런데 마침 말 주인이 오더니 한 번 타보라고 권유합니다. 물론, 저는 사진을 찍어야 하기에 타지 않았고 아내와 동생만 탔습니다. 그리하여 제게 속살을 숨겼던 광치기 해변은 '말타기'라는 복병의 소재로 조금은 살아난 듯하였습니다.
말 타고 타박타박 걸으며 즐기는 광치기 해변 풍경
광치기 해변에서 즐거운 한 때
일을(?) 마친 말은 모래에 누워 일광욕을 즐긴다.
언뜻 보면 재롱인가 싶지만, 모래에 몸을 비비는 게 말의 샤워 방식인가보다
말은 광치기 해변의 어엿한 모델이자 상징
광치기 해변의 말은 사진이 뭔지 아는 것 같다. ^^
녀석 눈망울도 참 순하게 생겼네.
광치기 해변, 제주 성산
말이 보기에는 순하게 생겼지만, 그래도 위험성은 있으니 말 엉덩이 뒤에는 있지 말 것. 어쨌든 말이 사진의 소재를 조금은 살려줬습니다. 자칫 황치기 해변이 될 뻔한 광치기 해변을 '말빨'로 모면한 것이지요. ^^ 사진빨을 원한다면 아침에 '간조'가 겹칠 때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광치기 해변의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한 풍경을 담을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사진 여행은 역시 '혼자'가 편하다는 사실도. ^^; 옆에서 기다려 주는 이가 있으면 사진 작업이 잘 안 돼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걸릴지도 모를 사진 촬영에 동행자가 있으면 이래저래 신경 쓸 게 많습니다. (같은 목적의 동행자라면 몰라도) 그래서 저는 제가 원하는 풍경을 담기 위해 혼자 떠나는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이곳에서 말을 타고 타박타박 걷는 산책은 '오천 원'이면 충분해요. 내용을 고려했을 때 그리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닙니다. 다른 곳(예를 들면 산방산 용머리 해안 입구)에서의 말타기는 같은 금액이라도 단순히 올라타서 사진 몇 방 찍고 마는 데 불과하지만, 광치기 해변은 말 타고 유유자적 산책을 즐길 수 있는데 중간에 잠시 속력을 내어 놀래키기도 하지요. 오고 가는 데 걸리는 소요시간은 대략 10~15분가량으로 짧지만, 한 번쯤 타보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자칫 썰렁할 수 있는 해변에 '말' 한두 마리가 있을 때와 없을 때는 적잖은 차이를 보입니다. 말이 있어서 이야기되었던 광치기 해변. 이번에는 준비가 안 된 촬영이다 보니 말빨로 넘겼지만, 다음에는 좀 더 원초적이고 역동적인 장면으로 만나기를 기약하며 광치기 해변에서의 짧은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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