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쏨뱅이 기행(1), 밥도둑의 끝판왕, 쏨뱅이 요리 열전


 

 

전라남도 완도항

 

학공치를 낚는 어느 낚시인

 

낚시 삼매경에 빠진 강태공들

 

이곳은 전라남도 끝자락에 있는 완도항입니다. 근처에는 신지도, 보길도, 소안도, 청산도 등의 섬이 많아 바다낚시로 유명한 메카이기도 합니다. 

이날 저는 이곳의 특산물 중 하나인 '쏨뱅이'를 취재하러 완도를 찾았습니다.

 

 

#. 쏨뱅이는 어떤 물고기? 

쏨뱅이는 분명,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생선은 아닙니다.

완도, 여수, 통영, 거제, 그리고 부산의 자갈치 시장과 바닷가 횟집 정도는 가야 구경할 수 있는 귀한 어종인데요.

과거에는 귀찮다 싶을 정도로 자주 걸리는 흔한 잡어였지만, 지금은 치어 방류로 개체 수를 보존해야 할 만큼 귀한 어종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은가 봅니다. 완도를 비롯해 전라남도 해안가에서는 여전히 쏨뱅이가 잘 걸려들고 있어 어민들에게는 나름대로 효자 노릇을 하고

있으니까요. 반면, 서울을 비롯한 내륙 지방에서는 쏨뱅이란 이름이 다소 생경하게 느낄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쏨뱅이는 자연산의 상징 중 하나입니다. 모름지기 자연산 하면 귀하게만 취급했던 횟감을 떠올리는데요. 

적어도 쏨뱅이만큼은 해안가 지방에서 '밥 도둑'으로 유명합니다. 비록, 낚시꾼들에게는 '잡어'로 취급받고 있어 쏨뱅이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생물로 먹어도 맛있고 꾸득히 먹어도 맛있어 산지에서는 '맛이 좋은 고급 어종'으로 통하는 생선이 바로 쏨뱅이입니다.

이쯤 되면, 잡어가 아니겠지요. 쏨뱅이가 많은 바다는 그만큼 바닷속 생태가 건강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모름지기 바다는 토착성 어류가 풍부해야 그 지역 어민들이 걱정 없이 생업에 열중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쏨뱅이는 양식이 안 되며, 크기도 작고 전국적으로 유통할 만큼 잡히지 않아 맛과 가치에 대해 과소평가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쏨뱅이 요리와 낚시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소개하고자 서울에서 완도까지 달려왔습니다.

첫 번째는 쏨뱅이 요리 편입니다. 완도에서는 예부터 쏨뱅이를 특산물로 여겼으며 해풍에 말려 먹은 음식을 즐겼습니다.

그렇게 말린 쏨뱅이는 맑은탕(지리), 찜 등으로 이용했는데요. 특히, 지금부터 나는 쏨뱅이는 살에 지방이 올라 겨우내 맛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쏨뱅이 요리를 맛보기 위해 완도항 인근의 어느 횟집을 찾았습니다.

수조에는 싱싱한 해산물과 각종 활어가 진열되어 있는데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연산 참돔입니다.

그 외 광어, 쥐노래미(놀래미), 우럭, 농어도 있지만 대부분 양식이고요. 이들 어종은 우리나라 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횟감이다 보니 시중에서 접하는

활어의 90% 이상이 양식인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이는 해안가에 인접한 횟집이라도 예외는 아니겠죠.

 

 

기다리는 동안 아주머니가 누룽지를 잡수라고 냈는데요. 설탕을 팍팍 친 누룽지, 정말 오랜만에 먹어 봅니다. ^^

 

 

완도 특산물, 쏨뱅이

 

완도에서는 쏨뱅이를 꾸득히 말려 음식에 이용하고 있었는데요. 이것도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짝 말린 것, 다른 하나는 약간의 수분기가 있는 반건조입니다. 바짝 말린 것은 맑은탕(지리)에 사용되고 반건조는 찜에 사용합니다.

 

 

반 건조한 쏨뱅이

 

쏨뱅이는 최대 30cm까지 자라며 서해를 제외한 우리나라 남해, 동해 남부, 제주도의 암초에 폭넓게 서식하고 있습니다.

가끔 50cm가 넘어가는 대형 쏨뱅이가 잡히지만, 그것은 쏨뱅이의 사촌인 '붉은쏨뱅이'로 쏨뱅이와는 서식영역을 달리하는 이종입니다.

다 자라도 30cm 정도밖에 크지 않은 쏨뱅이. 그래서 30cm에 이르는 쏨뱅이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씨알입니다.

낚시와 그물에 잡히는 씨알은 대부분 20cm 전후로 위 사진의 크기가 가장 많습니다.

 

쏨뱅이는 따듯한 물을 좋아해 6~8월 여름철에 잘 잡히지만, 맛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부터 좋아져 이듬해 봄까지 이어집니다.

볼락과 마찬가지로 제철 후반으로 갈수록 단맛이 들기에 2~4월에 맛보는 쏨뱅이 회는 웬만한 돔 어종도 저리 가라 할 만큼 탱글탱글한 식감과

달짝한 맛을 자랑하지요. 하지만 지금은 회보다 이렇게 꾸득히 말려서 탕과 찜을 하는 것이 가장 맛있습니다.

같은 어종이라도 제철에 따라 이렇게 음식의 쓰임새를 달리하는 것. 가장 근원적인 맛을 느끼는 방법일 것입니다.

 

 

쏨뱅이 요리가 한창인 주방

 

이곳은 완도항에서 제법 오래된 횟집입니다.

개인적으로 요리에 관심 많아 지역 특산물인 쏨뱅이를 어떻게 조리하는지 그 노하우를 살짝 엿보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쏨뱅이 맑은탕은 서산의 명물인 우럭 젓국과 레시피가 거의 일치하였습니다.

쌀뜰물을 넣어 끓이며, 여기에 잘 말린 쏨뱅이와 무, 양파, 고추를 썰어 넣어 푹 끓입니다.

간은 소금으로만 한다는 점이 우럭 젓국과 다르며, 파와 팽이버섯을 올려 마무리합니다. 

 

 

쏨뱅이 맑은탕(지리)

 

이렇게 한소끔 끓이면 구수한 국물이 일품인 쏨뱅이 맑은탕이 완성됩니다.

뽀얀 국물의 일등 공신은 쌀뜰물. 여기에 쏨뱅이 대가리와 살, 뼈에서 나온 육수가 합해져 깊고 구수한 맛이 납니다.

오래 끓이지 않아도 진한 맛이 나는 이유는 꾸득히 말린 쏨뱅이에 있습니다.

생선을 해풍에 말리면, 말릴수록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새지 않고 안으로 응축됩니다. 이를 이용해 것이 법성포의 유명한 '보리굴비'겠지요.

꽁치나 청어를 말린 '과메기'도 이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해풍에 말리면 원래 가지던 생선 맛 함량이 높아져 더욱 진하고 구수한 맛을 내는데 아무래도

생물을 그냥 끓인 맑은탕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벌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말린 쏨뱅이를 탕으로 끓이면, 맛뿐 아니라 식감도 향상됩니다.

쉬이 부서지는 생물과 달리 꾸득히 말린 쏨뱅이는 그 자체의 식감이 매우 단단해 그냥은 먹기 힘들지만, 쌀들물에 한소끔 끓이고 나면 살이 조금은

부드러워져 적당히 씹히는 식감과 살 자체에서 품고 있는 응축된 맛도 살리게 됩니다.

그러니 짧은 시간에 구수하고 진한 맛의 탕을 끓이고자 한다면, 이렇게 말린 것을 권합니다. 

 

 

반면에 쏨뱅이 매운탕은 생물을 사용해 맑은탕과의 차별을 두었습니다.

매운탕에 들어가는 특제 양념과 무. 고추 등을 넣어 끓이는데 너무 오래 끓이지 않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쏨뱅이 매운탕

 

좀 전의 맑은탕과 달리 매운탕에서 말린 생선을 쓰지 않은 이유는 매운탕의 맛 포인트가 칼칼한 양념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물 맛은 양념장이 내므로 굳이 말린 쏨뱅이의 진한 맛은 빌리지 않아도 된 것이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쏨뱅이란 어종이 자체에서 맛있는 육수가 우러나오기 때문에 '매운탕의 제왕'이란 별명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바다낚시를 즐기며 다양한 어종으로 매운탕을 해 먹었지만, 매운탕에는 임자가 따로 있음을 느껴왔습니다.

 

매운탕(또는 맑은탕)을 끓였을 때 맛이 좋은 생선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가리가 크고 거기서 맛있는 육수가 우러나와야 한다는 점. 뼈와 살 자체에서도 맛있는 육수가 우러나오는데 이왕이면, 겨울에 제철을 맞는 생선이

탕을 끓여도 맛이 좋았음을 경험적으로 느껴왔습니다. 쏨뱅이가 바로 그런 어종이었습니다. 

 

쏨뱅이를 어류 분류학으로 보면 그 흔한 농어목이 아닌 쏨뱅이목이라는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쏨뱅이목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조피볼락(우럭), 불볼락(열기), 볼락, 삼세기(삼식이), 쑤기미(솔치) 그리고 점감펭을 비롯한 여러 감펭이가 있지요.

이들 쏨뱅이목 어류 중 최고 우두머리가 바로 쏨뱅이로 양볼락과(락피쉬)의 계보를 잇는 어종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이들 쏨뱅이목에 속한 어종을 하나하나 살피면, 재미있는 공통점이 나오는데요. 모두 탕감으로 빠지면 서운하다는 점입니다.

 

겨울철 동해에서는 미거지를 이용해 물곰탕을 끓입니다. 거제도와 서해에서는 물메기탕이 유명한데 이들 어종도 쏨뱅이목에 속한 생선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농어목에 속한 생선이 매운탕으로 뒤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제 경험에 의하면 적어도 농어와 벵에돔만큼은 매운탕을 끓였을 때

맛이 잘 나지 않았다는 점. 다만, 맑은탕(지리)로 끓이면, 서식 지역에 따라 맛이 괜찮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운탕은 이들 쏨뱅이목에 속한 어종을 포함하여 겨울에 기름이 배는 감성돔과 참돔이 제격입니다.

특히, 돔 종류는 반드시 겨울에 잡힌 것이라야 국물에 기름이 뜨면서 맛이 제대로 나옵니다.

보통은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지만, 겨울에 기름기가 한껏 밴 돔으로 매운탕을 끓이면 맹물에 고춧가루만으로도 배지근한 맛을 내니까요.

제가 아는 매운탕의 담론은 그러했습니다.

 

쏨뱅이 매운탕은 생물로 끓이되 찌개 스타일이 아닌 말간 한 '탕'으로 먹어야 시원한 육수 맛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 촬영에서는 양념 맛이 강했고 끓이는 시간이 지체되다 보니 국물이 걸쭉해져서 개인적으로는 쏨뱅이 맑은탕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쏨뱅이 구이

 

구이는 칼집 내고 천일염을 쏠쏠 뿌려 오븐에 구워졌습니다. 방송에서는 다소곳이 앉아 젓가락질했는데요. 속에서는 열불이 났습니다.

이런 건 손으로 잡고 뜯어야 제맛인데 ^^;

 

 

쏨뱅이 찜

 

찜에 사용하는 쏨뱅이는 분기가 남아 있는 반건조가 식감도 말랑말랑하고 좋습니다.

반건조 중에서도 소금물에 씻어 말린 것보다는 민물에 씻어 염분 기를 제거한 것을 사용해야 나중에 양념장과 합했을 때 간의 세기가 알맞을 겁니다.

이 부분을 간과하고 찜을 만들면 소태가 되니 찜이나 조림용은 재료 선별에서 각별히 신경 써야 합니다.

쏨뱅이는 찜기에 받혀 증기로만 찝니다. 양념장을 끼얹는 건 15~20분가량 찌고 난 다음의 일입니다.  

이렇게 찐 쏨뱅이는 식감이 꾸득하고 짭짤하기까지 해 흰 쌀밥 위에 얹어 먹으면 그야말로 밥 도둑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완도 특산물, 쏨뱅이로 차린 밥상

 

붉바리

 

이 지역의 또 다른 자랑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붉바리일 것입니다.

농어목 바리과에 속한 붉바리는 아시다시피 자바리(제주 다금바리)에 버금가는 고급어종이지요.

제주도에서 자연산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횟집에는 자바리와 함께 붉바리가 1kg당 22만 원(부요리 포함)에 팔고 있습니다만, 그마저도 물량이 충분치 못해

사전에 붉바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가야 겨우 맛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제주도 바다에서는 붉바리가 자바리보다도 더 귀해졌는데요.

반면에 전남 완도, 고흥, 여수 앞바다에서는 이 귀한 붉바리가 간간이 잡히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최근 몇 년 사이 시행해 온 치어방류 때문입니다.

위 사진은 1kg가 조금 넘는 붉바리인데 15만 원에 판매한다고 합니다. 부요리에서 차이가 날 수도 있지만, 제주도보다는 저렴한 편입니다.

  

 

 

 

 

이날은 촬영이 너무 일찍 끝나는 바람에 모처럼 술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완도항에 조개구이집이 몇 군데 있어 그중 한 곳을 들어갔습니다. 小짜가 3만 원인가 했는데 여러 반찬과 계란찜까지 고려하면 잘 나오는 편이더군요.

만약, 이곳이 해운대나 대천 해수욕장이었다면 품질과 양 대비 이 가격에는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부터는 굴 철이고 근처의 걸출한 굴 양식장으로부터 물건을 받아 쓸 테니 석화 구이를 시켜 먹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입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다음 날은 이른 아침부터 낚시를 서둘러야 했기에 일찌감치 숙소에 투숙했습니다. (한편, 아내는 산후조리원에서 조리사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습니다.)

숙소에 누워 있으니 이제 겨우 8시. 저는 TV를 시청하지 않은 지 십 년이 넘어 요즘 브라운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릅니다. 어떤 채널이 있는 지도요.

그래서 쭉 살피는데 무려 300개가 넘는군요. 그렇게 세 바퀴를 돌려가며 보다 보니 어느새 11시. 

 

위 사진은 모텔에 비치된 자판기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을 순진하게 살아온 저로서는 이것의 용도가 뭔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웬 루어낚시 용품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껌도 보이고 멀미약도 있는 듯하네요. 그런데 설명은 전혀 엉뚱하게 되어 있습니다.

꽃잎은 왜 파는 건지? 글을 쓰다 보니 난데없이 딸꾹질이 도집니다. 딸꾹!

 

쏨뱅이를 찾아 떠난 완도 기행은 다음 날 아침, 낚시로 방점을 찍었습니다.

다음 편에는 쏨뱅이를 비롯해 우리 바다의 터줏대감인 볼락, 열기에 이르기까지 평소 쉽게 만날 수 없는 자연산 회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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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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