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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우리들은 '자연산'이라는 말에 막연한 동경심을 품어온거 같습니다.
'자연산'이라는 단어가 주는 신뢰는 실로 대단하지요. 신토불이가 사라져가는 요즘의 먹거리 현실에
자연산하면 왠지 귀하고 값어치를 할 것 같은 인식들이 있을거 같아요.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은
서민들에겐 그닥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무분별한 수입으로 인해 가짜와 짝퉁이 난무하는 세상,
그리고 비슷하게 생긴 유사품종이 진품 행사를 하는 세상에서 '자연산'이 가지는 의미는 실로 가치가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식탁에서 점점 잊혀져만가는 100% 자연산, 그것도 쉽사리 구경할 수
없는 붉은쏨뱅이로 맑은탕(지리), 구이, 그리고 초밥을 만들어봤습니다.
붉은쏨뱅이(위), 쏨뱅이(아래)
국내에 붉은쏨뱅이에 대한 학술적인 자료는 그리 많지 않은걸로 압니다. 대부분 이 두 어종을 하나로 취급하거나 일부 지역에선 쏨뱅이를 '본지(제주)
혹은 곤지(통영)'라는 방언으로도 부르면서 붉은쏨뱅이를 일반 쏨뱅이처럼 취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두 어종이 유전학적으로 염연히 다른 종이라고 판명나면서 일본에선 붉은쏨뱅이에 대해 재조명을 한적이 있습니다.
(관련글 : [어류도감/선상낚시] 쏨뱅이와 붉은쏨뱅이에 대해)
통영의 인근해역에서 낚은 붉은쏨뱅이
쏨뱅이는 연안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연안 토착성 어류지만 붉은쏨뱅이는 수심 40~50m 이상의 저서층에서만 서식하기 때문에 심해 선상낚시가
아니면 좀처럼 구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얼마전에 다녀온 통영 어초낚시는 주 대상어가 붉은쏨뱅이(현지에선 그냥 쏨뱅이라 부름)일 정도로
많은 어자원이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쏨뱅이는 최대성장 30cm 안팍으로 밖에 안자라지만 붉은쏨뱅이는 최대전장 60cm까지 자라는 중대형 어종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어초낚시를 하다보면 오짜(50cm)가 넘어가는 붉은쏨뱅이를 종종 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어쨌든 이렇게 잡은 걸 가지고 세가지 음식을 만들어 봤습니다.
우선 맑은탕을 위해 붉은쏨뱅이로 포를 뜬 후 서더리를 준비했어요. 가운데는 알입니다.
살과 뼈에서 맛있는 육수가 나오기 때문에 쏨뱅이류는 매운탕을 최고로 치거든요. 분명 맑은탕도 맛있을꺼라 믿어요. ^^
사용된 재료는 시중에서 구하기 힘들지만 다른 생선으로 대체가 가능하니 레시피는 동일합니다.
들어갈 채소를 다듬어 놓습니다. 깍뚝썬 무우와 청양고추 1개, 편마늘이 들어갔고 무우가 흰부분이 없어 할 수 없이 파란부분을 넣었습니다.
이 외에도 대파, 호박, 팽이버섯, 미나리도 준비했어요. 이 날 따라 냉장고에 이런저런 채소들이 많이 있네요 ^^;
이것들은 한소큼 끓고나서 넣을께요.
먼저 다시마와 멸치로 육수를 냅니다. 너무 오래 끓이지 말고 한 5~6분간만 끓이고 건져냈어요.
붉은쏨뱅이와 무우, 편마늘, 청양고추를 함께 넣고 바글바글 끓여줍니다.
깔끔하고 맑은 국물을 위해 중간에 나오는 거품은 걷어주고, 보통 생선을 넣을땐 가위로 지느러미를 제거해 주는게 좋다고 해요.
지느러미에서 비린내를 유발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상대는 어제 잡은 붉은쏨뱅이! 비린내 걱정이 별로 안되니 그대로 넣습니다.
청주 한 큰술과 소금으로 간을 해주면 거의 끝!
다른 양념은 필요가 없습니다.^^
불을 끄기 전에 팽이버섯, 애호박, 쑥갓, 미나리를 넣어줍니다.
저는 집에 재료들이 있어서 다 넣었기에 건더기가 조금 많은 감이 있는데요. 대파와 팽이버섯, 애호박, 쑥갓은 선택사항.
하지만 미나리는 거의 필수니 가능한 넣어주시면 보다 깔끔한 국물맛을 낼 수 있을꺼예요.^^
초밥을 만들기 위해 샤리(밥)을 만듭니다.
원래는 백설탕으로 촛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집에 황설탕밖에 없어서 할 수 없이 넣었어요. 그래서 대략 망했어요. ㅠㅠ
촛물의 비율은 식초 3T, 백설탕 2T, 소금 1T 이며 레몬즙이 있으면 약간 뿌리고 아주 약한 불에서 설탕이 녹을때까지 열심히 저으면서 졸여주다가
마지막에 물에 씻은 다시마 한장을 깔아놓습니다.
다음은 촛물을 뜨거운 밥에 붓고 나무주걱으로 칼로 베듯 저어주신 다음 부채질해서 수증기를 빨리 날려버리고 비닐봉지에 넣거나 젖은 천으로
덮어서 수분의 증발을 막아놓습니다.
하루가량 숙성된 붉은쏨뱅이를 꺼내 마저 손질했어요. 사진은 껍질을 벗기고 갈빗대를 제거하는 장면입니다.
요건 씨알이 작다보니 등살과 뱃살을 가르지 않고 통으로 썰려고 해요.
이때 척추가 지나가는 자리였던 지아이 부분에 잔가시가 있으니 쪽집개로 제거합니다.
일부는 (숙회)마스까와를 하였습니다. ^^;
일본에선 붉은쏨뱅이가 고급어 취급을 받으며 껍질의 식감을 살리기 위해 마스까와해서 먹던데요. 그래서 저도 함 따라해봤습니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좋게 봐주십시요. ㅋㅋ
저렇게 채반에다 껍질을 위로 놓게 놔두고 뜨건 물을 쪼로록 따라붓습니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이렇게 두번 왕복시킨 후
곧바로 얼음물에 투하합니다. 이렇게 해야 살이 무르지 않고 탱탱해져요.
그것을 건져낸 후 면보나 키친타올로 수분기를 완전히 없애 준 후 포뜨기에 들어갑니다.
저 칼은 이번에 새로 장만한 사시미칼 ^^
초밥을 쥐어봅니다.
시중에서는 맛보기 힘든 붉은쏨뱅이 마스까와 초밥^^
그리하여 붉은쏨뱅이 초밥이 완성되었어요.
간만에 쥐었더니 모양새가 영 아니지만 모양과는 별도로 입안에서 느껴지는 숙성된 맛의 붉은쏨뱅이는 그럴싸하게 초밥과 잘 어울려줍니다.
껍질에 베인 기름기마저 향기로웠던 붉은쏨뱅이 구이
굵은 천일염을 뿌려서 튀긴 붉은쏨뱅이 튀김.
살이 잡티하나 없이 깨끗하고 하얗죠. 충분한 양의 기름에 바짝 튀겼는데도 바삭한 껍질속엔 이렇듯 촉촉한 속살이 반기고 있습니다.
붉은쏨뱅이의 구이맛은 정말 꼬시다고 할까요.
너무 부드럽지도 딴딴하지도 않은 균형진 식감. 그것을 음미하다보면 천일염의 짠기가 느껴지는 동시에 고소한 살맛의 풍미가 다가옵니다.
짭짤한 소금끼가 전해질 때 비로소 고소함도 느껴지는..
봄 바다의 기운을 그대로 머금은 붉은쏨뱅이 맑은탕
붉은쏨뱅이 맑은탕(지리)
이 한그릇에 봄 바다의 기운이 전부 들어온 듯 합니다.
맑은탕은 매운탕과 달리 재료가 신선하지 않으면 국물에서 비린내가 나요. 끓일때도 재탕없이 한끼분량만 끓여야 하구요.
붉은쏨뱅이는 워낙 비린내가 적고 전날 잡아온 것으로 맑은탕감으론 아주 그만입니다.^^
국물을 한술 떠봅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나온 한마디..
"이것봐라. 국물이 웃기네"
때마침 동생이 친구를 데려왔는데요. 하여간 먹을복이 있으려나 그 타이밍 한번 절묘합니다.
그런데 이 두 친구가 요즘 식이요법중이라며 한사코 먹지 않으려고 하네요.
그 이유가 넷명이서 꽤 많은 금액을 걸고 내기 중에 있다는데요. 건강한 몸 만들기의 일환으로 시작했지만 이왕이면 재밌는 요소도 가미할 겸 정해진
기간안에 체지방을 가장 많이 뺀 사람이 그 돈을 거머쥐는 내기를 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했겠어요? 내기는 내기이고 내가 차린 이 음식을 맛이라도 좀 봐라면서 이 둘을 밥상앞에 앉혔습니다.
"그냥 맛이나 함 봐라~ 지금 아니면 먹을 수 없는거란다."
동생과 친구는 눈앞에 펼쳐진 이 괴로운 장면앞에서 다이어트에 대한 정신줄을 잠시 놓게 되는데..
한 술 뜨고 두 술 뜨더니 아니 이것들이 맛을 본다가 아예 식사가 되버리네요.
"형님, 국물이 아주 시원해요"
단지 소금간만 했을 뿐인데...
붉은쏨뱅이의 국물맛은 기대 이상입니다. 사실 이 맛을 제가 냈겠어요? 붉은쏨뱅이가 낸거지 ^^
그맛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방송출연해도 될 맛이야!!!!"
"뭐야. 다이어트한다며? 벌써 포기했니?"
"지금은 포기할래요 ㅋㅋ 먹은만큼 운동하면 되겠죠 뭐"
다이어트마저 포기하게 만든 자연산의 위력이랄까..
사진에 보이는 초밥은 촬영용이고 옆쪽에 20피스가 더 있었는데 그걸 다 먹어치우네요.
모처럼 꾸려진 자연산 밥상에서 우리들은 소소한 행복을 느껴봅니다.
바다낚시가 매력적인 이유,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
PS : 어제 제주해역에서 10년만에 잡혀들어온 진품 다금바리(アラ)를 긴급 공수해 초밥을 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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