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를 하다보면 별의 별 일이 다 있습니다. 이덕화씨가 낚시로 노루를 잡았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라고 믿을 정도로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집니다만, 이번에 제가 겪은 일은 그 정도는 아니여도 순간 할말을 잃을 법한 모습을 대구의 껍데기에서 봤습니다. 순간 이게 뭐지? 싶더라고요.


    사진을 찍어 놓은지는 좀 됐는데요. 제 이웃분 중에 바다향기님이라고 배낚시를 자주 다니는 분이 계십니다. 하루는 "지금 낚시를 마치고 올라가는 중인데 고기 좀 가져가겠냐"며 아이스박스 들고 오랍니다.

     

    며칠 동안 낚시도 못간 상태에서 자연산 고기가 아른거렸는데 마침 잘 됐다 싶었지요. ^^; 그렇게 자연산 고기의 공수는 자가용을 끌고 도착한 어느 도로변에서 이뤄졌습니다. 그것도 깜깜한 밤에 말이지요. 마치 영화속에서 볼 법한 모종의 거래를 하는 장면처럼 남몰래 은밀히 그리고 신속하게 이뤄졌습니다.

    상대방은 커다란 가방을 앞에 둔 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돈가방이 아닌 아이스박스입니다. ^^; 그리곤 물건을 보여주시는데 왕대구에 씨알 좋은 우럭으로 쿨러를 채워 오셨습니다. 이날은 안흥 선상낚시를 갔다가 잡아 오셨다고 해요. 그리곤 다짜고짜 제 아이스박스로 퍼다 주십니다. 

    "그만 주세요~ 너무 많아요"

    잡은지 수시간 밖에 안된 자연산 우럭과 대구. 어물전에서 돈주고 사도 몇 만원은 족히 들텐데 바다낚시라는 공통된 취미와 또 제 글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아낌없이 퍼 주셨어요. 덕분에 온 가족이 잘 먹었답니다.^^


    집으로 갖고 오자 처음 보는 왕대구에 다들 눈이 희둥그레집니다. 족히 70cm쯤 되어 보이는 이것을 손질하려니 이건 뭐 거의 도살 수준이네요. ^^;


    배를 갈라보니 애(간)도 커다란 게 나오고 미꾸라지도 나옵니다. 미꾸라지는 선상낚시에서 주요 미끼니깐 당연하고요.


    배를 갈라보면 요런 것도 나옵니다. 눈썰미 있으신 분들은 저게 뭔지 아시리라 봐요. 요즘 한참 물오른 갯장어(참장어)인데 비록 치어이긴 하지만 완전히 소화되지 않은 채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갯장어의 또 다른 말로는 '하모'가 있는데요. 하모는 일본말이니 가급적 갯장어란 말을 쓰시는게 좋겠지요.

    그렇게 손질을 마치고 분류작업을 하려던 중 대구 껍질에서 뭔가가 눈에 띕니다. 순간 제 눈을 의심했지요. 그것은 다름아닌..




    "욕이였습니다."

    그러니깐 이 대구는 한마디로



    "18 대구(...)"

    행여나 오해하실지도 몰라 말씀드리자면.. 절대 포토샵 조작이 아니며 이 날 개인이 낚시한 것을 곧바로 실고 온거랍니다. 공판장을 거친 것도 아니니 도장 같은 게 찍힐리 만무하며(생선엔 도장을 잘 안찍지요.) 무게도 18kg와는 거리가 멀어요. ^^;


    원래 대구에 저런 무늬가 있는지 알아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18'의 정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낚시꾼에게 생을 마감한 대구가 억울한 영혼으로 껍질에 빙의 된걸까요? ^^;;



    어쨌든 바다향기님 덕분에 18 대구(...)는 저희 가족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습니다. 크기가 어찌나 크던지 두 토막만 넣었는데도 한 냄비 넘치려고 해요.



    극강의 선도로 끓여 낸 대구 맑은탕, 검은건 알이다

    들어는 봤나요? 시장에서 산 대구가 아닌 낚시로 잡은 극강의 선도로 끓인 대구 맑은탕을.. 참 대구는 낚시로 잡으나 시장에서 구입하나 똑같은 자연산입니다. 제가 너무 호들갑을 떨었네요. ^^; 하지만 아랫쪽 음식은 조금 호들갑을 떨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게 뭐냐면..


    자연산 우럭도 몇 마리 넣어 주셨는데요. 얘네들을 포뜬 후 그대로 접시에 담아내면 우럭회가 되겠지만.. 최근에 회를 너무 많이 먹어 좀 질린 상태고요. 이 날도 한접시 가득 먹다 남길래..


     



    자연산 우럭으로 튀김을 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튀김은 전문인 제 아내가 담당! 남들은 없어서 못먹는 자연산 우럭이지만 이웃님의 배려로 한가득 얻어올 수 있으니..

     


    올 누드였던 회 조각들이 남고 남아 튀김으로 변신하는 영광을..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듯 하죠? ^^ 여름밤에 시원한 맥주와 함께라면 더 없이 좋은 안주감입니다.

    아직도 저희집 냉동실엔 '18 대구'가 잠들고 있습니다. 조만간 탕이든 찜이든 해먹겠지만요. 살다살다 물고기로부터 욕 얻어먹은 경우는 처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못 믿을 거짓말이 낚시꾼의 거짓말이라는데 이런식으로 또 하나가 추가되네요.

    "너네들 낚시로 잡은 물고기한테서 욕 얻어먹어봤어? 안먹어봤음 말을 하지마~"

    알고보면 백프로 거짓말은 아니랍니다. ^^; 그런데요. 이 날 따라 유난히 대구탕이 맛있네요. 18이 새겨진 그 껍질 마져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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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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