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동 신성각] 건강을 생각하는 착한 짜장면과 두툼한 탕수육


 

이곳은 공덕동에 있는 오래된 짜장면집, 신성각

 

입구에는 어떤 문구가 시선을 끌었는데 가독성이 떨어져 읊어보겠습니다.

 

"지구촌에 살고있는 어떤사람이라도

단 한그릇 먹어보고 눈물을 흘려 줄 음식을

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만들고 싶다.

21세기가 기다리고 있기에....

88년 10月 이문길"

 

 

이곳은 효창공원 앞에 있는 작은 중국집입니다. 입구에는 Since 1981년이라고 되어 있으니 정확히 33년 동안 한 길을 걸어왔군요.  

오랜만이네요. 이런 허름하고 좁은 중국집은. 장소도 유동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주택가에 있습니다.

여태 재개발이 되지 않은 동네라면, 어디에든 한 군데씩을 있을 법한 낡은 중국집이지요.

그런데 낡고 허름하다고 해서 그냥 지나치기에는 이 집 짜장면이 범상치가 않습니다. 이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착한 짜장면'으로 평가되고 있었고

미식을 다루는 기사에서도 '꼭 한 번 맛봐야 할 짜장면'으로 손꼽히고 있었으니 저로서도 찾아갈 만한 동기 부여는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착한 식당'으로 선정되어도 손색이 없겠죠? 하지만 선정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MSG(화학조미료)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전국 팔도에 MSG를 넣지 않고 만드는 짜장면은 가정집밖에 없을 것입니다.

행여나 전국 어딘가에 숨어 있을 극소수의 중국집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이 집 짜장면이 오래토록 사랑받아온 이유는 화학조미료의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였고 100% 수제로 만든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집 음식을 먹고 나서 수 시간이 지났는데도 부대끼지 않아 속이 편했습니다.

저의 경우 저녁에 중국집 음식이나 밀가루 음식을 먹고 속이 편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 집은 예외였습니다. 

 

 

매장 안 유리 수조에는 낡은 휴대폰부터 값비싼 렌즈까지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저 중에는 낚시 릴도 보이네요.

세월의 무게만큼 쌓인 물건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겠지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캐논 24-70 렌즈였습니다.

지금 시장에 중고로 갖다 팔아도 백만 원은 받을 만한 이 물건을 어째서 팔지 않고 썩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매우 간단하고 명료했습니다.

 

"그거 물통입니다."

 

열어보았죠. 세상에 감쪽같이 속았습니다. 24-70 렌즈 모습을 완벽히 구현해낸 플라스틱 물통이었다니. 허허

 

 

매장 안 테이블은 고작 3개뿐입니다. 전부 앉아봐야 10명이나 되려나요.

그럼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냐? 것도 아닙니다. 배달은 매우 제한된 구역에서만 이뤄진다고 합니다.

의자는 매우 딱딱한 것이 80년도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라 불렀지만) 교실에서 가져온 듯한 느낌으로 정감이 있습니다.

 

 

테이블 세팅에도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저 빨간 고춧가루통,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카드 결제 안됩니다."라고 대놓고 카드를 받지 않는 건 흠입니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를 떠나 세금 징수와 관련이 있어 이 부분은 곱게 볼래야 볼 수가 없군요.

 

보시다시피 메뉴는 단출합니다. 다루는 범위가 좁은 만큼 음식의 전문성에 대해 기대감은 상승하기 마련.

여기서 저는 간짜장과 탕수육을 주문해보았습니다. 그러자 "어느 것을 먼저 내올까요?"라고 물어옵니다.

둘 다 함께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니 그렇게는 안 된다고 합니다. 혼자서 동시에 두 가지를 못 만든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의아하다가도 이내 수긍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뭐든 미리 만들어놓고 파는 법이 없으며 주문을 받으면 혼자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동시에 두 가지 음식을 내기가 어려운 건 당연하겠지요. 그래서 저는 탕수육부터 만들어달라고 하였습니다.

 

 

기본 찬

 

탕수육(13,000원)

 

 

받자마자 시선이 간 것은 소스의 빛깔이었습니다. 여느 중국집의 탕수육처럼 붉은 기가 돌지 않고 매우 흰데요.

간장이나 케첩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파인애플이나 레몬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소스로 보입니다. 그래서 맛도 시고 달고 합니다.

이 집에 기대를 걸었던 '자극적이지 않고 건강한 음식'이라는 느낌과 달리 탕수육 소스는 상당히 자극적인 맛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식초와 설탕에만 의존한 저렴한 맛이 아니라는 점. 조금 달았지만, 먹는 내내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도 오이와 파, 당근의 질감이 아주 좋습니다. 거의 익히는 둥 마는 둥 하여 채소의 아삭거림을 살렸습니다.

 

 

특이한 건 탕수육에 감자를 넣었다는 점. 감자는 익는 시점이 많이 늦기에 미리 익혀놓은 것을 넣었을 겁니다.

그래서 푹 익은 찐감자의 맛이 났는데 뜻밖에도 탕수육 소스와 잘 어울리네요.

 

 

접시 한 켠에는 옛 스타일의 양배추 샐러드가 놓여 있었습니다.

반듯하게 채 썰어 놓고 토마토 케첩을 뿌린 모습이 요즘 시대에는 걸맞지 않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 하지요.

 

 

그래도 탕수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의 탕수육은 뽑기 운이 작용할 것입니다. 

어떤 것은 고기는 안 보이고 튀김 옷만 잔뜩 뭉쳐졌는가 하면, 또 어떤 것은 한 입 베어 무니 비계 덩어리만 씹혔던 경험. 다들 갖고 계시겠지요.

그런데 신성각의 탕수육은 고기와 튀김 옷의 비율이 곧바르네요. 곧바름을 넘어 이것이야말로 '옳은 탕수육이다.'라는 전형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두툼한 고기 튀김을 간장 양념에 살짝 찍어 맛을 봅니다. 일단 고기가 많이 씹혀 만족스럽네요.

튀김 옷이 그리 바삭한 편은 아닙니다. 만약, 어떤 집의 튀김이 과하게 바삭했다면, 그건 둘 중 하나겠지요.

튀김을 바삭하게 만드는 그 집만의 노하우가 있거나 혹은 첨가물에 의한 바삭거림일 테니까요.

바삭함을 위해서라면 우리 몸에 해로운 경화유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집 탕수육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 고기 튀김에 가까웠습니다.

 

그것을 찍어 먹는 간장도 탕수육의 맛을 더해주는 조연감이지요. 양념간장을 제조하는 일은 언제나 손님의 몫이지만 말입니다.

다들 눈대중으로나마 제조의 철학(?)은 있을 겁니다. 저는 간장과 식초를 7:3으로 섞고 고춧가루를 적당히 푸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른 조각을 살펴보았습니다. 보시다시피 탕수육이란 게 튀김옷을 입혀 튀기다 보면, 그 크기가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도 마찬가지인데요. 튀김이 크다면 큰 만큼 고기도 두껍게 들어가고 작으면 작은 데로 고기도 그에 맞게 들어간 모습이 눈에 띕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큰 덩어리를 가져와 놓았습니다. 비계 덩어리는 거의 없는 살코기로 약간의 육즙이 느껴지는 맛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13,000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양은 많지 않았다는 점. 다 먹어갈 때쯤에 간짜장이 나왔는데 몇 조각이 아쉽더군요.

 

탕수육을 먹으면서 이 집이 자랑하는 수타면의 제조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옛날 방식으로 면 가락을 내는 장면. 최근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는데 이런 허름한 중국집에서 보게 되니 반갑더군요.

 

 

 

주방에는 수타면을 치댈 때의 '탁탁' 소리 외에도 주방장 아저씨의 콧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가게를 운영하면서 저 수타면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겠습니까? 어떨 때는 지겨울 만도 할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콧노래를 듣고 있으니 이 일에 얼마나 애정을 가졌는지가 느껴졌습니다.

모름지기 음식이란 만드는 사람의 기분이 즐거워야 맛도 있지 않겠어요? 암요. 그렇다마다요. ^^

 

꼭 이렇게 앉아 있으니 만화책 속에 등장하는 중국집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단 이곳은 번화가도 아닌 조용한 주택가입니다. 규모가 크거나 화려한 외관을 뽐내는 곳은 더더욱 아니고요.

작고 허름한 중국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주방에서 콧노래와 함께 면 반죽을 때리는 소리가 들리는 이 상황이 꼭 만화책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왕이면 요리 관련 만화책으로 하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식객이 서울의 어느 허름한 중국집에 들렀다. 정도의 설정으로 말입니다.  

 

계속해서 지켜보니 처음 한두 가락으로 시작된 면발은 반복되는 동작에 의해 수십 가락으로 쪼개졌습니다. 이어서 들린 건 요란한 웍 볶는 소리.

소리만 들어도 내가 주문한 간짜장이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만큼 이곳은 현장감 있는 사운드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이런 것도 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어떤 이들에게는 그리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음식 만드는 사람의 기분을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이 느낄 수 있다는 것. 규모가 작으니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지금 시대의 식당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기도 하지요. 

 

 

간짜장(5,000원)

 

면발에는 오이 몇 채가 썰어졌고 간짜장을 그릇에 따로 내온 모습에서 다른 중국집과 다른 점은 없었습니다.

 

 

가득 부었습니다. 내용물은 양배추와 양파가 대부분이고 쪽파와 돼지고기도 듬성듬성 보입니다.

 

 

100% 수타면이라 지네들끼리 엉킴이 좀 있습니다. 면발도 많이 들쑥날쑥하지요.

 

 

골고루 섞어봅니다.

 

 

공덕동 효창공원 앞 신성각(위치는 아래 지도 참조)

내비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임정로 55-1

영업 시간 : 매일 11:35~19:30 / 명절, 여름휴가, 매주 일요일은 휴무

주차 시설 : 없음(도로에는 지정 주차선이 그어져 있는데 오후 6시 이후는 무료)

 

100% 수타면이라고 해서 아주 쫄깃할 것이라 기대하는 건 금물입니다. 그냥 이로 적당히 끊어 먹을 수 있는 탄성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쫄깃하다.'고 표현하는 것들은 조금 심하게 비약하자면, '비정상'에 가깝습니다.

천연의 재료만으로는 아무리 수타를 해도 소비자 입맛을 만족할 만큼 쫄깃해지지 않으니까요. 특별히, 찹쌀을 넣으면 찰기라도 가지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면발의 강성, 그 쫄깃하고 차짐은 이미 도를 넘어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입맛은 "더 쫄깃하게", "더 자극적인 맛"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면을 쫄깃하게 해주는 각종 식품첨가제와 MSG의 양을 늘릴 수밖에 없겠지요.

좀 전에 언급한 경화유는 말할 것도 없겠고요. 이 모든 현상을 부추긴 것은 다름 아닌 '소비자'일 것입니다.

 

맛은 갓 볶아낸 간짜장의 고소함이 살아 있었습니다. 단맛도 충분히 느껴집니다.

MSG(화학조미료)의 사용을 극도로 절제한 탓에 일반 중국집 짜장면에서 느껴지는 '입에 착 감기는 맛'은 부족합니다.

MSG에 입맛이 길들인 이들은 '조금 싱겁고 맹맹한 맛'이라며 불평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이 이 집 짜장면을 두고 맛을 지적할 권리는

없다고 봅니다. 지적하려면 조미료에 길들인 자기 입맛을 탓해야겠지요.

 

물론, 이 집 짜장면이 조미료를 완전히 배제하고 만든 것은 아닙니다. 이 집도 어쩔 수 없이 화학조미료를 사용할 텐데 그 양이 극히 적은 것뿐입니다.

먹거리 X파일에 아쉬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화학조미료가 한 톨이라도 들어가면 착한 식당 선정에서 완전히 배제된다는 점.

맛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는 저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화학조미료의 사용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이 시대라면, 소량의 사용으로 발목을 잡기보다는 

그보다 높은 가치를 부각시키는 쪽이 바른 먹거리 문화에 도움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마치 이 집 음식을 신성시 여기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집이야 말로 기대하고 갔다가는 실망만 하고 나올 공산이 큽니다.

왜냐고요? 전에도 누누이 말해왔지만 이집 음식은 우리네 입맛에 맞춘 '맛있는 음식'이 아닌 '훌륭한 음식'의 범주에 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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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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