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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낚시(1), 폭우와 맞짱 뜬 낚시
내용도 어떤 장면조차도 생각나지 않은 꿈을 아주 길게 꿨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따사로운 햇볕이 저를 보듬어 안더군요. 그 빛은..그 빛은 생각만큼 유쾌하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지척이었던 저는 그 빛에 눈을 뜨고 말았습니다. 꿈이 아닌 실제로 창밖에서 들어오는 어스름한 빛. 그 빛에 놀란 저는 반사적으로 시계를 봅니다.
"7시 20분"
가만있자. 오늘은 대마도 가는 날이고 5:10분 차로 KTX를 예약해 뒀는데..
다음 날, JR큐슈의 비틀에서
저도 난리가 났지만, 대마도에서도 황당했을 듯.
급히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음날 배표가 있는지부터 알아봐야 했습니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응답을 기다리는데 두 시간 쯤 지났을까요.
대마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다행히 한 자리가 남아있답니다.
그렇게 하여 이번 대마도 낚시는 3박 4일에서 2박 3일로 줄어든 채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공중으로 분해된 여객 선비(왕복으로)와 KTX 운임 비는 덤으로 손해를 ㅠㅠ
제 낚시 인생에 이런 실수는 처음 있는 일. 원인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전날 저녁, 아내와 딸래미를 처형 집에 데려다 주고 오니 밤 열 시. 낚시 짐을 챙기니 자정. 네 시간만 자고 일어나 부족한 잠은 열차 안에서 메꿔야지
싶었는데 그 어두컴컴한 새벽, 귀가 쩌렁쩌렁할 정도로 울리는 알람을 무의식적으로 누르고 자 버렸던 것입니다.
그간 아내와 함께 낚시 다닐 때는 저지르지 않은 실수였는데 아내가 없으니 기어이 이런 사고가 발생하는군요. 그만큼 아내 의존도가 높았던 것.
그렇게 저의 대마도 낚시는 홀로서기로 시작하였습니다. 알람에 대한 트라우마를 남긴 채.
밤 한 숨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어나니 새벽 3시 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서울역으로 향합니다. 첫차까지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 인고의 시간.
그 시간 동안 저는 대합실 주변을 맴돌며 허공을 향해 윽박지르는 노숙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어야 했습니다.
비 내리는 히타카츠항
"2015년 을미년 첫 태풍과 함께 한 대마도 낚시"
저와 함께 가기로 한 파트너가 계셨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대마도 낚시는 홀몸으로 떠나 홀몸으로 오게 되었죠. 짐을 최대한 줄이고 줄여도 혼자 들고 오기에는 조금 버겁더군요.
그렇게 갖은 우열 곡절을 겪으면 도착한 히타카츠항은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습니다.
겨울비 치고는 제법 많이 내리니 첫날부터 걱정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차 일기예보를 살피는데 구름 모양이 심상치 않습니다.
다름 아닌 1호 태풍이 오고 있답니다. 보통 겨울에 발생한 태풍은 이쪽으로 오는 경우가 드문데 말입니다.
픽업 나온 낚시 민숙 차량
민숙집에 도착하니 점심 준비가 한창이었다.
살짝 불맛 났던 백짬뽕
먼저 온 자환이아빠 팀의 물칸
동해꾼인 자환이아빠 팀은 저보다 이틀 먼저 이곳에 왔습니다. 예전에 동해 한섬 방파제 조행기에서 함께 했던 분이지요.
이번에는 대마도에서 저와 함께 낚시하기로 하고 날짜를 맞춘 거였는데 제가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내일 오전에만 함께 낚시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이분들은 내일 올라간다고 합니다. 물칸을 보니 벵에돔을 제법 잡아두었군요,
누군가가 잡아 둔 달고기
PM 2:00 설레는 첫 출조
다행히 비는 멈추었다.
다행히 비는 멈춰주었지만, 1호 태풍의 북진에 외해 쪽은 바람과 너울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첫날 대마도 낚시는 비교적 바람에 의지가 되는 미네만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마침 이날은 FTV 바다의 신 촬영팀이 와 있더군요. 감독님과는 몇 차례 통화만 했는데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갯바위 낚시 조력이 오래되신 감독님. 첫 순서로 중간여에 내렸는데요. 이곳에서 어떤 조과가 나오게 될지 궁금합니다.
두 번째는 이날 저와 함께 배를 타고 온 경주팀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제 차례. 그곳은 타카이 영감의 영혼이 서려있는 곳입니다.
사실 선뜻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의 낚시 방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최근 조황이 어땠는지도 확인이 안 된 상태여서 탐사의 성격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낚시 민숙집 사장님과 함께 내렸습니다. 그나저나 잔뜩 찌푸린 하늘이 마음에 걸리네요.
비가 그쳐 가벼운 옷으로 입고 나왔더니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갑자기 바람이 터집니다.
이 내만까지 바람이 터질 정도면 바깥은 오죽할까 싶어요. 아이고 추워~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 낚시를 시작
'주욱' 하고 잡아당기는 입질에 챔질해보지만, 첫수로 어랭이(표준명 황놀래기)가 올라옵니다.
그리고 다시 쏟아진 비.
그것은 비가 아닌 바람을 동반한 폭우였습니다.
이 장면을 찍으려고 무리하게 카메라를 꺼내 들었습니다만, 찍자마자 곧바로 가방에 집어넣어야 했습니다.
그 가방도 비에 쫄딱 맞아 안에 든 옷이며 카메라며 축축이 젖고 말았지만요.
이 날 타카이 포인트에서는 잡어가 생각만큼 많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낚시가 잘되지 않습니다.
분명, 밑에는 고기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저의 집중력 탓일까요? 아니면 너무 오랜만에 벵에돔 낚시를 한 탓일까요?
거센 비바람에 속옷까지 쫄딱 젖자 곧바로 한기가 엄습해 옵니다.
그에 비해 사장님은 보온 대책을 세우고 나오셨는지 이 비바람에도 묵묵히 낚시만 하시고.
"저 잠깐만 쉬겠습니다."
너무 추워서 낚싯대를 놓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봅니다.
낚시는 고기를 잡는 즐거움을 얻는 취미. 하지만 그 고기를 잡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도 즐거운 일.
변화무쌍한 기후와 날씨 속에서도 주어진 환경을 읽고 그에 맞는 적절한 공략법을 찾아낸다는 것.
그렇게 해서 고기를 잡으면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돌아오니 낚시의 기쁨은 그런 과정을 통해 얻는 것.
이라고 누가 말했던가요? 아 이럴 땐 낚시고 뭐고 숙소로 들어가 따뜻한 아랫목에 등짝이나 지지며 눕고 싶습니다. ^^;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갔습니다. 장마도 아닌데 굵은 빗방울이 연신 퍼붓고 바람은 표층수를 연신 밀어붙이는군요.
채비를 수정하고 또 수정하면서 공략해 봅니다만, 그래도 이 바다는 말이 없습니다.
이곳이 제아무리 대마도라 할지라도 지금은 겨울 태풍이 엄습한 성난 바다일 뿐.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은 오후 네 시를 넘어서며 대물의 챤스를 맞이합니다.
때마침 비도 그치니 왠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잡어 분리를 하고자 발밑에만 뿌리고 채비는 조금 멀리 던졌습니다.
잡어에게 들킬까 싶어 몰래몰래 내린 다음, 갯바위 벽 가장자리로 채비를 붙입니다.
더도 말고 딱 6m만 내리자. 6m까지만 미끼가 살아서 내려간다면, 분명 몇 마리 거둘 것이다.
전방 15m에 던져진 채비는 릴을 몇 바퀴 감고 베일을 닫음으로써 점점 발 앞으로 당겨져 왔습니다.
그러면서 작은 크릴은 바늘 무게와 더해져 일정 수심대로 자유 낙하했겠지요.
살아서만 내려간다면, 반드시 살아서 내려가기만 한다면.. 이쯤에서 어신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 순간 잠방자방하던 찌가 흔들립니다. 그래 바로 이거죠. 이어서 원줄이 스르륵 하고 미끄러지듯 나갑니다. 입질입니다.
"옳거니 왔다!"
그런데 힘이 왜 그래?
붙박이 볼락 한 마리 끄집어 냈다.
"읔"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시간은 어느새 다섯 시를 맞이합니다.
앞쪽에는 작은 열대어와 자리돔만 있어 잡어 분리에 애를 먹지 않았지만, 조금 먼 곳에는 숭어 새끼들이 떼로 들어와 미끼를 강탈하는 일이 잦고.
이 황금 같은 시간을 숭어 새끼에 말려버렸으니 속이 바짝 타오르는군요. 아..이럴 때 빵가루만 챙겨왔다면.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일. 아무래도 오늘은 글러 먹었군.
남은 시간, 30분. 전부터 누적되었던 추위가 온몸을 강타하고 있었습니다.
옷이 젖어 꿉꿉한 건 둘째치고 옆에서 새어나오는 바람이 계속해서 제 몸의 온도를 낮추고 있으니 이제는 '저체온증'이 염려되는 시점입니다.
사실 바람 자체는 많이 죽었지만, 산인지 바다에서인지 모를 찬 공기가 유입되며 젖은 제 몸을 더욱 춥게 만들고 그 와중에 부는 옆 바람은 그리 강하지
않았는데도 왜 그리 기분이 나빴던지, 뒤통수가 쭈뼛쭈뼛 서고 다리가 후들거리는군요.
이럴 때일수록 정신 차려야 할 듯.
저는 다시 집중하며 물속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발밑에는 호박돔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약을 올린다.
제가 바로 앞에 서 있는데도 이 녀석 겁도 없군요. 낚시도 통 안 되고 해서 잠깐이나마 이 녀석과 놀기로 하였습니다.
지난번, 타카이 영감을 잡았을 때처럼 눈앞에서 낚싯대를 놀려보지만, 생각보다 영특해서인지 잘 잡히지 않네요.
바닷물도 너무 투명해져 있어 8~9m 깊이의 바닥이 다 보입니다. 아무래도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도 싸늘한 바람은 계속 불어오는데 찬 바람도 찬 바람이지만, 까마귀 소리까지 더해져 스산함이 느껴지니 온돌방이 간절히 생각나는 하루였네요.
이렇게 대마도 낚시는 주의보가 떨어진 날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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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대마도 벵에돔 낚시 팁(벵에돔 채비와 밑밥, 준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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