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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적이고 의미있는 첫 딸의 돌잔치
결혼 7년 차, 첫 딸을 낳은 지 1년이 흘렀고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첫 돌이 찾아왔습니다. 지인들은 세월 빠르다 하지만 키우는 입장에서는 왜 그리 시간이 안 가던지. 어쨌든 딸의 출산은 제 블로그 운영에 많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부부 조행기'가 잠시 막을 내리면서 예전에 보았던 알콩달콩함이 실종돼버렸죠. 하지만 아이가 커 감에 따라 아내의 컴백도 다가오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얼마 전에 두 번째 책을 출판한 저는 이제 세 번째 책을 집필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달 초에는 딸의 첫 돌이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돌잔치에 오시겠다는 분이 많았지만, 그렇게 되면 초대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준비할 것도 너무 많아져서 그냥 직계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지요. 그 현장과 느낌을 셀프 스튜디오에서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후기로 남겨보겠습니다.
서울 장충동의 A 호텔 뷔페
이날은 첫 딸의 돌잔치가 있었던 날. 무리하게 많은 사람을 부르고 싸구려 음식을 대접하는 기존의 돌잔치 문화를 숱하게 보아왔기에, 그것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있었습니다. 그리 친하거나 가까운 사이가 아니더라도 초대를 받은 이상 가야 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적당히 경조사비를 치르면서 싸구려 뷔페를 먹어야 하는 주말이 기다리곤 합니다. 그런 경조사를 치를 때마다 "꼭 이래야만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은 소비자가 기대하는 잔칫상의 기준이 한층 까다로워졌습니다. 식재료와 원산지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못한 출장 뷔페를 비롯해 여러 돌잔치 룸이 하나의 뷔페 음식을 공유하며 줄을 서서 먹는 불편함은 최소화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품질을 올리기에는 주머니 사정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었죠. 돌상에 드는 비용도 생각해야 하고, 액자며 영상이며 답례품까지 준비할 것들이 너무 많은 이러한 돌잔치 문화가 부모의 만족감을 제하고선 아이에게 얼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생략하고 가족들과 함께 밥 한끼나 제대로 먹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것이지요.
그 바람을 실현한 장소는 소규모 연회석이 가능한 호텔 뷔페로 정했습니다. 홍제동 H호텔과 장충동 A호텔을 놓고 비교해 보니 음식 값은 각각 65,000원과 78,000원이었는데 홍제동 H호텔은 돌상 주문에만 40만원이 들고. 둘러본 음식도 수산물 쪽은 그 가격에 적합하지 않은 재료를 쓰고 있었다는 점과 외부 돌상을 가져오면 10만원을 내야한다는 점, 그리고 인원 수를 계산하는 방식도 합리적이지 않은 등 배짱 영업의 느낌이 다분히 보여 선택에서 제하였습니다.
반면, 장충동 A호텔의 뷔페는 78,000원(11월부터 8만원)이지만 돌상은 운영하지 않았기에 외부 돌상을 가져와도 추가 요금이 없었다는 점과 기념 케익과 샴페인이 무한 제공이 된다는 점. 무엇보다도 음식의 다양성과 적당한 품질, 그리고 수산물의 질과 구성이 훨씬 낫다고 판단해 이곳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돌상에 들어가는 떡과 장식, 과일에는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 평범한 떡과 과일이 돌상이라는 이름 하에 판매되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굳이 그걸 먹으려고 웃돈 주고 돌상을 주문할 이유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알아본 돌상의 대여비는 10만원으로도 충분하였죠. (당일 날, 돌상에서 제공한 현수막을 집에 놓고 와서 벽걸이 TV를 가리지 못했다는 점은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계산해 보면 돌상에 들어가는 비용은 고스란히 음식의 품질을 높이는데 사용되었고, 떡과 과일은 그냥 마트에서 사 먹겠습니다. ^^;
이는 사람마다 가치 판단의 기준이 달라서일 뿐, 제가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저는 떡과 과일이 든 돌상에 큰 비용을 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돌상에는 돌잡이도 포함됩니다. 영상과 사진을 번갈아가며 찍느라 돌잡이를 두 번 했는데요.
처음에는 뭘 집어야 할지 고민하는가 싶더니
두 번 모두 지폐를 집은 것은 조금 뜻밖입니다. 왜냐하면, 평소 딸에게 지폐를 보여준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인데 단순히 가운데 놓여 있어서 지폐를 든 것인지 아니면 색이 마음에 들어서인지는 딸내미만 알고 있겠지요. ^^
연회석은 14명 규모라 직계 가족만 초대했습니다. 딱히 진행이랄 것도 없이 간단히 건배하고 식사에만 중점을 두었죠. 생일 축하를 부르고 케익 절단 식을 하고 돌잡이를 하는 정도 외에는 온 가족이 모여 식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고, 무엇보다도 뷔페 내부가 번잡스럽지 않아 줄을 선다거나 음식이 떨어져 채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없습니다. 가져온 음식을 사진으로 남기기는 했지만, 이날은 정신이 없어 대중없이 담아온 그릇만 몇 장 올려봅니다.
사진에 많은 음식이 빠져있습니다. 종류가 다양해 인기 많은 킹크랩과 왕새우, 피자, 파스타, 간장게장 등 제 손이 닿지 않은 음식이 절반은 되는 듯합니다. 그 외 양식부, 중식부, 일식부, 그리고 동남아 음식과 한식, 디저트 등이 코너별로 마련되어 있어 구석구석 살피지 않으면 몇 가지 음식은 놓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다양한 음식이 모인 만큼 모든 음식이 맛있지는 않았습니다. 생선찜은 흙내가 났고, 인도식 커리는 흉내만 낸 수준이었으며, 중식부는 크림 새우를 제하고는 특별한 감흥을 받지 못했습니다. 스테이크는 부드럽지만 숙성이 덜 돼 맛이 밍밍하고, 새우튀김은 아주 맛있었지만, 튀길 때 딜레이가 있어 이용에 불편했습니다.
반면, 샐러드에 들어가는 재료의 다양성은 소비자의 다양한 구미에 맞추려는 노력이 보입니다. 고급스러운 칼라마타 올리브를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올리브, 아티초크, 안쵸비, 다양한 치즈와 햄, 그리고 샐러드 재료는 신선했고, 수산물 쪽 볼륨이 잘 되어 있었다는 점. 다만, 회와 초밥은 생연어의 품질이 A급이 아니었으며, 중국산 양식 농어와 눈다랑어의 저렴한 부위만을 앞세웠다는 점이 아쉽고, 숙성 상태도 맛의 만족도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 외 다른 수산물 쪽에서 구색을 잘 갖춘 덕에 일반 소비자들의 눈높이에서는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보이며, 육류 쪽은 부드러운 갈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돌잔치 기념사진은 백일 때와 마찬가지로 셀프 스튜디오를 두 시간 빌려 직접 촬영했습니다. 대여비는 단돈 5만원 ^^.
저렴한 만큼 시설과 분위기 연출의 다양성은 다소 떨어졌지만, 자연광이 들고 실내조명 기구를 잘 이용해서 촬영하니 그나마 몇 장은 건질 수 있었습니다.
첫 딸의 돌잔치는 소규모로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큰 맘 먹고 지른 호텔 뷔페는 소규모 예약에 돌상에 들어가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저는 사진 전공이 아니지만, 기본적인 사진은 찍을 수 있었기에 아빠가 직접 찍어주는 사진으로 남보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스튜디오 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고스란히 음식으로 가게 되었지만, 결국은 식구들이 챙겨준 축하금으로 치른 셈이 돼버렸고, 음식은 대체로 만족한 눈치여서 그 점에서 저는 만족스러운 돌잔치였다고 자평합니다.
어떤 이들은 돌잔치를 창조 경제를 이룰 기회로 삼기도 합니다. 결혼식 부조금만큼은 아니지만 무리하게 많은 인원을 초대해 성대히 치르는듯하지만, 정작 중요한 음식은 싸구려라 남는 장사를 한다는 느낌을 받죠. 1부와 2부로 나뉜 돌잔치는 사회자가 마이크로 시끄럽게 떠들어야 하고, 누군가는 나와서 춤을 추기도 하며, 부모는 물론, 그 어린아이도 이른 아침부터 미용실에서 화장까지 합니다. 저렴한 답례품으로 형식을 치르고 준비한 선물로 추첨하는 동안 아이는 이래저래 지쳐만 가겠지요. 물론, 그렇게 하면 돌잔치가 남는 장사임을 실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돌잔치의 목적 자체가 전도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부모의 남는 장사 뒤에는 소위 돌잔치 전문이라 불리는 업체의 성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업체들은 형식적인 돌잔치 문화를 등에 업고 지난 수년간 성장해 왔습니다. 겉보기에는 부모와 돌잔치 업체가 함께 상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살아남기 위한 업계의 경쟁만을 부추겼으며, 그 대가는 고스란히 호갱의 비용 전가로 이어졌습니다. 업계들 사이에서 경쟁이 붙으니 가격은 섣불리 올리지 못하겠고, 대신 재료의 질은 낮아지면서 가격보다도 터무니없이 낮은 품질의 음식과 거품만 잔뜩 낀 돌상으로 인해 우리의 돌잔치 문화는 일그러져가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현상은 비단 뷔페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조악한 사진 실력과 엉성한 앨범 제작으로 부모의 지갑을 열게 한 일부 스튜디오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가격 거품이 심한 육아용품도 포함될 수 있겠지만요.
그렇게 돌잔치 뷔페와 스튜디오 업체는 해마다 고도의 성장을 이뤄왔지만, 앞으로는 소비자의 요구가 점점 더 까다로워지는 만큼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호갱의 소비 심리를 등에 업고 성장한 산업은 점점 포화에 이르면서 일부 트랜드를 따라가지 못한 업체는 자연스레 도태될 것이고, 그 외에도 전문성과 경쟁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입니다.
돌잔치는 말 그대로 태어난 지 1주년을 축하하는 자리로 부모와 초대 손님이 중심이 아닌 아이가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안 그래도 요즘은 그러한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체석보다 소규모 잔치가 늘고 있고, 양보다 질 위주로 합리적인 풍토가 자리매김하면서 무엇보다도 아이가 고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돌잔치를 치르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이 대목에서 혹자는 "왜 자신의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느냐"고 곡해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개인의 방식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 일부 그릇된 돌잔치 풍토를 겨냥한 것임을 헤아려주셨으면 합니다.
이날 돌잔치는 두 시간가량 진행됐지만, 집에서 준비하고 오가는 시간을 합치니 4~5시간이 족히 걸렸습니다. 하필 이 시간이 아이의 수면과 겹치는 바람에 전날부터 수면 시간을 조정해야 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돌잔치에서는 딸의 컨디션이 대체로 좋아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만족스럽더군요. 아이가 힘들지 않게 '약간 긴 외식을 하는 느낌' 정도로 치른 것.
가족적이고 의미 있는 첫 딸의 돌잔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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