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시장 바가지 상술을 근절하는 합리적인 대안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

 

재래시장은 서민의 애환이 담긴 삶의 터전입니다. 수십 년간 재래시장에 몸 담았던 상인들은 이곳에서의 벌이로 생계를 책임지고 자식을 먹여 살리고 또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재래시장 이미지는 싱싱한 제철 식재료를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 가격을 흥정해 깎거나 덤으로 주는 후한 인심을 기대하는 것도 재래시장만이 갖는 매력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대규모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대기업의 시장 잠식에 재래시장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수산시장의 경우 우후죽순 늘어난 씨푸드 관련 외식 산업과 횟집 등에 밀려 가격 경쟁력을 잃은 것도 사실입니다. 도심지에 자리한 대형 수산시장의 인심이 퍽퍽해지고 바가지가 기승을 부리게 된 것도 아마 이때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가격과 원산지가 투명하지 않으니 수산시장에 대한 소비자 불신은 늘어만 갔고, 수산시장의 경제 지표는 계속해서 얼어붙어만 갑니다. 이에 손님 하나라도 놓칠세라 점포 간의 손님 유치 경쟁이 심화되면서 호객행위가 늘었고, 바가지 상술도 기승을 부리면서 이에 거부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하나둘씩 발걸음을 돌리고 있습니다. 수산시장의 가장 큰 장점은 싱싱한 활어와 수산물을 눈앞에서 직접 보고 고를 수 있다는 점과 함께 북적이는 시장의 현장감, 사람 사는 냄새와 인심이 공존한다는 점이며, 무엇보다도 싱한 제철 수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인데 지금은 그런 메리트를 상당 부분 잃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바가지 상술에 한두 번 당한 소비자는 해당 수산시장의 재방문률이 현저히 낮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수산시장의 잃어버린 경쟁력, 그 원동력을 되찾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신뢰'입니다. 고객의 신뢰는 발길로 이어지고 주머니를 열게 합니다. 불신을 떨치고 경계심을 허물며 상인과 제품을 믿을 때 비소로 지갑을 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수산물은 소고기와 달리 품목과 종류, 크기, 원산지가 천차만별이어서 일일이 가격을 매기고 팔기 어려운 태생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원산지에 대한 소비자 불신을 완화하고자 몇 년 전부터 수산물 이력제나 원산지를 추적할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해 왔지만, 실효성에 많은 문제가 불거지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보통의 소비자로서 수산시장 이용을 놓고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바가지 상술'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상인과의 흥정이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수산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려면 상인과의 흥정이 필연적으로 따라옵니다. 이 과정에서 아는 것이 없어 덤탱이를 쓴다거나 하는 걱정은 수산시장 이용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수산물은 좋아하는데 아는 지식이 없으니 자신감도 없는 이들과 여성, 젊은 학생들은 실제로 바가지 대상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더 많은 사람이 수산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게 하려면 흥정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최대 관건입니다. 그러려면 가격이 투명해져야 합니다. 지금은 상인이 가격 제시의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시세를 잘 모르는 소비자에게는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 되는 것입니다. 흥정에 있어서 소비자가 첫 번째로 궁금해하는 것은 원산지도 뭐도 아닌 '가격'입니다. 그런데 가격을 물어도 즉답을 하지 않은 상인이 있고, 오히려 "몇 명에서 드실 거냐"고 역으로 묻기도 합니다. 이는 손님에게 맞는 적당한 양을 제시하기 위함이지만, 일부 상인은 손님의 지갑 사정과 인분 수에 따라 가격을 정하겠다는 심리가 있어서 가격을 바로바로 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불편함이 고스란히 불편과 불신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부르는 게 값인 상인의 가격 선점권을 약화시켜야 합니다. 아래에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였습니다.

 

 

2016년 5월 15일 자, 노량진 수산시장의 평균 시세(인어교주 해적단에서 참고)

 

#. 가격 정찰제 도입해야

수산시장에서 물건 구입을 앞둔 손님이 가장 궁금해하는 가격. 그것을 흥정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보다는 아예 공개함으로써 가격을 놓고 서로 간에 열을 올리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을 확연히 줄일 수 있습니다. 수산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가격의 불투명성과 그것으로 인한 바가지 상술에 있는 만큼 이 부분을 완벽하게 해소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수산시장 차원이 아닌 해당 시, 군, 구 차원에서 예산을 편성해 대형 전광판을 설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대형 전광판에 '오늘의 시세'를 표시하면 수산시장을 찾는 이들이 참고해 물건을 구매할 수 있고, 상인은 표기된 시세보다 높게 부르지 못함으로써 수산시장에 입점한 점포들은 정량에 맞추고, 서비스를 높이며, 친절도로 경쟁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가격 정찰제는 점포 간의 서비스와 친절도를 높이고 또 그러한 경쟁으로 유도하고, 소비자의 불신을 획기적으로 줄여줌으로써 모두에 이득이 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수산물 특유의 '시세 변동성' 때문에 정찰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수산시장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고 있는 활어는 광어, 우럭, 참돔, 농어로 대부분 출하와 수급이 일정한 양식산입니다. 양식산 활어는 계절에 따라 출하량이 다르고 또 그에 따른 시세 변동이 있으나 매일같이 급변하지는 않으며, 시세가 대체로 안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어획량이 일정하지 못한 자연산이라도 그날 낙찰된 경매가에 따라 전광판에 소비자가를 표시하면 그만입니다. 대형 전광판에 드는 예산은 수도권을 비롯해 도심지의 대형 수산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많은 관광객의 발걸음을 수산시장으로 돌려 얼어붙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취지 하에 충분히 편성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가격 정찰제가 크게 호응받으면서 실제 미담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가격 정찰제가 몇몇 SNS 수산시장 서비스를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되면서 수산시장의 신뢰회복과 매출 증대에 기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OOOO 해적단'과 'OO 물고기'라는 수산시장 이용 플랫폼을 통해 가맹점을 이용하는 2030 젊은 층 고객의 이용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데 이들 서비스 플랫폼이 젊은 고객층을 수산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가격 정찰제'에 있습니다. OOOO 해적단의 경우 수도권의 대형 수산시장의 평균 시세를 품목별로 투명하게 공개해 놓았기 때문에 고객이 물건을 구입하는 데 참고가 되고, 더 나아가 1~2명으로는 구입할 수 없었던 대형 횟감(대방어, 대광어)를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게 해놓았기에 소비자가 수조를 보고 직접 활어를 고르거나 흥정하지 않아도 숙성회를 믿고 구입(혹은 배달)하게 된 것입니다. 

 

젊은 세대, 특히 흥정에 약한 여성들도 거리낌 없이 수산시장을 통해 원하는 숙성회를 주문해 먹는 소비 패턴이 가능해진 까닭은 이 글에서 누누이 강조했던 '신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뢰 형성에는 투명한 가격 표시가 최우선으로 필요합니다. 만약, 정찰제로 인해 가격이 소폭 올라가더라도 소비자에게는 알 권리가 주어진 것이므로 가격을 보고 수산시장을 이용할 것인지 마트를 이용할 것인지 전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이에 수산시장은 더욱 합리적인 가격으로 책정해 대형 수산시장만이 가지는 가격 경쟁력으로 메리트를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금까지 바가지 상술로 이득을 본 상인이 아니라면, 시장 차원에서는 가격 정찰제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가격 정찰제는 모든 점포 간의 가격 차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점포 간의 경쟁력은 서비스 친절도와 정량화에 의해 결정되며,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불신을 줄이는 기폭제가 될 것입니다. 수산물의 광범위한 품목을 일일이 표시하기는 어렵지만, 소비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품목만 표시해도 수산시장을 이용하려는 잠재적 고객들에게는 흥정과 바가지 상술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것이 수산시장의 신뢰 회복과 매출 증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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