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은 취재 차 이른 아침부터 제주도를 찾았습니다. 17호 태풍인 메기의 영향으로 제주 전역이 비구름으로 뒤덮였지만, 이번에는 낚시가 목적이 아니니 강행합니다. 혹시 몰라 장비를 챙겨오긴 했는데 예보 상으로는 일정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비바람의 연속입니다. 풍속과 파고도 강해서 낚시할 엄두가 안 났죠.

 

 

어느덧 제주도가 보이기 시작하고 착륙을 시도하는데 구름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마음이 불안합니다. 한참을 하강한 것 같은데도 여전히 구름에 가려져 있고, 그러다가 갑자기 나타난 건물과 도로가 창가에 선명히 나타납니다. 제아무리 훈련된 조종사라도 이렇게 낮은 고도까지 구름이 깔려있으면 착륙하는데 긴장이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흠뻑 젖은 활주로에 진입한 비행기는 아주 부드럽게 착륙합니다.    

 

 

협재 해수욕장

 

공항에 내리자마자 렌터카를 빌려 내려옵니다. 애월의 한 숙소에 머무는 친구를 픽업하고 밥을 먹고 낚시의 기회를 엿보기 위해 바닷가로 나옵니다. 비는 그친 상태인데 바람이 정말 무지막지하게 붑니다. 이 일대 해안가 갯바위는 너울성 파도에 대부분 초토화가 되고 있었는데 그나마 해변이라 평화롭습니다.

 

 

제주도 방문이 손에 꼽는 친구는 협재 해수욕장의 풍경이 궁금했나 봅니다. 앞에 비양도가 보이는 풍경이 근사한 해변이죠.

 

 

 

협재 해수욕장을 구경하고 낚시를 서둘러 봅니다. 스쿠버다이빙이 취미인 친구가 갑자기 낚시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날을 맞추어 오기는 했는데 날씨가 이러니 정상적인 레슨은 어려울 듯합니다. 우선 바다낚시는 이런 식으로 한다고 시범을 보이기 위해 밑밥을 개러 갑니다. 밑밥을 개러 간다는 말 자체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친구에게 밑밥과 미끼에 대해 설명해주고, 이곳에서 주로 노리는 어종인 벵에돔에 대해서도 간단히 알려줍니다. 

 

구엄포구에서 밑밥을 개고 방파제로 나갔는데 이 강풍에 낚시하러 온 현지꾼이 3~4명이나 됩니다. 대부분 벵에돔을 노리는 찌낚시와 카고낚시 채비입니다. 빈자리로 들어가 낚시를 시작하는데 세상에 각재기(전갱이 치어)가 ㅠㅠ. 몇 번 던져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긴급 철수. 

 

 

일단 숙소로 가서 체크인하고 다음 일정을 생각하기 위해 때마침 용머리 해안 근처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비도 그쳤으니 해안가 좀 구경하고 가자는 친구 말에 차를 세웁니다. 그런데 저곳에서 두 분이 낚시 중이네요. 바람도 생각보다 약하니 얼른 낚싯대와 밑밥통을 들고 나왔습니다. 한두 번 던져보는데 그 무서운 각재기가 없군요. 잘하면 벵에돔 낚시 되겠다 싶어 처음부터 과감하게 밑밥을 뿌리며 낚시를 시작합니다. 몇 번 던져보니 바닥 쪽에서 작은 돌돔 한 마리가 올라오고. 다시 던지는데 갑자기 폭우가 ㅠㅠ

 

거의 속옷까지 쫄딱 젖을 뻔 한 상태에서 채비를 걷고 철수하려던 찰나, 뒷줄이 빨랫줄 송구처럼 나갑니다. 대를 세우자마자 꾹꾹 처박는 녀석. 간만에 제대로 된 녀석이 걸렸다 싶어 릴링하려는데 갑자기 팅. 중간에 직결 매듭이 어이없이 풀린 채 올라옵니다. 찌는 그 자리에 동동.

 

 

비에 쫄딱 맞고, 제가 아끼던 찌도 하나 해 먹었으니 기분이 찹찹합니다. 숙소가 함덕 해수욕장 부근이라 제주시에서 30분은 달려야 하니 그 전에 제주시의 모 고깃집에서 식사를 들기로 합니다.

 


 

 

이곳은 근고기의 원조격인 돈X도. 목살 두께가 어마어마하죠.

 

 

요로코롬 구워서 술 한 잔을 하려는데 제가 운전대를 잡아야 하니 술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평소 소주를 즐겨 마시지는 않지만, 어째 이런 고기를 앞에 두고 술을 안 마실 수 있으리요. 게다가 친구 혼자 홀짝홀짝하게 두는 것도 좀 아니고요. 그러다가 중간에 고기 구워주시는 분이 "방금 페이스북에 올리셨죠?"라고 하시는 겁니다. 순간 흠칫! 이분 독심술이라도 있나? 싶었는데 다름 아닌 평소 제 글을 애독해주시는 페친님이셨더라는. ^^; 이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인연이 반갑기만 합니다.

 

이날은 둘이서 고기를 1kg 정도 시켜 먹었습니다. 김치찌개에 밥까지 이 많은 음식이 배에 다 들어갈 수 있다니, 아무래도 이날은 하루종일 비에 쫓겨 다니느라 뱃속에 거지가 들었나 봅니다.

 

 

다음 날 오전입니다. 밤새 비바람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연신 창문이 달그락거리는 바람에 중간중간 잠이 깨기도 했고요. 아침이 되어도 기상이 나아질 기미가 없어, 오전 내내 숙소에 박혀 있어야 했습니다. 제주도까지 와서 낚시는 전혀 할 수 없으니 먹방으로 나갑니다. 이곳은 제주시의 모 물회 전문점. 어떤 물회로 먹을지 고민하다가 그냥 모둠으로 결정합니다. 자세한 물회 이야기는 조만간 따로 쓰겠지만, 무난한 구성인데 비해 맛은 개인적으로 2% 부족해 보입니다. 

 

제주도식 물회는 속초나 기타 동해 지방의 물회와 다르게 된장이 베이스고 여기에 초피(제피) 향이 더해지는 형태이지요. 타 지역과 다른 제주도만의 색을 기대한 친구가 이 부분에서 조금 실망했고, 저 역시 동감입니다. 요즘 제주도가 타지 관광객의 입맛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원래의 토속적인 색깔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시간은 오후 3시.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3~4시간 정도입니다. 이 시간 안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공항으로 가야만 합니다. 일단 풍향이 북동풍임을 확인하고선 정반대 방향인 사계리 해안 쪽으로 향했습니다. 어제 쓰다 남은 밑밥이 그대로 있었기에 이걸 가지고 친구에게 벵에돔 낚시를 알려주기로 합니다.

 

찾은 곳은 사계리 해안 초소 포인트. 좀 전에 차에서 내릴 때만 해도 바람이 멈추고 해가 떴는데 낚싯대를 피고 첫 캐스팅을 날리려고 하자 다시 먹구름이 드리워지더니 이번에는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옵니다.

 

"What The..."

 

근처 주민에게 날씨에 대해 물어봤는데 그분도 좀 전에는 바람이 멎었다고 하더군요. 가만 생각해보니 아차 싶습니다. 예보 상으로는 오전에 북동풍, 오후에 남동풍이라는데 풍향이 때마침 남동풍으로 바뀐 것입니다. 중간에 바람이 멎은 것은 풍향이 북동에서 남동으로 잠시 돌 때 있었던 현상일 뿐. 운도 지지리 없죠. 바람을 몰고 다니는 꾼이라니.

 

 

현장에는 너울이 갯바위를 강타하고 있어 저만치 뒤로 물러서서 낚시해야 했습니다. 풍속은 약 12m/s, 체감은 그 이상. 이건 뭐 낚싯대를 들고 서 있기도 힘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낚싯대를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친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먹먹합니다. 이런 바람통에서 낚시를 처음 하는 사람이 캐스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캐스팅은 제가 하고요. 뒷줄 정리하고 베일을 닫은 낚싯대를 친구에게 건네줍니다. 이렇게 된 이상 낚시 레슨은 포기하고 우선 손맛이라도 봐야죠. ^^; 낚싯대를 친구에게 건네자마자 저는 찌 주변으로 밑밥을 다다닥 뿌려줍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았는데 줄이 쫙쫙 펴지는 입질이 이어집니다.

 

 

어쩌면 친구의 인생샷이 될지도 모를 감격의 첫수가 올라옵니다. 갯바위 주변으로 포말이 엄청나게 일어나니 경계심을 버린 벵에돔들이 갯가로 붙어 적극적으로 미끼를 받아먹는 것입니다. 포인트 주변에는 4~5cm 정도 되는 새끼 벵에돔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수면에서 파닥거립니다. 조금이라도 밑밥 동조가 어긋나면, 여지없이 이 녀석들이 물어 재끼니 1타 1피로 물어도 씨알 선별이 매우 어렵습니다. 

 

벵에돔 낚시에서 벵에돔을 분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아요. 게다가 이 바람통에 롱캐스팅을 하지 않으면, 온전한 씨알을 기대할 수 없으니 더더욱 어렵고요. 

 

 

그래도 이런 악조건에서 이 정도면 분투한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손맛이란 것을 느끼게 해주려고 노력한 보상이랄까요. 맞바람이지만, 있는 힘껏 날리고 낚싯대를 친구에게 건네준 결과 1타 1피에 가까운 조과를 냈습니다. 한낮이라 씨알이 고만고만한데요. 이런 분위기라면 저녁에 4짜 넘는 벵에돔도 갯가로 붙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왜 파도치는 성난 바다에 현지꾼들이 몰리는지 아시겠지요? 제주도는 파도가 어느 정도 치고, 갯바위 가장자리에 허연 포말이 많이 생겨야만 벵에돔이든 농어든 가까이 붙기 때문입니다.

 

이 날은 사실 낚시하면 안 되는 조건이었습니다. 파도는 그렇다 쳐도 바람이 너무 강해 낚싯대 가누기가 무척 어려웠지요. 더군다나 낚싯대를 처음 잡아본 친구에겐 어련하겠습니까. 원줄이 날리는 그런 험한 날에 이렇게라도 손맛 본 것을 위안 삼으며, 제주도와의 아쉬운 작별을 고합니다. (참고로 잡은 고기는 전부 방생했습니다.) 다음 조행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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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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