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화장실

 

인천에서 호치민을 경유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30분. 짐을 찾고 화장실에 들렀는데 바닥이 젖어 있습니다. 누를수록 수압이 세지는 수도 파이프와 하수구가 좀 낯선데요. 이런 수동 비데는 말레이시아를 여행하면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택시를 잡아타 숙소에 도착하니 밤 10시. 하루 먼저 온 동생 일행과 만났는데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며 식사하러 가잡니다. "모두라니.." 우리 말고도 동생 지인과 그 지인이 현지에서 사귀었다는 중국계 커플이 있길래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그들의 차량에 탑승했습니다. '닉'이라는 이름의 중국계 말레이시안과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친구가 우리가 아는 현지인 맛집을 소개해주겠다며 나선 것입니다.  

 

긴 시간을 비행한 딸은 이미 엄마 품에서 곯아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중간에 냉각수가 떨어져 차가 퍼지고, 다급히 생수를 가져와 들이붓고 했던 와중에도 말입니다.  

 

 

그렇게 20분 정도 달려온 곳은 쿠알라룸푸르 외곽에 있는 어느 무슬림 마을. 단층 상가만이 즐비한 이곳은 쿠알라룸푸르 중심가의 빌딩 숲과 대조적입니다. 늦은 시간이라 대부분 상점은 문을 닫았고 어두컴컴해 다소 황량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국민 중 절반 이상이 이슬람교도임을 말해주듯이 곳곳에는 이슬람 성전이 눈에 띄고요. 일행은 홀로 환히 비추며 영업 중인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UTARA'는 식당 이름이고 그 옆에 'KEDAI MAKAN'이란 글자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KEDAI'는 말레이어로 상점을 뜻하고, 'MAKAN'은 먹는다는 뜻으로 보아 이 둘을 붙여 식당이나 레스토랑 정도의 뜻인 듯합니다. 

 

 

사실 동네 분위기를 보아 외국인이나 관광객이 찾을만한 곳은 아니기에 식당에 들어설 때만 해도 주민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워낙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곳이라서 그런지 관광객 코스프레로서의 부담감은 적은 편이었죠. 이곳은 주로 무슬림이 사는 마을이라 낯선 이방인에게 "어디서 왔느냐?" 정도의 관심은 보입니다.

 

 

메뉴판을 보아도 아니 벽에 걸린 음식 사진을 보아도 말레이어라 파악이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닉이란 친구가 알아서 주문하더군요. 말레이시아에 왔으니 이곳의 '사테이(Satay)'는 꼭 먹어봐야 한다면서. 참고로 사테이는 싱가폴과 말레이시아를 여행할 때 자주 접하는 흔한 꼬치구이입니다. 우리 입에도 잘 맞아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인기 만점이지요.

 

 

마침 저쪽에는 직원 몇 명이 사테이를 양념하고 굽는 중입니다.

 

 

고기는 주로 소와 닭, 양고기 정도를 사용합니다. 이슬람권이라 돼지고기는 당연히 볼 수 없습니다.

 

 

오른쪽이 시즈닝된 소고기로 보이며, 왼쪽에 노란 것이 닭고기로 보입니다.

 

 

사테이는 이렇게 구워지는군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는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저 뜨거운 불덩이에서 장갑도 안 끼고.. 물론, 베테랑이겠지만 그래도 지켜보는 제 손이 다 뜨겁습니다. 

 

 

뒤에 안경 쓴 친구가 우리 가족을 안내한 말레이 친구 닉이다

 

닉은 말레이시아에 왔으니 기본적으로 사테이와 테타릭은 맛봐야 한다며, 먼저 주문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테타릭을 서빙하는데 그 눈빛이 마치 강원도 인제군 마을회관 앞 식당에서 파란 눈의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골 청년과 비슷하군요. 한국 사람 처음 보냐? ㅎㅎ (하긴 이곳이라면 신기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말레이시안의 국민 음료인 '테타릭(Teh Tarik)

 

어쨌든 '테타릭(Teh Tarik)'이라고 불리는 이 음료는 싱가폴, 말레이시안들이 즐겨 먹는 국민 차. 원발음은 테타릭이지만, 여기서는 말레이틱한 발음으로 '떼따릭'이라 불러주면 더 좋을 것입니다. 여기서 '테(Teh)'는 차를 의미하고, '타릭(Tarik)'는 말레이시아어로 우유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홍차에 우유나 연유를 섞은 밀크티를 이 나라 사람들은 즐겨 마신다고 합니다.

 

언젠가 '기인열전'같은 TV 프로그램에서 테타릭을 붓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최대한 팔을 치켜들고선 컵으로 정확하게 따라 붓는데 낙차를 이용해 거품을 만드는 기술이라든지, 등 뒤로 부으면서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든지 하는 기이한 열전으로도 대회를 열 정도이니 테타릭에 대한 말레이시안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려 합니다.

 

맛은 뜨뜻미지근한 밀크티. 뜨거운 밀크티에 이제 막 얼음이 들어가서 위는 차고 아래는 따듯합니다. 좀 더 저어서 차가워질 때까지 기다리다 마시니 맛이 괜찮군요.

 

 

말레이시아 여행 중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인 하나인 '사테이(Satay)'

 

그리고 닭과 소고기로 만든 사테이가 나옵니다. 가격은 한 접시에 10링깃 정도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2,700원. 5~6접시는 시켜 먹었던 것 같은데 다해도 우리 돈으로 15,000원이 될까 말까 한 가격이면서 맛은 정말 훌륭합니다. 숯불에 구운 고기 맛이지만, 사테이가 특별한 것은

 

 

흠뻑 적셔 먹어도 부족하다 느껴질 만큼 중독성 높은 소스가 별미다

 

바로 이 땅콩 소스. 여기에 묘한 향신료가 은근히 중독적인데 뭐랄까요. 볶은 땅콩의 구수한 맛 뒤에 오는 오묘한 향이 말입니다. 쿠민, 정향, 민트 계열의 향신료가 오묘하게 섞인 듯한 느낌인데 먹는 데 정신 팔린 나머지 그 향신료의 종류를 물어본다는 것을 잊어서.. 개인적으로 이 조합을 어떻게든 알아내어 집에서든 바비큐 파티에서든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데요. 다음에 확실히 알아보고 만들어서 성공하면, 그때 레시피를 한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쿠알라룸푸르를 여행하면서 다른 블로거들이 추천한(관광지) 식당에도 가보고 사테이를 시켜보았지만, 이 집 사테이 맛에는 반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의 수육을 맛보겠다면서 찾은 곳이 원할머니 보쌈이라면, 수육으로 유명한 노포의 맛을 알고 가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듯이, 일부 블로거들이 맛집이라고 추천한 말레이시아의 몇몇 프렌차이즈나 관광지 식당은 피하는 것이 좋음을 이번 여행을 통해 새삼 깨닫습니다.  

 

 

미고랭

 

나시고랭, 나시르막과 함께 동남아 음식 하면 떠오르는 음식입니다. '나시'가 밥이라면, '미'는 면이란 뜻. 그런데 이 음식은 다소 평범했어요. 익숙한 듯한 맛이면서도, 친숙하지는 않습니다. 갓 볶아낸 양배추의 식감은 좋았지만, 먹는 내내 짜고 단 간장 맛이 거의 모든 맛을 주도했고, 혀에 붙은 지루함은 먹을 때마다 누적되면서 젓가락이 가지 않게 하였습니다.

 

 

말레이식 똠얌꿍

 

코코넛 밀크로 부드러운 맛을 내는 것이 태국식이라면, 말레이식은 처음부터 시종일관 강렬합니다. 한술 뜨고 수저를 놓아버릴 만큼의 시큼함, 고수풀 냄새, 무엇보다도 소태라 할 만큼 짭니다. 어쩌면 이 짠맛이 더운 나라 사람들의 탈수를 막아주는 원동력이겠지만요. 예전에 똠얌꿍을 만드는 장면을 보면서 무수히 많은 재료와 그것을 아끼지 않고 넣는다는 생각에 호감을 가졌는데 이 음식도 맛본 대로입니다.

 

내 입맛에는 해물탕이라야 할 국물에 손으로 움켜쥐어 짠 라임즙의 시큼함과 비누 향이 나는 고수풀 냄새, 고추의 매운맛, 그 외 향신료 범벅인 국물이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골골대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내 정신을 바짝 차리게라도 하고 싶다는 듯 온갖 맛이 입안에서 부딪히며 다음 수저를 재촉합니다. 입천정에선 천둥 번개가 치는 듯했고, 혀끝은 알싸했으며, 코로 내실 때 느껴지는 온갖 향이 낯설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는 맛이랄까. 어쩐 일인지 저는 반 그릇이나 비우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이런 강렬한 맛을 내 몸이 원하고 있는지도.. 장시간 비행에 지친 몸이라 확 깨고 싶었던 걸까요? 소주라도 있었더라면, 좋겠단 생각도 해봅니다. 예상대로 이 음식은 인기가 없었고, 중국계 커플조차도 봉인해 버렸다는 사실.

 

 

매운 나시고랭

 

매운맛과 순한 맛이 있는데 직원이 매운맛을 적극 추천하길래 시켜 봤습니다. 보통의 볶음밥과 다르지 않지만, 말레이 고추를 듬뿍 썰어 넣었다는 것은 함정. "정말 매우니 신중히 선택할 것"을 요구했지만, 보기에는 별로 매워 보이지 않고, 더구나 한국 사람 아닙니까? 매우면 얼마나 매울까 싶어 맛을 보는데.. 

 

역시 이 정도는 문제가 안 되는 맛. 그렇게 서너 수저를 급하게 먹었더니 뒤늦게서야 올라오는 알싸함. 고추는 우리네 청양고추와 비슷한 수준으로 맵습니다. 매운 음식 잘 먹는 이들에게는 문제없지만,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들에게는 심히 당혹스러울지도.

 

 

자정이 되면서 손님들은 하나둘씩 빠집니다. 사람이 6명인데 다해서 3만원도 안 나왔습니다. 이런 곳이라면 한턱 쏠께~! 라며 생색낼만하겠죠? ㅎㅎ. 밤이 늦어 다들 간단히 시켜 먹는다는 것이 이 집의 주메뉴인 해산물 요리를 시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찾아간다면, 다른 요리도 많으니 이것저것 시켜보기를 권합니다. 물론, 사테이는 기본으로 ㅎㅎ.

 

 

위치는 쿠알라룸푸르 외곽에 위치한 타만 마주자야. E10번 도로를 타고 들어옵니다.

 

 

말레이시아 여행을 꿈꾸는 이들은 물론, 현지 교민도 있을 테니 자세한 위치를 첨부합니다.

 

 

다음 날 아침

 

닉이 바래다준 덕에 늦은 밤, 숙소까지 편히 올 수 있었고, 우리 가족은 그대로 뻗었습니다. 눈을 뜨니 얼마 자지도 못한 기분인데 벌써 9시. 아침 7시면 눈을 뜨는 딸도 이날은 완전히 뻗었습니다. 온종일 장거리 이동만 했으니 무리도 아니죠. 자유 여행이라 더 뒹굴어도 되지만, 이대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아깝습니다.

 

근처에는 브런치를 잘한다는 근사한 카페가 있다고 하더군요. 좀 더 뒹굴다 브런치를 먹고, 근처 쇼핑몰에서 장을 보고, 수영장 등 아파트 시설을 이용하며 하루를 보내는 일정이 남았습니다. 바깥은 러시아워로 복잡하기만 한데 말이죠. 이게 사는 건가 싶기도 하고, 가끔은 이렇게 쉬어줘야 또 일할 수 있으니까요. 이제 막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가족 여행이 시작 될 참입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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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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